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노동이야기] 산재 1건 처리하는데 평균 4개월, 이게 최선인가

처리 지연 비롯해 각종 문제 안고 있는 산재 보험, 근본적 개혁이 시급하다

아침부터 울리는 벨소리. 십중팔구 산재 상담이다. 다른 업무와 달리 산재 상담은 우리 센터가 계획할 수도 양을 조절할 수도 없다. 정해진 사업 일정이 있는데, 상담 건수가 늘어나면 적잖이 부담이 된다. 원만하고 빠르게 처리되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애석하게도 그런 일은 잘 없다. 재해자는 늘 괴롭고, 우리는 늘 피곤하며, 근로복지공단 담당자는 늘 곤란하다. 오늘도 우리 사무국장님은 공단 지사와 기나긴 통화를 하고, 나는 생각에 잠긴다. ‘모두를 불행하게 하는 이 보험 시스템은 도대체 왜 이럴까?’

전국금속노동조합(이하 금속노조)이 작년에 이어 올해도 근로복지공단(이하 공단)을 상대로 산업재해 판정 및 처리 지연 문제를 해결하라는 투쟁을 지속하고 있다. 작년에 시작된 이 투쟁이 길어지고 있는 것은 금속노조의 요구에 대해 강순희 근로복지공단 이사장이 ‘공단은 노력했고 성과를 냈다’는 입장만 내놓았기 때문이다. 산재 판정 지연 문제의 핵심인 근골격계 질환 평균 판정 기간이 4개월인 암담한 현실에 대해, 최고책임자의 답변이 근본적인 제도 개혁이 아니라 ‘3개월로 줄여보겠다’는 것이라니.

강순희 근로복지공단 이사장이 2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환경노동위원회 근로복지공단,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2020.10.20.ⓒ사진 = 공동취재사진

노동안전보건단체의 입장에서 ‘산재 처리 지연’은 정말 지긋지긋한 문제다. 일단, 승인을 받기 전까지 아무런 보상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산재 노동자들은 치료비 문제는 물론 휴업으로 인한 생계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이를 각오하고 산재 신청에 도전할 수 있는 노동자들은 그나마 형편이 나은 편이다.

상담하다 보면 안타까운 사연이 정말 많다. 많은 노동자들이 이러한 부담 때문에 결국 산재 신청을 포기한다. 어떤 노동자들은 신청을 하고서도 생계를 위해 계속 출근하는 선택을 하기도 한다. 4개월이 지나 승인이 난다 한들, 이들의 몸은 이미 더 망가져 있다. 휴업을 안 했으니 휴업 급여도 없고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했으니 요양급여도 별 의미가 없다.

더 안타까운 사례는 근골격계 질환으로 일을 할 수 없게 돼 해고당하는 노동자들이다. 상식적으로 그렇듯, 법적으로도 산재를 당한 사람을 해고하는 것은 ‘불법’이다. 그러나 그것도 해당 질환이 산재로 판정 받은 다음의 일이다. 이렇게 해고 당한 노동자는 산재 승인을 받기 위해 4개월 동안 기다린 다음, 그후엔 노동부에 가 부당해고구제신청까지 해야 하는 것이다.

근로복지공단은 지연 문제에 대한 대책으로 2019년 ‘근골격계 질환 추정의 원칙’을 도입했다. 대표적인 근골격계질환들에 대해 직종과 경력 요건이 충족되면 업무관련성을 인정한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이를 수많은 근골격계 질환 중 소수 직업군의 6개 질환에 대해서만 적용하고 있어, 2020년 전체 근골격계 질환 신청 건 9,925건 중 367건만 적용을 받았다.

게다가 이 조건이 충족된다 해도 현장 조사를 생략하는 대신 특별 진찰이 진행되고, 다른 케이스와 마찬가지로 판정위원회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사실상 처리시간 단축의 효과가 없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올해 2월에는 특별 진찰 결과 업무관련성 ‘매우 높음’ 판정을 받으면 판정위원회를 거치지 않고 바로 승인하도록 규정을 변경했다. 과연 얼마나 효과가 있었을까?

서울 종로에서 한 노동자가 용접을 하고 있다.ⓒ양지웅 기자

실제로 우리 센터를 찾은 한 노동자 사례를 소개한다. 그는 17세 때부터 40년 가까이 용접사로 일을 했고, 반월상연골파열로 상담 후 산재를 신청했다. 이 질병은 용접공에게 흔히 발생하는 것으로 경력 10년 이상이면 ‘추정의 원칙’이 적용된다. 그는 신청한 지 52일 만에 특별 진찰을 받았고 2개월 만에 특별 진찰 결과가 나왔지만 판정은 ‘높음’이었다. 결국 이 노동자는 오는 5월 판정위원회를 기다리고 있다.

40년을 일한 사람도 업무관련성에서 ‘높음’ 판정을 받는다면, 도대체 ‘매우 높음’ 판정을 받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 것일까? 2019년 산재 신청된 9,426건의 근골격계 질환 가운데 특별진찰을 통해 ‘매우 높음’ 판정을 받은 것은 311건으로 전체의 3.2%에 불과했다.

위 사례만 보더라도 산재 처리 지연의 핵심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산재 심사 전체 과정에서 노동자의 질병에 대한 업무관련성은 ‘추정의 원칙’이란 기준에서 처음 판단을 받고, ‘특별진찰’을 통해서 다시 판단을 받는다. 그리고 또 ‘질병판정위원회’에서 세 번째 판단을 받아야 한다. 이것은 불합리, 비효율의 문제를 넘어, 재해자에 대한 ‘괴롭힘’이라고 해도 지나친 표현이 아니다. 만약 일반 자동차보험이나 손해보험이 이런 식으로 가입자를 대한다면, 당장 고소하고 손해배상을 청구하고도 남을 일이다.

현재 노동계는 ‘추정의 원칙’ 적용 대상을 대폭 확대하고 즉각 적용할 것, 특별 진찰 결과 즉시 승인 대상을 확대해 판정위원회까지 가는 사건 수 자체를 대폭 줄일 것, 사업주 의견서를 무작정 기다리지 말고 규정대로 10일 안에 받을 것 등의 구체적인 개선 요구를 하고 있다. 이와 함께 산재 보험 처리방식을 ‘선 보상-후 정산’으로 바꾸는 근본적인 제도 개혁을 주장하고 있다.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16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근로복지공단 남부지사에서 '산재처리 지연 규탄·추정의 원칙 법제화·산재보험 제도개혁 촉구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이날 조합원들은 기자회견을 통해 산재보험의 신속·공정한 보상, 재활 및 복귀 원칙을 외면하는 노동부와 근로복지공단을 규탄했다. 2021.3.16ⓒ사진 = 뉴스1

그동안 처리 기간 단축을 위해 시행된 제도들은 ‘공정성 확보’란 미명 하에 새로운 절차와 까다로운 조건들이 따라붙어 실질적인 기간 단축 효과를 내지 못했다. 오히려 공단 직원들의 업무량을 늘리고 재해자들의 불편만 가중시켜 왔다. 이제는 그런 방식이 아니라 과감한 기준 확대와 절차 간소화, 나아가 우선 보상하고 추후 정산하는 식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 노동자들의 삶과 건강을 우선하는 산재 보험의 취지를 살리자는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개혁 대상은 처리 지연 문제만은 아니다. 산재 신청부터 요양급여, 휴업급여 청구에 이르기까지 재해자가 챙겨야 할 서류와 양식은 너무도 많다. 제도와 절차는 필요 이상으로 복잡하며, 사용하는 용어도 지나치게 전문적이다. 상담하다 보면, 공단의 안내문자 받고 무슨 이야기인지 혹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모르는 노동자들이 대부분이다. 심지어 공단 직원들도 복잡한 절차와 규정을 숙지하지 못하고 재해자에게 설명하기 힘들어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일선 지사에서 끊임없이 인력 부족을 토로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지금의 제도는 인력 충원만으론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을 안고 있다. 그러니 공단은 노동자들의 투쟁을 집단 민원으로 치부해선 안 된다. 근본적 제도 개혁을 통해 산재노동자들의 피해와 공단 담당자들의 업무량을 줄이자는 제안으로 받아들이고 진지한 태도로 응해야 한다.

산재보험 개혁이 시급한 것은 피해자들 때문만은 아니다. 산재 처리가 노동자들에게 불편하고 불안한 것으로 남아있는 한, 현장에서의 산재 은폐와 공상 처리가 공공연하게 벌어지는 현실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현재 산업재해에 대한 통계는 오로지 공단의 산재 신청 및 승인 건만을 바탕으로 생산되고, 이 통계는 산재 예방을 다루는 모든 부처와 기관, 연구자들의 정책 수립과 연구 기초자료로 활용된다. 정부는 지금의 통계가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다고 자신할 수 있는가.

강순희 이사장은 공단의 역할은 산재 보상일 뿐, 산재예방은 남의 일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산재 보험의 과감한 개혁을 통해 노동자들이 산재처리를 두려워하거나 기피하지 않도록 하는 것, 그로 인해 숨어있는 산재들이 더 많이, 더 정확히 드러나도록 하는 것, 그것이 수 십 년 간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는 한국의 산재예방시스템이 나아가야 할 첫걸음이다. 현실이 아무리 처참해도 그것을 정확히 마주하지 않고서는 조금도 미래로 갈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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