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인들 “미뤄둘 수 있는 생존권은 없다”...‘예술인권리보장법’ 제정 촉구

블랙리스트·미투운동 등 사각지대 예술인 위한 법안 필요해...‘캠페인’ 진행 중

예술인권리보장법 제정을 촉구하는 문화예술인 모임ⓒ예술인권리보장법 제정을 촉구하는 문화예술인 모임 페이스북 페이지

"국회에서 속히 이 법률안이 제정되기를 촉구합니다"

문화예술인들이 한마음으로 '이 법률안'의 제정을 촉구했다. 이 법률안은 예술인의 지위 및 권리보장에 관한 법률안(이하 예술인권리보장법)이다. 이 법률안엔 한 예술인으로서, 한 인간으로서 당연히 누려야 할 기본적인 권리가 담겨 있다. 바로 검열당하지 않고 창작할 권리, 성폭력 없는 안전한 환경에서 일할 권리 등이다.

'예술인권리보장법 제정을 촉구하는 문화예술인 모임' 공식 페이스북에는 '예술인권리보장법' 제정을 촉구하는 캠페인이 한창 진행 중이다. 12일에도 35번째 캠페인 참가자가 동참을 알렸다. 이 캠페인은 지난 4월부터 진행됐다.

캠페인 참여 예술인들은 "우리가 겪었던 블랙리스트 사태와 관련이 있는, 그 일의 재발을 방지하는 제9조를 읽겠다", "성폭력 관련 법과 제도가 기관, 회사, 학교 등 조직을 중심으로 만들어져있기 때문에 프리랜서가 대다수인 문화예술계 성폭력은 지금도 해결하기 어렵다" 등의 이유를 밝히며 법률안을 읽어 내려갔다.

캠페인에 동참하는 예술인들은 간단히 자기소개를 한 후, 예술인권리보장법 내용 중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나 가장 마음에 드는 항목을 골라 자유로운 방식으로 읽었다.

제9조(예술지원사업의 공정성 침해 금지)
① 국가기관등 소속 공무원 또는 예술지원기관의 임직원은 정당한 이유 없이 예술지원사업에 있어서 차별행위를 할 목적으로 예술인 또는 예술단체의 명단을 작성하거나 예술지원기관에 작성을 지시하여 이를 이용 또는 이용에 제공하거나 이를 제공받아 이용하여서는 아니 된다.
② 예술지원사업의 지원 대상을 선정하는 심사에 참여하는 자는 위계·사술, 그 밖의 부정한 방법으로 공정한 심사를 방해하여서는 아니 된다.
③ 국가기관등 소속의 공무원 또는 예술지원기관의 임직원은 거짓이나 그 밖의 부정한 방법으로 심사 관련 문서를 조작하거나 조작하도록 지시하여서는 아니 된다.
④ 국가기관등 소속의 공무원 또는 예술지원기관의 임직원은 정당한 이유 없이 종료된 심사 결과를 변경하여 예술지원사업의 지원 대상으로 선정된 자를 지원 대상에서 배제하거나 선정된 자에게 예술지원의 포기를 강요하거나 강요를 지시하여서는 아니 된다.

16일 오전 광화문광장 예술인 캠핑촌 앞에서 열린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다모여라!-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대응 집단소송 제안’ 기자회견에서 문화예술인, 박근혜정부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태 법률대응 모임 등 참가자들이 피켓을 들고 있다.ⓒ정병혁 기자

이명박·박근혜 정부 당시, 정권에 우호적이지 않은 예술인들을 배제하고 검열하는 블랙리스트 사태가 일어났다. 문학, 영화, 연극 등 피해 범위도 광범위했다. 2018년엔 문화예술계에서 '미투' 운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이처럼 예술인의 지위와 권리를 침해하는 사태가 연이어 발생했음에도 이들을 지켜줄 구체적인 법은 존재하지 않았다. 불공정한 예술환경과 사회보장의 사각지대에 놓인 예술인의 삶을 보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고, 2019년 예술인권리보장법이 발의됐다.

하지만 이 법률안은 아직도 빛을 보지 못하고 있다. 2019년 입법 발의 후 3년이 지났지만, 현재까지 국회에 계류 중이기 때문이다. 2019년 발의된 이 법률안은 20대 국회에서 폐기됐다. 그러다가 21대 국회에 들어서 문화체육관광위원회 1호 법안으로 발의됐다가 지난 4월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의 문화예술법안 심사소위원회에서 다시 제외됐다.

'예술 표현의 자유', '안전한 환경에서 일할 자유' 등 상식적이고 기본적인 내용을 담은 법률안이지만, 여전히 통과되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문화연대 측은 "국회나 정치권이 이 내용에 관심이 없다. 특히 문재인 정권은 블랙리스트와 적폐청산을 국정과제 1호로 제시했었다"며 "예술인권리보장법 제정은 그것을 위한 첫 단계"라고 말했다.

그는 "사실 예술인권리보장법은 이렇게 시간을 끌 법이 아니다. 법 내용을 보면 쟁점이 될만한 게 없다"면서 "상식적인 내용으로만 이뤄진 법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블랙리스트 같은 경우에 블랙리스트 가해자들을 처벌할 법적 조항이 우리나라에 없다"면서 "그래서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과 조윤선 전 정무수석도 직권 남용으로 처벌을 한다. 블랙리스트로는 처벌을 못 하니까 그렇게 처벌하게 된 것"이라며 예술인권리보장법이 필요함을 강조했다.

또한 "문화예술계가 대부분 프리랜서로 이뤄져서 조직이나 이런 게 없다 보니까 성폭력 범죄가 일어나면, 형사(처벌)는 따로 가더라도, 조직 내에서 징계나 이런 것들이 이뤄져야 하는데, 가해자들이랑 피해자가 법적 구속력이 있는 게 아니다 보니까 징계 수단이 없다"고도 지적했다.

문화연대 측은 "그런 점에서 예술인권리보장법은 필요하다. 예술인 권리침해 행위에 대한 법정 명시가 주는 의미도 크고, 실제 피해예술인들을 구제하는 구제 절차 같은 것도 담겨 있기 때문"이라며 "이제 국회가 답할 차례"라고 말했다.

지난 4월 7일 김신록 배우가 예술인권리보장법 제정 첫 캠페인 참가자로 이름을 올린 후 공연, 예술, 영화 등 다양한 예술인들이 동참하고 있다. 코미디언 김기리, 영화감독 남순아, 배우 반민정, 예술대학생 네트워크 활동가들, 배우 김선영 등 다수의 문화예술인이 참여했다. 캠페인은 5월에도 계속 진행될 예정이다.

예술인권리보장법 제정을 촉구하는 문화예술인 모임에 따르면 '예술인권리보장법' 제정 촉구 연명에 685명의 예술인과 169개 단체가 함께했다.

제17조(성희롱·성폭력 방지조치)
② 성희롱·성폭력 예방 및 피해구제 지원기관은 다음 각 호의 사업을 한다.
1. 예술인에 대한 성희롱·성폭력 예방을 위한 교육 및 홍보
2. 성희롱·성폭력 피해에 대한 신고접수의 대행 및 성폭력 피해자보호시설 등의 연계
3. 성희롱·성폭력 피해 예술인에 대한 법률상담과 소송대리 지원
4. 성희롱·성폭력 피해 예술인에 대한 수사기관의 조사와 법원의 증인 신문 등 조력
5. 성희롱·성폭력 피해 예술인에 대한 심리치료 및 의료비 지원
6. 예술인에 대한 성희롱·성폭력 및 피해에 대한 조사·연구

'예술인권리보장법' 내용 보러 가기(클릭)

예술인권리보장법 제정을 촉구하는 문화예술인 모임ⓒ예술인권리보장법 제정을 촉구하는 문화예술인 모임 페이스북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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