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백신의 심리적 또는 정치적 부족 사태

60대 후반 또는 70대 초반으로 보이는 네 사람이 초저녁 터미널 대합실에서 왁자하다. 남자 3명과 여자 1명은 친구인 듯 했다. 너는 예전부터 성질머리가 문제라거는 식의 이야기가 웃음에 섞여 오갔다. 대화가 백신에 이르자 남자 한 명이 “난 안 맞겠다”며 “문재인이가 좋은 백신은 못 구해오고 어디서 이상한 것만”이라며 사방에 들으라는 듯 언성을 높였다. 곧바로 여자는 “너는 알지도 못하면 말을 말아”라며 “몇만명에 한 명 나오는데(부작용 말인듯) 그것 때문에 안 맞는다니, 그럼 안 맞고 뒤질래”라고 쌍소리를 날렸다. 눈이 빛나며 대화에 참전하려던 남자들은 흐흐흐 웃으며 고개를 돌리더니 이내 다른 이야기로 넘어갔다.

문 대통령 방미 1주일 전쯤 우연히 본 일이다. 지금과 비교하면 먼 옛날인가 싶다. 고령자 접종이 완료되고 곧 1차 접종자가 1천만명을 넘을 예정이다. 1차 접종으로도 상당한 효과가 발행한다고 한다. 2월 26일 첫 접종 이후 2월 27일(10명), 3월 12일(10명)을 제외하고는 하루 사망자도 한 자릿수에 머물고 있다. 요양병원 면회가 재개되고, 추석 연휴엔 제법 명절 분위기가 날 듯 하다.

그 결과, 장안의 화제가 된 극적인 보도를 보게 됐다. 우리나라 최대신문의 ‘백신을 맞읍시다’ 캠페인. 이로써 우리 국민도 안심하고 백신을 맞을 수 있게 됐고, 식약처에서 의료적 안전성을 검증받은 모든 백신이 ‘사회적 안전성’을 획득하게 됐다.

조선일보의 ‘백신을 맞읍시다’ 페이지ⓒ사이트 캡처

최근 몇 달간 백신을 둘러싼 극심한 혼란을 겪었다. 보수언론은 크게 두 가지 정도 의혹을 제기했는데 우리만 백신 접종이 뒤쳐지는 것 아니냐, 정부가 밝힌 도입 계획이 안 지켜지는 것 아니냐는 것이 그 하나다. 다른 하나는 백신이 안전한가를 두고, 특히 영국산 아스트라제네카는 위험하고 화이자가 안전하다는 괴담이다.

우리나라는 다른 주요국에 비해 초반 접종률이 낮았다. 그런 면에서 ‘백신 부족’이 다 틀린 말은 아니다. 이는 작년 하반기 백신 구매 계약 과정과 관련이 있다. 백신 구매 계약은 나라마다 가격과 조건이 다르고, 모두 비공개다. 팬데믹 상황에서 ‘절대갑’인 백신 제조사로부터 조기에 많은 물량을 확보하려면 그만한 비용을 치러야 한다. 물량 도입과 비용을 저울 양쪽에 올려두고 고심한 정부로서는 어떻게 해도 책임을 면하긴 어려운 일이다. 지금에 와서 왜 더 많은 재정을 투입해서라도 백신을 조기에 도입하지 못했냐고 묻는 것은 틀린 말은 아니지만 결과론일 뿐이다. 정부는 방역 특성상 접종률 20%를 넘는 것보다 70%를 달성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설명했다. 하루 최대 85만명이 접종하는 현재 페이스대로면 3분기나 연말 접종률이 다른 나라보다 낮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특정 백신이 더 위험하다는 주장은 아무 근거가 없다고 전문가들이 초기부터 줄기차게 설명했다. 그러나 괴담은 교묘했다. 더벅머리 영국 총리가 이발을 하고 그 나라 사람들이 즐겁게 맥주를 마시는 모습을 보여주며 정부를 질타하면서도, 영국인이 접종한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은 위험한 백신으로 몰았다. 이 글 맨 위의 남성분도 이런 가짜뉴스에 속은 케이스다.

이런 공세는 안전성에 대한 꼼꼼한 검증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지난해초 코로나19 발발 이후 보수언론과 유사언론이 보여준 방역에 대한 발목잡기의 연장선일 뿐이다. 중국과의 교류를 단절하라는 주장은 급기야 우한의 교민들이 돌아오는 것도 편치 못하게 했다. 교민들이 묵을 곳은 기피시설처럼 묘사됐고, 공포에 사로잡힌 주민들이 트랙터를 몰고나왔다. 하루아침에 거의 전 인구가 매일 하나이상 써야 하는 물건이 된 마스크를 왜 제때 공급하지 못하냐고 정부의 무능을 운운했다. 확진자가 늘면 선정적인 표현으로 공포를 조장했고, 같은 입으로 방역수칙 때문에 경제가 죽어간다고 비판했다. 물론 그러면서도 노동자들의 생존권 요구엔 냉담했다. 지금 보면 어이없는 보도지만 유사언론으로 증폭돼 SNS를 타고 퍼졌고 여전히 보수지지층이나 고령층에서 상당한 위세를 떨치고 있다.

권영진 대구시장이 31일 오전 대구시청 본관 브리핑룸에서 '코로나19 백신접종 참여 활성화를 위한 민관합동 담화문'을 발표하고 있다. 2021.5.31ⓒ뉴스1

야당은 괴담식 보도를 되새김질 하며 공포를 부채질했다. 집권을 대비하는 당으로서 국민 안전에 대한 책임은 느끼기 어려웠다. 당시 에피소드 하나. 작년초 제1야당의 무책임한 정치공세를 비판한 우리 기사가 언론중재위에 제소됐다. 기일이 잡혀, 바쁜 부장을 대신해 오랜만에 프레스센터에 갔는데 심의는 시작도 못하고 종료됐다. 그 사이 자유한국당에서 미래통합당으로 바뀌어 제소 주체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이 ‘혼돈의 카오스’의 최정점을 마침내 대구시가 찍었다. 권영진 시장과 대구의료계는 대구시민의 접종률과 예약률이 전국 평균보다 밑돌자 공동담화문을 내고 ‘모든 백신이 안전하니 접종을 적극 하자’고 호소했다. 그런데 하필 같은 날 난데없이 ‘비공식 경로를 통해 화이자 3천만명분 도입’ 폭탄을 터트렸고, 며칠 만에 ‘피싱’으로 결론났다. 권 시장은 공식사과했다.

천신만고 끝에 백신을 맞아도 된다는, 맞아야 한다는 당연한 결론에 도달했다. 그러나 혼란을 초래하거나 편승한 이들은 적절한 입장을 밝혀야 하지 않을까. 특히 제1 야당 대표 후보들은 2년째 국민 생활에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한 코로나 사태에서 자당의 정치행위에 대해 설명할 책임이 있다. 곧 대표가 결정되니 당선자라도 꼭 입장을 밝혀주길 기대해본다. 마침 대구시장도 그 당 소속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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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희철 기자 응원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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