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고용을 요구하며 파업했던 국민건강보험공단(이하 건보공단) 고객센터 노조가 10일 만에 파업을 중단하고 업무에 복귀해 현장 투쟁을 하기로 했다. 건보공단 정규직 노조와 고객센터 노조가 참여한 노사 전문가 협의회에서 고객센터 노동자들의 직고용 관련 논의를 시작한다.
건보공단 고객센터는 건강보험 관련 민원에 대해 전화로 상담하는 업무를 한다. 공단 홈페이지에서는 고객센터의 업무 내용을 “상담업무의 범위는 건강보험 자격, 보험료, 보험급여, 건강검진, 의료급여, 노인장기요양보험 등 세부 업무와 2011년부터는 4대 사회보험 징수 통합과 관련된 업무를 상담하고 있습니다” 라고 설명한다. 실제 고객센터에서는 이에 더해 공단 업무 전반에 대한 정보 안내, 건강검진 사후관리, 금연상담 등도 한다.
고객센터의 업무가 국민에게 건강보험 관련 공공서비스 전반을 안내하고, 민원과 관련한 주요 정보를 제공하는 필수적인 업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이 업무를 맡고 있는 상담사 1,600여 명은 공단 소속이 아니다. 이들은 민간 기업에 소속돼 일하고 있다.
고객센터 업무는 2006년 이전에는 공단 직원들이 하는 일이었다. 당시 공단 측이 콜센터 업무를 외주화하며 내세운 논리는 전문성과 효율성이었다. 외주화의 근거가 ‘전문성 추구’가 될 수 있는지 의문이고, 효율성은 서비스 내용과 상관없는 비용 절감 측면의 문제였다.
그러나 민영화 구조에서는 고객센터가 제 기능을 하기 어렵다. 공단과 계약한 민간업체는 상담사를 실시간 감시하며 메시지로 3분 내 통화를 요구한다. 5분을 넘기면 관리자가 통화를 함께 청취하며 빨리 끊도록 지시한다. 노약자 등 정보 취약 계층 시민들이 문제 상황을 벗어나려면 상담이 길어질 수밖에 없는데, 친절하고 책임감 있게 대하면 무능한 상담사가 되는 구조인 셈이다.
민영 고객센터에서 상담 능력이란 빨리 끊는 기술을 의미한다. 하루 평균 150개의 콜을 받아야 하며, 전화가 울리면 2초만에 받고 한 통화당 3분이 넘어가지 않도록 관리한다. 대다수 상담사들은 최저임금을 받는다. 이렇게 효율성을 추구하는 외주화는 구조적으로는 서비스 수준과 질을 떨어뜨리고, 해당 업무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이 불편한 노동을 하도록 만든다. 민간이 수행하는 성과 중심 민원 업무는 시간 제한과 건수 처리로 정량화되고, 이를 민원서비스 효율화라 설명한다.
고객센터 노동자들은 민원인을 상대하는 업무적 특성 때문에 심한 감정노동과 폭력에 시달린다. 공공운수노조가 지난해 8월 건보공단 콜센터 노동자 중 노조 조합원 978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 방식으로 실태조사를 진행했다. 그 결과 건보공단 고객센터에서 일하는 노동자 10명 중 9명이 우울증 고위험군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고객의 무리한 요구를 경험했다는 응답 비율은 93.0%에 달했고 인격 무시 발언(87.2%)과 욕설(81.0%) 등을 겪었다는 응답의 비율도 매우 높았다.

민원인을 상대하는 업무는 전문성이 필요하고 상당히 까다로워서 여간 힘들지 않다. 필수적이지만 힘든 노동을 인건비 절감을 목적으로 외주화하고, 겉으로 드러나는 상담 건수, 응대 속도 등으로 효율성을 평가하는 것이 적절할까. 공공성과 연대성을 추구하며 정보 취약계층의 건강보험 접근성을 높이려는 건보공단 측 취지에 맞는 일인지 질문을 던져야 한다. 노동자들이 실적 압박 때문에 충분한 상담을 할 수 없고, 고용 불안 상태에서 불편한 노동에 시달려야 한다면 현재의 민간 위탁 구조를 직고용 구조로 바꿔야 한다.
고객센터 노동자의 직고용을 반대하던 정규직 노조가 노사전 협의회에 참여하고 현장 간담회를 개최해 노조원들의 의견을 수렴한다고 한다. ‘공정’이라는 이름과 조합원의 의견을 이유로 들며 직고용 문제에 반대해 온 정규직 노조의 태도 변화가 필요하다. 비정규직을 당연시하는 사회, 시험 성적과 학력 중심 평가가 공정하다고 생각하는 사회에서 ‘공정’이라는 이름이 더 큰 차별을 낳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길 수 있는 자가 게임의 룰을 만들고, 그 룰을 지키는 것이 공정이 아니다. 노동하는 모든 사람이 존중 받고 차별 받지 않는 기준이 세워진 것이 공정이다.
지난 2019년 4대 보험 기관 중 국민연금공단과 근로복지공단의 고객센터 업무는 직영화 됐다. 최근에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고객센터도 직영화되었다. 건보공단에 대해서도 정부와 공단 책임자의 의사 결정이 명확히 내려져야 할 시점이다. 지금 우리가 논의해야 하는 핵심은 ‘노-노 갈등’과 ‘왜곡된 공정’ 프레임이 아니다. 공단 본연의 공공성과 연대성에 기초한 ‘고객센터 업무 직영화’와 ‘대국민 서비스 강화’가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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