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으로 세상읽기] 남자들의 수다

말이 참 많은 시대입니다. 사람 사는 곳이니 말이 많은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유독 요즘 더 많다고 느껴지는 것은 그만큼 생각을 표출할 방법과 공간이 늘어났고, 표출하면 빛의 속도로 사람들에게 전달되기 때문이겠지요. 몇 년 전부터 남성들 몇이 모여서 수다를 떠는 프로그램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났습니다. 그 장면을 보면서 ‘수다’라는 것이 이제 남성들에게도 어색하지 않은 시대가 되었다는 생각을 했는데 그림 속 사내들의 수다는 어떤 것이었을까요?

이발소 The Barber's Shop 1875 onc 45.8x70.8ⓒ개인소장

손님의 면도를 막 시작하려던 참에 옆에서 기다리던 손님이 말을 걸어왔습니다. 조금씩 주고받던 말이 급기야는 시골 마을의 정보통인 이발소 주인이 신문까지 꺼내 드는 상황에 이르고 말았습니다. 칼을 든 손을 허리에 걸치고 신문을 든 주인의 얼굴이 단호한 것을 보면 아마 정치 이야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세상에 대한 약간의 정열만 있다면 별 준비 없이 자신의 주장을 펼 수 있는 주제가 정치와 관련된 것 아니겠습니까?

목에 가운까지 걸치고 준비를 끝낸 손님은 황당한 표정으로 이발소 주인을 올려다보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따질 수도 없습니다. 잠시 후면 이발소 주인의 칼을 든 손에 자신의 얼굴을 맡겨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발소는 몸을 숨길 곳도 치장할 곳도 없는 작은 광장입니다. 그곳에서는 가장 원초적이지만 매일 온몸으로 부딪히는 이야기들이 적당한 허풍과 함께 떠다니는 곳이지요. 그래서 그곳 이야기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날 것의 싱싱함이 있거든요. 그나저나 이 수다가 언제쯤 끝날까요?

영국 빅토리아 시대의 대표적인 화가 중 한 명이었던 조지 엘가 힉스 (George Elgar Hicks/1824~1914)의 작품들은 소설가 찰스 디킨스의 작품을 연상케 하는 그림이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림에 이야기가 많이 담겼다는 의미이겠지요.

대화중인 시골 사람들 Peasants in Conversation 1877 oil on canvas 76cm x 97cmⓒMuseum Oskar Reinhart

무대가 바뀌어 이제 시골 마을입니다. “좀 큰소리로 읽어봐!”, “그래, 뭐라고 쓰여 있는 거야?” 한동안 열을 올리던 사람들이 신문을 든 사내 옆으로 모여들었습니다. 신문을 읽는 사람이나 주변 사람들 모두 표정이 심각합니다. 기사의 내용이 자신들과 관련된 것이기 때문이겠지요?

맨 오른쪽에 앉은 노인의 자세가 가장 간절합니다. 손은 기도하듯 모아 무릎 위에 올려놓았고 빈약한 다리는 긴장한 듯 자신도 모르게 뒤로 당겨져 있습니다. 가진 것도 없고 힘도 없는 농민들을 긴장시키는 이 기사의 내용이 무엇인지 저도 궁금합니다. 이 사람들을 걱정스럽게 하는 일이 없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 바람은 지금 여기, 이 순간에도 유효하지 않을까요?

빌헬름 라이블(Wilhelm Maria Hubertus Leibl/1844 ~ 1900)은 19세기 독일의 사실주의를 대표하는 화가라는 평가를 받습니다. 그를 따르는 화가들이 많아 ‘라이블 서클’, ‘라이블 그룹’이 만들어질 정도였습니다. 사실주의 화가 쿠르베와 각별한 인연을 맺었던 그는 독일 농촌 사람들의 삶을 화폭에 담백하게 담아내곤 했습니다.

정치 토론 Political Discussion 1889 oil on canvas 26.2cm x 33.9cmⓒ개인소장

“그러지 말고 내 말 좀 들어봐”, “됐어, 더 들어 볼 것도 없어!” 세상 어딜 가도 정치 이야기는 사람을 열 받게 하고 편을 가르는 모양입니다. 가장 잘 배웠다는 사람들을 모아 놓고 세상 이야기를 하는 TV토론 프로그램을 보다 보면, 아주 가끔 TV 속으로 들어가 패널들을 한 대씩 쥐어박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프랑스 시골 마을이라고 크게 다르지는 않겠지요.

아무래도 상대의 팔을 잡고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열세인 것 같습니다. 그의 앞에는 빈 잔이 3개나 쌓였습니다. 이렇게 되면 논리적인 이야기가 어렵지 않을까요? 나머지 세 사람의 표정도 냉랭한데 팔이 잡힌 남자는 시선을 아예 돌려 버렸습니다. 얼마나 화가 났는지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있습니다. 손으로 얼굴을 받치고 있는 사내의 표정이 참 재미있습니다. “그만 좀 하지, 또 시작했어. 병이야 병 ---” 쌓여가는 술잔만큼 분위기가 달아오르고 있습니다.

프랑스 화가 에밀 프리앙(Emile Friant/1863 ~ 1932)은 어린 나이부터 미술적 재능으로 고향 낭시에서 이름을 알렸고, 낭시 시정부의 후원으로 파리 유학을 떠날 정도였습니다. 초상 화가로도 유명했지만, 일반인들의 삶 속 다양한 모습을 자연스럽고 사진과 같이 세밀하게 묘사해 주목을 받았습니다. 그에겐 그림을 통해 사회를 개선해 보겠다는 소박한 목표도 있었습니다.

사람들 사이의 ‘수다’는 열린 사회로 가는 길 중의 하나입니다. 수다는 주고받을 때 흥미롭고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라는 것을 많은 이 들이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수다가 싸움이 되는 광경을 자주 만나게 됩니다. 어디쯤에서 멈춰야 할까요? 지금 우리 시대의 ‘수다’는 건강한 것인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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