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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살리는 노동교육②] 학교의 정치화? 실제 교실에선...

취재 : 강석영·최지현 기자

사회에 막 첫발을 내디딘 청소년들과 청년들이 최소한의 법적 권리를 제대로 배우지도 못하고, 알더라도 주장할 수 있는 훈련이 전혀 돼 있지 않은 상태로 안전하지 않은 일터에 내몰리고 있습니다. 산재사고까지 잇따르면서 학교에서부터 제대로 된 노동인권교육이 이뤄져야 한다는 요구가 커집니다. 이에 학교 노동인권교육의 현황과 내실화를 위한 대안을 3편의 기사로 소개합니다.

① 전태일 50년 뒤, 학생들은 노동을 제대로 배우고 있을까
② 학교의 정치화? 실제 교실에선…

2022년 교육과정 개정에서 노동인권 교육을 반영하자는 교육감들의 제안이 나왔다. 의무대상인 직업계고도 1년에 2시간가량만 교육하는 현실에서 노동인권 교육을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는 취지다.

보수 일각에선 학교를 정치화한다는 목소리부터 나왔다. ‘노동권은 공산주의자들의 사회주의화 전략’(서울교육사랑학부모연합 등의 지난 1월 성명서)이라는 케케묵은 주장엔 코웃음 치는 반응이 뒤따른다. 하지만 노동인권 교육에서 무엇을 가르칠 건지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사실이다. 학교는 물론 어디서도 노동인권을 배워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 교실에서 진행되는 노동인권 수업을 접하면 기우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교과서에도 없는 노동인권을 자기 시간 쪼개가며 연구해 가르치는 교사들을 만났다. 그만큼 학생들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는 이들이다. 노동인권 교육의 필요성이 가장 높은 직업계고와 교육 내용이 가장 궁금한 초등학교를 대표적으로 소개한다.

한 초등학교 교실 풍경. 2021.03.02ⓒ사진공동취재단

노동법보다 노동인권 감수성

노동인권 교육은 무엇을 배우는 시간일까. 노동 삼권은 무엇인지, 주당 법정 근로시간은 몇 시간인지, 올해 최저임금은 얼만지 등을 외우게 한 뒤 시험을 보면 끝일까. 법률지식은 휴대전화로 검색하면 다 나오는 세상에 말이다.

핵심은 노동인권 감수성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았다. 노동자를 인간으로 존중하는 태도를 길러야 한다는 것이다. 일종의 ‘관계 맺기’ 연습이다. 타인의 노동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세상에서 내 삶을 영위해주는 노동자들과 더불어 살 수 있는 사람으로 키워내는 게 학습 목표다.

이론을 안다고 감수성이 절로 길러지는 건 아니다. 쓰레기를 아무 데나 버리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 바닥에 버리는 것과 같다. 노동법이 지켜진다고 노동자가 인간으로 존중받는 것도 아니다. 노동법은 노동현장에서만 유효하다. 사회는 별도의 공간이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노조를 만들고 투쟁할 수 있다고 해서 그들의 노동이 사회에서 존중받는 것은 아니다.

지식전달 교육에서 벗어나려면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정규 교과과정에 없는 노동인권 교육은 시도별 조례상 평균 2시간 이상 실시로 규정돼 있다. 사실상 1년에 2시간 실시가 현실이다. 노동인권 감수성을 기를 교육을 위해 수업시간 확보도 중요한 일이다.

“교실에서 논쟁하자”

경기 이천제일고등학교 장윤호 교사는 학교현장에서 노동인권 교육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교사 중 하나다. 그는 교복 대신 작업복 입는 제자들을 지켜보며 노동인권 교육을 시작했다.

특성화고 현장실습 사망사고가 거의 매년 이어지고 있다. 3학년 2학기 취업한 10대 노동자들은 산재를 비롯한 각종 권리침해에 노출될 위험이 크다. 특성화고 졸업생들은 학교에서 노동인권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데 대해 아쉬움을 토로했다. 부당했던 상황을 언급하며 “그때 내 권리를 알았다면 한마디라도 따졌을 텐데 아직도 억울하다”라고 말했다.

1년에 2시간 하는 형식적 교육에서 벗어나기 위해 장 교사는 창의적 체험·활동 중 동아리 시간을 활용했다. 2018학년부터 ‘민주시민탐구반’이란 동아리를 만들어 실제 활동 시간의 절반인 10시간을 노동인권 교육에 할애하고 있다.

내용은 크게 다섯 가지로 구성됐다. ▲노동의 의미 ▲최저임금 ▲노동 삼권 알기 ▲노동과 사회 ▲건강하게 일할 권리. 최저임금이나 주휴수당에만 눈을 반짝이는 학생들에게 지금 당장 사회에 나가 당면할 수 있는 문제들을 설명해줘야 했다.

직업카드를 동그라미 안과 밖, 경계에 놓은 모습ⓒ학교도서관저널

최근 노동계와 경영계가 팽팽하게 대립하는 특수고용노동자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일하는 사람이 노동자인지 아닌지는 중요한 문제다. 노동자라면 헌법상 노동 삼권과 최저임금·산재 등을 보장받지만, 노동자가 아니라면 보장받을 수 없다. 사회에 진출하지 않아도 아르바이트하며 충분히 마주칠 수 있는 문제였다. 학생들은 택배기사, 라이더 등 특수고용노동자 구분에서 멈칫했다.

장 교사는 정확한 사실관계를 알려주는 게 현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그는 “논쟁이 된다고 학교에서 쉬쉬할 게 아니라 있는 그대로 알려주는 것도 시민교육의 일환”이라고 말했다.

건강하게 일할 권리를 가르칠 때도 마찬가지였다. 2016년 발생한 현장실습생 산재 사망 ‘구의역 김 군’ 사건을 소개하자 모르는 학생들이 대다수였다. 시간이 흘러버린 탓도 있지만, 사회에서 일어나는 사건들과 논쟁을 수업과 어떻게 접목할지 장 교사는 고민이 들었다. “학교가 사회와 동떨어진 곳도 아닌데, 교과 수업 틀에 있지 않다고 외면하는 것은 진정한 교육일까”라는 의문이었다.

논쟁적인 사안을 피하기보다 학생들에게 모든 정보를 제공하고 교실에서 논쟁하도록 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았다. 학생들 스스로 판단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더는 주입식 교육이 통하지 않는다는 현실적인 고민과 함께 진영 대립이 좁혀지지 않는 상황에서 독일의 보이텔스바흐 합의와 같은 절충안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반영됐다.

전국특성화고등학교졸업생노동조합 조합원들이 1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특성화고 졸업생 노동조합 결성선포' 기자회견을 열고 '구의역·제주·이마트 억울한 죽음 끝내자'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김슬찬 인턴기자

산재 교육에서 필요한 건 법보다 감수성이다. 사고가 난 뒤 규정과 법률대로 처리하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산재 예방을 위해서 안전할 권리·건강할 권리가 우선 보장돼야 한다. 수업이 끝날 무렵엔 ‘사람이 먼저다, 노동자도 사람이다’라는 말이 학생들 입에서 먼저 나온다.

동아리 시간에 수업한다는 건 학생에게도 교사에게도 쉽지 않다. 장 교사에게도 영화 한 편 틀어 놓고 밀린 업무를 처리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하지만 꼭 이야기해주고 싶었다. 한 번 들어본 것과 한 번도 들어보지 않은 것은 하늘과 땅 차이다.”

“안 보이던 노동이 보이기 시작했다”

초등학교야말로 노동인권을 시작할 적기라고 문백초등학교 정승운 교사는 말한다. 관계 맺기에서 중요한 평등의 눈은 어렸을 때부터 길러야 하기 때문이다.

학교는 노동현장이다. 급식·청소·경비 노동자가 교사의 교육권을 보장하기 위해 일하고 있다. 그러나 학생들 눈에 보이는 건 교사뿐이다. 교사에게만 인사하고 교사만 무서워한다. 학생들과 가장 자주 만나는 급식실 노동자를 예로 들어보자. 식판을 엎었을 때 급식실 직원이 치워주면 학생들은 당연한 권리처럼 다시 받아 간다. 고마운 마음보단 돈 받았으니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크다.

정 교사는 고용 관계가 만들어낸 이상한 갑을 관계가 불편했다. “더불어 살고 평등하게 지낸다는 가치가 가장 안 지켜지는 부분이 노동이다.”

한 초등학교 교실 전경. 자료사진ⓒ사진공동취재단

정 교사는 정규 수업시간에 노동인권을 녹여냈다. 교과과정 성취기준이 능력 중심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예를 들어 국어 한 단원의 성취기준이 ‘본문을 읽고 요약할 수 있는 능력 기르기’라면, 노동인권 관련 글을 읽고 요약하는 수업을 진행하는 방식이다. 교과과정을 운영하는 교사로서 교육의 근거를 두는 건 중요한 일이다. 교과서를 자료로 삼아 주제 중심으로 내용을 재구성하는 교육 추세도 반영됐다.

정 교사의 노동인권 교육은 교육연극을 접하며 시작됐다. 노동자가 어떤 상황에 놓였는지 느낄 수 있는 좋은 방법이었다. 해당 인물을 연기하되 판단은 스스로 내리게 했다.

지난해 5학년 인권수업에서 동화책 『행복 마트 구양순 여사는 오늘도 스마일』을 연극으로 재구성했다. 포럼 연극 형태였다. 출연진은 같은 학년 교사 5명. 기승전결이 아니라 갈등의 절정부터 연극이 시작한다. 구양순 씨가 당장 내일 해고되는 상황부터 보여줬다. 관객은 연극에 참여하며 직접 결말을 만들 수 있다. ‘갑질 당한 구양순을 오히려 해고하려는 사 측을 만난다면, 너는 어떻게 말할래?’ 질문이 던져지면, 학생들은 그때부터 구양순이 된다.

전태일 열사 50주기를 맞이해 어린이용 전태일 평전을 읽고 낭독극을 펼치기도 했다. 교사와 학생들이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은 다음, 직접 대본도 만들고 그림도 그리고 시도 썼다. 2개월가량 다양한 과목을 넘나들며 진행된 수업이었다. 학생들이 전태일 열사의 분신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하진 않았을까. 정 교사는 전체적인 맥락 속에서 안타까워하며 받아들이는 편이었다고 말했다. “한국전쟁이나 독립운동의 죽음만 고귀하고, 전태일의 죽음은 잔인하다고 생각한다면 편견이다.”

2020년 문백초 5학년 4반 '온작품읽기' 낭독극ⓒ정승운 교사

학생들 눈에 안 보이던 게 보이기 시작했다. 뉴스에서 전태일 열사 50주기나 중대 재해 처벌법 등을 봤다는 학생들이 늘어났다.

진로교육과 노동인권 교육을 헷갈려선 안 된다. 진로교육 지침은 무엇이 될 거냐에서 끝난다. 근무조건과 권리에 대해서는 배우지 않는다. 승무원 업무를 체험할 수 있지만, 땅콩 회항이나 여성 승무원의 성폭력 문제는 알 수 없는 것이다. 정 교사는 “일하는 사람의 권리를 가르쳐야 한다”라고 말했다.

“노동존중 사회가 진정한 노동인권 교육”

현장 교사들은 조 교육감 이후 노동인권 교육이 확장됐다고 말했다. 서울시교육청에서 해당 교육을 활성화하며 학교 측에 공문을 보내는 것 자체가 현장 교사들에게 든든한 울타리가 돼 준다는 것이다.

노동인권 교육이 정규화되지 않은 상황에서 현장 교사들의 역할이 커지고 있다. 교육청이 시킨다고 학교가 따르는 시기는 지났다. 점점 현장으로 재량을 내려주고 있다. 교육청은 커다란 방향성만 잡아준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26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관 교육위원회 회의실에서 열린 교육부·소속 산하 기관 및 공공·유관기관 등 2020 종합감사에 출석, 질의를 듣고 있다. 2020.10.26ⓒ정의철 기자/공동취재사진

관심 있는 교사들에 한해 진행된다는 한계가 있다. 시도별 조례에는 최소 시간 수만 정해둔 탓에 수업 내용까지 확인할 수 없다. 의무교육 대상인 특성화고에서도 강당에 전교생을 모아놓고 수업하거나, 영상을 틀어놓기만 하기도 한다. 정규수업에 행정 업무까지 겹친 상황에서 조례상 최소 시간 이상으로 교사들이 노동교육을 준비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교사들도 노동인권을 모른다는 문제점도 있다. 교대·사범대를 졸업할 때까지 교사들은 노동인권 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다. 지난해 모 교육청에서 노동인권 교육대상을 갑작스럽게 확대하면서 교사들이 다급하게 관련 연수를 받느라 난리가 났었다는 후문도 전해진다.

대부분 학교에서 외부 강사에게 노동인권 교육을 맡기고 있다. 외부 강사들은 수업을 맡기고는 자신들을 노동자로 존중하지 않는 학교의 태도에 가장 난감하다고 말했다. 오랫동안 노동인권 교육 강사로 활동했던 공군자 서울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 운영위원장은 “현장 교사들의 고충은 이해하지만, 장기적으로 교과과정에서 교사들이 교육하는 게 좋다고 본다. 그래야 노동인권에 대한 왜곡된 인식이 바뀐다”라고 말했다.

사회적 합의가 되지 않은 노동문제를 교사들에게 떠넘기는 게 아니냐는 불만도 나온다. 이에 장윤호 교사는 “지금까지 합의해서 교육한 적 없다. 노동에 대한 거부감이 교사들에게서도 드러난다. 여전히 노동이란 단어를 꺼내기 쉽지 않다”라고 씁쓸해했다.

정승운 교사는 “용기가 필요한 영역인 건 맞다. 교사들의 안전망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라면서도 “하지만 사회적 합의를 생각하다 보면 지도서에 나온 말만 해야 한다. 세상에 논란이 없는 문제가 있나. 기후위기는 결정된 사안인가. 합의한 내용보단 합의하는 과정이 교육이다”라고 강조했다.

노동인권 교육에서 가장 어려운 점으로 교사들은 “노동 중심으로 사회가 바뀌지 않는 것”을 꼽았다. 노동인권 교육을 받고 노조를 만들었다고 해고된다면 어느 선생님이 계속할 수 있겠냐는 목소리다. 결국은 노동존중 사회가 돼야 노동인권 교육 역시 활성화될 수 있다는 취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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