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민갑의 수요뮤직] 질문으로 채운 이이언식 사랑과 이별 노래

이이언 솔로 2집 [Fragile]

이이언(eAeon)은 질문한다. 이이언의 새 음반 [Fragile]에서 이이언의 질문은 숱하게 발견된다. “파도는 원래 무슨 색일까요”, “그간의 표류는 괜찮았나요”, “아직 나를 사랑하지 않나요”(‘그러지 마’)라며 시작한 물음은 음반 곳곳으로 뻗어나간다.

‘그냥’에서는 “어떻게 내가 어떻게 내가 어떻게 내가/너를 알기 전으로 돌아갈 수가 있겠니”라고 묻는다. “이제 정말 내게서 멀리 떠나가나”라고 물어보는 ‘바이바이 나의 아이’도 있다. “그댄 나를 통과해 또 어딘가로 가나요”, “조금이라도 내가 남아있나요”, “늘 같은 곳을 맴도는 슬픈 유령일까요”라고 답을 구하는 노래 ‘Null(Feat. Jclef)’를 들으면 무슨 말이든 해야 할 것 같다.

“그댄 나를 떠나/많은 밤을 지나/더는 울지 않나/나를 잊은 채로 사나//그댄 나를 떠나/많은 밤을 지나/후회하진 않나/이젠 아무 상관 없나”, “너무 많은 날이 지났나/그대 나를 보면 웃을까/우린 그저 사랑이 끝났을 뿐인데/미운 사람이 돼버렸나/나도 널 미워해야 하나”(‘많은 밤을 지나’) 같은 곡은 심지어 질문이 노래의 절반이다.

가수 eAeonⓒ사진 출처 = eaeon 인스타그램

[Fragile] 음반에 담긴 11곡의 노랫말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만남과 이별이라는 좌표를 가리킨다. 어떤 곡은 만남 쪽으로 펄럭이고, 어떤 곡은 이별 쪽으로 눈물을 삼킨다. 이렇게 쓰고 보니 너무 뻔한 이야기처럼 들린다. 기실 대중음악의 노랫말 대부분은 만남과 이별 이야기인 탓이다. 이이언은 만남과 이별 이야기의 통속성에 기대기도 하고 때론 거기서 벗어나기도 한다. 그 경계를 엄밀하게 나눌 필요가 없을 정도로 그의 노랫말은 마음이 불어오는 대로 들고 난다.

그 과정에서 이이언의 질문들은 갈등과 불화, 열정과 애착이라는 이분법으로 국한할 수 없는 이야기와 태도를 드러낸다. 첫 곡 ‘그러지 마(Feat. RM)’에서 던진 “파도는 원래 무슨 색일까요”, “그간의 표류는 괜찮았나요”라는 질문은 관계의 본질과 그동안의 관계에 대한 솔직한 술회를 요청한다. 자신의 심정을 구구절절 이야기 하면서 동시에 계속 질문하는 이유는 관계의 변화를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받아들이고 싶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이이언의 화법은 간절한 애원을 대신하고 미처 정리하지 못한 마음의 혼란까지 노출한다. 그러니 그의 질문은 상대를 존중하고 상대의 진심과 나의 마음을 알고자 하는 열망의 안간힘이다.

이번 음반을 듣다 보면 웅크린 노랫말에 자꾸만 걸려 넘어진다. “더 알고 싶어 그냥/내 안의 너의 모양”, “너의 마음 속을 살아보고 싶단 말야/가장 엉망진창인 널 보고 싶단 말야” 같은 노랫말은 어떤 멜로드라마의 고백보다 두근거린다. “난 단 한번 그대 앞에서만 피어났어요”의 애절함 앞에서만 주저앉을 일이 아니다.

특히 “어쩌면 우리는 말이 안되는 말들이야”라는 고백으로 시작한 ‘어쩌면’은 단도직입적으로 규정할 수 없을 만큼 얽히고설켜버린 관계와 내면의 난맥상을 숨기지 않음으로써 관계의 실체에 가깝게 다가선다. 세상에 사랑과 이별 노래는 이미 많지만, ‘어쩌면’ 같은 노래는 드물고 귀하다. “또 다른 삶이란 없을 것 같아/이렇게 무르고 연약한 영혼을 보면”, “너는 뒤섞인 나일까”, “조금씩 이별이 자라는 사람들”, “이제부터 우리 함께 길을 잃어요” 같은 노랫말들은 음반이 끝날 때까지 익숙해져 버린 설렘과 슬픔을 계속 말끔하게 씻고 뾰족하게 찌른다. 노래를 듣는 이들은 제각각 다른 기억의 촉감과 향기에 휩싸인다. 묻어둔 기억을 복구하고 오래 미뤄둔 질문에 답하게 된다.

단정하지 않고 압박하지 않는 이이언의 노래는 고백하고 질문함으로써 감상할 뿐 아니라 기억하고 비교하고 반문해 사유하게 한다. 지나온 관계마다 자신이 얼마나 이상하고 인연은 얼마나 시시했는지 되묻는 노래는 열망이 무너진 폐허로 데려가 비로소 다르게 추억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끝나버린 일들의 체험을 연장하는 노래. 끝나도 끝나지 않는 것들이 있음을 깨닫게 하는 노래. 드물게 스스로 냉정하고 다른 이에게 섬세한 사랑과 이별 노래.

알엠과 제이클래프, 스월비가 피처링한 이번 음반은 이이언이 참여한 다른 음반들에 비해 덜 무겁고 덜 어두운 소리를 들려준다. 그렇다고 가볍지는 않다. 알앤비와 힙합의 어법을 가미한 노래들은 노래에 흐르는 감정을 더 끈끈하게 만들면서도 팝의 톤으로 절제한다. 대부분의 노래는 슬로우 템포나 미디엄 템포로 흘러가고, 이이언이 직접 연주하거나 프로그래밍한 연주는 대체로 간결하다. 이이언의 목소리는 여전히 여리고 예민하며, 곡의 멜로디는 하나같이 유려하다.

어떤 것은 달라졌고, 어떤 것은 달라지지 않았다. 이이언다움과 이이언에게 기대하지 않았던 것들이 혼재한 새 음악을 들으며, 우리는 한 사람의 예술가에게 흘러갔을 시간을 어렴풋하게 감지한다. 우리가 변화하면서 변하지 않듯 그 역시 달라지면서 여전한 모습으로 여기 있다. 부서지기 쉬운 세상, 가냘프고 연약한 우리가 아직 연결되어 있다. 언제까지나 그럴 수 있어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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