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민보] ‘느슨한 교감의 정점’ 정원에 모여 안부 묻는 사람들

비영리 스타트업 ‘마인드풀가드너스’ 대표 김현아

적절히 마른 땅을 찾아 볕이 잘 드는지 살피고, 씨를 뿌려 물을 준 뒤 잘 머금고 잘 내보내는지 만져보며, 수시로 ‘잘 자라나’, ‘잘 견디나’ 확인 또 확인.

내 일상에 정원을 들인다는 건 한 명의 가족을 맞이하는 것과 비슷하다. 꼭 널찍한 땅이 아니라 한 손에 꼭 들어오는 크기의 화분이어도 일상생활에 식물을 염두에 둔다는 건 그 자체로 마음을 필요로 한다.

코로나19가 시작된 이후 사람들은 반려 식물을 많이 찾았다. 가까이 두며 정서적으로 의지했고 교감했다. 식물을 기르는 과정을 돌이켜보면 사실 성장은 꽃보단 ‘사람’이 더 많이 한다. 생물의 나고 자람을 지켜보며 덕분에 일광을 쬐고 적절히 몸도 움직인다. 정서적으로 치유까지 받았으니 하나의 생태계를 구축하는 그 시간에 우리는 무수한 것들을 얻을 수 있다.

비영리 스타트업 ‘마인드풀가드너스’ 설립자 김현아 대표는 이런 정원에서 맞이하는 모든 관계에 집중했다. 현아 씨는 “정원 활동엔 기후 위기에 대응하고 공동체 일상을 회복시킬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그를 최근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비영리 활동가 공유 사무공간 ‘동락가’에서 만나 인터뷰했다.

비영리 스타트업 ‘마인드풀가드너스’ 김현아 대표가 12일 서울 종로구 비영리 활동가 공유 사무 공간 동락가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1.05.12.ⓒ김철수 기자

비영리단체와의 20년 인연

현아 씨의 비영리단체 입문 계기는 2000년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서울 중구 신당동 근처에 재건축·재개발로 생긴 새 아파트에 입주해 살게 된 입주민이었다. 당시 입주민과 원주민 간 갈등이 있었다. 신당동 인근 시장 상인들이 오랫동안 물건을 펼쳐놓고 장사하던 공간이 재건축·재개발을 통해 아파트의 것으로 분류된 게 원인이었다. 더 이상 이전처럼 장사할 수 없는 주민과 새로 온 주민 간 마찰이 불거졌다.

가장 답답한 건 “중구청이 해결해주지 않고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이었다. 현아 씨는 골이 깊어지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다 “상생과 갈등을 조정할 기구로 시민사회단체가 대안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아쉽게도 당시엔 지역을 기반으로 맞닿은 활동을 하고 있는 단체를 만나진 못했지만, 그 관심이 계기가 돼 지역 여성운동 단체에서 2년간 활동했다.

이후 출산을 한 뒤엔 “아이가 살아갈 사회”로 관심사가 확장됐다. 그러다 우연히 비영리단체 아름다운재단의 공채를 봤고 지원해 그곳에서 12년간 일했다. 현아 씨는 지난 2017년 아름다운재단에서 퇴사했다. 재단을 떠난 뒤에도 시선은 여전히 비영리단체에 머물렀다. “좋은 사회를 만들고 그 혜택을 주변과 함께 나도 보는 것”, “사회에 기여하며 받는 심리적 보상” 등은 현아 씨가 꼽은 비영리단체 활동의 매력이다.

이후 꾸준히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하다 재단 활동 10년 차 때 안식년을 보내며 지친 자신을 치유해준 ‘정원 활동’을 떠올렸다. 현아 씨는 “정원 활동이 비영리 활동의 방법론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밝혔다. 단순한 취미 활동으로 시작했지만, 그 과정에 점점 몰입하는 자신을 보며 현아 씨는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는 ‘정원 활동 프로젝트’를 만들어보고자 마음먹게 됐다.

“퇴사 뒤 3년을 정원 기반 활동들을 실험해보는 기간으로 삼았다. 단순히 개인을 위해서가 아닌 공익적인 활동을 하고 싶었다. 취미로 시작한 정원 활동에 몰입할수록 ‘지금 시대에 정말 필요한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고민의 시간을 거쳐 지난해 10월 ‘마인드풀가드너스’를 만들었다.

‘마인드풀가드너스’ 공동체 가드닝 활동사진.ⓒ마인드

“공동체의 연결” 정원 활동에 숨은 ‘관계’ 찾기

현아 씨는 정원을 기반으로 연결되는 ‘여러 가지 지점’들에 집중하고 있다. 그는 정원 활동의 3가지 요소로 ‘사람·공간·프로그램’을 꼽는다.

우선 ‘사람’에 대해 현아 씨는 “정원 활동은 사회적인 활동이다. 단순히 식물을 키우는 일이 아니라 일차적으로는 정원 기반의 모든 활동이 ‘관계를 맺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웃과의 관계일 수도 있고 자연과의 관계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현아 씨가 정원 활동으로 이루고픈 첫 미션은 “공동체를 연결시키는 것”이다. 꽃을 키우며 함께하는 사람들과 정보를 나누고, 몸을 움직이고, 재배한 꽃과 씨는 함께하지 못한 주변에 나누는 것. 그 과정에서 개인은 정서적 안정감을 자연스럽게 느끼게 된단 것이 현아 씨의 생각이다. 그렇게 파편화된 서로서로를 자연스럽게 ‘연결’하는 과정이 정원 활동에 모두 담겨 있었다.

이후엔 자연과의 관계이다. 현아 씨는 “정원 관련 공부를 하다 보면 기후 위기와 맞닿은 부분이 안 나올 수 없다”고 말했다. “아직 우리나라는 정원문화가 대중적이지 않지만 서구에선 기후 위기 대응과 관련해 여러 가지 정원 관련 정책이 나오고 흐름도 있다. 서양 정원의 역사엔 생태주의적, 자연주의적, 역사적 흐름이 있다. 국내에도 최근 생태주의적 정원에 관심을 두며 디자인하는 분들이 생기고 있다. 대중적이진 않지만 하나의 흐름으로 자리 잡아가는 것 같다.”

생태주의적 정원에 대해 현아 씨는 “인간이 개입해 형태를 바꾸는 장식 중심의 정원과 달리 인간이 조성한 환경에서 서식지에 맞게 식물을 심어 정원 자체가 잘 자생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그러면서 이 안에 나름의 작은 생태계가 만들어지고 단순히 식물을 기르는 것뿐만 아니라 그 안의 작은 유기체와 공생하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고 말했다.

현아 씨는 식물을 기르다 보면 자연스럽게 “쓰레기를 줄이는 것”에도 관심이 갈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생명을 키우는 자연 주기를 한 번 경험하고 나면 이것이 다 유기적으로 연결됐다는 걸 이해하게 된다. 함부로 약을 치거나 화학비료를 넣지 않게 되고, 잘 분해되지 않는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게 된다. 환경에 부담을 주는 행위들을 체감하게 된다.”

비영리 스타트업 '마인드풀가드너스' 김현아 대표가 12일 서울 종로구 비영리 활동가 공유 사무 공간 동락가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1.05.12.ⓒ김철수 기자

‘사치스러운 취미활동?’, 정원에 대한 편견 깨기

현아 씨는 “정원 활동은 모든 연령대에 필요한 활동”이라고 말했다. “주로 은퇴 연령대가 되면 자연에 관심을 갖고 취미생활로 삼는 것이 자연스러운 현상처럼 보이지만, 위로·치유·관계맺음이 필요한 젊은 세대들에게도 정원 활동이 필요하다. 고립과 단절은 원하지 않지만, 느슨한 관계는 원한다면 ‘교감의 정점은 식물’이라고 얘기해주고 싶다.”

현아 씨가 꼽은 정원 활동의 3요소 중 아무래도 가장 어려운 건 함께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을 발굴하는 것이다. 하지만 편견을 깨는 부분도 필요했다. 현아 씨는 “한국 주거 형태 특성상 정원을 가꿀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아 ‘사치스러운 취미 활동’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공공의 부지를 활용한다면 공동체가 함께 정원 활동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최근엔 개인이 소유한 공간을 프로그램에 공유하고 싶다는 연락도 오고 있다. “공유지뿐만 아니라 사유지도 공유 공간이 될 수 있다. 저희 프로젝트에 ‘개인 정원을 마을에 공유하고 싶다’고 의견을 주신 분들도 있다. 충분히 공동체가 정원 활동을 할 수 있는 공간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서울숲 공동체 가드닝을 통해 채종한 꽃씨와 컷 플라워 가드닝 프로젝트 키트.ⓒ마인드풀가드너스 제공

함께 키워 선물한 꽃다발

현재 마인드풀가드너스가 주력하는 프로그램은 ‘컷 플라워 가드닝 캠페인’이다. 컷 플라워 가드닝은 꽃다발로 사용하는 절화를 키우고 수확하는 활동을 말한다. 식물을 키우는 과정과 주변에 나누는 과정까지 모든 것이 이에 속한다.

마인드풀가드너스는 ‘컷 플라워 가드닝 캠페인’에 참여할 커뮤니티를 모집했고 이 중 36개 팀을 선발했다. 이들에겐 직접 제작한 캠페인 키트를 제공했다. 키트엔 물이 불리면 커지는 압축 상토, 씨앗, 안내 책자가 들었다. 나중에 꽃이 다 자라면 다발을 만들 수 있도록 종이 포장지와 스티커도 넣었다. 특히 씨앗은 서울숲 정원을 관리하는 자원봉사자들이 채종한 것을 기부받은 거라 더 의미 있다. 혹시라도 발화 비율이 떨어질까 시중에서 구매한 씨앗도 키트에 함께 넣었다.

이 키트를 통해 전국 곳곳에서 꽃이 자라고 있다. 팀의 성격에 따라 여럿이 공유 공간에서 기르기도 하고, 가족이 베란다에서 기르기도 한다. 공간의 제약은 없다. 다만 “꽃을 나누는 활동까지 꼭 하겠다”고 약속한 이들에게 키트를 주었다. 이들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소통하고, 인증 사진도 올리고 있다.

‘컷 플라워 가드닝’을 진행하는 가장 큰 커뮤니티는 시범사업 때부터 함께한 서울숲 팀이다. 최근 현아 씨는 서울숲에서 키운 빨간 달리아 꽃을 ‘재한미얀마청년연대’ 측에 선물했다. 앞으로도 공동체에서 키운 꽃을 이웃에게 전달하는 걸 꾸준히 실천할 계획이다. 현아 씨는 “꼭 어떠한 단체가 아니더라도 이웃에게, 가족에게 마음을 표현해도 좋다. 지난해가 코로나19로 서로 힘든 시기였기 때문에 그렇게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 의미 있다고 생각했다. 함께 활동하는 분들의 의견을 모아 꽃을 선물할 곳들을 정해보려고 한다. 다양한 분에게 꽃을 나눠드릴 수 있는 기회를 만들고자 한다.”

아울러 마인드풀가드너스는 최근 ‘공동체 가드닝’ 방법을 담은 가이드 매뉴얼도 제작했다. 공동의 정원 활동에 관심이 있지만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막막한 이들을 생각하며 만들었다. 원예정보 중심이 아닌 ‘공동체 조직 문화’를 설명하는 것에 초점을 두었다.

마인드풀가드너스가 컷 플라워 가드닝 캠페인으로 키워 ‘재한미얀마청년연대’ 측에 전달한 빨간 달리아 꽃다발.ⓒ마인드풀가드너스 제공

3년 뒤 목표, “정원 활동가 100명과 축제의 장 만들기”

마인드풀가드너스는 지난해 사랑의열매와 다음세대재단의 비영리 스타트업 인큐베이팅 사업에 선정됐다. 현재는 재단으로부터 재정적 지원을 받고 있지만, 활동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앞으로의 재정기반을 마련해야 하는 것은 당장의 “현실적인 고민”이다. 또 다른 고민은 “함께 협업할 수 있는 사람을 찾는 것”이다. 아직 정식 법인 설립을 위해 거쳐야 할 단계들이 남아있다. 안정적으로 이끌 비영리단체 하나를 만드는 것에는 개인의 의지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합의 그리고 함께하는 동료가 필요하다.

현아 씨는 접적으로 함께 일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정원 활동을 기획하고 만드는 사람들과의 연대” 또한 해결해야 할 과제로 지목했다. 그는 “3년 후 정원 활동을 실천하는 100명의 활동가를 모아 축제의 장을 만들고 싶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도심 곳곳의 정원 활동가들을 부지런히 만나는 중이다.

현아 씨는 “아직 정원 활동이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일상을 가꾸는 관점에서도, 환경보호의 출발점에서도 앞으로 관심이 확산할 거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잘 알려지지 않은 활동을 이해하는 데 시간이 필요한 건 자연스럽다. 그 과정에서 제가 조금이라도 역할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며 웃어 보였다.

민중의소리를
응원해주세요

기사 잘 보셨나요? 독자님의 응원이 기자에게 큰 힘이 됩니다. 후원회원이 되어주세요. 독자님의 후원금은 모두 기자에게 전달됩니다. 정기후원은 모든 기자들에게 전달되고, 기자후원은 해당 기자에게 전달됩니다.

김도희 기자 응원하기

많이 읽은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