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내나는 삶] 사소한 일과 권력, 그리고 차별

평택항에서 일하다 산재사고로 숨진 청년 노동자 고(故) 이선호 씨의 부친 이재훈 씨가 13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지방고용청 앞에서 열린 추모문화제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2021.05.13ⓒ김철수 기자

2주 전에 나는 고양시의 성평등 기금 지원 사업으로 남성들을 대상으로 한 요리 교실을 진행하였다. 이는 단순한 요리 교실이 아니라 참가자들이 자신과 타인, 특히 가족들과의 관계 개선을 의식하도록 유도하는데 목적이 있다. 코로나19 대유행으로 대면 모임이 쉽지는 않았으나 시에서 운영하는 공유주방에 최대인원 16명까지는 모일 수 있다는 허락을 받고 첫째 시간엔 7명이, 그리고 둘째 시간에는 6명의 참석자들이 모여 함께 요리하는 재미를 느껴 봤다.

함께 살아가기 위한
작은 일은 정말 위대한 일이다.
나는 이 작은 일에 목숨을 걸 만큼
삶을 진지하게 사는 것도
지극히 의미 있는 삶이라고 믿는다.

나는 남들을 초대해서 음식을 만들어 함께 나누어 먹곤 했지만, 남들에게 어떻게 요리하는지 가르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또 나는 요리를 정식으로 배워보지도 않았다. 참석자들은 40세 이상의 남성들이었는데, 나는 오랜 외국 생활에서 터득한 까르보나라 파스타와 샐러드를 만드는 법을 이들에게 가르쳐주었다. 불행히도 참석자들은 만든 음식을 그 자리에서 마스크를 벗고 먹을 수가 없어서 준비한 용기에 담아 집으로 돌아갔다. 나중에 그들과 전화로 어떻게 먹었는지 맛이 어떤지를 확인했는데 결과는 대만족이었다.

자료사진ⓒ기타

그날 참석자들은 대부분 앞받이(앞치마)를 태어나서 처음 입어보고 또 처음 요리를 했다. 물론 라면 정도야 끓여 먹어 보았겠지만, 그들이 요리한 것을 인스턴트 라면을 조리한 것과 비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들의 요리에는 재료를 씻고 자르고 볶고 면을 끓이고 달걀과 치즈가루를 섞어 푸는 수고와 정성이 들어갔다. 이 수고와 정성이 들어간 재료는 먹음직한 음식으로 탈바꿈하여 가족들 앞에 올려졌다. 가족들은 그들의 수고로 만든 음식과 그 맛에 놀랐다.

나는 참석자들이 자신의 가족들이 보여준 기쁨과 경이로움이라는 마음을 음미하길 기대했다. 아마도 참석자들은 가족들이 보여준 기쁨과 경이로움으로 인해서 자신들의 수고와 노력이 인정받고 보상받았다는 기쁨 또한 느꼈을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손수 요리를 해서 함께 나누어 먹는 일은 사적이고 사소해 보인다. 그러나 함께 살아가기 위한 작은 일은 정말 위대한 일이다. 나는 이 작은 일에 목숨을 걸 만큼 삶을 진지하게 사는 것도 지극히 의미 있는 삶이라고 믿는다.

이런 ‘대단한 일’에 대한 의미 부여는
매우 정치적이며 권력과 관련이 있다.
이런 정치적 의미 부여와
권력의 경중이라는 위계에 의해
‘사소한 일’과 ‘대단한 일’이라는
차별이 생긴다.

과거인 집안일은 주로 여성이 하는 일로 생각했고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어릴 적 나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나누는 대화를 통해, 어머니의 일은 아버지가 하는 가족을 부양하는 일에 비해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인식했다. 집안일은 사적이고 사소한 일, 그리고 생계를 부양하는 일은 남자의 일로서 공적이고 중요한 일이라는 위계가 존재했다.

우리는 일상의 사소한 일들을 그냥 아무런 수고와 노력이 없이 이루어진 듯 무심하게 바라보곤 한다. 반면에 의미 있는 일로 알려진 ‘대단한 일’ 뒤에는 ‘대단한 사람들’의 지혜와 수고 그리고 노력이 들어갔다고 믿는다. 그러나 이런 ‘대단한 일’에 대한 의미 부여는 매우 정치적이고 권력과 관련이 있다. 이런 정치적인 의미 부여와 권력의 경중이라는 위계에 의해 ‘사소한 일’과 ‘대단한 일’이라는 차별이 생긴다. 여성들은 이 차별을 오랫동안 경험했다. 지금도 이 차별로 가난한 사람들의 노동은 무시된다. 뿐만 아니라 사람이 어떻게 존재하는지에 따라 인간의 존엄성과 죽음도 차별적이다.

언론사들이 뉴스를
생산하는 형태를 보면서
인간이 어떻게 존재하는지에 따라
인간 존엄성의 차이가 있고
심지어 죽음에도 차별이 있는 것 같아
마음이 불편했다.

지난 4월 22일 평택항 부두에서 컨테이너 바닥에 있는 이물질 제거 작업을 하던 대학교 3학년 이선호씨가 300Kg 무게의 개방형 컨테이너 뒷부분 날개에 깔려 숨진 사건이 있었다. 업체는 이 산재 사건에 대한 사고 원인과 재발 방지책을 새우지 않은 채 5월 4일부터 작업을 재개하려 했다고 한다. 이 사건은 노동 문제로 세간의 주목을 받지 못했고, 그래서 이선호 씨의 존재는 철저히 지워질 뻔 했고, 그의 노동과 참변은 그렇게 쉽게 무시될 뻔 했다.

평택항 고 이선호 사고 이후 6월 3일까지 안전보건공단 사망속보ⓒ민중의소리

한편, 비슷한 시기인 4월 25일 서울 한강변에서 이 씨 또래의 의대생 손정민 씨가 반포한강공원에서 친구와 술을 마신 뒤 실종됐다가 며칠 뒤 반포 한강공원 수상택시 승강장 근처에서 숨진 채 발견된 사건이 발생했다. 많은 언론사들이 엄청난 양의 뉴스를 생산하며 이 사건을 보도했다. 상대적으로 이선호 씨 사망 사건은 보도가 많이 되지 않아 사람들이 잘 모르는 사건이 되었다.

이 두 죽음은 젊은이들이 미래의 꿈을 이루지도 못한 채 세상을 떠난 안타까운 사건이다. 또 이 죽음은 유가족들에게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아픔이자 슬픔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언론사들이 뉴스를 생산하는 형태를 보면서 인간이 어떻게 존재하는지에 따라 인간 존엄성의 차이가 있고 심지어 죽음에도 차별이 있는 것 같아 마음이 불편했다.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의 사망사고 속보에 따르면, 이선호 씨가 사망한 4월 22일 이후부터 6월 4일까지 42일 동안 51건의 사망사고가 발생했다고 한다. 이런 산업재해 사망사고가 반복되는 것은 권력자들이 그 산업재해 사고를 정치적으로 중요한 사안이 아니라고 판단하여 우리 사회가 그들의 죽음을 기억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산업재해를 막기 위해서가 아니라 재해기업을 보호하기 위해 제정된 법이라고 냉소적으로 비난한다. 권력을 가진 이들의 정치적인 판단으로 인해 노동자들과 그들의 노동은 무시되고, 그들이 겪는 참변은 계속 반복되고 지워진다.

이 세상에 무시될 수 있는 존재는 하나도 없다.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들을 무시할 때, 자연은 그 자연다움을 잃어간다. 현재 우리가 대면한 기후 위기가 말 못 하는 자연에 대한 무시와 무관하지 않다. 또 아무리 작은 일이라 해도 미소한 존재들의 수고와 노력이 없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런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들의 도움과 노력이 무시될 때 차별은 자란다. 오늘날 만연한 차별은 힘없는 이들은 무시하고 그들의 수고와 노력을 올바로 보지 않으려는 우리 사회의 태도 때문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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