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민생·재생’ 사라진 서울시 조직개편...“다시 뉴타운 광풍으로 쑥대밭 만들 건가”

시민사회, 노동·민생 삭제한 서울시 조직개편안 폐기 촉구

서울시 조직개편안 반대 기자회견ⓒ민중의소리

오세훈 서울시장이 ‘노동’과 ‘민생’을 지우고 ‘스피드 주택공급’에 방점을 찍은 조직개편안을 내놓으면서 다시 투기를 조장하는 개발정책만을 추진하던 시정으로 회귀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된다.

민주노총 서울본부, 서울진보연대,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주거권운동네트워크 등 서울지역 노동시민사회단체 및 풀뿌리 단체가 망라한 ‘코로나 너머 새로운 서울을 만드는 사람들(준)’(약칭, 너머서울)은 13일 서울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오 시장에게 “노동과 민생을 삭제한 일방적인 조직개편안을 즉각 폐기하라”라고 촉구했다.

최근 서울시는 오세훈 서울시장 취임 이후 첫 조직개편안을 공개했다.

개편안에는 주택공급을 담당하던 주택건축본부(2급)가 도시재생실 산하 조직에서 벗어나 주택정책실(1급)로 격상하는 내용이 담겼다. 2009년 민간주도 재개발로 인한 갈등으로 여섯 명이 사망한 용산참사에 대한 반성·성찰을 위해,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민간 재개발에서 도시재생으로 전환을 선언하며 설립한 도시재생실(1급)은 사라진다. 도시재생실 관련 기능은 신설 예정인 균형발전본부(2급) 등으로 이관된다.

박 전 시장이 강조했던 ‘도시재생’보다는 재개발·재건축 활성화를 통한 공급 위주의 주택정책으로 전환하려는 오 시장의 정책 기조가 반영된 것이다.

무엇보다 이번 개편안에서 ‘노동’이란 단어를 지운 것이 논란이다. 개편안대로라면, 박 전 시장이 ‘노동존중특별시’를 표방하면서 행정1부시장 산하에 두었던 노동민생정책관(국)은 공정상생정책관(국)으로 바뀐다.

22일 오전 서울 동대문구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오세훈 서울시장 온라인 취임식에서 오세훈 시장이 취임사를 하고 있다. 2021. 4. 22ⓒ사진공동취재단
경찰특공대가 지난 2009년 1월 20일 새벽 용산구 한강로2가 한강대로변 재개발지역 4층짜리 건물에서 강제진압 작전을 하던 중 시너가 폭발해 철거민 5명이 사망한 가운데 불에 휩싸인 망루를 지켜보고 있는 농성자들과 강제진압에 동원된 컨테이너와 경찰 2009.01.21ⓒ김철수 기자

“용산참사 기억 위한 도시재생, 사라지면 안 돼”
“타 시·도 모범이 됐던 노동정책 뿌리째 흔들려”

기자회견에 참여한 노동시민사회 단체 관계자들은 이 같은 서울시의 조직개편안에 심각한 우려를 표했다.

김주호 참여연대 사회경제1팀장은 “오세훈 시장이 뉴타운 광풍으로 서울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세입자 내쫓기 위해 경찰특공대까지 동원해 용산참사를 일으켰던 것을 기억한다”라며 “이를 기억하기 위해 만든 게 도시재생실”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그런데 오세훈이 돌아오자마자 도시재생실 기능을 축소하겠다고 한다”라며 “다시 한번 뉴타운 광풍으로 부자 되게 해주겠다고 외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 팀장은 “오세훈 시장이 후보시절 재건축·재개발 규제완화 공약을 걸자마자, 서울의 집값이 껑충 뛰었다. 시장의 말 한마디, 공약 하나, 부서 하나 없애는 게 많은 시민의 생존권이 걸린 일임을 명심해야 한다”라며 “오 시장이 서울을 다시 뉴타운 광풍으로 엉망진창으로 만든다면 가만히 두고만 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시가 노동민생정책관을 공정상생정책관으로 바꾸는 것을 두고, 김진억 민주노총 서울본부장은 “공정과 상생은 우리 사회가 추구해야 할 가치지만, 노동·민생을 곧장 대체할 수 있는 개념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김 본부장은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사회적 약자와 노동자·서민의 삶은 무너지고 있다. 이 같은 재난 시기에 노동·민생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생존권이자 기본 권리”라며 서울시 정책에서 노동·민생의 가치가 사라지고 있는 점에 대해 강하게 우려했다.

문종찬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은 먼저 “15년 전쯤인가, 지방자치단체장의 선거공약은 대부분 ‘개발’이었다. 그리고 10년 전부터 자치단체장의 주요 공약은 ‘민생’과 ‘복지’가 됐다”라며, 그 결과 서울시에도 노동 전반을 다루는 부서가 설치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지난 1년여 동안 우리 사회는 노동기본권 사각지대가 얼마나 광범위한지 목도해 왔다. 노동 문제는 중앙정부뿐만 아니라, 지방정부의 역할도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을 확인한 시기이기도 하다”라며 “그런데 어떤 이유에선지 모르지만 부서를 해체하는 안이 나왔다. 심각한 우려를 하지 않을 수 없다”라고 말했다.

김일웅 정의당 서울시당 사무처장 또한 “OECD 가입국 중 산재사망사고 1위라는 참혹한 현실이 보여주듯 노동은 존중받지 못하고 있다”라며 “부족하게나마, (노동존중특별시를 표방한) 서울시가 다른 지방의 노동정책을 견인해 왔다는 것은 사실”이라고 짚었다.

이어 “(노동·민생을 지운 이번 서울시의 개편안은) 한국사회 전체적인 노동정책 후퇴로 이어질 게 자명하다”며 우려했다.

이날 너머서울은 기자회견문을 통해 “지난 10년간 노동정책을 만들어 타 시·도의 모범이 된 서울시의 근간이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너머서울은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가 실시한 서울시 정책공약에 대한 지속성 여부 질문에, 오 시장은 229개 박 전 시장 정책공약 중 171개(74.7%)를 보류·폐기하거나 수정·보완할 것이라고 답했다. 고용·노동 정책은 더욱 심각한 위기에 놓였다. 전체 정책공약 중 ‘노동’, ‘일자리’, ‘고용’, ‘근로’, ‘직장’, ‘채용’을 키워드로 뽑아낸 23개를 별도로 살펴보니, 20개(87%)가 보류·폐기 또는 수정·보완 명단에 올랐다”라며 “결국 노동 관련 정책과 수행과제의 전면적 후퇴와 지체가 예상된다”라고 짚었다.

또 “이윤 추구형 민간 개발은 도심 내 저렴한 주거를 소멸시키고, 중대형 아파트만 공급해 전·월세 폭등을 불렀으며, 공급된 주택은 다주택자들에게 넘어갔음에도, 오세훈 시정의 조직개편은 투기를 부추기고 또 다른 용산참사를 예고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너머서울은 “노동자의 일자리가 불안하고 합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는 조건에서 공정과 상생 운운은 언어도단”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일방적인 조직개편 강행을 중단하고 차별과 고용불안에 시달리고 있는 약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라”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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