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죽음 밝히기 위한 아들의 사투 “10년, 20년이 걸려도”

[만민보] 산재사망사고 재해자 故 정순규의 아들 정석채의 1년 6개월

“10년이 걸려도, 20년이 걸려도 싸울 겁니다. 어떻게든 실형을 살게 할 겁니다.”

아버지의 산재사망사고로, 1년 6개월 동안 건설사와 싸워온 정석채(36) 씨의 목소리에는 가늠키 어려운 감정이 어려 있었다. 그는 “합의도 보상도 다 필요 없다”고 분노했다.

석채 씨는 거침없이 사건을 설명하다가도 병상에 누워있는 아버지를 떠올릴 때는 고개를 젖히면서 말을 잇지 못했다. 사랑하는 아버지의 죽음이 조롱당하고 있다는 느낌을 1년 6개월 동안 수많은 일로 확인하고 경험했다면, 어떤 아들이 순순히 아버지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회사는 안전규정을 어긴 건설현장을 슬쩍 훼손하여 안 그런 것처럼 바꾸고, 위조된 서류를 들이밀며 산재사고의 책임을 재해자에게 돌렸다. 빈소에서의 유족 항의를 감금·협박·폭행으로 고소한 뒤 무혐의 처리되자 끈질기게 항고하여 재기수사가 이루어지게끔 하고, 이를 유족과의 협상카드로 이용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아버지 산재사고 기사에는 회사 관계자가 아니고서는 알 수 없는 자세한 이야기와 함께 ‘술 먹고 실족사했다’라는 유언비어 댓글이 달렸다.

고인이 된 아버지와 유족에 대한 ‘조롱’이었다. 인터뷰 내내 그 조롱을 감내해야 했던 지난 1년 6개월의 분노가 느껴졌다.

지난 18일 망원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더 이상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던 꿈 많고 열정 가득한 ‘방송계 스타일리스트’가 아니었다. 열여덟 나이에 일찍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어머니·아버지를 설득해 방송계 스타일리스트 일에 뛰어든 그였지만. 지난 16~17년 업계에서 쌓은 전문성으로 대기업 강연에도 초청받는 전문가의 삶을 살았던 그였지만. 아버지 사건 이후, 그는 이제 완전히 다른 사람의 삶을 살고 있었다.

석채 씨는 아버지의 죽음을 밝히기 위해 인생과 삶을 내던진 투사가 돼 있었다.

고 정순규 씨 아들 정석채 씨가 1인 시위 하는 모습ⓒ기타

다른 세상

아버지 故정순규 씨의 산재사망사고 이후, 석채 씨의 세상은 달라졌다.

25년 건설현장에서 일해온 아버지 故정순규 씨는 하루에도 두세 번씩 아들·딸 그리고 아내에게 연락하는 가장이었다. 걱정하는 중학생 늦둥이와 큰딸에게 건설현장에서 활짝 웃는 사진을 보내고, 연락을 귀찮아하는 아내에게도 틈날 때마다 전화해 웃음을 주는, 아들에게 시시콜콜 농담도 건네는 아버지였다. 저녁 약속이 있는데 혼자만 늦어서 찾으러 가보면, 폐지 줍는 할아버지의 지게차를 밀어주던 아버지였다. 유쾌함 때문에 아들의 친구들과 직장 동료들에게도 인기가 많았던 아버지였다.

석채 씨가 누나로부터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연락을 받은 건 2019년 10월 30일 오후 2~3시쯤.

급하게 부산으로 내려가기 위해 김포공항에서 비행기 표를 끊고 활주로로 들어서는 순간 누나와의 전화통화를 그는 잊을 수 없다. 누나는 좀처럼 말을 못 하고 울기만 했다. 말하라고, 말하라고. 겨우 말문을 연 누나의 얘기에 그의 세상은 무너졌다. “석채야 장남인 네가 빨리 와야 할 것 같아. 아빠가 돌아가실 것 같아.” 부산으로 내려가는 비행기 안에서 마음을 다스리려 애썼지만, 그럴 수 없었다.

병동은 아수라장이었다. 어머니는 실신해 있었고, 동생과 누나는 오열했다. 최대한 정신 차려야겠다고 굳게 다짐하며, 이모와 고모에게 어머니와 동생·누나를 부탁했다. 중환자실 베드를 봤다. 아버지였다. 처참한 아버지의 모습에, 석채 씨는 무너져 내렸다. “아버지가 왜 이곳에 누워계실까, 이렇게 누워계실 분이 아닌데…”

병실에 누워있던 아버지를 떠올리는 그의 침묵은 길었다. 당시 상황이 생생하게 떠오르는 듯. 갑자기 차오른 눈물을 삼키느라 말이 없었다. 침묵 속에서 아버지의 죽음을 다시 한번 마주하려는 그의 힘겨운 투쟁이 그대로 기자에게 전해졌다.

“시신 검시할 때 장남이니까. 매형과 함께 들어가서 봤어요. 힘들면 나가도 된다고 했는데, 어떻게든 끝까지 보려고 했죠. 아버지가 사후 경직되어가는 모습을 끝까지 보려고 했죠. 온몸에 피멍이랑 골절상이 너무 많았어요. 돌아가신 뒤 시신을 검시할 때는 알몸 그대로잖아요. 오른팔에 어긋난 뼈가 그대로 보였어요. 그리고 (부어오른) 목이 보였어요. 아 그래서 아버지가 의식을 잃었던 거구나, 산소 공급이 안 되면서 뇌사가 온 거구나 … 믿어지지 않았어요. 지금도 믿어지지 않아요.”

유족에 따르면, 왼쪽 사진은 고 정순규 씨가 산재사고 당하기 전에 회사에 보고용으로 찍어 핸드폰에 보관하고 있던 건설현장 사진이다. 정 씨가 사고를 당했을 때, 현장의 비계에는 119 구급대원이 찍은 사진처럼 안전그물망 등이 설치돼 있지 않았다. 하지만 사고발생 2~3일 뒤 사고현장은 오른쪽 사진처럼 바뀌었다.ⓒ유족 측 제공

119 사진에 담겼는데
아버지 핸드폰에 다 있는데
사고 현장을 훼손한 회사
회사 관계자의 궤변

석채 씨 아버지 故정순규 씨는 이날 부산 경동 리인 아파트 신축공사 현장에서 중력식 옹벽 면고르기 작업을 하다가 추락해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다음날 숨졌다. 사인은 목뼈 골절로 인한 뇌 손상이었다.

최초 119 신고 기록은 2019년 10월 30일 오후 1시 5분.

119 신고 녹취록ⓒ유족 측 제공

신고자 - 사람이 다쳐가지고 예, 사람이 다쳐가지고 예.
119 상황실 - 차가 지금 신고 받고 출동했는데, 사람이 어떻게 다쳤어요?
신고자 - 머리를 좀 다쳐가지고 예, 널쪄(널지다, ‘떨어지다’의 경상도 방언)가지고.
119 상황실 - 알겠습니다. 몇 미터에서 추락했어요?
신고자 - ...
119 상황실 - 여보세요?
신고자 - 예
119 상황실 - 몇 미터에서 추락했어요? 몇 미터?
신고자 - 1미터 1미터. 한 2미터 2미터요.

최초 신고자는 1m에서 정순규 씨가 추락했다고 신고했다.

사 측의 행태가 이상하게 느껴졌던 석채 씨는, 아버지 죽음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최초 신고 기록까지 입수했다. 신고기록을 보여주며 그는 말했다. “아버지는 뇌사가 진행 중이었기에 의식이 없었고, (회사에서는) CCTV도 목격자도 없다고 하는데 신고를 이렇게 했어요.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두부 두 곳(12~13cm, 6~7cm)에 뇌가 보일 정도로 자상(刺傷)이 있고, 몸 구석구석 피멍에 오른쪽 팔은 골절까지 확인되는데, 1~2m 높이에서 추락해 숨졌다는 최초 신고자의 말을 석채 씨는 믿을 수 없었다. 키 175cm 몸무게 52~53kg에, 주말마다 등산도 다니는 아버지가 1~2m 높이에서 떨어져 숨졌다고 보기에는 시신의 상태가 지나치게 처참했다.

석채 씨가 회사 관계자들의 말을 믿지 못하게 된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사고 이후 책임을 재해자인 아버지에게 전가하기 위해 회사가 저지른 갖가지 사고 조작 정황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이 사진은 119 구조대원이 출동 당시 심폐소생술을 하는 모습을 찍은 사진이다. 사진 속에는 심폐소생술 장면뿐만 아니라, 안전 그물망이 없는 비계의 모습도 담겨 있다.ⓒ유족 측 제공

그는 119 구급대원에게 사고 현장에 출동해 심폐소생술을 하는 장면이 찍힌 사진을 받았다. 이 사진 속에는 119 구급대원의 심폐소생술 장면뿐만 아니라, 사고 당시 건설현장 모습도 담겨 있었다. 아버지가 추락하기 전 올라가 있던 비계(飛階, 높은 곳에서 공사를 할 수 있도록 임시로 설치한 가설물)의 모습도 그대로 찍혀 있었다. 또 아버지의 핸드폰에도 사고 직전 건설현장 사진이 담겼다. 회사에 보고하기 위한 사진, 친구에게 보낸 사진 등이 사고현장을 증명하고 있었다.

하지만 사고 발생 후 2~3일 뒤 찾아간 건설현장은 완전히 바뀌어 있었다. 부산지방고용노동청장 직인이 찍힌 ‘작업중지 명령서’를 비웃기라도 하듯. 사고 당시에는 없던 비계 안전그물망과 비계 안쪽 안전난간대가 설치돼 있었고, 옹벽에서 40~50cm가량 떨어져 있던 비계가 옹벽 쪽으로 바짝 붙어 있었다. 바닥에는 비계가 40~50cm 옹벽 쪽으로 움직인 자국까지 선명했다. 관을 고정하는 부품 역시 새것으로 교체돼 있었다.

“시정하면 안 되죠. 조사 단계에서 함부로 (사고 현장을) 훼손하면 안 되니까.” - KBS 시사직격에서 산업안전보건공단 관계자

건설현장 추락사고의 상당수는 규정대로 설치하지 않은 비계 때문에 발생한다. 때문에, ‘산업안전보건에 관한 규칙 제7장’은 비계 설치 시 지켜야 할 요소를 매우 자세하게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원청은 이 규정대로 비계가 설치됐는지 관리·감독해야 할 의무가 있다. KBS 시사직격 팀이 한국비계기술원 등에 자문한 결과, 정 씨가 사고를 당한 건설 현장 비계는 최소 8개 규정을 어긴 상태였다.

회사가 이를 숨기기 위해 사고 현장을 훼손했다고 볼 수밖에 없는 정황이었다.

심각한 범죄행위일 수 있음에도, 회사 관계자들은 당당한 태도를 보였다. 이 사건을 초기부터 취재해 온 KBS 시사직격 팀이 건설현장 관리자에게 “왜 없던 안전난간대가 생겼냐”고 묻자, 관계자는 당당하게 동문서답하며 잡아뗐다. 이 장면은 시사직격 11회에 그대로 담겼다.

KBS 시사직격 팀이 건설현장 관리자 인터뷰하는 장면ⓒKBS 시사직격 방송화면 갈무리

시사직격 - ‘안쪽’에 난간대도 왜 없던 게 생겼습니까?
관계자 - 왼쪽 난간대는 원래 있었다고 얘기 안 합니까? (‘안쪽’→‘왼쪽’이라고 동문서답)
시사직격 - 아니 ‘안쪽’ 난간대요.
관계자 - ‘안쪽’ 난간대 있었습니다.
시사직격 - 사진 보여드릴까요?
관계자 - 예!
시사직격 - 자 보세요. 여기 ‘안쪽’ 난간대 있습니까, 없습니까?
관계자 - 여기 있지 않습니까. (바깥 난간대 가리키며 동문서답)
시사직격 - 거긴 ‘바깥’이고요. ‘안쪽’은 없잖아요.
관계자 - 아니 이 얘기 하는 거 아닌가. 사다리 (갑자기 ‘사다리’로 또 동문서답)

경찰 조사 내용도 최초 신고자의 말과는 사뭇 달랐다.

부산지방경찰청은 정 씨가 비계 4.2m 높이 부근에서 그라인더로 옹벽에 튀어나온 철심을 제거하다가 비계 안쪽으로 추락했다고 추정했다. 바닥에 떨어져 있던 그라인더, 설치되지 않은 추락 방지용 안쪽 안전난간대, 옹벽 쪽으로 바짝 붙어서 설치되지 않고 40~50cm가량 떨어져 있던 비계 위치 등을 통해 경찰이 합리적으로 추정한 재해발생 원인이었다.

석채 씨는 이 사건을 조사한 경찰관을 만나, 들은 내용을 전했다. “경찰의 시신 검시 끝나고 유족 조사할 때 저랑 어머니가 갔어요. 물어봤죠. 어떻게 된 거 같냐고. 그러니까, 좀 잔인하지만 비계 안쪽에서 핑퐁이 있었던 거 같다, 바운딩이 있었던 거 같다고 하더라고요. 퍼즐이 맞추어지는 거 같았어요. 안전모에 긁힌 자국도 있었고, 119 구급대원도 작업복에 찢김이 많았다고 했거든요.”

사 측이 작성한 산업재해 조사표ⓒ유족 측 제공

하지만 부산지방고용노동청은 공사 현장에서 그라인더 소리를 듣지 못했다는 회사 관계자의 말과 ‘작업 후 외부비계에 설치된 수직사다리(2m)로 내려오던 중 미끄러져 바닥으로 떨어진 사고’라는 사 측 산업재해조사표 내용대로, “2m 높이에서 수직사다리를 이용해 내려오다가 미끄러져 추락했다”고 결론 내렸다. 119 구급대원들이 심폐소생술을 하던 자리는 수직사다리로부터 2m 가량 떨어진 곳이었지만, 근로감독관은 4m 높이에서 비계 안쪽으로 추락했다는 조사 내용보다는 사 측의 주장에 더 귀를 기울였다.

회사의 관리·감독 미흡 내용은 없고 ‘재해자가 수직사다리 타고 내려오다 미끄러져 추락했다’라고만 서술한 사 측의 산업재해조사표에는, 부산지방고용노동청 담당 근로감독관과 과장·청장의 서명이 멋들어지게 적혀 있었다.

이런 이유로, 석채 씨는 회사는 물론 수사기관조차 믿을 수 없게 됐다.

“아버지가 추락해 있는 모습을 최초로 발견했다는 사람이 경찰조사를 받고 저희에게 왔을 때 너무 충격이고 경황이 없어서 녹취할 생각을 못 했어요. 지금 생각하면 그게 천추의 한입니다. 당시 그분이 분명 ‘아버지를 (비계 안쪽에서) 끄집어냈다’고 했거든요. 가족들은 모두 기억하고 있어요. 그런데 그 사람이 조사대상이라서 회사 측 개입이 있을 거라고 의심을 전혀 안 했던 거죠.”

유족이 사비로 관리감독자 지정서 글씨를 필적감정을 맡긴 결과 위조로 드러났다. 이 감정 사진은 고 정순규 씨의 서명을 똑같이 따라한 서명이 가짜라는 것을 드러내고 있다.ⓒ유족 측 제공
유족이 사비로 관리감독자 지정서 글씨를 필적감정을 맡긴 결과 위조로 드러났다. 이 감정 사진은 고 정순규 씨의 글씨를 똑같이 따라한 가짜라는 것을 드러내고 있다.ⓒ유족 측 제공

책임 전가 위해 서류 조작?
업계 관계자들 “황당하고 악랄해”

석채 씨가 회사를 믿지 못하게 된 결정적인 사건은 재판 과정에서 일어났다. 재판 과정에서 사 측이 정 씨 산재사망사고 책임은 정 씨 본인에게 있다고 주장하면서 제시한 ‘관리감독자 지정서’를 필적감정 전문가에게 의뢰했더니, 정 씨가 아닌 다른 사람이 정 씨를 흉내 내어 쓴 글씨라는 게 드러난 것이다. 서류를 조작해 사고의 책임을 재해자에게 전가하려고 했다고 보기 충분한 일이 벌어진 셈이다.

재판은 미뤄지고 미뤄지다 지난해 7월에서야 처음 열렸다. 두 번째 1심 재판은 8월에 열릴 예정이었으나 10월로 미뤄졌다. 그리고 12월 9일이 선고가 이루어질 예정이었으나, 올해 1월로 연기됐다. 그런데 갑자기 재판부가 바뀌면서 3월부터 재판이 처음부터 다시 시작됐다. 4월 7일이 올해 열린 두 번째 1심 재판이었고, 5월 12일 열린 뒤 다시 선고일이 잡혔다. 다시 재판부가 바뀌지 않는다면, 선고는 오는 6월 16일 있을 예정이다.

석채 씨는 늘어지는 재판 때문에 지칠 대로 지쳤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석채 씨는 재판이 열릴 때마다 재판기록 및 속기록 열람을 신청했다. 보통 열람이 불허됐지만, 사 측 변호인 의견서 등에 대해선 열람할 기회가 있었다. 석채 씨는 수백 장의 변호인 의견서를 꼼꼼히 읽어보다가 사 측이 산재사망사고의 책임이 아버지에게 있다고 주장하며 제시한 문제의 ‘관리감독자 지정서’를 보게 됐다. 아들 석채 씨가 봤을 때, 지정서에 적힌 글씨는 아버지의 글씨라고 보기엔 어딘가 이상했다. 아버지의 일기장·여권 등 글씨와 대조하고, 주변 지인 및 기자들에게 의견을 구하던 석채 씨는 필적 감정을 해봐야겠다고 결심하게 됐다.

그리고 ㈜한국법과학연구원에 찾아가 필적 감정을 맡긴 결과, 관리감독자 지정서의 글씨는 물론 사인까지 모두 아버지의 글씨가 아니라는 감정을 받았다.

이 사실을 지적하자, 사 측은 하도급업체 현장소장 A 씨가 작성한 것이라고 인정하면서도 또 다른 황당한 주장을 펼쳤다. 故정순규 씨가 지정서에 대신 서명해 달라고 현장소장에게 요구해서 어쩔 수 없이 쓴 것이라고 주장했다. 석채 씨는 이 황당한 주장에 분통을 터뜨렸다. “이같이 중요한 서류를 대신 쓰는 게 관례라고 쳐 볼게요, 그런데 (사람 특유의) 서명까지 똑같이 따라 하려고 애써서 대신 서류를 작성해주는 경우가 도대체 어디 있나요? 보통 그렇게 서류를 대신 작성하게 되면 서명란에 그냥 이름 석 자를 쓰거나, 성(姓)만 쓰고 동그라미를 그리지. 이렇게 서명을 똑같이 따라 하는 경우는 없잖아요!”

필적 감정을 통해 정 씨가 쓴 서류가 아닌 것이 드러났음에도, 사 측은 재판에서 계속 기존의 주장을 고집했다. 관행상 대신 적었고, 故정순규 씨에게 책임이 있다는 주장이었다.

검사 - 이 서류가 아무런 의미가 없는 서류가 아니지 않나요? 중요한 서류잖아요. 지금 피고인도 경동건설(원청 시공사)도 관리감독자 지정서를 가지고 피해자(정순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주장을 하고 있는데, 이런 중요한 서류를 피고인(A 씨)이 대신 작성하는 것이 말이 됩니까?
피고인 A - (답 없음)
검사 - 피해자 정순규 씨가 이 내용을 확인해 본 것은 맞습니까?
피고인 A - 내용을 확인... 다른 현장에서도....
검사 - 다른 현장은 지금 말씀하실 필요 없고요. 정순규 씨에게 이 서류를 보여준 적 있습니까?
피고인 A - 서류는 안 보여줬습니다.

검사 - 피해자 정순규 씨 유족이 관리감독 지정서 필체가 피해자 정순규 씨의 필체가 아니라고 감정서를 제출하기 전까지 피고인은 관리감독 지정서를 직접 작성했다고 수사기관에 말한 사실이 있습니까?
피고인 A - 그런 적 없습니다.
검사 - 왜 말을 하지 않았습니까?
피고인 A - (답 없음)

정석채 씨와 석채 씨 누나가 피켓 시위를 하는 모습ⓒ유족 측 제공

건설업계 관계자들은 “건설현장에서 ‘관리감독자 지정서’를 쓰는 경우는 드물고, 故정순규 씨 사례는 건설사가 산재사망사고 책임을 재해로 숨진 피해자에게 전가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라고 입을 모았다.

함경식 건설안전기술사는 “25년 건설현장에 있으면서 이런 서류를 써서 원청 관리감독자의 의무를 작업반장에게 전가하는 경우는 처음 들어봤다”라며 “정황상 돌아가신 망자에게 책임을 뒤집어씌우려는 것으로밖에 안 보인다”라고 말했다. 강한수 건설노조 토목분과위원장 또한 “작업반장은 직접 건설현장 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지적하며, 만약 사후에 다른 사람이 사인한 게 아니고 본인이 직접 사인한 서류라고 하더라도 계약직 작업반장이었던 정 씨를 관리감독자로 지정하는 것 자체가 이상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강 위원장은 “이건 책임 떠넘기기로밖에 보이지 않는다”라며 “누구 머리에서 나온 것인지 모르겠지만, 너무 황당하고 악랄해 보인다”라고 말했다.

책임을 전가하기 위한 사 측의 행태에, 부실한 수사를 인정하지 않고 재수사조차 안 하는 수사기관의 행태에 석채 씨는 한탄했다. “기업의 책임을 밝히기 위해서는 관리감독기관의 역할이 정말 중요해요. 그런데 정작 관리감독기관은 기업 편 들어주기 바쁘고, 유족 스스로 기업의 책임을 입증해야 하는 게 현실이에요.”

이루어지지 않는 재조사

故정순규 씨 산재사망사고에 대한 관계기관의 부실조사는 지난해 10월 열린 국정감사에서 집중 조명됐다. 강은미 정의당 의원이 각종 증거자료를 내밀며 사고 재조사가 필요하다고 권고했지만, 재조사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재조사 없이 부산지방고용노동청은 수많은 안전규정 위반 중 미끄럼 방지 장치, 안전고리 연결구, 경고판 미설치 3가지 규정 위반만 지적하며 하청 관리자 3명을 업무상 과실치사와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으로 기소한 상태다. 119 구급대원 심폐소생술 당시 사진 등에서도 확인 가능한 비계 안전망 미설치, 안쪽 안전난간대 미설치 등조차 혐의에 넣지 않았다. 검찰도 이를 근거로 원청 시공사 경동건설 현장소장 B 씨와 하도급업체 JM건설의 A 씨에게 징역 1년6개월을 구형하고, 경동건설 안전관리자인 C 씨에게 금고 1년을, 원·하청 법인에는 각각 벌금 1000만원을 구형했다.

지난 12일 열린 선고를 앞둔 세 번째 1심 형사재판에서, 석채 씨는 발언 기회가 주어지자 사 측 관계자를 쳐다보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저들은 유족을 파렴치한 사람으로 몰고 갔습니다. 저들이 사죄하는 것은 하나도 진심이 없습니다. 제발 아버지가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원인이라도 알고 싶습니다. 제발 엄벌에 처해주시길 바랍니다.”

빈소가 차려진 뒤 3~4일 지난 2019년 11월, 빈소에 찾아온 사 측 관계자들에게 정석채 씨가 무릎을 굻고 울며 목격자를 찾아와 달라고 말했다. 그는 목격자가 있다고 믿고 있다.ⓒKBS 시사직격 방송화면 갈무리

유족 감금·폭행·협박으로 고소
밀어내기 홍보성 기사
기사에 달린 “실족사” 주장 댓글
“진심어린 사죄, 과욕이었다”

석채 씨는 재판부와 수사기관 앞에서 유족에게 사죄하고 싶다 한 사 측 관계자의 말조차 믿을 수 없다.

석채 씨는 사고 현장이 훼손된 것이 드러나고, KBS 시사직격이 취재하고 있다는 것이 알려진 뒤, 빈소를 찾아온 사 측 관계자들에게 무릎을 꿇었다. 석채 씨는 그들에게 “목격자를 찾아달라”고 울며 사정했다. 어머니는 그 상황을 견디다 못해 쓰러져 병원으로 실려 갔다. 이 상황에서도 입을 다물고 있던 한 사 측 관계자에게 화가 치밀어 오른 석채 씨의 외삼촌은 이 관계자의 뒤통수를 때렸다.

그러자, 사 측 관계자는 이를 빌미로 유족을 감금·폭행·협박을 당했다며 경찰에 고소했다.

또 2019년 11월 22일 유족과 합의를 위해 만난 자리에서 사 측은 감금·폭행·협박 고소 건을 취소해 주겠으니 소정의 금액으로 사건을 종결하자고 제안했다고 석채 씨는 전했다.

당연히 감금·폭행·협박 사건은 불기소 처분됐다. 수사기관도 가족을 잃은 유족들이 사 측에 항의한 것을 두고 위협 또는 협박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사 측 관계자는 경찰·검찰의 수사가 미진하다며 불기소 처분을 불복해 항고했다. 그리고 황당하게도 부산고검은 이를 받아들여 지난 1월 사건을 다시 들여다보라는 ‘재기수사’ 명령을 내렸다. 석채 씨가 사 측의 사죄하고 싶다는 말조차 믿을 수 없게 된 이유다.

아버지가 죽은 직후 발행된 기사에 달린 댓글은 석채 씨를 더욱 분노케 했다.

정의당 강은미 의원실에 따르면, 故정순규 산재사망사고 초기 기사에 “실족사한 것인데 안전조치 미흡으로 몰아가면 안 된다”라는 취지의 댓글이 달렸다. 이 댓글에는 회사 관계자가 아니면 설명하기 힘든 내용까지 서술돼 있었다. 2020년 국정감사 이후 故정순규 씨 산재사망사고 관련 기사에도, 똑같은 아이디의 누리꾼이 “故정순규 씨가 술 먹고 실족사한 것”이라는 댓글을 달았다. 이 시기, 석채 씨는 기자들로부터 “기사를 썼더니, 사 측으로부터 ‘정 씨가 술 마시고 올라갔다가 죽은 거다 기사를 내려라’ 전화를 여러 차례 받았다”라는 연락을 받았다. 석채 씨는 기자에게 다른 기자들에게 받은 메시지 등을 보여주며 이같이 분통을 터뜨렸다. “어떻게 이렇게까지 할 수 있는 거죠!?”

아버지가 산재사고로 숨진 지 1주년 되는 날에는 경동건설 관련 홍보기사가 포털사이트를 도배했다. 미디어오늘에 따르면, 언론사 ‘더퍼블릭’이 “경동건설 인사사고 논란 ‘수면 위’...국감에서 다뤄진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쓰자, 12개 언론사가 경동건설이 후원한 지역아동센터를 리모델링해줬다는 기사를 쏟아내며 더퍼블릭 기사가 노출되지 않게 밀어냈다.

석채 씨는 아버지의 죽음에 책임이 있는 회사로부터 조롱당하고 있었다.

석채 씨가 원했던 것은 진심어린 사과였다. 하지만 석채 씨는 “과욕이었다”라고 말했다. 그들에게 진심어린 사과를 받을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이들은 산재사망사고를 일으켜도 벌금 몇 푼 물고 끝낼 자신 있으니 매뉴얼대로 하는 거예요. 고소고발 등으로 유족을 지치게 하는 거죠. 그 패를 지난 2019년 11월 22일 고소 취하해 줄 테니 소정 금액 받고 종결하자는 식으로 보여준 겁니다. 어떻게든 실형을 받게 할 겁니다. 이제 그게 목표입니다.”

민중의소리를
응원해주세요

기사 잘 보셨나요? 독자님의 응원이 기자에게 큰 힘이 됩니다. 후원회원이 되어주세요. 독자님의 후원금은 모두 기자에게 전달됩니다. 정기후원은 모든 기자들에게 전달되고, 기자후원은 해당 기자에게 전달됩니다.

이승훈 기자 응원하기

많이 읽은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