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노동이야기] 한국에서 ‘건강하지 않은 몸’으로 일 한다는 것의 의미

왜 한국에서만 질병으로 인한 빈곤과 사회적 배제가 어쩔 수 없는 일이 될까

‘건강’은 대부분 사람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이다. 여러 해 동안 대학에서 불평등에 대해 강의를 하면서 인상적이었던 점 중 하나는, ‘경제적 불평등은 사회의 경쟁력을 높여 발전의 원동력이 될 수도 있다’며 불평등의 역할(?)을 강조하는 학생들도 건강과 관련된 불평등은 공정하지 못한 것이라는 점에 대부분 동의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건강 불평등 문제에 가장 적극적으로 관심을 기울여 온 나라는 산업 발전의 부작용을 일찍부터 경험했던 영국이다. 1997년 노동당이 집권하기까지 제대로 빛을 보지는 못했지만, 이미 1980년대 영국 보건부가 발표한 ‘블랙리포트’(Black report:Inequalities in health)에서 사람들 간 건강 격차가 저임금, 불안정 노동, 저학력, 빈곤 등의 구조적 요인 때문에 생기는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영국의 학자 리처드 윌킨슨(Richard Wilkinson)이나 마이클 마멋(Michael Mamot) 등은 건강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불공정’ 문제를 먼저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담배를 끊게 하려면 사람들을 우선 중산층으로 만들어라”라고 했던 전 영국 보건부 장관의 말은, 각종 질환이 경제적, 사회적 불리한 지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더 많이 발생하며, 건강을 위해서는 빈곤을 발생시키는 사회구조를 개선하는 것이 필수적이라는 메타포인 셈이다.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시작된 26일 오전 접종 대상자인 제주시 요양시설 정효원 관계자들이 AZ 백신 주사를 맞기 전 예진을 받고 있다. 2021.02.26ⓒ사진 = 뉴시스

그렇다면 건강과 빈곤의 관계를 거꾸로 놓고 질문해보면 어떨까? 즉, 계층적 차이 혹은 빈부 격차 때문에 건강 불평등이 발생한다는 논리를 뒤집어 보는 것이다. 질환이 있는 사람들이 노동 시장에서 차별적 경험을 겪으며 빈곤해지고, 이 때문에 빈부 격차가 벌어지는 것은 아닌지 말이다. 타당한 논리 아닌가?

그러나, 불평등 연구를 선도했던 세계의 많은 학자들은 ‘질환 때문에 빈곤이 심화된다’는 가설을 뒷받침하는 실증적 근거가 없거나 설령 영향이 있더라도 매우 미미하다고 주장한다. 이는 그들의 사회에서 어떤 이유로든 질환이 있다는 이유로 사람이 빈곤해진다는 것, 그리고 질환의 유무로 인해 빈부격차가 생긴다는 것 자체를 허용하지 않는다는 자신감 같은 것이었다.

이 문제를 천천히 살펴볼 때 나는 참 씁쓸하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 부인되는 가설을 뒷받침하는 증거가 한국에서는 수없이 쏟아져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노동시장에 관한 많은 연구는 신체적 건강 상태가 채용, 고용 지위, 취업 형태, 승진 등의 문제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최근 한 보건의료단체가 실시한 젊은 만성질환자들의 일 경험에 대한 연구(만성질환을 지닌 청년들의 일-생활 균형 경험에 관한 탐색적 연구, 2020)에 따르면, 한국에서 만성질환이 있는 사람들은 질병 자체에 대한 편견 때문에 구직 단계에서부터 차별을 받는다. 뿐만 아니라 일터에서 질환이 없는 사람에게도 우호적이지 않은 노동 환경, 노동 시간, 노동 강도를 감내해야 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질환으로 인한 휴식, 치료를 위해 월차나 병가 등을 내는 것도 제대로 보장 받지 못했다. 많은 경우 업무 조정이나 휴식, 정서적 지원, 노동 강도 조정 등은 상사나 동료들의 개인적 배려로 가능했다.

특히 만성질환이 있는 사람들은 노동시장에서 정규직보다는 프리랜서 혹은 단기계약직 등의 비정규직으로 고용되는 경향이 크고, 질병 자체로 혹은 치료 때문에 휴직이나 이직, 퇴직의 상황을 반복적으로 경험했다. 지속적인 직업교육과 훈련으로부터 배제되기도 했다.

이러한 모든 조건은 노동시장을 통한 수입의 감소로 연결되기도 한다. 표준 고용으로 분류되는 정규직 고용 형태의 노동 조건은 질환이 없는 남성들을 기준으로 구성된 것이다. 이 기준에서 벗어나는 질환이 있는 몸은 ‘덜 생산적’이라는 이유로 표준적 노동시장에서 배제되기 때문이다.

세계보건의 날을 맞아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나순자 위원장을 비롯한 조합원들이 7일 오전 서울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열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극복과 감염병 대응 체계 및 의료 안전망 구축, 의료인 보호 대책 마련을 위한 긴급 사회적 대화 촉구 기자회견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0.04.07ⓒ김철수 기자

인간은 누구나 질환이나 장애를 경험할 수 있다. 문제는 한국 사회에서 많은 경우, 장애나 질환이 사회적 차별 뿐 아니라 노동시장에서의 불이익으로 연결된다는 점이다. 질환이 있는 사람들은 사회적 배제와 빈곤을 겪고, 본인을 포함한 가족 전체가 심각한 삶의 질 저하를 겪게 된다. 다른 나라들에서는 실증적으로 검증되지 않는 이 관계가 왜 우리나라에서는 당연한 것이 되고 있을까?

한국의 국민건강보험은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대신 보장성이 낮다. 이 때문에 장기간에 걸쳐 치료를 받아야 하고 큰 치료비가 드는 만성질환에 걸리면 개인적으로 큰 비용을 지출해야 한다. 공공의료체계라는 안전판이 존재하는 많은 나라들과의 큰 차이점이다.

더구나 우리나라는 노동자들이 병이나 사고로 치료나 요양이 필요해 일하지 못하는 경우, 줄어든 소득 상실분을 국가가 보장해 주는 ‘상병수당’이 존재하지 않는다. 상병수당 혹은 법정 유급병가 제도가 둘 다 존재하지 않는 국가는 OECD 국가 중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또 우리 정부는 근로능력을 상실한 노동자들에게 상병급여를 권고하고 있는 ILO의 사회보장 협약을 아직 비준하지 않았다. 그러니 노동자들이 업무와 관련 없는 질환을 앓거나 사고를 당하면 일하지 못하는 기간 동안 소득을 보장 받을 수 있는 길이 없는 셈이다.

유럽의 많은 국가는 만성질환이나 장애가 있는 사람들이 노동시장에서 평등한 기회와 공정한 노동조건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하는 조치들을 마련하여, 이들이 일터에서 차별을 당하거나 노동시장에서 배제되지 않도록 하는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 이는 차별 금지와 평등한 처우를 법률적·제도적 차원에서 보장하고, 사회적 보호를 통해 질환 때문에 가난해지지 않도록 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직장에서 만성질환자들의 권리를 제대로 알리고 공감을 얻어내기 위한 범사회적 실천 행동들과 캠페인 등도 포함된다. 이들의 일할 권리를 보호하고 더 나아가 인간 존엄을 지키고자 노력하는 것이다.

어떤 사회에서는 질병이 빈곤의 원인이 되지 않는데, 왜 다른 사회에서는 질병 때문에 생기는 빈곤과 사회적 배제가 어쩔 수 없는 것이며, 질병으로 인한 결과를 개인이 감수해야 하는 것일까. 그 해답은 이미 우리 앞에 놓여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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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주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회원·가톨릭대 사회학과 교수 응원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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