[만민보] ‘이건희전’ 저자 심정택 “삼성이 한국을 먹여 살린다고?”

‘이재용 사면’ 얘기가 오르내린다. 재계와 정계, 심지어 종교계도 나섰다. 한국 경제를 위한 길이라는 주장이다. 한국(국가)-삼성(기업)-이재용(총수)을 동일시한다. ‘삼성공화국’이라는 조어가 실감 나는 요즘이다.

이재용 부재로 한국이 망할까? 유치한 질문이 입에 맴돈다.

지난 6일 서울 관악구 인근에서 심정택 작가를 만났다. 그는 ‘삼성의 몰락(2015.1.)’, ‘현대자동차를 말한다(2015.5)’, ‘이건희전(2016.2)’을 쓰면서 작가 호칭을 얻었다. 쌍용차와 삼성 계열사를 두루 거친 바 있어 산업분석가로 불리기도 한다.

심 작가는 삼성전자가 한국을 먹여 살린다는 건 과도한 착각이라고 강조하며 ‘이재용 부재 위기론’을 반박했다. 글로벌 기업인 삼성전자의 수익이 한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보다 세밀한 분석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삼성은 내수 시장을 보고 사업하지 않는다. 매출 대부분이 외국에서 발생한다. 공장과 연구소도 외국에 있다. 투자가 외국에서 이뤄진다는 얘기다. 벌어들인 이익은 임금으로 임직원에게, 배당으로 총수일가를 비롯한 주주에게 간다. 이들은 국민의 일부다. 삼성의 성장이 국가 경제와 무관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직결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무리한 승계 과정에서 발생하는 편법과 탈법이 사회적 비용으로 작용한다고 꼬집는다. 국정농단 재판에서 뇌물죄로 2년6개월 실형을 받아 구속 중인 이 부회장은 현재 불법승계 재판을 받고 있다. 이 부회장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비율이 자신에 유리하게 설정되도록 하기 위해 주주 기망(자본시장법)과 회계 분식(외감법)에 관여한 혐의를 받는다.

“삼성 리스크가 점등하고 있다. 내가 주장하는 삼성 리스크는 삼성의 모든 역량이 이 부회장 경영권 승계에 ‘몰빵’하고 있어서 발생하는 국가적 사회적 비용을 말한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간 합병 추진 시 국민연금의 불편한 선택도 삼성 리스크로 인한 사회적 비용으로 본다”(이건희전 中)

삼성에 초점을 둔 정부 정책도 국가적인 부작용이라고 심 작가는 지적했다. 대표적인 예가 반도체다. 더불어민주당에서 출범한 반도체기술 특별위원회는 하반기에 반도체 지원을 위한 특별법을 발의할 계획이다. 설비 투자에 대한 세제 혜택 방안 등이 거론된다.

“정부 지원이 메모리와 파운드리(위탁생산)에 치우칠까 우려된다. 대규모 설비 투자를 전제로 하는 메모리와 파운드리에서는 중소 기업이 클 수 없다. 한국에 반도체 생태계를 구축하려면 팹리스(반도체 설계) 인력을 양성해야 한다. 삼성전자가 수혜를 받는 설비 투자 세제 지원은, 처음부터 재벌 지원을 목적으로 산업을 끼워 맞춘 게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게 한다”

심 작가는 이재용 부회장을 사면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대해 “터무니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 부회장까지 올 것도 없다. 삼성은 이건희 체제의 1990년대 말, 2000년대 초부터 이미 시스템과 프로세스에 의해 돌아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재벌 총수 사면 논란이 일 때마다 개혁 진영을 중심으로 지적돼온 얘기다. 세계 선두 기업으로 자리 잡은 삼성은 총수 부재 상황에서도 분석과 검증을 거쳐 경영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역량을 갖췄다는 상식은 번번이 ‘위기론’과 대치해야 했다.

“재계뿐 아니다. 기장군·하동군 군수와 조계종 주지 스님이 반도체 산업과 백신을 운운하며 호소문을 낸다. 이 부회장은 현재 불법승계 재판도 받고 있다. 비상식적인 상황이다. 자발적으로 했다고 보이지 않는다. 배경이 의심될 지경이다.”

심 작가는 한 발 더 나갔다. 그는 “삼성에는 총수일가 옹호 논리를 구성하고 대외에 전파하는 삼성 내부 조직이 있다”며 “대외협력단으로 불리던 이 조직은 제품과 브랜드를 다루는 홍보 조직과는 다르다”고 말했다. 이어 “대외협력 조직은 존재하는 한, 상식과 어긋나더라도 이 부회장을 위해 무슨 일이든 계속해야 한다”며 “비대해진 대외협력 조직에 계속 의존하면 국정농단과 불법승계와 같은 비극이 반복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건희전’ ‘삼성의 몰락’, ‘현대자동차를 말한다’ 저자 심정택 작가가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건희전’ 저자인 심 작가는 쌍용자동차를 거쳐 삼성에서 산업분석 업무를 맡았다.ⓒ김철수 기자

“총수가 주요 의사결정?…전문경영인 체제 준비해야”

심 작가는 1993년 삼성중공업에 입사했다. 삼성이 자동차 산업 진출을 추진하던 때다. TF팀 소속으로 자동차 산업 분석 임무를 맡았다. 쌍용자동차 기획실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이직이었다.

이후 삼성자동차 경영기획실과 자동차소그룹 조사 부문 간사, 삼성그룹 대외협력단을 거쳤다. 1999년 삼성이 자동차 산업에 철수하면서 계열사 에스원으로 자리를 옮겼으나, 같은해 회사를 그만뒀다.

심 작가는 자산이 일반적인 삼성 출신은 아니라고 말했다.

“삼성에 속했으나 삼성을 잘 모른다. 재직 기간은 관리부서도 아니고, 자동차 산업과 경쟁사를 분석하는 업무를 했다. 자동차 업계를 비롯해 언론과 정계 쪽을 두루 돌며 사람들을 만났다. 오히려 현대차에 더 밝았다. 타사에서 진행하는 신규 프로젝트는 알았지만, 내부 사정은 업무 영역이 아니었다.”

“잘 모른다”는 말은 그의 설명대로 업무 특성을 고려한 자평이며, 회사를 나온 지 상당한 시간이 흐른 만큼 사실이기도 하다.

다만, 삼성에서 보낸 시간이 이후 저술 활동의 토대가 됐다. 그의 책은 공개된 자료뿐 아니라 삼성 임원급 인사 인터뷰에 기반한다. 그는 책에서 “삼성에 다닌 건 인연이다. 내 주변 많은 삼성맨이 비서실 출신이다”라며 “나름 사실과 사람 기억 속에 있는 진실을 찾고자 애썼다. 전직 부회장급들을 취재하지 못한 건 나의 역량 부족이다”라고 말했다.

심 작가의 첫 책은 2015년 1월 출간한 ‘삼성의 몰락’이다.

“1980년대 뉴욕 증권가 애널리스트가 쓴 ‘GM의 몰락’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GM은 곧 국가’라는 말이 있었는데, 저자는 GM의 관료화된 조직, 과도한 인센티브, 재무팀에 대한 권한 집중 등을 꼬집었다. 실제 2009년 GM은 파산한다. GM이 겪은 위기 상황과 삼성의 당시 상황이 비슷했다.”

‘삼성의 몰락’은 삼성전자의 스마트폰 사업 위기론을 제기한다. 위협 요소로 중국의 샤오미가 언급된다. 심 작가는 샤오미가 중저가 스마트폰을 중심으로 점유율을 넓혀가는 상황을 전하면서 “스마트폰 시장은 불과 6개월이면 승자가 바뀐다”고 짚었다. 중저가 시장에서는 샤오미를 비롯한 중국 기업에 점유율을 빼앗기고 고성능 고가 시장에서는 애플에 치이는 샌드위치 형국을 지적했다. 그는 가격 경쟁력과 기술 경쟁력에서 혁신하지 못하면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스마트폰 시장에서 밀려날 수 있다는 경고다.

결과론적인 얘기지만, 심 작가의 예상은 대체로 들어맞았다. 시장조사업체 스트래티지 애널리틱스(SA)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삼성전자의 세계 5G폰 점유율은 4위에 그쳤다. 애플이 1위를 차지했고, 샤오미와 함께 ‘OVX’로 통칭되는 중국의 오포와 비보가 2, 3위를 차지했다. 샤오미는 5위로 삼성전자 뒤를 바짝 쫓았다.

심 작가는 삼성이 처한 현 상황이 녹록지 않다고 경고했다. 그는 “스마트폰 시장 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지고, 삼성이 세계 1위 달성을 목표로 내건 시스템 반도체에서는 TSMC를 좀체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며 “신수종 사업 진출을 모색해야 할 때”라고 주장했다.

‘삼성의 몰락’ 출간 이후 1년 뒤에 ‘이건희전’을 냈다. 고 이 회장이 와병 중이던 시기였다. 심 작가는 고 이 회장에 대한 평가뿐 아니라 이 부회장 체제에 대한 진단에도 상당 부분 지면을 할애했다.

삼성 총수를 바라보는 심 작가의 시선은 재계가 주장하는 주요 투자 결정 책임자와는 거리가 멀다.

“호암이나 이건희나 의사결정을 하지 않는다. 사회적 책임이 따르기 때문이다. ‘오너의 의사결정의 애매모호성’은 삼성 경영의 한 특징을 이룬다. 특별한 변화 없이 이재용 체제로 들어서고만 2016년 삼성의 의사결정 구조가 어떨지 생각해본다. 불안한 지배구조와 경영실적 하락 추세에 있는 이재용이 온전한 무언가의 결정을 할 수 있겠는가?”(이건희전 中)

심 작가는 “전문경영인도 총수처럼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해 인사권을 악용하고 과도한 보수를 챙겨가려는 욕심에 사로잡힐 수 있다. 전문경영인에 대한 감시·견제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전제하며 삼성이 이재용 체제를 넘어 전문경영인 체제로 전환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부회장은 지난해 5월 대국민 사과를 통해 자녀에게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심정택 저서ⓒ기타

“이학수와의 재판은 공포였다…삼성에 대한 다양한 시각 나오길”

심 작가는 ‘이건희전’ 출간 직후 고소를 당한다. 전략기획실 수장을 맡으며 2인자로 불리던 이학수 전 삼성전자 부회장이 명예훼손으로 소송을 걸었다. ‘이학수 비자금이 5조원이다’ 등의 문구를 문제 삼았다. 심 작가는 2018년 대법원 판결까지 승소했지만, 그 과정에서 겪은 어려움은 컸다.

“이학수는 말이 전직이지 삼성맨이다. 나와는 레벨이 다른 사람이다. 손해배상 청구를 했는데, 경제력이 안 된다. 공포다. 주변의 도움을 받아 재판을 진행했는데, 변호사 비용 등 부담이 만만치 않았다.”

문재인 대통령이 공식 석상에서 이 부회장과 만나는 상황에서 심 작가의 걱정은 깊어갔다. 정부가 친기업 기조로 전환하는 신호로 읽혔고, 심 작가 자신의 재판에도 영향을 준다고 생각했다. 문 대통령과 이 부회장은 2018년 7월 삼성전자의 인도 노이다 공장 준공식에 참석한다. 이 부회장이 국정농단 2심 재판에서 집행유예를 받아 풀려난 상황이었다.

심 작가는 “이 부회장이 대법원 재판을 받고 있는데 대통령과 만난다는 건 예삿일이 아니다”라며 “기획된 이벤트”라고 말했다. 이어 “당시 준공식은 1997년 세워진 인도 노이다 공장을 증축하면서 열린 것”이라면서 “한국 대통령과 인도 총리가 방문할 만큼의 의미를 가지는 행사는 아니었다”고 덧붙였다.

‘이학수 명예훼손 재판’은 사법 절차를 악용해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려는 시도였다고 심 작가는 비판했다. 그는 “400페이지가 넘는 책에서 이학수가 직접적으로 언급된 부분은 4페이지 정도”라며 “그걸 빌미로 소송을 제기한 건 억지스럽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학수는 재판부의 재산 공개 요청에 부분적으로만 응했다”며 “재판부는 ‘이학수 비자금 5조원’ 문구는 재산이 많다는 의미의 가치중립적인 표현이라고 판단했다”고 전했다.

심 작가는 실제 삼성에 대한 비평이 제한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삼성의 몰락’은 삼성이 망하라고 쓴 책이 아니다. 나 자신의 IT 산업 이해도를 높이고 이를 초심자의 입장에서 소개하려는 취지였다. ‘초심자의 소개서’ 치고는 반응이 좋았다. 과분하게 중국어로 번역되기도 했다. 이는 역설적으로 삼성을 다각도로 바라보는 시도가 흔치 않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삼성을 다루는 콘텐츠 다수가 삼성의 용역을 통해 이뤄지는 것도 사실이다.”

심 작가는 삼성에 대한 다양한 의견 개진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건희전’ 서문에서 “더 많은 이건희 평전을 고대한다”며 “이 책을 계기로 시각이나 입장이 다른 이들도 참여를 통해 이 책의 시선을 뛰어넘는 역작을 내어놓기를 바란다”고 적기도 했다.

‘이건희전’이 나온 지 5년이 흘렀고, 삼성 내부와 대외 환경에 적잖은 변화가 있었다. 고 이 회장 사망 이후 이 부회장을 비롯한 유족들이 계열사 지분 등 유산을 상속하게 됐다. 불법승계 1심 재판도 진행 중이다. 심 작가는 ‘이건희전’ 개정 작업을 계획하고 있다.

‘이건희전’ ‘삼성의 몰락’, ‘현대자동차를 말한다’ 저자 심정택 작가가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건희전’ 저자인 심 작가는 쌍용자동차를 거쳐 삼성에서 산업분석 업무를 맡았다.ⓒ김철수 기자

민중의소리를
응원해주세요

기사 잘 보셨나요? 독자님의 응원이 기자에게 큰 힘이 됩니다. 후원회원이 되어주세요. 독자님의 후원금은 모두 기자에게 전달됩니다. 정기후원은 모든 기자들에게 전달되고, 기자후원은 해당 기자에게 전달됩니다.

조한무 기자 응원하기

많이 읽은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