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자라는 아빠] 약시가 뭐길래...아빠 마음은 롤러코스터를 탔다

약시 치료를 위해 안경을 쓰기로 한 수현이...아이와 아빠는 함께 적응해 갑니다

회사 일이 바빠 아내 전화를 놓쳤습니다. 그리고는 퇴근 시간이 되어서야 다시 전화를 걸었습니다.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아내의 말을 듣고는 심장이 덜컹 내려 앉고, 머리가 아찔해졌습니다.

- 수현이……. 안경 써야 한대.

아내는 오늘 있었던 오늘 있었던 영유아 건강 검진 시력 검사 결과에 대해 말해주었습니다.

-벌써 안경이라니! 하필 나한테서 눈 나쁜 유전자를 닮아버렸나! 시력이 나쁘면 얼마나 불편한데…….

나도 모르게 시력이 낮은 것에 대해 '나쁘다'고 표현하고 있었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상황에 대해 다시 물어보았습니다. 아이의 약시(弱視) 치료를 위해 안경을 써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의사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하자'고 답했지만, 어쩐지 안경을 쓰게 하는 것에 확신이 서지 않았습니다.

'한 번 쓰기 시작하면 앞으로 평생 써야 하는 거 아닌가?', '안경 말고 다른 방법은 없을까?' 여러가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습니다. 무엇보다 안경 착용의 불편함을 익히 알기에 이 상황이 쉬이 받아 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안경 자료사진ⓒ사진 = pixabay

곰곰히 생각해보니, 내가 느끼는 당혹감과 거부감, 두려움은 '약시가 무엇인지 잘 알지 못한다'는 것에 뿌리를 두고 있었습니다. 20년 넘게 안경을 써왔는데도, 약시 치료를 위해 안경을 쓴다는 것도 처음 알았습니다.

아내가 병원에서 받아 온 안경 처방전을 해석할 수 없어 동네 안경원에 찾아갔습니다. 처방전에 적힌 영어와 숫자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무거운 마음으로 물어봤습니다. 설명을 듣고 보니 '왼쪽 시력은 1.0인데 비해, 오른쪽 시력은 안경을 써도 0.5밖에 되지 않으니 시력 발달을 위해 안경을 처방한다'는 의미였습니다.

처방전 내용과 같이, '약시'란 안경을 써도 시력이 0.8이 되지 않거나, 양쪽 눈의 시력이 시력표에서 두 줄 이상 차이가 나는 경우를 뜻했습니다. 안경사 아저씨는 (자기 아들에 비하면) 심한 약시는 아니니, 아이가 안경을 항상 쓰게 하고 야외 활동과 공놀이를 하면 도움이 될 거라고 위로를 해주었습니다. 그렇지만 시력이 얼마나 회복될지 여부는 장담할 수 없다는 말도 함께였습니다.

내가 낙천적인 성격이긴 하지만 아이 건강 문제 앞에선 예외입니다. 안경을 쓰는 것도 마음 아픈데, 안경을 써도 시력 1.0이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이 더 괴로웠습니다. 미안했습니다. 아이가 아프거나 다치면 양육자는 자신의 행적을 되돌아보기 마련입니다. 죄책감은 곧 책임감의 다른 얼굴이기도 하니까요. 만화를 자주 보여줬기 때문일까, 코로나를 핑계로 바깥 활동을 적게 했기 때문일까, 예방할 수는 없었을까, 이제 무엇을 해야 할까.

알아야 할 건 모두 알고, 해야 할 건 모두 하고 싶었습니다. 나는 그날 밤이 깊도록 약시에 대해 검색했습니다. 그리고는 다음 날 아침, 약시 치료를 위해 안경을 쓰기로 했습니다. 그게 최선이었습니다.

나는 출근을 했고, 아내는 아이와 그 안경원으로 갔습니다. 아이는 자신의 안경테를 직접 골랐습니다. 새로 맞춘 안경을 쓴 아이의 사진을 메시지로 받았습니다. 아, 만화 캐릭터처럼 귀엽긴 한데, 왠지 내 마음이 찢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퇴근길 발걸음이 무거웠습니다.

현관문을 여니 안경 쓴 아이의 모습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습니다. 푸른 빛을 튕겨내는 투명한 렌즈 너머, 아이의 까만 두 눈동자가 맑고 예뻤습니다. 형광등 아래 윤기 나는 바가지 머리와 어울렸습니다. 왠지 모를 슬픈 마음을 들뜬 리액션으로 감추며, 아이의 새로운 모습과 마주했습니다.

- 수현아~ 아빠 왔어! 너 오늘 눈 업그레이드 했다면서! 구경 한 번 해보자! 투명이네? 정말 멋진 안경테다!

안경이라는 '시력 업그레이드 장치'를 갖게 된 걸 축하한다는 말과 함께, 과학자가 꿈인 아이에게 새하얀 실험실 가운을 주문해주었습니다. 안경에 가운이 있으니 이제 과학자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며 바람을 넣었습니다. 그렇게 내 마음도 달랬습니다.

아이에게 안경 사용법에 대해 여러 가지를 알려주었습니다. 안경 렌즈 만지지 않기, 자기 전엔 언제나 같은 장소에 벗어두기, 잠시 벗어둘 땐 안전한 곳에 벗어두기, 안경 쓴 채로 부딪히지 않게 조심하기 등을 이야기했습니다. 평생 근시(近視)라 안경을 써온 나의 경험이 이렇게 쓰일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이젠 나도 아이도 적응해야 합니다. 우리의 일상에 변화가 생겼습니다. 코로나 시국의 마스크가 그렇듯, 안경도 아이에게 필수 착용품이 되었습니다. 마스크 없이 문 밖을 나섰다가 '아차!' 하며 집에 돌아오는 코로나 적응기를 거쳤듯, 잠 자는 시간 외에는 항상 안경을 착용하는 습관을 들이는 나날입니다. 아빠가 안경을 써서 인지 아이는 안경 착용에 별 거부감이 없었습니다. 다행이었습니다.

"안경 쓰니까 불편한 게 있냐고?" 새 안경 쓰고 오물오물 아이스크림 먹는 수현이, 2021.06ⓒ사진 = 오창열

안경을 쓴 지 한 달이 지났을 무렵, 둘이 햄버거 가게에서 저녁을 먹으며 아이에게 물어보았습니다.

- 수현아, 안경 쓰는 건 어때? 좋은 점이나 싫은 점이 있어?
- 좋은 점도 없고, 싫은 점도 없어.
- 하나쯤은 있을 법한데... 천천히 생각해볼래? 기다릴게.
- 음... 딱 한 개 있어. 마스크 썼을 때 안경이 뿌옇게 되는 게 불편해.

후식 아이스크림을 오물거리는 입은 귀여웠지만 대답은 의젓했습니다. 안경을 썼는데 곰곰이 생각해봐도 불편한 점이 한 개 뿐이라는 점, 그 불편한 점을 내가 덜어줄 수 있다는 점이 감사했습니다. '김 서림 방지 안경 닦이'가 서랍 속에 있었거든요.

육아가 즐겁기만 하면 얼마나 좋을까요. 안경 없으면 온 세상이 초점이 맞지 않고 흐릿하게 보이는 나로서는, 아이 시력이 1.5쯤 되길 바랐습니다. 그렇지만 지금 가진 현실적인 바람은 '안경 쓴 시력 1.0'이 되는 것입니다. 아이는 약시 치료를 마친 후에도 안경을 계속 써야 할 수 있고, 언젠가 약시가 재발을 할 수도 있습니다.

아이는 내내 아무렇지도 않은데 아빠인 내 마음만 롤러코스터입니다. 할 수 있는 것에 최선을 다하는 하루를 보내기로 했습니다. 원근감 놀이가 눈에 좋다고 하여 아이를 데리고 저녁마다 축구공과 고무 원반을 들고 나가 밖에서 놀다 들어옵니다.

원반 잡는 포즈인데 체조하는 줄. 2021. 06ⓒ사진 = 오창열

매일 밤 잘 준비를 마친 후에는 아이 지문으로 얼룩진 안경 렌즈를 깨끗이 닦아 안전한 테이블에 올려놓습니다. 스스로 안경을 닦는데 아이는 아직 익숙치 않습니다. 아이도 알고 있습니다. 아빠가 출근 전에, 퇴근 후에, 자기 전에, 그리고 그 사이사이에 자신을 위해 안경 렌즈를 닦아준다는 것을요. 암막 커튼이 쳐진 어두운 방에서 아이는 내 팔을 베고 눕습니다. 사랑을 받고 있다는 걸 아는 아이는 자기 방식대로 마음을 표현합니다.

- 아빠, 내일은 아빠가 하원 하러 와줘.
- 왜?
- 엄마는 자주 하니까.
- 아빠가 퇴근하고 가는 동안 많이 기다려야 할 텐데?
-괜찮아. 같이 놀 친구 있어.

우리는 두 마리 새우처럼 같은 방향으로 돌아눕습니다. 아이의 등을 품에 안고 하루를 마칩니다. 수현아, 사랑해. 내일 또 열심히 놀자. 밖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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