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안법에 잘못 걸릴라’ 보수매체 자료 골라 평화통일 교육하는 현실

국가보안법 탓에 교육법과 정부 지침도 모순 투성이

“북한에 대한 좋은 인상은 하나도 없고...우선 우리가 북한에 대해선 안 배우거든.”

도쿄 조선중고급학교 2학년 학생이 한일교류회에 참석해 통역을 하다가 남한 학생에게 “공화국(북한)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느냐”고 묻자 돌아온 답변이라고 한다. 이는 올해 5월 출간된 재일조선학교 학생들의 문학작품인 ‘꽃송이’ 3집에 담긴 일화다.

당시 질문을 던졌던 재일조선인 학생은 ‘꽃송이’에서 “나는 그 질문에 어떤 기대를 품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의 입에서 튀어나온 대답은 나의 기대와는 완전히 어긋나는 것이었다”며 “기대는 어디까지나 상상이었고 그의 말은 현실이었다”고 소회를 밝혔다.

오은정 전국교직원노동조합 통일위원장(교육학 박사)은 17일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린 ‘평화통일교육과 국가보안법’ 토론회에서 이 일화를 소개하며 교육현장에서 겪고 있는 통일교육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오 위원장은 “아마도 그 ‘남조선 동무’는 한일역사교류에 참석할 정도로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다운 학생일 터이고, 따라서 조선학생은 평범한 통일교육을 받은 남한 학생을 만나게 된 것”이라며 “재일조선인으로서 유무형의 차별을 받고 버티며 민족정체성과 우리역사, 말, 글 교육을 받은 ‘남도 북도 아닌’ 학생이 목격한 그 모습은 통일교육의 결과가 응축된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그는 “과연 통일교육은 이뤄지고 있는가. 국가보안법에서 (북을) 괴뢰집단으로 명명하고 그에 관한 작은 조각정보도 차단당하며, 그 곳이 사람 사는 곳으로 자체의 내적질서를 가지고 있다고 말하기만 해도 인간존엄성과 평화를 짓밟히는데, 통일교육이 과연 가능한가”라고 반문했다.

오 위원장은 “조선학교 학생의 ‘남조선 동무’에게 조국통일을 염원하도록 가르치는 것은 사실 불가능하다”며 “통일교육의 근본적인 걸림돌”인 국가보안법을 폐지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17일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린 평화통일교육과 국가보안법 토론회ⓒ국가보안법 7조부터 폐지운동 시민연대

“‘북을 국가안보에 위협을 가하는 존재로 인식하면서 남북평화 위해 노력하라’?
성인들도 쉽게 이해할 수 없는 내용”

현재 평화통일교육은 통일부의 통일교육지원법과 통일교육지침서를 바탕으로 진행해야 한다. 2018년에 개정된 통일교육지침서인 ‘평화·통일교육:방향과 관점’에서는 종전과 달리 평화와 평화의식을 핵심 가치로 부각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변화로 평가되고 있다.

하지만 국가보안법의 존재로 인해 교육 방향은 여전히 모순적이라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특히 지침서에 담긴 평화·통일교육의 중점 방향‘ 15가지 중 5번 “통일은 튼튼한 안보에 기초해 평화와 번영을 구현하는 방향으로 추진되어야 한다”와 6번 “북한은 우리의 안보를 위협하는 경계의 대상이면서 함께 평화통일을 만들어 나가야 할 협력의 상대이다”라는 내용이 모순을 보인다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이성주 경기평화교육센터 교육국장은 토론회에서 “여전히 북에 대해서는 이중적인 시각과 안보 중심적인 시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북을 국가안보에 심각한 위협을 가하는 존재로 인식하면서 동시에 남북의 평화를 위해 노력한다는 말은 청소년뿐만 아니라 성인들도 쉽게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이라며 이런 교육 방향을 지키면서 ‘진정한 평화통일교육’을 진행하긴 어렵다고 토로했다.

그는 “북은 언제든지 적이 될 수 있다는 가정을 하면서, 동시에 교육 및 협력을 해야 한다는 모순적인 교육 내용이 여전히 개정이 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라고 비판했다.

또한 7번 “북한에 대한 이해는 객관적 사실과 인류 보편적 가치 규범에 기초해야 한다”는 ‘평화·통일교육의 중점 방향’도 국가보안법과 통일교육지원법 11조의 ‘고발 조항’으로 인해 현장에 모순적으로 작용한다고 이 교육국장은 지적했다.

통일교육지원법 11조는 ‘통일부 장관은 통일교육을 하는 자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침해하는 내용으로 통일교육을 했을 때에는 시정을 요구하거나 수사기관 등에 고발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이 교육국장은 “(평화·통일교육의 중점 방향의) 7번 조항에서는 북을 단편적인 모습으로 바라보지 말고 다양한 정보를 바탕으로 종합적으로 판단하라고 서술돼 있다”며 “하지만 현재 대한민국에서 일반 시민이 국가보안법을 지키면서 북에 대해 다양한 정보를 합법적으로 얻을 수 있는 방법은 쉽지 않다. 북의 주민을 직접 만날 수도 없고, 연구 목적이 아닌 이상 북의 방송과 노동신문은 일반인이 볼 수도 없으며, 북의 서적 또한 구할 수가 없다”고 비판했다.

또한 “일반인이 쉽게 얻을 수 있는 정보는 대한민국 주요 언론 매체의 자료지만 대한민국 주요 매체들은 대부분 북을 악마화하거나 부정적으로 묘사하는 경우가 많다”며 “그런 매체를 주로 접하는 대한민국 시민들은 북을 객관적인 시각 또는 종합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이 어렵고, 단편적이고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17일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린 평화통일교육과 국가보안법 토론회ⓒ국가보안법 7조부터 폐지운동 시민연대

‘자기검열’ 하며 보수 언론매체 자료로 평화통일 교육하는 현실
“국가보안법 폐지해야” 한 목소리

그런데도 이 교육국장은 어쩔 수 없이 그런 자료를 활용해 평화통일 시민교육을 진행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자기검열’을 할 수밖에 없도록 하는 국가보안법 탓이다.

그는 “교안을 학교에 미리 보내서 검열당하는 일도 있고, 수업에 들어가기 전에 교장실에서 교실에서 진행할 수업을 그대로 시영해야만 하는 경우도 있었다”며 “공교육 현장에서 학생 및 교사를 만나 평화통일교육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강사들도 끊임없이 자기검열 속에서 교안을 준비해야만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초기에 만든 통일교육의 교안에 쓰이는 참고자료는 모두 보수언론에 있는 자료를 인용해야지만 무사히 학교에서 수업을 진행할 수가 있었고, 참고 동영상의 경우도 보수언론의 방송장면을 편집한 자료를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고 토로했다.

그는 “보수적인 매체에서 쓰이는 자료가 아닌 진보적인 매체에서 쓰는 자료를 가지고 수업에 들어갈 경우 학교의 반발이 예상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보수언론의 자료에서 그나마 쓸 만한 내용을 추려서 교안의 참고자료로 교육을 진행해왔다”고 덧붙였다.

이 교육국장은 “이제는 국가보안법이 폐지되어서 북의 다양한 모습을 가감 없이 시민들에게 보여주고 알려주고 싶다”며 “통일교육지원법 및 ‘평화·통일교육:방향과 관점’도 수정이 되어서 더 이상 북을 평화통일의 대상이자 안보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교육을 하지 않고, 남과 북이 한반도에서 평화롭게 함께 사는 방법을 배우는 교육을 통해 북을 평화통일의 동반자로 인식하는 교육을 진행하고 싶다”고 호소했다.

교사 출신인 열린민주당 강민정 의원도 “통일교육지원법 11조에 있는 고발조항 때문에 교육을 하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 모두가 이상한 자기검열에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강 의원은 “사상을 억압하고 생각을 통제하는 반헌법적인 법률인 국가보안법은 우리 아이들을 창의적이고 비판적인 민주시민으로 길러낼 수 없다”며 “국가보안법은 반드시 폐지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민애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통일위원장은 “평화통일의 상대방인 북한에 대해 알고자 하는 노력은 곧 처벌을 감수해야 하는 행위가 되는 현실에서 이를 개인에게 맡겨두는 것은 사실상 그런 고민을 하지 말라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비판했다.

또한 “남북간에 수차례 이루어진 합의는 남북이 상호대화와 협력의 대상임을 인정하고, 평화통일을 위해 함께 노력할 것을 약속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 내용과 그 의미가 무엇인지, 우리가 이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 것인지에 대한 판단은 개인의 몫이 된다”며 “북한을 대화와 협력의 상대방으로, 통일의 동등한 주체로 인식할 수 있음이 전제돼야 하지만, 이를 위한 제대로 된 교육이 어려운 상태에서 이러한 인식 판단 또한 개인의 몫이 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교육과정과 교육현장에서 헌법에 대한 교육, 평화통일에 관한 교육이 제대로 이뤄질 수 있어야 하지만 국가보안법의 존재가 이러한 교육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며 “국가보안법의 폐지와 교육현장에서의 평화통일교육 모두가 충족될 때 국민이 평화통일의 진정한 주체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토론회는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열린민주당 강민정 의원, 더불어민주당 서영석 의원 주최로 열렸으며, 국가보안법 폐지 국민행동과 국가보안법 7조부터 폐지운동시민연대가 주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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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현 기자 응원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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