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이 만난 하나님] ‘교회 안녕’을 위한 페미니즘의 필요성

‘페미니즘’은 ‘남성 혐오’가 아니라,
평등 사회를 지향하는 웰빙 이념

서울시장과 부산시장 재보궐 선거 이후, 일부 20~30대 남성들의 정치적 지지를 얻기 위해서인지 정치권에서 ‘안티 페미니즘’과 ‘백래시’를 조장하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최근 일부의 젊은 남성들은 ‘군 가산점’ 폐지와 취업난에 대한 분노를 페미니즘에 쏟고 있다. 이준석 국민의힘 신임 대표는 이런 흐름을 정치적 이득으로 삼으려는 듯, ‘공정’과 ‘세대교체’를 언급하는 가운데 ‘여성 할당제 폐지’까지 주장하고 있다.

프레시안의 조성은 기자는 “성차별과 젠더 폭력에 저항하는 여성들의 목소리가 커질 때마다 ‘군대-군 가산점-여성 할당제’로 소환되는 ‘남성 역차별론’이 맞선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과거 역차별론이 ‘일부 남성 집단의 여론’에 그쳤다면, 최근에는 정치 의제로 떠올랐다는 점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라며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의 주장에 일침을 가하였다.(2021년 5월 24일자, ‘어쩌다 이준석은 여성할당제 폐지 주장까지 갔을까?’)

6월 11일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에서 열린 전당대회에서 새로 선출된 이준석 대표가 수락연설을 하고 있다. 2021.06.11ⓒ정의철 기자/공동취재사진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를 비롯한 20~30대 남성 가운데 상당수는 페미니즘을 ‘남성 혐오주의’로 오해하고 있다. 그들은 자신들이 느끼는 불평등한 재화의 분배 구조와 취업난, 그리고 군 가산점 문제가 사실은 기성세대가 강화해 온 가부장제와 경제 계급정치의 합세로 누적돼온 결과라는 걸 간과하고 있다. 인터넷에서 ‘남성 혐오’라는 말은 잘못된 단어라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이는 ‘혐오’라는 말이 강자가 약자를 미워하며 증오할 때 쓰이는 단어이기 때문에, ‘남성 혐오’라는 말은 성립할 수 없고, 대신에 ‘남성에 대한 여성들의 분노’라고 표현해야 한다는 것이다.

페미니즘(여성주의)은 서구에서 18세기 들어 근대 사회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발생했다. 자유와 평등사상에 따라 ‘여성 됨’에 대한 질문이 곧 ‘인간 됨’의 문제라는 걸 인식하여, 여성의 자율성을 부정하는 차별과 억압을 폐지하고, 남녀평등 사회를 지향하려는 실천적 의지를 담은 이념이다. 오늘날 현대사회에서는 여성이 교육권과 참정권을 누리며, 여성의 대표성에 근거한 여성 할당제가 국제적으로 다수 법제화됐다. 이는 오랜 시간 동안 남성 중심 가부장제에 저항해 온 여성 운동 덕분에 이뤄진 성과다. 국내에서도 여성 운동이 1987년 이후 민주화 과정을 통해 여성에 대한 차별과 억압을 정치적 문제로 상승시켰다.

물론 모든 페미니즘의 갈래나 여성 운동 흐름이 완벽했던 것은 아니다. 신자유주의의 영향 아래 여성 간 계급화를 초래함으로써 유색 인종이나 저소득 여성들에게 상대적인 박탈감을 주는 경우도 있었다. 또 여성들이 분노를 표출하는 과정에서 다소 과격하고 폭력적인 양상을 보인 때도 있었다. 그렇다면, ‘좋은’ 페미니즘, ‘나쁜 페미니즘’이 있는 것일까? 이에 대해 황정미가 한 “‘불편한’ 페미니즘이든지, ‘나쁜 페미니즘’이든지 페미니즘은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오픈 엔딩’”이라는 말은 인상 깊다.

지난 2019년 5월 17일 오후 서울 강남역 11번 출구 앞에서 열린 강남역 화장실 여성 살해사건 3주기 추모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여성 혐오 범죄를 규탄하고 있다. 이들은 이날 30대 남성이 공용 화장실에서 여성이라는 이유로 20대 여성을 흉기로 찔러 살해했다며 희생된 여성을 추모하고 여성을 향한 폭력과 범죄에 대한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2019.5.17ⓒ뉴스1

가부장적인 관료체제와 경제독점 하에서 인권 유린과 부당한 감정노동, 육아 독박과 성차별을 당해 온 건 대부분 여성이었다. 여성은 일상의 삶에서 성폭력과 성 착취, 악성 댓글과 불법 촬영, 가정폭력과 데이트 폭력을 경험한다. 그리고 일면식도 없는 남성에게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살해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겪는다는 것을 남성들은 알기나 할까! 보편 인권과 남녀평등을 추구하는 현대사회에서 ‘안티 페미니즘’ 경향은 오히려 젠더 갈등만 증폭시키며 민주주의를 후퇴시킬 뿐이다.

페미니즘은 교회의 가부장성을
판별하는 리트머스 시험지!

그런데 “여성 됨이 곧 인간 됨”이라는 페미니즘의 지향과 목표는 남녀 모두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고 믿는 기독 신앙에 일치하건만(창 1:27), 어찌 된 일인지 사회보다 교회가 더 ‘안티 페미니즘’에 앞장서고 있다. 특히 보수 기독교는 페미니즘을 ‘교회를 허무는 이념, ‘거짓 인권’, ‘거짓 평등’, ‘거짓 사상’으로 몰아가면서, ‘페미니즘’이라는 말을 적대하도록 교인들을 단속하고 있다.

여성 안수를 반대하는 보수 교단(합동, 합신, 고신)에서는 페미니즘으로 촉발된 ‘여성 신학’이 성경의 권위를 훼손한다는 가부장적 논리와 ‘여성안수=동성애‘라는 억지 프레임을 만들어 철벽 방어를 치고 있다. 심지어 최근엔 페미니즘을 신천지와 비슷한 “신종 이단”이라고 하면서 “하나님 말씀과 페미니즘은 맞지 않는다”라는 발언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는 하나님 말씀을 ‘누가’,‘어떻게’ 읽느냐에 따라 다르다는 걸 인정하지 않고, 오로지 ‘가부장적 성경 해석’만이 진리라고 생각하는 무지한 주장일 뿐이다. 남성이든, 여성이든 성경을 읽는 자의 입장과 관점, 지식 형성과 지위, 그리고 경험과 가치관에 따라 성경 해석은 다를 수 있으며, 이로써 균형 있고 풍성한 성경 읽기와 신앙 담론이 형성되는 게 아닌가! 해서 나는 기독교와 페미니즘은 양립해야 하리라고 본다.

2020년 11월 15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역 인근에서 대학생 연합 페미니즘 동아리 ‘모두의 페미니즘’ 소속 ‘낙태죄는 역사 속으로 TF팀’이 낙태죄 폐지 집회를 열자 낙태죄 찬성을 촉구하는 보수단체 회원들이 맞불 집회를 하고 있다. 2020.11.15.ⓒ뉴시스

페미니즘을 거부하는 교회의 가부장적인 불의한 현실을 보자. 끊임없이 발생하는 남성 목회자의 성추행 사건과 불법 촬영, 설교와 강의 때에 쏟아져 나오는 성차별적 설교와 성희롱 발언들, 재화의 독점과 여성 사역자 노동 착취, 남성 목사의 성폭력 범죄 은닉과 여성 교인을 ‘꽃뱀’, ‘이단’으로 몰아 정죄하며 내쫓는 일이 적지 않다. 그리고 60대 남성 중심의 기형적인 교회 직분 제도에 바탕해, 나이든 남성들이 교회 정치로 의사 결정권을 독점하고 있다. 이로 인해 여성, 청년, 청소년과 아동 교인을 위한 정책을 도무지 찾아보기 어려운 게 현 상황이다.

또, 2015년에 헌법재판소가 내린 ‘간통죄 위헌’이라는 판결에 대해선 십계명에 “간음하지 말라”고 분명히 명시되어 있음에도 침묵했던 반면에, 2019년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위헌’ 판결에 대해선 십계명을 들어 여성에게 낙태죄를 물어야 한다는 선택적인 입장을 보였다. 그리고는 교회의 젠더 권력 구조 안에서 발생하는 성차별과 성추행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고 남녀평등을 외치면, ‘페미니즘’, ‘젠더 이데올로기’라는 가상의 적을 상정하여 이단으로 몰며 배척하고 있다. 이처럼 교회는 표면상으론 ‘성경의 권위’를 앞세우지만, 실상은 ‘가부장성’을 강화하면서, 페미니즘을 통해 여성의 인권과 남녀평등의 정신을 깨우친 여성들의 주체적인 인식과 저항을 차단하고 있다.

젊은 여성들이 교회 내 불평등한 성역할과 성차별, 소통 부재와 목회자의 가부장적 모습에 회의를 느껴 교회를 떠나고 있다면, 페미니즘이 교회를 파괴하는 게 아니라, 교회의 가부장성이 오히려 젊은 여성을 내쫓고 있는 것이 아닐까. 젊은 여성을 내쫓는 건 교회를 무너뜨리는 일이요 사회로부터 고립되게 만드는 어리석은 일이다.

나는 총신대에서 ‘교회여성리더십’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후, 동 대학에서 '현대사회와 여성'을 강의하면서, 보수 교단의 차별적인 여성관을 개선하기 위해선 ‘성경적 페미니즘’이 필요하다는 비전과 담대함을 가지게 되었다. 페미니즘이야말로 남성 중심으로 심하게 기울어진 교회의 성경 해석과 신학 담론, 가부장적 성문화를 판별해주는 리트머스 시험지라고 생각한다. 페미니즘이 교회의 가부장적 신앙 체제를 흔들며 관습에 균열을 일으키는 것 같아 불편할 수도 있다. 하지만 페미니즘의 도전과 저항이 오히려 교회를 평등하고 건강한 공동체로 거듭날 수 있는 자극제가 될 것이며, 하나님 나라 복음의 실현과 사회적 책임을 위한 남녀파트너십을 모색하는 ‘방향타’가 될 것이라 본다.

교회 안녕을 위해 페미니즘은 필요하다!

‘성경적 페미니즘’이라는 단어는 복음주의자 존 스토트(J. Stott)가 엘레인 스토키의 『페미니즘의 옳은 점』이라는 책을 인용하면서 소개하였는데, 그는 성경적 페미니즘의 기원을 종교개혁으로 보면서 신학적 토대를 규정하였다.

나는 ‘성경적 페미니즘’이란 그리스도 복음을 믿는 인격적 주체로서 그리스도 복음과 여성, 여성과 교회, 여성과 남성의 관계를 읽어내는 ‘또 다른 관점’이라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이루어진 가부장적 성경 해석은 마치 하나님을 높이고 찬양하는 것 같지만, ‘남성성’을 지나치게 특권화한 나머지 여성에 대한 차별. 배제, 혐오의 죄악을 정당화해왔다. 그리고 페미니즘과 젠더의 현실성을 무시한 가부장적 성경해석은 기독 신앙과 성(性)의 상관성을 간과하면서, 성육신적이며 인격적인 복음을 놓쳐버렸다. 이러한 가부장적 성경해석이 ‘성경적’인 것처럼 회칠해지고 교리로 굳어지면서, 나를 포함한 교회 여성은 복음적 위로와 자존감도 없이 남성 목회자가 시키는 대로 끌려다니는 불행한 신앙생활을 해왔다.

2017년 열린 예장 합동 총회장 앞에서 여성안수 허용을 요구하는 총신대 여동문회 회원들. 사진 제일 오른쪽이 강호숙 박사.ⓒ기타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에서 “당신이 구하려는 조선에는 누가 사는 거요? 거기에는 백정은 살 수 있소? 노비는 살 수 있소?”라는 대사는 하나님 나라를 추구하는 교회에서 왜 성경적 페미니즘이 필요한지에 대한 힌트를 준다. 이는 지금까지 기독인들은 ‘예수 믿어 천국 간다’는 것에만 몰입하였어도, 막상 하나님 나라에서 남녀가 어떤 관계 속에서 영원히 살아가야 할 것인가에 대해선 관심을 가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재 남녀 각자가 자신의 성 정체성과 역할, 그리고 하나님과 인간, 남녀관계와 창조 세계와의 관계에 대해 서로의 입장을 나누는 건, ‘지금 여기’에서만 아니라,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서까지 이어지기 위한 진리 추구의 일이기도 하다.

교회에 페미니즘이 필요한 이유는 여성을 이해할 수 있고, 여성을 지으신 하나님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성을 초월한 무한한 인격을 지니신 분이기에, 남성만이 하나님을 대표해선 온전한 하나님을 이해할 수 없다. 성경적 페미니즘은 여자가 남자에게서 나온 것 뿐만 아니라, 남자도 여자에게서 나오며, 남자와 여자 모두 하나님에게서 나왔음을 말하려는 것이다(고전 11:11-12). 성경적 페미니즘은 남녀 모두 동등한 위치에서 서로 마주 보며 어우러질 때, 비로소 하나님의 형상을 이룰 수 있다고 말하려는 것이며, 주 안에서 남자 없이 여자만 있지 않고, 여자 없이 남자만 있지 않다는 걸 말하려는 것이다.

COVID-19 사태로 하나님과 인간, 그리고 자연 세계가 모두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모든 존재의 자율성과 공존, 그리고 상호 의존성과 연합의 가치가 새로 조명되고 있다. 이때 교회는 여성들이 주체성을 가지고 여성됨의 권리, 자신의 정체성, 자유와 복음적 사명을 맘껏 펼칠 수 있도록 평등하고 열린 공동체가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페미니즘이 교회의 가부장적 불의를 판별하며 견제할 때, 비로소 교회는 하나님 나라 공동체로 나아갈 수 있다. 이런 연유로 나는 성경적 페미니즘이 교회 안녕을 위한 인식론적 관점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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