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업 200일 맞는 신일정밀 노동자들 “단지 사람답게 일할 수 있는 공장 만들려는 것”

부당노동행위 수사 촉구하는 신일정밀 노동자들ⓒ페이스북

신일정밀 노동자들이 10일 파업 200일을 맞는다. 신일정밀 노동자들은 거리에서 6개월 넘게 버티고 있지만, 사측은 노조와 대화하기는커녕 부당노동행위로 노조를 무력화하고 있다.

전국금속노동조합 신일정밀지회는 지난해 10월 23일부터 파업에 돌입했다. 사측이 폐업 공고를 내며 교섭을 거부하고, 부당노동행위로 노조를 무력화하려는 데 대한 대응이었다.

강원도 강릉에 위치한 신일정밀은 풍력발전기·중장비 등에 들어가는 베어링을 만드는 회사다. 지난해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로 매출이 조금 감소했지만, 최근 평균 매출 약 450억 원을 기록한 지역의 중견기업이다. 당기순이익도 70~80억원이다.

악취와 분진에 휩싸여 일하던 노동자들...'산업언전보건법 위반' 사실도 부인하는 신일정밀

지난 2000년 신일정밀에서 노조가 세워질 때만 해도 우호적이었다던 사측이 노조를 탄압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6월 신일정밀 노동자들이 당시 한국노총 소속이었던 노조를 민주노총 금속노조로 조직형태를 변경하면서부터다.

이전까지 노조는 노사협의회 수준으로 약화돼 있었고, 노동자들의 임금과 근로조건은 최악인 상황이었다.

공장은 절삭유가 썩으면서 발생하는 악취와 작업에서 생긴 분진으로 가득했고, 절삭유가 피부에 닿아 피부병을 일으키기도 했다. 또 안전설비도 제대로 마련해 놓지 않아 노동자들은 일상다반사로 허리와 다리, 손가락 등을 다쳤다.

절삭유가 가득 떨어진 신일정밀 내 작업대ⓒ금속노조 신일정밀지회

손재동 신일정밀지회장은 '민중의소리'와의 통화에서 "매년 산업재해가 엄청나게 발생했다. 지난 2013년에도 산재 다발 사업장이 돼서 민신기 전 대표이사가 산업안전법 위반으로 입건된 적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심지어 목장갑도 지급하지 않는다"면서 "분진이 많이 날린다고 덕트를 설치해달라니까 그냥 마스크를 쓰고 하고 절삭유에 닿으면 피부가 타들어간다고 하니까 토시를 쓰라고 한다"고 열악한 현장 상황을 전했다.

이에 노조의 요청으로 지난해 8월 11일 노동부 강릉지청이 현장을 점검했고 수십 건의 법 위반 사항이 드러나 시정지시가 내려지기도 했다. 그러나 한 달쯤 지난 9월 16일 강릉지청 근로감독관들이 시정지시 이행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신일정밀을 다시 방문했지만, 현장은 그대로였다. 이에 강릉지청은 사측에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사실을 통지했다.

그러자 사측은 이를 두고 "경영철학이 훼손됐다"며 지난해 9월 18일 돌연 폐업을 공고했다. 민 전 대표는 폐업 공고문에서 노조가 노동청과 함께 자신을 산업안전보건법 위반한 범법자로 만들려 한다고 주장하면서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도 없었다. 직원들의 안전을 위해 법에 맞는 환경을 만들어 왔지만, 본인의 신념과 경영철학이 부서지는 고통을 겪으면서 폐업을 결심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범법 행위가 문제가 아니라 범법을 단속하는 것이 문제'라는 적반하장의 주장이다.

공교롭게도 폐업 공고문이 붙은 날은 임금교섭에 불성실하게 임하는 사측의 태도에 노조가 강원지방노동위원회에 쟁의조정 신청을 한 날이었다.

앞서 사측은 노조의 조직형태 변경 절차를 문제 삼아 교섭에 응하지 않다가 노조가 임시총회를 거쳐 절차를 문제를 해결하자, 이번에는 전임자 문제를 제기하며 교섭을 진행하지 않던 상황이었다. 이에 노조가 쟁의조정 신청을 하자 사측이 폐업 공고로 아예 대화를 거부한 상황이 된 것이다.

폐업까지 들먹이며 노동자와의 대화를 거부하던 사측으로 인해 강원지방노동위는 2차 조정중지 결정을 내렸고, 결국 노조는 지난해 10월 23일 전면 파업에 돌입하게 됐다.

금속노조 신일정밀지회는 지난해 11월 사측의 부당노동행위를 고용노동부 강릉지청에 고소했다.ⓒ금속노조

"파업 불참하면 매일 5만원" 부당노동행위 중심에 '노조파괴' 노무사

노조가 파업에 돌입했지만 오히려 사측은 대체인력 채용, 금전 회유 등 드러내놓고 부당노동행위를 저지르며 파업을 무력화했다.

사측은 노조가 파업에 돌입한 당일 "파업에 불참하면 매일 5만 원을 주겠다"는 공고문을 회사에 붙였다. 금전을 미끼로 정당한 파업을 무력화하는 명백한 부당노동행행위다.

파업 기간 중 대체인력도 당연하다는 듯이 채용했다. 쟁의행위 중 대체인력 투입은 부당노동행위다. 대체인력에게는 월 270만원이 지급됐다. 반면 신일정밀에서 일하는 10년차 노동자의 월 기본급은 세후 206만원에 불과했다.

이에 노조는 지난해 10월 강릉지방노동위에 부당노동행위 구제를 신청하고, 11월에는 강릉노동지방청에 사측의 부당노동행위를 고소했다.

지방노동위는 노조의 주장을 대부분 받아들여 사측의 부당노동행위를 인정했다. 올해 2일 강릉노동위는 신일정밀 사측이 △임금 교섭에서 노조의 단체교섭 요구를 거부·해태한 행위 △폐업 예고를 한 행위 △파업 돌입 당일 '파업 불참 시 일 5만원'과 '생산성 장려금'을 지급하기로 하거나 지급한 행위 △노조의 쟁의행위를 비판한 우편물을 조합원의 가정으로 발송한 행위 △파업 중 대체인력 투입 행위 △CCTV를 이용해 조합원의 근태를 감시하고 이를 근거로 문답서를 발송한 행위 등 6개 부당노동행위를 했다고 판정했다.

위장 폐업으로 노조와의 대화를 거부하고, 노조가 파업에 나서자 금전을 미끼로 이를 무력화함과 동시에 노동자들의 가정에 협박성 통신문을 보내는 등 부당노동행위는 극심한 노조탄압이 있었던 유성기업 등에서 볼 수 있는 전형적인 노조파괴행위다.

올해 3월에는 전형적인 노조 무력화 행위인 사측 주도의 어용노조까지 만들었다.

강릉지방노동위원회 판정서 중 일부ⓒ금속노조 신일정밀지회

노조는 이 같은 노조파괴행위의 중심에는 이 모 경영고문이 있다고 지목하고 있다. 노무사인 이 경영고문은 앞서 신세계 계열사의 노조 설립 원천 차단 전략을 컨설팅해 준 범죄를 저질러 지난 2013년 11월부터 2015년 5월까지 직무정지 징계를 당한 경력을 가지고 있다.

노조는 무엇보다 이 경영고문의 해촉을 요구하고 있다. 이 경영고문만 없으면 임금교섭도 협의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손 지회장은 "이 경영고문을 해촉만 한다면 당장 임금교섭을 진행하면서 요구안도 풀어갈 수 있다"면서 "부당노동행위의 주범인 이 경영고문이 교섭에 나선다는 것 자체를 인정할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노조는 고작 2.9% 임금인상을 요구하고 있지만, 사측은 이마저도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그러면서도 신일정밀의 실질적 소유주인 민신기 전 대표이사와 민성기 전 전무는 퇴직하면서 억대의 퇴직금을 챙겼다.

민 전 대표이사 등은 지난해 폐업공고는 철회하면서 대신 자신이 퇴직하고 새로운 사장을 앉혔다. 그러나 민 전 전무가 대표로 있는 유한회사 SIG(에스아이지) 계열사로 신일정밀 편입하면서 민신기 일가가 실질적 소유권을 계속 가지고 있다.

손 지회장은 "민 전 대표이사 등이 퇴직하면서 퇴직금으로 100억원을 가져갔다"면서 "퇴직하면서 경영에서 아예 손을 뗀 게 아니라 자기 회사 밑으로 집어넣고 임원들에게 80억원씩 160억원 배당을 했다. 그게 총 260억원이다. 그러면서 회사 창립 이래 처음으로 영업이익이 49억원 적자가 났다"고 분노했다.

신일정밀 파업이 장기화되자 민주노총은 물론 강릉지역의 정의당·노동당·진보당 등 정당과 시민단체가 지난달 12일 '신일정밀강릉공동대책위원회'를 출범해 '1만명 서명운동'을 벌이는 등 공동 대응에 나선 상태다.

부당노동행위 고발에도 노동청 6개월째 '묵묵부답'

노조는 매일 신일정밀 앞과 강릉지방노동청 앞에서 집회를 벌이고 있다. 강릉지청은 지난해 11월 노조의 고소를 접수했지만 지방노동위의 부당노동행위 인정이 나온 뒤에도 검찰에 송치하지 않고 있다.

이와 관련, 강릉지청 관계자는 "지방노동위는 심사기관이고 노동청은 수사기관이니 지방노동위 판정은 별개"라며 "수사 과정이나 송치 여부는 밝힐 수 없다"고 말했다.

안경덕 신임 고용노동부 장관은 지난 4일 인사 청문회에서 정의당 강은미 의원의 신일정밀과 관련한 질의에 "청문회를 준비하면서 알게 됐다"며 "부당노동행위가 있고 노사 갈등이 일어난 부분에 대해 안타깝게 생각한다. 관련 고소장이 접수됐고 조사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수사 상황을 면밀히 살펴보고 위법 사항이 확인되면 법에 따라 엄정 조치하겠다"고 답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강 의원은 '민중의소리'와의 통화에서 "지금이 2021년인데 그렇게 말도 안 되는 방식으로 노동자 탄압하는 건 지금 시대에 정말 맞지 않는 행태"라며 "지방노동위의 부당노동행위 판정이 나온 만큼 사측은 빨리 노조를 인정하고 성실하게 대화에 나서야 한다. 관련해서 노동부도 자기 할 일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방노동위에서 인정된 부당노동행위 사건은 사측의 불복으로 오는 20일 중앙노동위원회 판정을 기다리고 있다.

정년이 얼마 남지 않은 손 지회장은 파업 200일을 맞는 데 대해 "이 경영고문에게 받았던 부당노동행위와 경영진이 영업이익을 적자 내면서 퇴직금만 100억을 챙기는 것을 보면서 조합원들의 분노가 극에 달한 상태"라며 "조합원 모두 이걸 해결해야 한다고 하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그는 "부당노동행위를 만연하게 저지르는 노무사를 내보내고 노사가 상생하고, 깨끗하고 안전한 작업장을 만드는 게 목적"이라며 "회사를 망하게 하려는 게 아니라 일할 만한 회사를 만들려고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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