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은 똑바로 하자. 이스라엘은 ‘인종 말살’이라는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

2021년 5월 10일 이스라엘 군경이 유대교와 이슬람교의 성지인 알아크사 사원을 폭력적으로 점령했다.ⓒ사진=인터넷 캡쳐

편집자주: 이스라엘이 1948년부터 불법으로 점령한 팔레스타인을 계속 장악하기 위해 지금까지 팔레스타인인 인종 말살 정책을 펴고 있다. 이를 위한 핵심적인 전략 중 하나인 정착촌 확대를 위해 이스라엘이 동예루살렘에서 강제 퇴거를 진행하다가 저항에 부딪혔다. 그리고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폭력으로 대응했다. 이스라엘의 잔혹한 공격이 나흘째에 접어 들었다. 그런데 국제사회 또한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팔레스타인을 비난하거나, 이스라엘에 대해 형식적인 항의를 하고 있다. 이런 태도를 확산시키는 데에 서방 언론이 적극적으로 앞장서고 있다고 비판하는 미들이스트아이의 기사를 소개한다.
원문: Sheikh Jarrah:Clashes, scuffles, conflict - western media's euphemisms for Israel's violence

창의적인 전쟁 기사 하나를 상상해 보자. “1937년 4월 26일, 바스크 마을 게르니카의 주민들이 폭탄과 소이탄을 떨어뜨리는 독일 전투기와 ‘충돌’했다. 게르니카는 이 ‘폭력 사태’ 과정에서 폐허가 됐고 최대 1,600명이 사망했다.”

폭탄을 쏟아내는 괴물 같은 전투기와 목숨을 잃고 시신이 된 사람들의 권력 관계의 본질이 너무나 명확해 제정신이라면 이런 기사를 절대 쓰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상대로 벌이고 있는 ‘끝나지 않는 전쟁’ 얘기만 나오면 서방 언론사들은 누가 봐도 일방적인 만행을 ‘충돌’이나 ‘폭력 사태’로 표현하기에 여념이 없다.

1937년 4월 226일, 스페인 바스크 지방의 게르니카가 나치의 융단 폭격을 받아 인구의 1ⓒ사진=인터넷 캡쳐

일례로 2018년 3월 시작된 ‘위대한 귀향행진’을 보자.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 주민들은 땅의 날을 맞아 분리 장벽에서 그들의 촛불 집회를 열었다. 수만 명이 모였다. 노인들은 고향 마을이 적힌 깃발을 내걸었고 아이들은 천막 안에서 공부했다. 청년들은 전통춤을 췄고 어머니들은 음식 준비에 바빴다. 그런데 이들을 향해 이스라엘 군이 조준 사격과 탱크 포격을 한 것이다. 유엔에 따르면 46명의 아이들을 포함해 214명의 팔레스타인인이 사살됐고 3만6,100여 명이 부상을 입었다. ‘같은 기간 동안’ 이스라엘 측은 군인 1명이 사망했고 7명이 부상을 입었다. 서방 언론의 반응은 무엇이었을까? 그렇다. 그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충돌’이었다.

말은 똑바로 하자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인종 말살정책이 다시 총체적으로 가동되고 있다. 그리고 서방 언론사들은 다시 완곡한 표현, 미사어구로 이 사실을 은폐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우파 이스라엘 정착민들을 이용해 동예루살렘 셰이크 자라 지역에서 10명의 아이를 포함한 40명의 팔레스타인인들을 내몰아 강제 이주시키려 하고 있다. (1948년부터 시작된 팔레스타인 난민 가족들의 강제 이주 정책이 계속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시도는 그 자체로도 위법이고 말할 수 없이 부당하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기동 경찰을 동원해 최루가스와 스컹크액(시위자들에게 분사하는 지독한 악취가 나는 더러운 액체로 이스라엘이 개발했다)으로 이들을 공격하기까지 했다. 그리고 이스라엘 보안당국은 알아크사 사원을 공격해 팔레스타인인 신자들에게 고무 코팅된 금속 탄환을 쏘고 섬광 수류탄을 투척해 수백 명에게 부상을 입혔다.

2014년 7월 8일부터 50일간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와 '전쟁'을 벌였다. 그 결과 2000여 명의 팔레스타인인과 70여 명의 이스라엘인이 사망했고, 1만여 명의 팔레스타인과 700여 명의 이스라엘인이 부상을 입었다. 사진은 15명의 아이들의 포함한 아부 자메의 가족 24명을 애도하기 위해 그들의 시신이 놓인 모스크를 찾은 팔레스타인인들의 모습이다.ⓒ사진=인터넷 캡쳐

하지만 서방 언론사들의 보도는 예상대로다. 이번 ‘사태’는 이스라엘 군경이 팔레스타인의 시위에 ‘대응해’ ‘갈등’이 고조되면서 ‘무력 충돌’로 이어진 것이다. 워싱턴포스트, ABC뉴스, 가디언, 폭스 뉴스, BBC…. 예외가 없다. 2014년 이스라엘이 2000여 명의 팔레스타인인을 학살했을 때도 이러지 않았던가.

한편 이스라엘 경찰과 “팔레스타인인 시위대간의 대립”을 다룬 지난 7일자 뉴욕타임스 기사는 “이스라엘 외무부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와 팔레스타인 테러리스트들이 ‘예루살렘에 폭력 사태를 유발하기 위해 민간인 개인들 간의 부동산 분쟁을 민족적인 이슈로 만들고 있다’”고 보도했다.

정확한 사실은 이렇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 전체가 이번 동예루살렘 팔레스타인 주민 강제 이주의 확대판이다. 1948년 팔레스타인 부동산의 대부분을 무력으로 빼앗고 부동산의 나머지는 오늘날까지도 불법으로 점령하고 있는 자들이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공포에 몰아넣고, 집에서 쫓아내고, 죽이는(그러니까 ‘부딪히는’) 것을 정당화하기 위해, 그들을 테러리스트라고 묘사하는 것이다.

위선과 기만

이스라엘이 자기 뜻을 이룰 수 있을지 없을지는 처음부터 (지금의 ‘사태’도 불러일으킨) 팔레스타인 인종 말살 정책의 성공 여부에 달려 있었다. 하지만 뉴욕타임스나 다른 언론사들은 역사적인 사실들을 연결해 이스라엘이 조직적으로 팔레스타인인들을 몰아내고 있다는 큰 그림을 보여줄 생각이 없다. 그리하여 이스라엘의 인종 말살 정책은 지엽적인 ‘충돌’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뉴욕타임스는 그보다도 더 큰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삼척동자도 어이없어 할 이스라엘 외무부의 주장을 사실 그대로 어이없다고 설명하지 않고 고스란히 인용하고 있다. 그러므로써 이스라엘의 선전 내용 전파와 팔레스타인 영토 불법 점령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과테말라 외무부가 코로나19가 유니콘에 의해 전염됐다는 성명을 발표했다고 잠시 상상해 보자. 그리고 미국의 주요 일간지가 그 주장이 허무맹랑하다는 언급 없이 이를 그대로 기사에 실어줬다고 상상해 보자. 팔레스타인인들이 매일매일 서방 언론에 당하는 일이 이와 비슷하다.

사실 보도와 진실의 전파를 중시하는 언론사라면 정착촌을 또 확장하려는 이스라엘의 이번 시도가 이스라엘의 위선과 기만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지도=나눔 문화

이스라엘이 1950년대부터 셰이크 자라에 살았던 팔레스타인 가족들을 폭력적으로 몰아내는 것을 정당화하는 논리 중 하나는 19세기에 유대계 재단 2개가 그 지역의 일부를 아랍 지주로부터 구입했다는 얘기가 있다는 것이다. (시온주의자들이 이런 논리에 문제가 있다고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최근 총탄을 맞은 한 팔레스타인 시위자가 머리에 총탄을 맞지 않아서 안타깝다고 깐죽거리는 영상이 공개돼 논란이 됐던) 예루살렘의 부시장 아르예 킹이 당당하게 말한다. “누군가가 당신의 땅을 무단 점유하고 있다면 당신은 그 사람을 내쫓을 권리가 있는 것 아닌가.”

참으로 맞는 얘기다. 1948년 자기 땅에서 쫓겨났던 수십만 명과 지금도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는 600만여 명의 팔레스타인인의 입장에서 보면 말이다.

백인 경찰에게 질식사 당한 미국 흑인 조지 플로이드와의 비교

그런데 사실을 왜곡하는 주류 서방 언론사들보다 더 한 언론사들도 있다. 일례로 이스라엘 일간지 하욤에 실린 캐롤라인 글릭의 기사를 보자. 글릭도 ‘분쟁’이나 ‘충돌’이라는 표현에 반대한다. 그런데 그 이유는 완전히 다르다.

글릭은 팔레스타인과의 ‘갈등’을 “미국이 만들어낸 화약고”라고 한다. 그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중동 전역에 있는 테러리스트들의 세력이 조 바이든 미 대통령과 민주당 때문에 커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팔레스타인과 서방이 손을 잡고 예루살렘을 장악한 이스라엘을 공격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10일, 이스라엘이 한 팔레스타인 시위자를 내리누르고 있다.ⓒ사진=뉴시스/AP

그러면서 글릭은 셰이크 자라에서 이스라엘 경찰이 한 팔레스타인인의 목을 눌러 땅에 내리 누르고 있는 영상을 올릴 때 “숨이 막혀요”라는 영문 자막을 단 팔레스타인 활동가들의 사악함에 분개했다. “이 영상의 목표가 너무 노골적이다. 미국 미니애폴리스에서 조지 플로이드를 죽인 경찰들과 예루살렘 경찰들이 똑같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것이다. 그런데 그게 먹히고 있다.”

글릭에 따르면 지금 문제가 되는 게 이스라엘의 인종 말살 정책도, 고무탄 세례도, 과잉 진압도 아니다. 우리가 분개해야 할 기막힌 일은 한 영상의 자막인 것이다. 그리고 미국의 폭력적인 억압과 이스라엘의 폭력적인 억압이 본질적으로 같은 게 사실이니, 이를 지적하지 않는 언론사가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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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연 기자 응원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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