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의 종말] ‘풍광수토’를 아시나요?

UR 타결 이후, 김영삼 정부가 펼친 ‘신농정5개년계획’은 농촌 붕괴 가속화를 가져왔다.

1993년 12월, 우루과이라운드(UR)가 타결되고 농수산부는 결과 보고서를 제출한다. 이 보고서 안에는 ‘종합농정대책’이 포함되어 있었다. 필자는 여기서부터 우리 정부가 ‘농사는 잊어버리고 산업으로서의 농업을 강조하며 비교 우위론을 절대 가치로 신봉하는 첫 걸음을 뗐다’고 생각한다.

지식인들은 정부의 정책 방향이 농민들의 삶의 방식과 가치관을 뿌리째 흔들어 놓았다고 비판했다. 농민들은 분노했다. 5천 년 지어온 농사를 내어주며 향후 5천 년을 대비하는 종합 계획을 내와도 모자랄 판에, 문제 사안마다 내놓는 ‘대책’만 발표한 것은 농업을 그만큼 깔보는 것이라고 정부를 힐난했다.

농수산부 UR보고서 일부 내용 발췌

7. 종합농정대책

가. 경쟁력 강화의 가속화
o 산업으로서의 농업을 육성하기 위해 "신농정"을 보완·강화, 대규모 기계화·자동화 영농의 촉진 등을 통한 생산비 절감과 품질 향상으로 개방화·국제화 시대의 경쟁력 있는 기술·수출 농업을 조기에 실현하며, 이를 뒷받침할 수 있도록 농지 제도를 개혁

나. 농가 직접소득보조의 제도화
o 농산물시장 개방과 국내보조금 감축 등 농가의 소득손실을 보전하고, 고령 농민의 노후생활을 보장하며, 농작물의 재해에 대한 지원을 대폭 강화하겠으며, 농촌 공업화를 적극 추진하여, 다양한 농외소득원을 개 발

다. 농촌생활환경개선
o 농촌마을을 편하게 살 수 있는 전원마을로 정비하고, 농촌에 살면서도 도시 수준의 교육 여건과 양질의 의료 서비스를 받으며, 문화적 생활을 향유할 수 있는 생활 공간으로 탈바꿈

라. 재원 대책
o UR 타결로 인한 타 산업분야의 이익과 수입농수산물 판매수익금 등을 개방으로 상대적 피해가 큰 농민과 농어촌에 환원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

마. 농수산 지원 체제의 정비
o 농업구조개선을 효율적으로 추진할 수 있도록 농업금융지원제도를 개선하고, 개방화에 부응할 수 있도록 농정 조직(행정기관 및 정부투자기관)과 농민단체(농협, 축협 등)의 조직을 개편.정비하며, UR타결 이후의 농정시책을 법제화

그러자 김영삼 정부는 부랴부랴 ‘신농정5개년계획’을 제출하기에 이른다. 이 ‘신농정5개년계획’의 내용이 특별하게 더 나아진 것은 아니었다. UR결과보고서의 종합농정대책에서 한 걸음도 벗어나지 못한 이름만 ‘계획’이었다. 김영삼 정부는 해당 계획에 따라 농촌에 42조원의 자금을 쏟아 부었다. 그 같은 선택은 농민에게 ‘농가부채’라는 멍에를 씌우고 급속한 농촌붕괴를 가져오는 결과를 낳았다.

UR이 우리 농업에 가한 최대 충격은 ‘쌀 수입 개방’이었다. 40여 만 톤의 쌀이 해마다 해외에서 들어오게 되니, 쌀이 남아 돌 가능성이 농후해졌다. 이런 상황이 되자 일부 농민들은 팔 수만 있다면 땅을 팔고 이농(離農)하기를 원했다. 일부 농민들은 논을 메워 과일나무를 심기도 했다. 쌀값이 폭락 한다면 쌀농사를 지어서는 농촌에서 살아남기 어렵겠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농촌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전국농민회총연맹을 비롯한 농민단체들이 앞장서 우루과이라운드 재협상을 요구하기에 이른다. 그래서 나온 정책이 ‘신농정 5개년계획’이다. 그동안 해오던 쌀 증산 정책을 감산 정책으로 바꾸고, 쌀의 고급화·상업화를 통한 경쟁력 확보에 주력하게 된다.

그렇게 등장한 정책이 쌀의 ‘브랜드(brand)화’였다. 국내에서 생산된 쌀도 상품화 해 경쟁에 돌입하겠다는 것이었다. 수입 쌀과 최대 4배의 가격 차를 극복하기 위해, 우리 쌀을 고품질화해 자생력을 키우겠다는 취지였다. 이렇게 최초로 만들어진 쌀 브랜드가 전남농협의 ‘풍광수토’다.

고품질화 한 쌀은 대부분 유기농쌀이었는데 높은 가격이 책정됐다. 그러니 일반 서민들에겐 ‘그림의 떡’이었고, 시장이 좀처럼 형성되지 않았다. 이를 본 농민들이 생산에 참여하지 않는 결과가 초래됐다. 결국 이름만 브랜드지 일반 쌀과 별 다를 바 없는, 허명(虛名)의 브랜드화가 진행됐다. 그후에도 각 도에서 브랜드를 만들었고, 각 농협 RPC 별로도 브랜드를 만들었다. 지금은 약 2천 여 개의 쌀 브랜드가 시장에서 격돌 하고 있다.

'다양한 쌀의 변신과 쌀의 모든 것' 특별전시회에 전시된 유명 쌀 브랜드 제품들. (자료사진)ⓒ사진 = 뉴시스

이런 ‘쌀 브랜드’들은 소비자들에게 인식되고 있을까. 한 조사에 의하면 브랜드 쌀의 인식률은 30%정도라고 한다. 우리가 익히 아는 신라면의 브랜드 인식률은 약 90%에 달한다고 한다. 그러니 소비자들이 쌀의 브랜드를 인식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사실 소비자들은 대부분 쌀의 브랜드보다 가격을 보고 구매 결정한다. 즉 값이 싼 쌀을 구매하는 것이 보통이다. 특히 외식업체들은 그 정도가 더 심하다. 그러니 수입쌀 95%에 국내산 5%가 섞인 혼합 쌀을 싼 가격에 현혹돼 구매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외식이 늘어나는 추세에선, 쌀 시장이 낮은 가격에서 형성되는 게 불가결한 조건이 되어 가고 있다.

결국 쌀을 상품화시켜 경쟁을 확보하겠다는 전략은, 가격을 하락시키는 기제로 작용하고 말았다. 현재 농산물 가격을 좌지우지 하는 것은 ‘거대 곡물 자본’과 ‘청과 메이저 회사’들이다. 이들이 농산물을 조금만 많이 공급해도 가격은 급락한다. 반대로 조금만 모자라게 해도 가격은 폭등할 수 있다. 경쟁력은 이렇게 자본력에 의해 조절될 뿐이다.

그럼에도 정부의 농산물 상품화 전략은 언론을 통해 대대적으로 홍보됐다. 어떤 브랜드 농산물은 일반 농산물의 두 배 이상 가격으로 팔리고, 어떤 브랜드의 쌀은 한 가마에 백 만원에 팔려 나간다고 기염을 토하곤 했다. 그 뿐인가. 저명 인사들은 칼럼이나 기고를 통해, 농민들이 쌀에만 매달리는 시대는 지났다고 떠들어 댔다. 정부의 이런 눈물겨운 노력(?)에도 지금 국내 쌀 시장 상황은 어떤가.

▲ 역대 '쌀증산왕' 들의 신상과 재배 품종, 면적 당 생산량, 표창 내용ⓒ출처 = 국가기록원

1970년대엔 쌀 자급을 위해 정부와 농민이 한 마음으로 쌀 증산에 목을 매었다. 정부는 농민들의 참여와 독려를 위해 ‘쌀증산왕’을 뽑기도 했다. 쌀증산왕 시상은 1988년까지 계속되다 끝을 맺었다. 이렇게 산업훈장까지 주며 독려했던 쌀 증산이 된서리를 맞게 된 때가 UR이후 개방 농정시기다. 농민들은 당시 김영삼 정부의 ‘신(新)농정’을 농민들은 ‘쉰농정’이라고 비판했다. 당연히 ‘쌀증산왕’들의 업적도 빛을 잃었다.

그중 눈에 띄는 ‘쌀증산왕’이 이야기가 있어 소개한다. 김연도 씨는 1984년도 은탑산업훈장 수상자다. 그의 사연은 당시 각종 언론 매체에 노출이 많이 됐다. 신문은 물론 잡지나 여성지에도 실렸고, TV에도 출연했다, 그는 한국 농업의 희망을 이야기하는 희망 전도사가 되었다. 그랬던 그가 3년도 채 안 돼, 한 시장의 생선가게 주인이 되어 나타났다. 이 사실 역시 어떤 매체가 보도한 것을 기억했다 전하는 것이다.

한 개인의 역사가 이렇게 공개적으로 거론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바로 그가 개방 농정의 피해를 받은 대표적 인물이기에 그런 것이다. 한국 농업의 희망을 이야기하던 사람이 별안간 농사를 그만 두다니, 신농정이 그에게 얼마나 달갑지 않은 정책이었을지 가늠해볼 수 있다. 또 이농을 결심한 배경이 되었을 것이라는 점도 추측 가능하다. 지금은 농산물 가공업에 종사한다는 소식을 접한 바 있다.

▲ 1960년~2000년까지 우리나라 도시·농촌 인구 증감율ⓒ자료 = 경제기획원 및 통계청, 해당 연도 인구센서스 보고서

사실 그 시기 수많은 농민들이 농사를 뿌리치고 도시로 가는 대열에 합류했다. 위 표는 1960년부터 2000년까지 우리나라 인구 변화를 도시와 농촌으로 나누어 비교한 것이다. 표를 보면 농촌의 인구 감소 폭이 가장 큰 시기는 1985~1990년 사이인데, 4.5%감소한다. 이는 1900~1995년까지 이어진다. 그와 같은 급격한 인구 감소는 UR과 이후 신농정의 결과라고 필자는 판단한다.

이러한 상황에 대한 정부의 대응 방향은 우리나라 농업을 선진국 형으로 바꾸어 공격적으로 대응하겠다는 것이었다. 이른바 규모화, 단작화, 전문화란 것이었다. 농민들은 이 정책에 대해 “규모화 하면 규모적으로 망하고 전문화하면 전문적으로 망한다”는 비판 구호를 외쳤다. 대대적인 농촌 구조조정의 서막이 오르고 있었다.

정부의 농민유인책은 오로지 42조원에 달하는 막대한 농촌 구조조정 자금이었다. 자금의 종류도 많고 액수도 커지니 농협의 담보 대출로는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신용보증을 하고, 돈을 빌리는 농민끼리 서로를 보증해주는 ‘어깨보증’이란 것까지 등장했다. 이는 훗날 농촌에 회오리 바람을 몰아온다. 이 때 해당 자금을 타내기 위해 면서기나 농협 직원들을 다방으로 불러내 협의하던 농민들을 ‘다방농민’이라 부르고, 정부 정책에 반대해 도시에 나와 시위하는 농민을 ‘아스팔트농민’이라고 구분해 부르는 촌극이 펼쳐지기까지 했다.

농촌 구조조정은 1990년대 이후 정부의 일관된 정책인가, 아니면 일 순간의 정책 오판인가. 언뜻보면 정책 오판 같지만 그 반대다. 농민들이 대면하는 영혼없는 농식품부 공무원들은 그 윗선의 논리를 떠받치고 있었을 뿐이었다.

드넓은 토지에 최첨단 기술을 가진 농업 선진국을 우리나라가 따라잡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게다가 농산복합체의 자본력이 전세계 농산물 유통까지 장악하고 있는데, 이 같은 상황을 ‘경쟁력 강화’란 구호로 얼버무리려 하다니 어림없었다. 사실 ‘개방 농정’이란 정부의 정책기조는 1970년대 산업화 과정에서 이미 결정난 것이기에, 이를 바꾸거나 새 패러다임을 말하는 것은 역부족이었는지도 모른다.

정부는 관료들을 동원해 정부 기조에 농민들이 쉽게 동조하도록 만들고 쉽게 넘어 가도록 일을 도모했다. 그들의 혁혁한 공으로 정부는 쌀시장 연착륙 작전에 성공하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을 것이다. 쉽게 말해 그 간의 정부 정책은 우리쌀 가격을 낮추어 수입쌀과의 가격 차를 줄이는 것이었다.

1993년 당시 김태수 농림수산부 차관이 <시사저널>(1993.12.09)과 한 인터뷰를 보면 정부의 인식이 단적으로 드러난다. 아래는 인터뷰 내용 일부를 발췌한 것이다.

질문 우루과이 라운드와 관련해 농림수산부가 개방 쪽으로 기운다는 비판이 있습니다.
답변 신농정의 취지를 오해하는 데서 비롯된 것 같습니다. 개방 압력에 소극적·수세적으로 대처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개방화를 계기로 우리 농림수산업의 현황을 정확히 파악하여 이를 토대로 개방 압력을 극복하고 나아가 수출 산업으로 육성하자는 공격형 농림수산업을 일부에서 오해한 것입니다. 어느 정부가 자기 시장을 대책 없이 개방하여 피해를 주려 하겠습니까.

질문 한국에 쌀 시장 개방을 저지할 능력이 있다고 보십니까?
답변 물론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특히 일본이 쌀시장 개방을 결정한 것처럼 언론에 보도되어 많은 우려를 낳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정부는 앞으로 쌀의 관세화 및 최소 시장 접근을 허용할 수 없다는 우리의 기본 입장을 반영하기 위해 협상에 최대한 노력을 기울일 것입니다. 농민들께서도 좀 더 인내심을 갖고 지켜봐 주시고 언론도 국익 차원에서 신중히 보도해 줄 것을 부탁드립니다. 언론의 추측 보도는 우리나라의 협상 입지를 크게 손상할 뿐만 아니라 6백만 농어민을 비롯한 모든 국민에게 혼란과 불신을 야기할 뿐입니다.

질문 신농정은 개방화를 빙자하여 비교우위론에 바탕을 두어 농업보호 정책을 포기하는 것이라는 의혹도 있습니다.
답변 신농정은 좁은 땅과 단순 노동력에 의존해오던 전통적인 농림어업을 자본과 기술을 중심으로 하는 산업으로 탈바꿈시켜 경쟁력과 자생력을 갖추도록 하자는 데서 출발합니다. 신농정은 과거와 같이 농림어업을 맹목적으로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개방화라는 국제 사회의 흐름에 맞춰 경쟁력을 획기적으로 강화함으로써 적극적이고 실질적으로 농림수산업을 보호하자는 것입니다.

질문 신농정이 식량 자급 문제를 소홀히한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답변 식량 자급형 농업이나 생활 보장형 농업도 근본적으로 생산성을 향상하고 경쟁력을 확보하지 않고는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질문 배추 파동에서 확인됐듯이 농어민은 정부를 믿지 않습니다.
답변 과잉 생산이 우려되어 배추 경작 면적을 20% 줄여야 한다는 홍보 전단을 배포하였습니다만 실제 파종 면적을 조사해보니 줄이기는커녕 작년보다 50%나 더 늘려 심은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남이 줄일 것이니 나는 늘려 보자. 나 하나쯤 안 줄여도 되겠지. 정부 말은 듣지 말라는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농산물은 공산품과 달라 정부의 힘만으로 수급을 조절할 수 없습니다. 일본도 사정은 우리와 비슷한데 파동이 크게 부각되지 않는 것은, 농민 스스로 출하량을 줄이거나 정부가 넘치는 생산량만큼 폐기하기 때문입니다.

질문 그만큼 정부가 그동안 못 믿을 행동을 해왔기 때문아닙니까?
답변 정부 시책은 국민의 신뢰를 바탕으로 할 때 효과가 크게 나타납니다. 그런 분위기를 정부가 먼저 마련 해야겠지요. 그러나 농정 시책을 마련할 때 미리 공청회·토론회·설명회를 개최해 의견을 수렴해도 그 때 제기된 의견이 그대로 반영되지 않으면 공청회 자체를 요식 행위라고 비난합니다. 농정 담당자로서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질문 추곡 수매가와 물량에 대한 농민의 저항이 거셉니다.
답변 지난해 추곡수매를 기준으로 할 떄 수매가를 1% 인상할 때 농가에 실질적으로 돌아가는 혜택은 평균 1만8천원이었습니다. 반면 한 가마를 더 수매 할 경우 그보다 2배 수준의 추가 수입이 발생했습니다. 그래서 수매가 인상률보다는 수매량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수매가 인상률도 지난해의 6%에 비하면 낮지만 실질적으로는 높습니다. 내년부터는 쌀값의 계절 진폭을 7% 허용해 추곡 수매 외에도 5% 정도 가격 인상 효과가 추가되기 떄문입니다. 80년 냉해 때 25%를 인상한 것과 비교하기도 하지만 물가를 비교해야 합니다. 80년에는 생산자가 물가가 42.3%나 올랐지만 올해의 생산자 물가는 1.7%입니다.

질문 추곡수매 제도는 양특 적자를 가져오는 등 비효율을 낳고 있지 않습니까.
답변 지난 20여 년 간 이중곡가제를 근간으로 하는 정부수매 제도를 운영한 결과 정부 재정 부담은 과중하면서 생산 농민과 소비자 어느 쪽도 만족시켜 주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이러한 구조적 비효율을 제거하기 위해 양정개혁 방안을 내놓았습니다. 민간 유통 활성화와 질 좋은 쌀을 생산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골자입니다. 민간 유통 활성화와 질 좋은 쌀을 생산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골자입니다. 단편적 시야에서 대안 없는 논쟁을 되풀이하지 말고, 정부의 시책을 장기적인 안목으로 평가해주십시오. 장기적 시야에서 농촌을 되살리기 위해서는 경쟁력을 높여야 합니다.

김 차관은 국민에게 안전한 먹을거리를 안정적으로 공급해야 하는 농수산부의 책임자로서, 농사의 100년 대계를 내놔도 모자를 판국에 농민들에게 화살을 돌렸다. 정부 책임을 회피한 것은 두고두고 역사에서 평가를 받아야 할 일이다.

정부 입장을 농민들에게 나팔수처럼 되뇌이는 게 농수산부 역할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자동차, TV 수출은 당장 이익이 되지만, 농지 보전과 식량자급률 확보도 장기적으론 이익이 된다는 것을 말을 안 하는 것인지 못 하는 것인지 궁금하다. 게다가 언론은 당시 정부의 계획을 홍보하고 이를 따라야 한다고 강변했다. 이 때 농민들은 “정부가 하자는 대로 하면 망할 것, 정부의 하자는 반대로 하면 살아남을 것”이란 말을 했다. 오죽하면 그런 자조 섞인 말이 돌았을까?

아무리 대단한 대통령이라고 하더라도, 이 같은 난제를 해결하는 일은 우리 농업을 지키겠다는 강건한 의지가 없으면 못할 일이다. 정부의 농업 포기 정책은 상당히 역사가 길다. 김영삼 정부 ‘신농정 5개년계획’은 경쟁력 확보란 허언에 농업 축소라는 정책기조를 숨기는데 초점이 맞춰진 것이었다. 최초의 쌀 브랜드 ‘풍광수토’는 농민들을 현혹하고 속이는데 온 힘을 기울인 결과로 나타난 것이었다.

한국 농업이 근대의 틀을 벗고 전문화·규모화의 길을 선택하는 것이 가져올 폐해에 대해서는 눈꼽만큼의 숙고도 없이 강경일변도로 몰아 붙인 ‘신농정 5개년계획’. 그 결과가 농가 경제 파탄, 농민 연쇄 음독 자살로 이어졌음을 기억해야 있다. 그 때부터 이어진 농업 포기 정책 구현은 오늘까지도 변함없이 진행되고 있다. 그 한 갈래가 2021년 초 드러난 LH 투기사건이며, 헌법에 보장된 경자 유전(耕者有田)이 외면되는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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