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로봇의 연기는 작업인가, 운동인가, 노동인가? 당신의 답은?

국립극단의 새로운 도전, 연극 ‘액트리스 투:악역전문로봇’과 미디어아트 ‘당클매다’

연극 ‘액트리스 투:악역전문로봇’ⓒ국립극단

어린 시절 로봇 태권브이를 보러 영화관에 가면서 얼마나 흥분했는지 모른다. 집에서 보는 텔레비전 화면에 익숙했던 내가, 영화관 화면을 통해 날아오르는 태권브이를 보며 숨소리도 내지 못했던 기억이 또렷하다. 그 때부터 시간이 사십 여 년 흘렀다. 정말 상상도 하지 못했던 세상이 펼쳐지고 있다. 식당에는 서빙 로봇이 있고 택배도 로봇이 한다. 움직이지는 않지만, 집에서도 친절한 인공지능 그녀가 나와 매일 대화를 한다. 태권브이는 몰라도 깡통 로봇 정도는 몇 년 후 집에 있을 것 같은 세상이 왔다.

연극무대에 인공지능 로봇이 등장하지 말라는 법도 없다. 로봇이니 위험한 역할도 문제없을 것이고 실제로 맞는다 해도 부상으로 병원 갈 일도 없을 것이다. 인간이 아니니 돈을 지불할 필요도 없겠다. 가성비로 치면 꽤 우수한 노동력이다. 작가 겸 연출가 정진새의 연극적 상상력이 만들어낸 <액트리스 시리즈>가 현실 가능한 지점과 만나 설득력 있게 다가오는 이유다.

‘액트리스 투:악역전문로봇배우’의 등장은 2045년 용산 호수 공원 근처 공연장에서 이루어진다. 많은 사람이 공연을 관람하던 그 시각, 비행기 한 대가 불시착할 위험에 처한다. 그때 비행기를 조종하던 산업용 더미 로봇은 이 위기를 넘기고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구하게 된다. 국민 영웅이 된 산업용 로봇 ‘액트리스 투’는 문체부장관의 부탁인지 청탁인지 알 수 없는 요구로 국립극단의 배우가 된다. 국립극단 예술감독은 어쩔 수 없이 ‘액트리스 투’를 다른 배우들이 기피하는 악역 전문 배우로 훈련시킨다.

국민 로봇 배우 액트리스 원이 뛰어난 학습 능력으로 연기를 학습했듯, ‘액트리스 투’ 역시 엄청난 인공지능 학습 능력을 발휘해 연기를 학습하기 시작한다. 인간의 능력을 넘어서는 이 연기로봇은 곧 사람들의 인기를 얻게 된다. 하지만 인간의 일자리를 뺏는다는 이유로 곧 폐기 처분 된다. 이로부터 70년 후, 고고학 인턴 성연수는 자연사박물관 자료를 정리하다 사라진 ‘연극’을 발견하게 된다.

연극 ‘액트리스 투:악역전문로봇’ⓒ국립극단

‘액트리스 투:악역전문로봇’의 무대는 액트리스 원과 사뭇 다르다. 관객석이 무대로 내려와 있다. 무대와 객석의 구분이 있었던 전형적인 액트리스 원 무대와 완전히 다른 형태다. 성연수는 등장과 함께 스케이드 보드에 앉아 자유자재로 움직인다. 액트리스 원보다 더 많아진 인공지능 스피커는 1인극 무대를 채우며 또 다른 존재감을 드러낸다.

이 무대에서 독보적인 존재는 역시 배우 성수연이다. 인간부터 로봇까지 전혀 다른 물성을 연기하는 이 배우의 변신은 박수 받을 만하다. 한 가지 행동을 반복해서 하는 로봇의 독특한 특성을 연기할 때 표정이나, 촘촘한 대사 사이사이를 채우는 그녀의 재치는 이 연극을 보는 큰 즐거움이다.

인간의 고유 영역인 예술에 인공지능이 막대한 힘을 발휘하는 것은 2045년까지 갈 것도 없이 현재진행형의 일이다. 이 작품의 상상력이 현실이 될 날이 멀지 않을 수 있다. <햄릿>의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란 대사를 패러디한 “Power on or power off, That is the question”(켜느냐 끄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는 이 도전적인 작품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이 된다.

로봇이 연기하는 것이 연기가 맞는 것인지, 인공지능이 연주하는 것이 음악이 맞는 것이지, 그 연기와 음악에 공감하고 감동 받는다면 그것은 예술이 맞는 것인지, 그렇다면 예술은 인간 고유의 영역이라 주장할 수 있는 것인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문을 뒤로 하고 공연장을 나오면, 또 다른 공연이 관객을 맞는다.

미디어아트 ‘당클매다’ⓒ국립극단

국립극단 서계동 야외 마당에서는 5월 1일부터 8일까지 6회에 걸쳐 ‘당클매다’라는 미디어 아트 공연이 펼쳐졌다. 관객들은 블루투스 헤드폰을 착용하고 공연을 관람하면 된다. ‘당클’은 제주에서 굿을 할 때 신을 모시기 위해 마련한 신의 자리를 뜻한다. 이 공연은 2020년 온라인으로 관객과 만났던 ‘하지맞이 놀굿풀굿’ 쇼케이스 ‘당클매다’가 야외마당으로 공간을 옮겨 관객을 만났다.

야외 무대 한가운데 설치된 ‘당클’은 공연 시작과 함께 화려한 빛의 움직임으로 시선을 잡는다. 블루투스 헤드폰으로 들리는 변화무쌍한 비트는 굿의 장단과 소리와 만나 신명을 더한다. 빛의 장단에 고조된 흥은 어깨를 들썩이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짐작할 뿐이다. 소리는 밖으로 들리지 않으니 모르는 사람들이 본다면 어둑한 밤, 야외 한가운데에서 몸을 앞뒤로 흔드는 사람들의 무리에 의아할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가까운 미래에 이렇게 야외에서 거리를 두고 앉아 블루투스 헤드폰을 끼고 가상현실 속 공연을 보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국립극단 기획초청 <액트리스 투:악역전문로봇>

공연날짜:20201년 5월1일(토)-5월 10일(월)
공연장소:소극장 판
러닝타임:75분
관람연령:14세(중학생)이상 관람가
작, 연출:정진새
출연:성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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