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노조가 총파업에 나선 이유... 여전히 택배기사 몫인 ‘분류작업’

1차 사회적합의 5개월째... 택배노조 “더는 택배노동자 장시간 노동과 과로사 위험에 방치 못 해”

전국택배노동조합(택배노조) 조합원들이 9일 서울 송파구 장지동 복합물류센터에서 열린 총파업 결의대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날 택배노조는 득표율 92.3%로 무기한 전면 총파업이 가결됐다. 2021.06.09ⓒ김철수 기자

지난 1월 21일 정부와 국회, 택배 사업자, 종사자, 소비자, 화주 등이 참여한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을 위한 사회적 합의기구(사회적합의기구)’는 택배노동자 과로사 원인으로 지목됐던 분류작업을 택배기사의 기본업무에서 제외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1차 사회적합의를 체결했다.

연이은 택배노동자 과로사 소식에 안타까워하던 국민은 물론, 전국택배노조(택배노조)까지도 1차 사회적합의를 두고 “택배기사들이 분류작업에서 완전히 해방될 수 있게 됐다”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리고 1차 합의가 체결된 지 5개월가량이 흘렀다. 그토록 원했던 사회적 합의를 끌어냈지만, 현재 택배노조는 총파업을 시작했다.

사회적 합의기구 결과보고 기자회견ⓒ민중의소리

'1차 사회적 합의' 5개월째...여전히 택배기사 몫인 분류작업

지난 8일 택배노조는 9일부터 총파업에 돌입한다고 선언했다. 총파업에 불씨를 당긴 건 이날 열린 2차 사회적합의 논의에서 합의안 도출에 실패한 것이지만,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택배사들이 1차 합의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고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이번 총파업에는 택배노조 조합원 6,500여명 중 쟁의권이 있는 조합원 2,100여명이 참여하고 있다. 나머지 4,400여명은 앞서 노조가 결정한 ‘9시 출근, 11시 배송 출발’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택배기사들은 그동안 오전 7시에 출근해 배송 준비 과정으로 택배 분류 작업을 해왔는데, 2시간 늦게 출근해 분류작업을 하지 않고 개인별로 분류된 택배 물량만 싣고 11시에 배송 출발하는 항의행동을 해왔다.

앞서 사회적합의기구는 1차 합의문에서 택배기사의 기본업무를 택배 집화와 배송으로 규정했다. 그동안 택배기사 장시간 노동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돼 온 ‘분류작업’이 택배사의 책임임을 분명히 한 것이다.

그러나 대다수의 택배노동자들은 여전히 직접 분류작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택배노조가 지난 2∼3일 택배노동자 1,186명(우체국 제외)을 대상으로 한 온라인 설문조사를 보면, 분류작업을 하지 않고 집하와 배송 업무만 하는 택배노동자는 15.3%(181명)에 불과했다. 84.7%(1,005명)에 달하는 대다수 택배노동자들은 여전히 분류작업을 수행하고 있다고 답했다. 이 가운데 분류인력이 전혀 투입되어 있지 않아 분류작업을 전적으로 도맡아 수행하고 있는 택배노동자도 30.2%(304명)나 됐다.

전국택배노동조합(택배노조) 조합원들이 9일 서울 송파구 장지동 복합물류센터에서 열린 총파업 결의대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날 택배노조는 득표율 92.3%로 무기한 전면 총파업이 가결됐다. 2021.06.09ⓒ김철수 기자

현재 CJ대한통운은 사회적 합의를 통해 약속한 분류지원인력 4천명(택배기사 5명당 1명꼴)을 투입 완료했다고 주장한다. 롯데와 한진은 각각 1천명을 투입하기로 했지만 ‘투입 인력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시범사업장을 선정해 200명만 우선 투입하고 있다.

강원도에 위치한 CJ대한통운 서브터미널에서 9년째 일하고 있는 택배기사 염모(44)씨는 “총파업에 나서기 전까지 분류작업으로 아침 일과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1차 합의가 이뤄진 1월부터 최근까지 투입된 분류인력이 전혀 없었다는 것이다. 염씨가 계약을 맺은 택배대리점은 그를 포함해 총 10명의 택배기사가 소속돼 있다. CJ대한통운의 주장대로 택배기사 5명당 1명꼴인 4천명의 분류인력 투입이 완료됐다면 이 대리점 역시 2명의 분류인력이 운영 중이어야 하는 셈이다.

염씨는 “가끔 뉴스에서 CJ대한통운이 약속한 분류인력 4천명 투입을 완료했다고 하는데, 우린 한 명도 투입된 적이 없다”며 “그런 뉴스를 볼 때마다 ‘대체 분류인력들이 어디에 투입된 건가’라는 생각에 복장이 터진다”고 한탄했다.

정작 분류인력은 투입됐지만, 인건비를 아끼기 위해 노동시간을 줄이면서, 실효성이 떨어지는 사례도 있었다. 경기도에 있는 한 CJ대한통운 서브터미널은 지난 2월부터 분류인력을 투입해 운영 중이다. 하지만 분류인력의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오전 9시부터 오후 1시까지 4시간만 운영하고 있다.

통상 택배 물량을 실은 간선차량이 아침 7시쯤이면 서브터미널에 도착해 분류작업이 시작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택배기사들은 분류인력 투입 전과 동일하게 오전 7시에 출근해 분류작업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해당 서브터미널에서 일하는 택배기사 김모(52)씨는 “분류인력이 투입됐지만 변한 게 거의 없다. 아침 7시에 출근해 분류작업을 하는 것도 그대로”라며 “9시부터 분류인력이 투입되지만, 분류작업에서 손을 떼긴 어렵다. 조금이라도 더 빨리 분류작업을 마치고 배송을 나가는 것이 조금이나마 퇴근시간을 앞당길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분류인력 투입이 택배노동자들의 노동시간을 줄이고, 노동강도를 낮추기 위해서라는 것을 감안하면 실효성 크게 떨어지는 셈이다.

롯데택배 자료사진ⓒ뉴시스

아직도 시범사업장 운영 중인 롯데-한진,
현장 노동자들 “사회적합의에도 달라진 것 하나도 없다”

한진과 롯데의 상황은 더 열악하다. 특정 시범사업장에만 분류인력을 운영하고 있는 만큼 대부분의 택배노동자들의 노동 환경은 사회적합의 이전과 전혀 달라진 게 없다.

경기도 군포에 있는 롯데 서브터미널은 1차 사회적합의 이후 사실상 달라진 건 전혀 없다. 오히려 이전보다 늘어난 물량에 노동시간은 늘고 노동강도가 더 높아졌다는 게 현장 노동자들의 설명이다. 1차 합의 직후 80명 규모의 이 서브터미널엔 분류인력 11명이 투입됐었지만, 시범사업장을 운영하기로 하면서 투입됐던 분류인력을 2주만에 모두 뺐다.

이 서브터미널에서 일하는 택배기사 방모(55)씨는 “1차 사회적합의 이후에도 우리 업무는 똑같았다. 오히려 그때보다 물량이 더 늘면서 노동강도는 더 높아졌다”며 “분류인력을 투입하지 않은 사업장에 대해 택배기사들에게 분류비용을 지급하긴 하지만 건당 20원 정도다. 월 5천건 정도를 배송하는 만큼 월 분류비용으로 받는 돈은 10만원 정도”라고 설명했다.

한진택배 역시 마찬가지다. 시범사업장을 선정해 분류인력을 운영 중인 만큼 대부분 택배기사들의 노동환경엔 변화가 없었다. 문제는 택배사가 약속한 분류비용이 지급되지 않는 사례도 있었다. 경기도 화성시에 위치한 한진 서브터미널 일하는 택배기사 김모(41)씨는 “분류비용을 별도로 준다고 했지만, 아직 한 번도 받지 못했다. 대리점 소장이 사회적 합의가 끝나야 지급할 수 있다며 버티고 있다”며 “여러 차례 분류비용을 지급하라고 요청했지만, 아직도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민간택배사와 별도로 사회적합의기구 참여 중인 우정사업본부는 정부기업임에도 한진택배나 롯데택배보다 더욱 심각한 상황이다. 사회적 합의 이후 투입된 분류인력이 전혀 없는 데다, 분류비용도 지급하지 않고 있다.

경기도에 있는 우편집중국에서 우체국 택배기사로 일하고 있는 홍모(46)씨는 “1차 합의 이후 현장에 투입된 분류인력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저희뿐만 아니라 전국의 우편집중국에 분류인력이 투입되지 않았다”며 “택배기사들이 분류작업을 하는데도 별도의 분류비용이 지급된 적도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정부기업인 우정사업본부가 민간 택배사들보다 더 악독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며 “사실상 사회적 합의에 따른 노동환경 개선에 대한 의지가 없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우정사업본부의 우편집중국은 민간 택배사들의 서브터미널과 동일한 역할을 수행하는 곳이다. 우체국 택배기사들은 우편집중국에 도착한 택배물량을 개인별로 분류해 차에 싣고 나간다.

한진택배 자료사진ⓒ뉴시스

‘합의안 적용 1년 유예’ 카드 꺼낸 택배사들... 2차 사회적 합의 거듭 파행

2차 사회적합의의 거듭된 파행은 택배사들이 “합의안 이행을 1년간 유예해 달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으면서 “즉시 합의안을 이행해야 한다”는 택배노조와의 입장차를 좁히지 못한 결과다.

사회적합의기구 관계자에 따르면 사회적합의에 참여 중인 택배사들은 분류인력 투입 등 합의안 이행에 필요한 비용을 택배비 인상으로 마련해야 하는데, 그 기간이 1년 정도 소요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화주들과 1년 단위로 계약을 맺고 있어, 인상한 택배비를 100% 적용하기 위해선 1년 유예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반면 택배노조는 택배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환경을 하루라도 더 빨리 개선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진경호 위원장은 “택배사들의 합의안 이행 1년 유예 주장은 택배노동자들을 장시간 노동과 과로사 위험에 방치하겠다는 것. 결코 인정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택배노동자 과로사대책위원회(과로사대책위)는 올해 초 과로사 방지를 위한 1차 합의안이 나왔지만 제대로 지켜지지 않으면서 올해에만 5명의 택배기사가 과로사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지난 3월에는 CJ대한통운 소속 택배노동자 이모(59)씨가 뇌출혈로 쓰러졌다. 12년 차 경력의 이씨는 쓰러지기 전까지 오전 7시부터 오후 7시까지 하루 12시간, 주 72시간(주 6일 근무)의 장시간 고강도 노동을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택배비 인상에 1년가량이 소모된다는 택배사들의 주장에 대해서도 반박했다. 택배노조는 “사회적합의기구에 참여 중인 공정위는 2차 합의 결과에 따라 제시될 인상액을 택배사들이 일률적으로, 자율적으로 올리는 것에 대해 공정거래법상 담합행위로 보지 않겠다고 했다. 화주들 역시 택배비 인상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는 만큼 얼마든지 택배사의 결정에 따라 택배비 인상이 가능하다”면서 “하지만 택배사들은 택배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환경엔 관심 없이 정해진 계약기간에 맞춰 가격을 올리겠다고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택배노조는 택배사들의 이 같은 요구가 국토부가 작성 중인 2차 합의안에 반영됐다는 데 대해서도 거세게 반발했다. 택배노조에 따르면 국토부는 2차 합의안에 택배기사들의 분류업무를 단계적으로 줄이는 내용을 담았다. 구체적으로는 6개월에 걸쳐 분류작업 시간의 50%를 줄이고, 1년 내 100%까지 감축한다는 계획이다.

이에 대해 택배노조는 “지난 1월 사회적합의가 나온 뒤부터 벌써 5개월 넘게 분류인력 투입을 위한 시간을 줬다”면서 “그런데 또다시 기간을 두고 순차적으로 적용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 결단코 수용할 수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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