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행 시달리는 요양보호사를 외면하는 ‘노인장기요양보험법’

전국요양서비스노동조합 요양사들이서울 여의도 국회 앞 일대에서 열린 3.25 요양노동자 하루멈춤 집단행동 처우개선과 고용안정 보장을 촉구하며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자료사진.ⓒ김철수 기자

요양보호사 A씨는 전립선 수술을 한 남성 어르신을 돌보러 갔다가 성폭행을 당할 뻔했다. 성추행과 막말을 일삼던 그 어르신은 어느 날 A씨와 단둘이 집에 있게 되자 A씨에게 달려들었다. 놀란 A씨는 도망갔지만 달려드는 어르신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더이상 도망칠 곳이 없던 A씨가 휴대폰을 들면서 "녹음하겠다"고 하자 그 어르신은 "에이"라고 하면서 방으로 돌아갔다. A씨는 성폭행을 당할 뻔한 아픈 기억을 다시 끄집어내면서 "사각지대에서 일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요양보호사 B씨도 자신이 돌보는 어르신으로부터 수시로 성추행을 당했다. 그 어르신은 뒤에서 허리를 끌어안거나 뽀뽀를 해달라고 요구했다. 이를 밀쳐내면 "내가 그렇게 하면 안 되느냐"고 되레 따졌다.

B씨는 이런 성추행이 점점 더 노골적으로 변한 데에는 자신의 고용이 불안하기 때문이라고 봤다. B씨가 일하던 요양센터의 사회복지사가 '요양보호사가 수급자 마음에 안 들면 센터에 전화해서 언제든 바꿀 수 있다'고 말을 한 게 화근이라는 것이다. B씨는 "사회복지사 말 한마디가 우리의 생명줄인 밥줄을 끊고 있다"며 "저는 항상 위험에 노출돼 있다"고 눈물을 훔쳤다.

'요양보호사의 인권침해 실태와 정부부처 대책 마련을 위한 토론회'에 참석한 요양보호사들이 직접 증언한 일들이다.

토론회는 더불어민주당 윤미향·이수진·고민정·고영인 의원과 전국서비스산업노동조합연맹 전국요양서비스노동조합·전국사회서비스원노동조합의 공동주최로 15일 서울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열렸다.

대다수가 여성인 요양보호사들이 성추행을 당하는 등 인권이 침해되는 상황이 빈번히 발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법과 제도는 이들을 보호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법이 있더라도 돌봄서비스를 받는 '수급자' 중심으로 만들어진 탓이다.

폭행, 폭언, 성추행 시달리는 요양보호사들

전국요양서비스노동조합이 지난 3월 8일~13일 6일간 전국의 요양보호사 541명을 대상으로 노동환경 평가 설문조사를 한 결과, 근무 중 육체적, 정신적, 상해 경험이 있다는 응답이 81.3%에 달했다. 10명 중 8명이 육체적, 정신적 상해를 겪으며 일을 하고 있다는 것으로, "매우 심각한 수준"이라고 전지현 전국요양서비스노동조합 사무처장이 말했다.

특히 서비스 이용자에게 육체적 상해 경험이 있는지에 대해 중복응답을 허용해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92%가 맞거나 물리거나 뱉은 침을 맞거나 할큄이나 꼬집힘을 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중 13.3%는 마구 폭행당한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전 사무처장은 "심각한 폭력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정신적 상해 경험을 물은 결과, 욕설을 들은 경험이 83.7%, 성희롱 등이 43.3%로 나타났다. 서비스 이용자뿐만 아니라 그의 보호자로부터 욕설(20%)이나 성희롱 등(10.9%)을 당한 경우도 적지 않았다.

이로 인해 요양보호사들의 건강이 악화됐다. 요양보호사들이 응답한 '일을 하면서 생긴 질병' 중에는 근골격계 질환이 81%로 가장 높았다. 전 사무처장은 "요양보호사들의 근골격계 질환은 대부분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데, 중년 여성이 겪는 퇴행성 질병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정신적 우울감을 겪었거나 겪고 있다는 응답이 42%에 달았다. 그외 결핵(3.9%), 옴(19.8%), 독감 및 폐렴(5.2%) 등 전염성 질환에 걸렸다는 응답도 상당수 나왔다. 전 사무처장은 "위험수당이 필요한 이유"라며 "코로나19 문제만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혼자서는 거동하기 힘들어 돌봄이 필요한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요양보호사를 성추행하거나 폭행, 폭언 등을 하는 행위는 분명한 범죄 행위라고 지적했다.

민주화를 위한 변호사모임 소속 이주희 변호사(법무법인 다산)는 "폭언, 폭행, 성폭행이 계속 발생하고 있는데, 이건 형사(법)적으로 보면 모두 범죄"라며 "예방이 제대로 안 되는 것도 심각한 문제지만, 지금 발생하는 범죄조차 제대로 조치가 되지 않는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그럼에도 요양보호사들은 이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었다.

전 사무처장은 "참으라거나 싫으면 나가라는 (상황에 직면했다고 하는) 응답 비율은 재가 요양보호사가 시설 요양보호사에 비해 높게 나타났다"며 "요양보호사들은 방문서비스가 중단되면 해고와 같은 상황에 처하게 되므로 참거나 나가라고 하는 기관에 대응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15일 열린 요양보호사의 인권침해 실태와 정부부처 대책 마련을 위한 토론회에서 요양보호사들이 인권침해 사례를 발표하고 있다.ⓒ영상 캡처

법이 있어도 서비스 수급자만 보호하고 요양보호사는 뒷전

전문가들은 요양보호사들이 적극 대처할 수 있도록 법과 제도가 정비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요양보호사에게 '알아서 대처하라', '참으라'는 식으로 책임을 떠넘기면 안 된다는 것이다.

전 사무처장은 "모든 게 요양보호사 책임으로 떠넘겨지는 건 심각한 문제"라며 "온갖 욕설을 다 듣고 성추행을 당해도 참아야 하느냐고 질문하고 싶다. 이런 상황에서 호소하고 보호할 수 있는 매뉴얼이 마련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관련해 현행 법과 제도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대표적으로 노인장기요양보험법과 산업안전보건법이 있다고 최은희 을지대학교 간호학과 교수는 지적했다.

노인장기요양보험법 제35조에 따르면 장기요양기관장은 요양보호사가 수급자 및 그 가족으로부터 폭언·폭행·상해·성희롱·성폭력, 그리고 급여 외 행위 제공 요구로 인해 발생한 고충의 해소를 요청한 경우 업무의 전환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적절한 조치를 해야 한다.

하지만 이는 현실에서 제대로 적용되지 않고 있다. 심지어 대통령령에도 법 이상의 구체적인 조치가 규정돼 있지 않다. '이 경우 장기요양기관의 장은 해당 수급자 또는 수급자 가족과 상담을 실시해야 한다'는 정도만 덧붙인 정도다. 이에 대해 이 변호사는 "구체적인 내용이 없어서 사실상 상위법의 동어반복 수준"이라며 "법의 나태함"이라고 비판했다.

또한 노인장기요양보험법에는 장기요양기관장과 그 종사자는 인권에 관한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내용이 담긴 반면, 요양서비스 수급자에 대해서는 인권교육을 '실시할 수 있다'고만 나와 있다. 이 변호사는 "수급자에 대한 인권교육은 기관의 재량 및 선택사항"이라며 "그러나 실제 인권침해는 사실상 수급자 또는 그 가족과 요양보호사의 관계에서 발생하고 있다는 점에서 요양보호사 일방에게만 인권교육을 실시하는 것은 실효성이 없다"고 꼬집었다.

산업안전보건법에 제41조에는 '고객의 폭언 등으로 인한 건강장해 예방조치'가 담겨 있다. 특히 사업주는 업무와 관련해 고객 등 제3자의 폭언 등으로 노동자에게 건강장해가 발생하거나 발생할 현저한 우려가 있는 경우에는 업무의 일시적 중단 또는 전환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필요한 조치를 해야 한다.

또한 노동자는 사업주에게 조치를 요구할 수 있고, 사업주는 그 요구를 이유로 해고 또는 그 밖의 불리한 처우를 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이들 역시 고용불안을 겪고 있는 요양보호사들에겐 제대로 작동되지 않고 있는 현실이다.

이 변호사는 "현재의 법에는 요양보호사의 노동조건과 인권보호를 위한 내용이 매우 부실해 문제 상황을 예방하거나 노동자를 보호하거나 문제에 대한 조치를 취하는 구체적인 근거가 되지 못하고 있다"며 "일관된 기준조차 없다는 점에서 문제가 크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법령의 제·개정, 제도의 전면 재정비가 시급히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이 변호사는 "폭언 등 인권침해 발생시 요양보호사를 보호하고 재발을 막기 위해 노인장기요양보험 수급자를 관리하는 건강보험공단에 조치 의무를 지워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전국요양서비스노동조합이 3월 8일~13일 6일간 전국의 요양보호사 541명을 대상으로한 노동환경 평가 설문조사 결과ⓒ전국요양서비스노동조합

"요양보호사도 분명히 노동자"

궁극적으로는 요양보호사를 노동자로 분명히 인식하고 정부와 기관이 책임지고 이들의 권리를 보호해야 한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한인임 일과건강 사무처장은 "현행법상 각 요양기관에 등록돼 있고 재가요양 활동을 하고 있는 요양보호사들은 노동자"라며 "각 시설과 고용관계를 구축하고 있기 때문에 논란의 여지가 없다"고 단언했다.

그러면서 "근로기준법, 산업안전보건법, 최저임금법, 노동조합법 등 다양한 노동자 보호법이 작동하고 있다. 노동자들은 이 법의 보호를 받아야 한다. 보호 주체는 국가와 요양기관"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그런데 노동자들은 근로기준법이나 산업안전보건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대표적인 사례가 근골격계질환, 고객 등으로 인한 폭력 경험, 내부 관리자의 괴롭힘, 감염 등에 노출된 것"이라며 "이는 근로기준법에서 규제하고 있는 직장 내 괴롭힘 금지 조항, 산업안전보건법에서 규제하고 있는 보건상의 조치 중 근골격계 질환, 고객응대근로자 보호 조항, 감염예방 조치 조항 등을 이행하지 않은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무법천지"라며 "일단 법대로 하라"고 한탄했다.

최 교수는 "고객과 관리자의 요양보호사에 대한 인식 변화가 필요하다. 관리자가 단순히 '요양보호사는 언제든지 바꿀 수 있는 사람'으로 인식하거나 '무조건 참아야 하는 사람'으로 인식하지 말고 책임지고 관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보건복지부가 실질적으로 요양보호사를 보호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며 "센터나 시설을 평가할 때 보건복지부가 이런 요소를 반영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관리자의 인식은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변호사는 "궁극적으로는 노인돌봄체계가 전면 개편돼야 하고 요양보호사의 노동권 확보에 주안점을 둔 법령 제·개정이 필요하다"며 "가령 요양보호사의 지위향상을 위한 특별법 또는 돌봄노동자에 대한 기본법 등을 제정해 국가와 사회가 노인이 인간으로서 존엄을 유지하며 살아가는데 필요한 돌봄을 제공할 책임을 지며 그 공공성을 보장해야 할 의무가 있음을 선언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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