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중공업·현대제철서 잇따른 산재 참변...각계 “더 이상 죽이지 마라”

“‘또 다른 김용균’ 막지 못하는 김용균법...중대재해처벌법 강화해야”

지난 8일 충남 당진 현대제철에서 발생한 산재사망 사고 현장ⓒ전국금속노조

'어버이날'인 지난 8일 현대중공업과 현대제철에서 각각 1명의 노동자가 끔찍한 산업재해로 사망했다. 지난달 평택항서 일하던 고(故) 이선호 씨가 컨테이너 작업 중 사망하는 등 최근 산재사망이 잇따르는 데 대해 노동계를 비롯해 각계에서 재발 방지와 '중대재해처벌법'(일명 김용균법) 강화를 촉구했다.

전국금속노조에 따르면 지난 8일 충남 당진 현대제철의 1열연공장에서 홀로 가열로 설비를 점검하던 김 모 씨(44)가 가동 중인 '워킹빔'과 바닥의 고정빔 사이에 머리가 끼는 참변을 당했다.

당시 김 씨는 헬멧 등 안전보호구를 착용했으나 거대한 기계 사이에서 김 씨를 지켜주지 못했다. 이후에도 기계는 계속 작동했고, 김 씨는 사고를 당한 지 1시간이 넘어서야 동료들에 의해 발견됐다.

사고현장은 뜨겁게 달구어진 'H빔'을 운반하는 '워킹빔'의 아래 공간으로, 높이가 낮아 협착 위험이 상시적으로 있는 곳이다. 그런데도 노동자들의 출입을 통제하는 방호울, 경고 센서, 시건장치 등이 제대로 설치돼 있지 않았다.

사측은 당시 김 씨가 혼자 점검을 한 데 대해 "점검작업은 정비작업과 달리 2인 1조 작업이 아니다"라며 문제없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같은 날 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에서도 40대 노동자가 건조 중인 원유 운반선 3번 COT탱크 상부에서 용접 작업 중 약 20여m 아래로 추락해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현대중공업 창사 이래 469번째 노동자의 사망 사고다. 고용노동부의 집중감독이 실시된 지 채 석달이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노조는 이미 2016년에 유사한 작업을 하다 추락해 숨진 사고가 발생했다면서 "똑같은 사고가 나지 않도록 재발 방지 대책을 세웠음에도 똑같은 원인으로 산재사망사고가 반복돼 발생했다"고 지적했다.

노조는 또 "표준작업지시서도 없이 구두로 작업지시를 받은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면서 "또 일일작업계획서에는 작업자들의 서명도 찾을 수 없어 사망사고가 나기 전까지 이 노동자가 이 작업을 하고 있는지도 잘 파악되지 않는 위험천만한 작업이 진행됐다"고 비판했다.

사고 당시 현장에는 숨진 작업자를 포함에 3명이 용접 작업중이었고 화재 감시인이 있었지만, 사고 모습을 목격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고에 대해 사측은 사고의 원인을 명확히 알 수 없다며 사고원인의 책임을 아직 인정하지 않고 있다. 검찰도 사망 원인을 조사하기 위해 사망한 노동자를 부검해야 한다는 결정을 내린 상태다.

지난 8일 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에서 용접 작업중이던 40대 노동자가 사망한 현장ⓒ전국금속노조

노동계 등 각계 "내년 시행되는 중대재해법...노동자 죽음 막을 수 있을지 우려"

잇따른 노동자들의 산재 사망에 노동계를 비롯해 시민사회단체, 정치권 등 각계에서는 내년 시행을 앞두고 있는 중대재해법이 강화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앞서 올해 1월 국회를 통과한 중대재해법은 소규모 사업장에 대해 적용을 제외하고, 경영자에 대한 책임 범위를 줄이는 등 원안에 비해 대폭 완화됐다.

민주노총은 이날 성명을 통해 "잇따른 중대재해, 산재사망에 안타까움과 추모가 아닌 구조적 살인에 대한 분노와 근본적인 해결책에 나서야 한다"면서 "생명보다 이익을 우선시한 재벌과 자본의 탐욕, 이를 앞장서 지켜주는 정치가 쓰러진 노동자 살인의 주범"이라고 지적했다.

민주노총은 "중대재해법은 자본의 탐욕과 이익을 보장해 주기에 혈안이 돼 있는 정치권에 아무런 압박도, 위기감도 주지 못한다"면서 "취지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은 채 제정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및 하위 법령의 제·개정을 위한 투쟁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금속노조도 이날 성명을 내고 "현대중공업·현대제철의 두 사고가 달라 보여도 원인은 똑같다"면서 "중대재해가 반복되도 여전히 안전예방보다 속도와 효율이라는 생산제일주의, 노동자의 생명은 언제나 이윤보다 뒷전인 기업의 탐욕, 제 역할을 하지 못한 채 사고를 낸 기업의 방패막이 노릇을 하는 감독기관이 모두 중대재해의 원인"이라고 비판했다.

이들은 "'김용균법'을 만들어도 또 다른 김용균을 막지 못하는 한국사회 현실에서 새로 만든 중대재해처벌법은 별 효력이 없을 것이라는 우려와 의심이 크다"면서 "기업이 살인을 저질러도 사업주가 구속은커녕 은폐공작이나 벌이는 나라에서 공장은 생산의 현장이 아니라 생존의 공간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노동단체와 시민사회단체가 모인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운동본부'는 이날 발표한 성명에서 중대재해법의 구체적 내용을 정할 하위법령에 기업책임자에 확실한 책임을 묻는 내용이 포함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들은 "중대재해법 하위법령은 법 제정의 취지를 더욱 잘 이행하도록 제정되어야 한다"면서 "정부가 노동자의 목숨을 더 이상 죽이지 않으려면 원청에게 책임을 묻고, 결정권자에게 제재를 가하고, 법인이 잘못된 조직운영에 책임지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치권에서도 중대재해법 강화 목소리가 나왔다. 정의당 이동영 수석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두 노동자의 생명을 앗아간 울산과 당진의 대기업 현장에서도 산재사고 예방을 위한 안전지침과 안전대책은 제대로 시행되지 않았다"고 지적하면서 "법 적용 전까지는 '죽어도 되는 목숨'이라고 규정해버린 비정한 중대재해법을 원상회복시키는 것이 지금 정부와 국회가 당장 해야 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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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백겸 기자 응원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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