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두 노동자가 직장 내 괴롭힘에 시달리던 끝에 스스로 목숨을 잃었다. 한 명은 네이버 직원이었는데 업무 스트레스와 직장 내 괴롭힘을 호소하는 글을 남기고 5월 25일 세상을 떠났다. 다른 희생자는 여성 군인으로, 직장 내 괴롭힘과 성폭력에 고통 받다 5월 21일 세상을 등졌다. 언론은 두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보도했지만, 직장 내 괴롭힘에 의한 죽음은 살인에 가깝다.
노동자들이 직장 내 괴롭힘으로 목숨을 잃는 상황이 제조업, 특수고용, 공공부문 등 업종과 부문을 가리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 전라북도 익산 소재 오리온에서 근무하던 20대 청년 노동자는 “그만 좀 괴롭히라”는 유서를 남기고 15층 아파트에서 몸을 던졌다. 유족들은 산재를 신청했고, 아직 결론이 나지 않았다. 경기도 파주시 파빌리온 골프장에서 근무하던 스물일곱 경기보조원은 골프장 관리자의 폭언을 견디다 못해 “제발 사람들 괴롭히지 말라”며 항의한 후 업무에서 배제되었고 그 해 9월14일 세상을 등졌다. 그는 특수고용직이라 산재신청도 할 수 없었다. 공공부문인 코레일에서 근무하던 노동자는 부당 전보에 항의하고 난 뒤 지속적인 괴롭힘을 당하다 일터에서 생을 마감했다. 다행히 산재 인정을 받았다.
모두가 직장 내 괴롭힘으로 죽음에 내 몰렸는데, 공공부문 노동자는 산재인정을 받고, 제조업 노동자는 아직도 분쟁 중이며 특수고용 노동자는 산재신청조차 할 수 없다. 살아서의 차별이 죽어서까지 이어지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직장 내 괴롭힘의 희생자들이 처음부터 죽음을 결심했던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회사에 항의하고 시정을 요청했다. 그러나 되돌아 온 것은 더 심한 보복이었다. 죽음을 결심한 진짜 이유는 절망이었다. 공군 중사 이○○님, 경기보조원 배○○님, 철도노동자 정○○님이 그랬다. 희생자들은 직장 내 갑질보다 갑질을 신고해도 달라지는 것 없는 현실에 절망한 것이다.
직장갑질119가 2020년 12월 직장 내 괴롭힘 경험자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69.2%는 직장 내 괴롭힘을 신고한 후 회사로부터 불이익을 받았다고 응답했다. 불이익은 주로 징계나 근무 조건 악화, 따돌림, 해고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2019년 7월 근로기준법이 직장 내 괴롭힘을 금지 내용을 포함해 개정되었으나, 아직도 직장 내 괴롭힘은 계속되고 있다. 이는 사건들이 법대로 처리되지 않거나 법을 허투루 만들었기 때문이다.
우선, 직장 내 괴롭힘이 법대로 처리되지 않고 있다. 용혜인 의원실에 따르면, 2019년 7월부터 2020년 말까지 고용노동부에 접수된 직장 내 괴롭힘은 모두 7,953건인데, 이 중 검찰이 기소한 사건은 0.36%에 불과하였다. 사람을 괴롭힌 가해자들을 법대로 처리하지 않고 지나친 관용을 베풀고 있는 것이다.
사실 진짜 허점은 다른 데 있다. 법에는 가해자에 대한 처벌 조항이 따로 없다. 또 5인 미만 사업장의 노동자는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 적용을 받지 못한다. 영세한 사업장이라는 이유로 사람을 존중해야 할 의무를 면제해 주었기 때문이다. 특수고용 노동자도 적용 대상이 아니다. 임금노동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렇게 직장 내 괴롭힘 금지 법은 보호해야 할 노동자들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하고 구멍이 숭숭 나 있다. 그러더니 뒤늦게 직장 내 괴롭힘의 가해자가 사업주이거나 사업주 친인척일 경우 1,000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도록 했다. 사람을 몹시 괴롭힌 대가가 고작 1,000만 원 이하의 과태료라니 서글플 뿐이다.
과거에 기업들은 산업재해를 노동자의 탓으로 몰아가곤 했다. 사고가 나면 으레 노동자가 조심하지 않고 일하다 사고를 당했다거나 정신을 딴 데 팔고 있다가 사고가 났다는 등, 개인 부주의 때문에 사고가 발생한 것처럼 진실을 왜곡했다. 다행히 요즘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은 고 김용균씨가 그리고 고 이선호씨가 부주의해서 컨베이어 속으로 끌려 들어가거나 컨테이너 철판에 깔려 쓰려졌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일터에서의 정신 건강도 다르지 않아야 한다. 나약해서 스트레스를 받고 죽음을 택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대범하지 못해서 상사의 욕설을 무심코 넘기지 못한다는 것도 사실이 아니다. 현장이 어떤 노동자가 와서 작업을 하더라도 안전하게 일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야 하는 것처럼, 일터는 어떤 노동자가 와서 일하더라도 정신적으로 상처를 받아선 안 되게 만들어져야 한다. 그게 ‘정상적인 일터’이다.
한국 일터의 직장 내 괴롭힘과 정신 건강 훼손은 심각한 수준이다. 안전보건공단은 2016년에서부터 2018년까지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한 산업재해가 131건이라고 밝혔다. 재해자의 대부분이 적응 장애와 우울증을 겪고 있다고도 했다. 피해자의 대부분은 여성(59%)이었다. 과거 전현희 의원실에 따르면 2014년부터 2018년까지 5년 동안 966명이 정신 건강 훼손으로 산재신청을 했고, 이중 522명이 산재 인정을 받았다. 안타깝게도 522명 중 34%인 176명이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정신 건강을 위협하는 직장 내 괴롭힘. 이를 막기 위해선 첫째, 직장 내 괴롭힘이 버릇 고치기 문화가 아닌 범죄 행위임을 인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무시무시한 말과 위협이 누군가의 목숨을 앗아갈 수 있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마련되어야 한다. 둘째, 직장 내 괴롭힘은 범죄이므로 가해자에 대한 처벌 규정을 만들어 잘못된 관행을 바로 잡아야 한다. 자신이 처벌 받지 않으면 다른 사람의 아픔에 공감하지 않는 가해자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셋째, 5인 미만 사업장의 노동자와 특수고용, 플랫폼 노동자에게도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을 적용하여 보이지 않는 사각지대를 줄여야 한다.
마지막으로 직장 내 괴롭힘 희생자분들께 당신들의 잘못이 아니라는 말씀을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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