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삼성전자 지배구조보고서에 이재용 설 자리는 없다

책임경영·준법경영 원칙상 이 부회장 직책 유지 부적절…시장신뢰·지속가능성 타격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해 5월 6일 오후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 다목적홀에서 경영권 승계와 노조 문제 등과 관련해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고 있다.2020.05.06ⓒ민중의소리

삼성전자 경영차질은 이재용 부회장 부재가 아닌 재직 탓이다. 삼성전자 의사결정구조에서 비상근 미등기 임원인 이 부회장 역할은 미미할뿐더러, 오히려 위법 행위자의 재직으로 경영 부담이 가중되는 상황이다. 사면·가석방 주장이 허황된 이유다.

삼성전자는 지난달 31일 지배구조보고서를 공시했다. 지배구조는 의사결정구조라고도 한다. 기업 경영에 있어 주요 사안의 결정이 이뤄지는 체계를 이른다.

삼성전자는 보고서에서 전문경영인 중심의 책임경영을 강조했다. 각 사업을 책임지는 김기남 반도체(DS) 부문장, 김현석 가전(CE) 부문장, 고동진 스마트폰·통신(IM) 부문장 3인이 최고의사결정기구인 이사회에 참여한다. 이사회는 공장 신설, 신주 발행, 배당 등 경영 기본방침과 업무집행에 관한 주요 사항을 의결한다.

보고서는 “IT 산업은 의사결정이 전략적으로 신속하게 이뤄져야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다”며 “각 사업에 대한 높은 이해도와 전문성을 갖춘 이사가 필요하므로, 각 사업 부문장을 사내이사로 선임해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시키고 있다”고 설명한다.

삼성전자는 경영 관련 결정의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이사회 내 경영위원회를 운영하고 있다. 3인의 부문장과 한종희 디스플레이 부문장, 최윤호 최고재무책임자(CFO)가 참여하는 경영위원회는 경영전략, 시설투자, 기술제휴, 공급계약, 출자 등에 대한 결정을 내린다.

이 부회장은 이사회 위원이 아니다. 삼성전자 보고서상 의사결정구조에서 이 부회장 자리는 없다. 실제 경영위원회는 이 부회장이 구속된 지난 1월 이후 현재까지 메모리·파운드리·연구개발 투자 등 10여건의 주요 안건을 결의했다.

삼성전자 의사결정구조로 미루어볼 때, 이 부회장 부재가 경영차질을 빚는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나아가 총수로서 이 부회장 역할에 대한 의구심도 제기된다. 다수 전문가는 삼성전자처럼 시스템을 기반으로 굴러가는 글로벌 기업에서 이사회에 참여하지 않는 총수 역할은 극히 제한된다고 역설한다. 현장 실무와 사안별 판단은 일선 임직원에 의해 이뤄져, 총수역할론은 의미가 없다는 얘기다.

백번 양보해도 이 부회장 역할은 실무진이 검토해 추린 몇 가지 방안 가운데 최종 선택을 하는 정도라고 전문가들은 설명한다. 이 경우에도 이 부회장 권한과 책임에 물음표가 붙는다. 이 부회장 판단이 전문경영인 판단보다 합리적이라는 보장이 없다. 판단에 대한 책임 소재도 불분명하다. 의사결정구조에서 제외되는 이 부회장은 투자 실패에 대한 책임을 질 위치에 있지도 않다. 실체가 희미한 총수의 혜안을 추종하는 건 삼성전자가 내 건 책임경영과도 배치된다.

지난해 1월 13일 수원 삼성 디지털시티에서 열린 ‘삼성전자 준법실천 서약식’에 참석한 삼성전자 대표이사들이 서약서에 서명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현석 삼성전자 사장, 김기남 부회장, 고동진 사장)ⓒ제공 : 삼성전자

이재용 직책 유지로 삼성전자 시장신뢰·지속가능성 타격

책임경영과 함께 삼성전자 경영원칙을 구성하는 준법경영 측면에서도 이 부회장의 직책 유지는 부적절하다.

삼성전자 보고서에는 ‘기업가치 훼손 또는 주주권익 침해에 책임이 있는 자를 임원으로 선임하지 않아야 한다’는 원칙이 명시돼 있다. 구체적으로는 횡령·배임 또는 자본시장법상 불공정거래 행위로 확정판결을 받거나 관련 혐의가 있는 자를 이사로 선임한 적 없다고 적었다.

이 부회장은 지난 1월 국정농단 사건 파기환송심에서 86억원 회사자금 횡령 등 혐의에 대해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또한, 불법승계 사건에서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시세조종, 외부감사법상 회계분식, 형법상 배임 등 위법 행위를 저지른 혐의로 1심 재판을 받고 있다.

삼성전자도 보고서에서 “횡령 등 혐의로 기소된 일부 미등기 임원에 대해 지난 1월 관련 재판에서 일부 유죄가 확정됐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우선 해당 임원을 비상근 미등기 임원으로 전환했다”며 “관련 법령 틀 내에서 경영환경과 해당 임원의 사업상 역할을 고려해 기업가치 제고에 부합되는 적절한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고 했다.

삼성전자는 위법 행위자를 임원으로 선임하지 않겠다면서도, 비상근 미등기 임원은 임원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논리로 이 부회장을 해임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보고서 기재 내용을 허위로 판단할 여지가 있는 대목이다.

한국거래소는 기업에 제출한 보고서의 가이드라인 준수, 기재 누락, 허위 기재 여부 등에 대한 전수점검을 실시한 후 미흡한 경우 정정공시 요구 등 조치를 취한다. 점검 결과는 오는 9월경 발표될 예정이다.

한국거래소 관계자는 “삼성전자의 보고서 기재 내용이 시장참여자에게 정확한 정보를 충실하게 제공하는지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부회장 위법 행위는 삼성전자에 실질적인 위협으로 작용한다. 한국기업지배구조원(KCGS)은 지난 4월, 이 부회장이 국정농단 사건으로 법정 구속된 점을 이유로 삼성전자 ESG 등급을 하향 조정했다.

ESG 등급은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판단하는 지표다. ESG 등급이 낮아지면, 은행 대출 이자가 올라가는 등 자금조달 비용이 증가하고, 주가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최근 지속가능성의 중요성이 대두되면서, ESG 등급 하락 영향이 점차 커지는 추세라고 전문가들은 전했다. 삼성전자 입장에서는 이 부회장 재직으로 경영 부담이 가중되는 상황이다.

일각에서 경영차질 운운하며 이 부회장을 풀어줘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이, 삼성전자는 시장신뢰와 경쟁력 훼손이라는 실질적인 타격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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