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대 기억과 공간] 봄 길 저편의 기억들 ① : 여수

마래 제2터널과 오림터널공원

코로나19로 올해 봄꽃 축제가 줄줄이 취소되었습니다. 봄맞이 행사들은 비대면 온라인 행사로 대부분 대체되었습니다. 백신 접종이 진행중이지만, 변이 바이러스는 계속 나타나고 있습니다. 코로나19의 위력이 아직도, 여전히, 지겹도록 실감됩니다.

그렇다고 해도 '신록예찬'을 멈출 수가 있겠습니까. 이럴 때는 조용하고 한적한 곳을 찾아 나름의 봄맞이, 그리고 봄 보내기 의례를 치르는 것이 어떨까요. 저는 남도를 찾아 여수 마래 제2터널과 오림터널 공원을 둘러보고 영월의 젊은달와이파크를 찾았습니다.

이 글에서는 여수에서 본 건축물들에 대해 먼저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여수 마래 제2터널ⓒ사진 = 김명식

여수 마래 제2터널은 지난 2004년 국가등록문화재 제116호로 지정된 곳입니다. 여수엑스포역이 위치한 덕충동에서 만성리 검은모래해변으로 가는 길에 만날 수 있습니다. 이 터널은 자동차 광고에도 나온 적이 있습니다. 터널 벽면 검은 돌의 거친 질감이 인상적입니다. 자연 암반으로 된 터널은 보기 드문 광경을 자아냅니다. 그 자태가 사뭇 매력적입니다. 그런데 2012년 여수엑스포를 앞두고 바로 옆에 양방향 2차선 2개의 터널이 뚫리며 이제는 찾기 쉽지 않은 곳이 되었습니다.

마래 제2터널의 역사는 100년 가까이 되었습니다. 1926년 일제는 군량미를 비축하기 위한 창고로 83m 길이의 마래 제1터널(오래 전 폐쇄)을 뚫었습니다. 그리고는 그 옆으로 나란히 군사용 통행터널을 팝니다. 이것이 바로 마래 제2터널입니다. 식민지 조선의 백성들이 망치와 정을 들고 암반을 뚫어낸 것이지요.

길이 640m, 높이 4.5m의 1차선 도로라, 현대의 차량 두 대가 나란히 지나가기 어려운 조건입니다. 시간이 흐른 뒤 이를 보완하기 위해 100여m마다 정차 공간이 만들어져, 양방향 통행이 가능하게 됐습니다. 지난 2016년엔 터널 입구 양쪽에 신호기가 설치돼, 이젠 양방향 순차 통행도 가능해졌습니다.

마래 제2터널은 일제가 조선인들을 강제 동원해 그 피와 땀으로 만든 터널이라 우리로선 아픈 역사가 숨쉬는 곳입니다. 조선시대 일본 수군을 상대로 연승을 거둔 이순신 장군이 근무했던 전라좌수영 소속 관청 진남관이 근처에 있다는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로 느껴집니다.

외줄기로 뻗은 여수 마래 제2터널, 벽면의 거친 질감이 인상적이다.ⓒ사진 = 김명식

터널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 역사의 흔적이 더 잘 느껴집니다. 터널 입구 양쪽의 얼마간 시멘트로 마감된 부분을 제외하면, 터널 대부분의 공간은 망치와 정으로 한 정 한 정 두들겨 깎아낸 날 것 그대로의 모습입니다. 벽면을 쓰다듬어봤습니다. 거칠고 차갑게 느껴지는 날카로운 벽면의 질감과 한기가 손끝에서 가슴, 머리로 전해집니다.

‘어디 암반을 정으로 뚫었을까. 강제로 끌고 와 가혹한 매질로 뚫었겠지. 일제의 채찍질이 조선 사람들 몸에 새겨질 때마다 터널이 조금씩 앞으로 가다 결국 뚫렸겠지’. 이랬던 짐작이 경험을 통해 강한 확신으로 바뀝니다. 처절한 야만의 시대, 여수시민의 피가 묻은 터널을 통과했습니다.

대부분에 거친 면을 그대로 노출시킨 이 터널에서, 건축가라면 자연스레 한 시대를 풍미한 브루탈리즘(Brutalism) 건축 양식을 떠올릴 것입니다. 이 양식은 보기 좋게 치장하려 하지 않고, 재료(특히 근대의 재료인 철, 유리, 콘크리트)나 구조 본연의 특성 그대로를 드러내 표현합니다. 1950년대 전후 복구 시기 영국에서 나타나 유럽 전역으로 퍼졌습니다.

영국의 건축 비평가 레이너 벤험(Reyner Banham)이 근대 건축의 퇴보작이라며 혐오했던 1958년 이탈리아 밀라노 BBPR의 토레 벨라스카(Torre Velasca)와 최근 노후 공동주택의 리모델링 연구에서 사례 분석을 수행했던 영국 셰필드의 파크 힐을 대표적인 사례로 꼽을 수 있겠습니다. 둘 다 아파트입니다. 또 흔히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노출 콘크리트 주택들이 브루탈리즘 건축 양식의 후예입니다.

브루탈리즘 건축의 대표적 사례로 꼽히는 건축물들. 왼쪽은 이탈리아 밀라노의 토레 벨라스카, 오른쪽은 영국 셰필드의 파크힐이다.ⓒ사진 = Fred Romero/ Paolo Margari

터널을 나와 해안길을 따라 2~3분 걸으면 그 다음 세대가 겪은 역사적 비극, 여순 사건의 현장을 마주하게 됩니다. 만성리 학살지 표지판이 보이고 위령비가 모셔진 곳도 볼 수 있습니다.1948년 단독정부 수립을 반대하는 무장봉기가 일어나자, 이승만 정권은 대규모 병력을 파견해 반란군을 진압합니다. 그리고는 군인들은 물론, 관련이 있다고 생각되는 민간인들까지 학살해 암매장합니다.

그 장소가 바로 이곳입니다. 무덤들이 비탈면 여기저기 규칙도 없이 있습니다. 만성리 학살지 안내판은 “여수 시내를 가고자 했던 만성, 오천 주민들은 공포의 땅이 된 이 지름길을 두고 일부러 마래산 쪽으로 먼 거리를 돌아다니기까지 했다”고 당시를 전합니다.

여순사건 희생자위령비(왼쪽)과 만성리 학살지 안내판ⓒ사진 = 김명식

만성리 학살지 옆 형제묘는 학살 후 엉망이 된 시신을 수습할 수 없었던 유족들이 시신들을 모아 함께 만든 큰 묘입니다. 죽어서라도 형제처럼 함께 있으라고 ‘형제묘’라고 이름을 붙였다고 합니다. 1949년 1월 13일 125명이 여기서 총살되고 불태워졌습니다. 형제묘 안내문에는 학살 후 주검들을 어떻게 처리했는지 읽기 고통스러운 설명이 있습니다. 형제묘를 보기 위해 경사지를 오르자 “아, 여순이여!”라는 글귀와 함께 꽃을 든 아낙네의 바닥 그림이 봄비에 젖어 선명하게 보입니다. 그 위로 모셔진 봉분과 형제묘 묘비가 편안해 보입니다.

마래 제2터널의 특이하고 독특한 공간감을 체험하러 왔다가 이 지역에 비극의 역사를 연이어 마주하게 됐습니다. 그 기억들을 더한 누적되고 겹쳐진 공간감이 마음을 무겁게 합니다. ‘여수 밤바다’나 흥얼거렸지 여수에 이런 상흔이 아직도 고스란히 남겨져 있으리라 예상치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 순간 또 한 번 되돌아보게 됩니다. 우연한 만남에서 다시 한 번 봄의 저편에 묻힌 기억을 되새깁니다. 학살된 영령들이 편안히 잠들기를 기원하며 발길을 옮겼습니다.

만성리 형제묘 안내판(왼쪽), 형제묘 앞 꽃을 든 여인의 바닥그림과 "아, 여순이여!"ⓒ사진 = 김명식

형제묘 오른쪽 아래쪽으로 레일바이크를 탄 관광객들의 웃음소리, 바퀴와 선로가 내는 마찰음이 들려왔습니다. 소리에 이끌려 시원하게 펼쳐진 남해 바다로 시선을 돌리게 됐습니다. 만성리검은모래해변이 저만치 있고 만성리방파제가 요 앞, 그리고 그 앞에 레일바이크 정류장이 있습니다. 매표소에서 표를 사고 건너편 플랫폼에서 레일바이크를 타면 우리가 왔던 길을 해안가 철길을 따라 거슬러 갈 수 있습니다.

이는 마래 제2터널에서 해안가 쪽으로 옛 전라선의 폐선된 구간이 레일바이크 선로로 활용되고 있어 가능한 일입니다. 이 길은 기차와 바다와 터널, 그리고 그때 그 시대의 사건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복잡한 공간감의 경험을 안겨 주며, 마래 제2터널과는 또 다른 감상을 가지게 합니다.

여수 해양 레일바이크 구간ⓒ사진 = 김명식

그 다음엔 여수해양레일바이크 매표소 옆 여수해양레일바이크주차장으로 발길을 옮깁니다. 여기서는 옛 철길을 자전거도로로 만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시민들 누구나 자전거로 이 길을 달릴 수 있습니다.

만흥공원에서 시작해서 지도상에는 미평터널로 적혀있는 389m의 오림터널공원, 미평공원, 선원뜨레공원, 여천시외버스정류장, 양지바름공원, (구)덕양역 인근 덕양교까지 무려 16.1km가 넘는 길을 달리는 것이 가능합니다. 2011년 10월 5일 KTX 전라선이 개통됨에 따라 폐선된 전라선 옛 기찻길 공원화 사업을 통해 조성한 구간이라 합니다. 시간(과거에서 현재까지), 공간(공원, 기차길, 터널), 환경(자연, 도심)이 완벽히 조화된 라이더에게 환상적인 코스임에 틀림없습니다.

터널 부분 부분 다른 재료로 마감한 오림터널ⓒ사진 = 김명식

거기서 만난 오림터널공원은 터널 자체가 공원이었습니다. 이 오림터널 역시 그 형태나 재료 등으로 보았을 때 일제시대 건설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옛 전라선이 폐선되면서 최근 사람과 자전거가 안전하게 다닐 수 있도록 산책길과 자전거길로 나눠 조성했습니다. 터널 내 대피 공간을 전시 공간으로 활용하기도 하니, 여수만이 가진 특유의 터널 갤러리가 되기도 하겠습니다.

산책과 조깅 그리고 라이딩까지, 국내 몇 안 되는 특별한 터널에서 봄을 만끽할 수 있습니다. 더불어 과거의 엄혹했던 시간과 현재의 평화로움을 함께 느낄 수 있으니 역사산책, 역사보행, 역사라이딩 뭐라 불러도 좋겠습니다. 여기보다 좋은 곳은 흔치 않을 것입니다.

오림터널공원 출입구 부분.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자전거를 타고 가고 있다.ⓒ사진 = 김명식

터널을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자전거를 타고 지나갑니다. 두 사람의 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지켜봤습니다. 여수에 긴 자전거 도로가 끊김 없이 이어진 것도 놀랍고, 부분 부분 특별한 공간감을 주는 오림터널도 재미있습니다. 거기에다 옛 시대와 현재가 혼재된 공간을 지나는 우리의 모습이 콜라주 되어 미묘한 산책길이기도 합니다.

산책은 지금 이 시절이 제격입니다. 저에게는 이곳이 그 어느 곳보다 시공간의 산책길로 제격으로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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