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나의 한 사람 이야기] 평범한 삶

“저는 정말 평범하게 살았어요.”

흰머리가 많지도 않았다. 60대 중반의 임 씨는 얼굴도 표정도 곱고 단아했다. 8명 정도 앉아 있는 교실에서 가장 조용했다. 긴 머리를 하나로 묶어 쪽지듯이 머리에 바짝 붙였다. 도서관에서 하는 수업이었다. 책을 빌리러 자주 오는데, 공고를 보고 신청했다고 말했다.

임 씨는 주로 시를 쓰고, 다른 도서관에서 했던 시 쓰기 강좌에도 참여해 책도 냈다고 나에게 조심스럽게 말했다.

“선생님은 어떻게 보실지 모르겠는데, 한 번 보실래요? 작년에 OO도서관에서 했던 글쓰기 강좌에서 했던 거에요.” 임 씨는 낱장으로 된 종이묶음을 가져왔다. 대충 봐도 300쪽은 넘어보였다.

“이걸 다 쓰신거예요?”
“네. 옛날부터 썼던 걸 모았어요. 여기 저기 흩어져 있는 것도 정리하고...”

글쓰기ⓒpixabay

나는 일단 종이를 받아 파르륵 넘겨 대충 분량을 가늠해보았다. 모든 글이 연과 행으로 나누어져 시의 모양새를 갖추고 있었다.

“언제부터 쓰셨어요?”

“어릴 때부터요.” 임 씨는 전문적으로 글공부를 한 적이 없다고 했다. 나를 만나기 전에 도서관 강좌를 한 번 들었을 뿐이고 혼자 끄적이는 걸 좋아한다고 했다. 임 씨가 나에게 전해준 글은 시라고 볼 수도 있고 아니라고 볼 수도 있었다. 나는 시를 잘 모른다. 내가 알 수 있는 건 행과 연이 달라지는 운문의 형식을 띠고 있다는 것이었고, 직유법을 많이 사용했다는 정도였다. 대체적으로 무슨 이야기인지 애매하기도 했고, 교훈을 담으려고 하는 이야기도 많았다. 가장 괜찮았던 것은 어릴 적 어머니가 해줬던 음식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멸치에 대한 이야기였다. 멸치의 삶과 생태계의 순환에 대한 의미가 담겨있었다.

하지만 내 수업은 시 수업이 아니라 자기 삶을 쓰는 수업인지라, 임 씨의 내놓은 글 중에 옛 기억이나 추억에 대한 내용을 찾아봤다. 구체적인 이야기가 담긴 시는 몇 편 없었다. 수북이 쌓인 종이뭉치를 보고 난감했다.

생애사쓰기 수업은 자기 자신의 삶을 돌아보면서 자기 기록을 생산하고 개인의 삶에 담긴 역사적 의미를 되짚어보는 목표가 있다. 수업 목표에 맞춰서 다음 수업에는 임 씨에게 지금 쓰신 대로 옛날이야기나, 현재 사는 이야기를 적어보실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어떤 형식이든 형식이 중요한 건 아니니까. 그러자 임 씨는 “기억나는 게 별로 없다.”고 말했다.

임 씨는 미혼이었다. 비혼주의자는 아니었다. 어쩌다 보니 나이를 먹었다고 했다. 그렇다보니 가족에 대한 이야기나, 자녀에 대한 이야기도 없었다. 결핍이라고 볼 수 없는데 다른 수강생들과 자꾸 구분되고 이야기에서 빠지게 되었다.

그 수업에 참여한 사람들 중 한 사람은 아픈 아내를 위해 자기 이야기를 정리해서 들려주겠다는 목적을 갖고 있었다. 다른 여섯 명은 모두 여성이었는데 구구절절 사별한 남편, 무능력한 남편, 돈 버는 데 별 재주가 없는 남편, 사고 친 남편에 대해서 이야기했으며, 남편의 경제적 조력이 끊겼을 때 자기가 이 일을 어떻게 극복했는지, 자녀들을 번듯하게 키우기 위해 얼마나 애를 썼는지, 자기가 돈벌이를 하면서 어떤 난관을 겪었는지, 집을 사기 위해 얼마나 고군분투했는지를 정신없이 이야기했다.

60대 이상 노인들이 모인 강좌에서는 매우 흔한 풍경이다. 여성이 90% 이상을 차지하고 그들은 계속해서 신세를 한탄한다. 여성노인들은 대체로 끊임없이 일을 해왔다. 어디 내놓을만한 직업인 경우와 숨기고 싶던 직업을 모두 망라해, 수업초반에는 다들 자기의 일에 대해서 함구하다가 누군가 자기가 일하면서 겪은 고생을 펼치기 시작하면 동시에 다들 이야기보따리를 끌어내서 폭탄처럼 터뜨리기 시작한다. 이야기의 끝은 대체로 훈훈하게 “지금이 제일 좋다”가 된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자기 이야기를 할 만한 서사가 있는 사람들이 모이기 마련이고, 이들은 열심히 살아온 것이 삶의 습관이라 글쓰기라는 어려운 장르에 도전하고, 누가 상을 주거나 점수를 받을 게 아니더라도 최선을 다해서 수업에 집중한다. 도서관이나 복지관에 대낮에 나와 글쓰기를 배운다는 거 자체가, 이들이 겪어온 삶의 풍파에 비하면 더할 나위 없는 사치인 것이다.

왁자지껄한 이야기가 오가다가, 차분하게 과거를 돌아보기도 하는 도서관의 수업은 썩 괜찮았다. 하지만 나는 내내 그가 소외되는 것 같아 신경 쓰였다.

나는 임 씨를 염두에 두고 그간 생계를 해결하느라 해왔던 것에 대해서도 써보자고 권했다.

임 씨는 “저는 일도 제대로 해 본 적이 없어요.”라고 말했다. 조심스럽게 생활은 어떻게 해결했느냐고 에둘러 물었더니 “저는 오빠들이 이렇게 돈도 모아주고, 제가 쉬면 어머니한테 가 있기도 하고...”

임 씨는 자기가 평범하게 살아왔다고 했다. 그가 말한 평범한 삶은 사건 사고 없이 순탄하게 살아왔다는 뜻이었다. 때로는 “재미없게 살았다.”고도 했다. 두어달 넘게 임 씨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어릴 때 바다 가까운 내륙에 살아 바다와 육지의 모든 문화와 음식을 접하며 지냈고 다정한 부모님과 역시 다정한 오빠들에 둘러싸여 사건사고 없이 노년을 맞았다. 일을 치열하게 할 필요도 없었고, 부족한 것도 없었는데, 그건 어쩌면 임 씨의 성정이 딱히 욕심이 많은 편도 아니었기 때문일 것이다. 어릴 때부터 노년에 이르기까지 임 씨는 꼭 갖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것도 별로 없었다.

“저는 그냥 시키는 대로 하고, 하라는 거 하고, 별로 하고 싶은 것도 없어서요. 그래서 평범하게 지냈죠.”

석양의 혼자ⓒpixabay

나는 뭐라고 대답을 해야할 지 잠시 헤맸다. 임 씨의 글쓰기는 난항이었다. 할 이야기가 없고 하고 싶은 이야기는 없었다. 대신 눈앞에 스쳐가는 풍경들, 어떤 찰라를 잡으려는 노력이 있었다. 나는 임 씨가 나에게 보여준 시를 다시 고치고 다듬어보자고 제안했다. 임 씨는 써 왔던 시 중에 몇 가지를 골라달라고 했고, 나는 그 중에서 이야기가 구체적인 것들을 뽑아냈다. 임 씨는 여러 번 고치고 또 고쳐봤지만 도무지 고쳐지지 않아서 속상해했다. 수업이 끝나갈 무렵, 나는 임 씨에게 앞으로도 계속 시를 쓰고 그중에 버리기도 하는 습관을 들이면 더 만족스러운 글을 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모든 글을 가지고 갈 수는 없으니까.

가정의 달이라고, 몇 가지 기념일을 지내면서 평범한 가족이라는 환상에 대해 생각한다. 내가 만난 노인 중에는 임 씨처럼 평생 결혼하지 않고 살았던 사람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그저 나이 들었다는 이유로 여러 곳에서 ‘어머님’으로, ‘아버님’으로 불렸다. 어떤 사람들은 나는 어머니도 아버지도 아니라고 강하게 부정했고 어떤 사람들은 조카가 있기도 하니 괜찮다고 웃어 넘기기도 했다.

내가 다니던 중학교에 부모의 이혼 이후 방황했던 동창이 있다. 그 아이는 학교에서 꽤나 주목받는 위치였다. 어느 날 그 아이가 “다시 태어나면 평범한 집안이었으면 좋겠다.”라고 했다는 말이 친구들 사이에 떠돌았다. 그 얘기를 들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나는 ‘평범한 집안’이란 무엇일까 궁금하다. 임 씨는 그의 말대로, 평범하게 사건사고 없이 잘 살았다. 주변에 새싹이 나고 잎이 돋는 나무를 보며 기뻐했고, 해가 지고 낙엽이 질 때 쓸쓸해하며 사계절을 느끼고 가족들의 사랑을 받으며 노인이 되었을 뿐이다. 자녀들의 이야기로 교실이 왁자할 때 창가에 앉아 옅은 미소를 짓고 있던 임 씨의 단정한 매무새가 생각난다. 그녀가 조금 슬퍼했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잘못한 건 하나도 없는데 어떤 무리에서 자꾸 빠져나와 있는 것 같던 풍경이 가끔은 잔혹한 기억으로 떠오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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