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품 이야기하듯 월경 이야기하길 바라요”

[만민보] 소셜 벤처 ‘이지앤모어’ 대표 안지혜

대다수 여성에게 ‘월경’은 좋은 경험이 아니다. 행동에 제약이 걸리는가하면 심한 통증을 수반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불쾌하고 신경쓰이게 거슬리는 일회성 현상으로 넘기고 만다. 이같은 인식은 ‘생리’, ‘그날’, ‘마법’이라는 단어로 월경을 감추고, 생리대를 까만 비닐 봉투에 안 보이게 담아가는 게 마치 사회의 ‘매너’인 것처럼 배우며 자란 여성들의 삶과 연관이 없다고 할 수 없다.

“저도 초등학생 때 월경을 시작하고 아버지에게 꽃을 받았거든요. ‘오늘 외식하는 날이다’라며 엄마가 저와 오빠를 패밀리 레스토랑에 데려갔죠. 오빠가 ‘오늘 무슨 날이냐’라고 묻는데 엄마가 ‘그냥 그런 게 있어, 축하해주면 돼’라고 말하는 거예요. ‘왜 축하받을 일을 숨기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었죠. 월경통 때문에 너무 고통스러운데, 고통을 축하해주는건가? 많은 의문이 들었어요.”

안지혜 이지앤모어 대표가 4일 서울 동작구 대방동에 있는 ‘월경상점’ 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에 앞서 월경 상품들을 보여주고 있다. 2021.06.04ⓒ김철수 기자

’생리대가 왜 이렇게 비싸?’에서 깨달은 몇 가지 의문
‘깔창 생리대’ 보도 이전부터 생리대 지원 펀딩 시작해

지난 1월 8일 서울 동작구 스페이스살림에 월경 용품만을 판매하는 ‘월경 상점’이 세워졌다. 이를 운영하는 이지앤모어는 연 몇 가지의 의문으로부터 시작한 소설 벤처다. 대부분의 여성이라면 꼭 필요한 생리대는 왜 이렇게 비쌀까?/월경용품은 왜 일회용 생리대 뿐일까?/‘월경’이라는 단어를 놔두고 왜 ‘생리’라는 말을 쓰는 걸까?/월경은 정말 사회로부터 숨겨야 할 현상이 맞는 걸까?…

“우리나라 생리대 시장 가격은 매년 소비자물가지수 대비해 1.7%~ 2% 정도 성장하고 있어요. 필수품임에도 불구하고 왜 이렇게 가격이 올랐을까요? 또 우리나라에서 실질적으로 생리대가 비싸서 구매하지 못하는 청소년, 노숙자, 한무보 가정 여성이 정말 많아요. 특히 아빠와 딸로 구성된 부녀 한부모 가정에서 이런 문제가 많이 일어나죠.”

안지혜(35) 대표가 처음부터 월경에 관심을 쏟은 건 아니었다. 청주대 광고홍보학과를 졸업하고 세종대 경영전문대학원에서 창업&프랜차이즈 경영학석사를 받은 그는 ‘수순에 맞게’ 홍보마케팅 직종에서 7년 간 일했다. 프랜차이즈 업계 점주들을 곁에서 지켜보며 ‘내가 정말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있는가?’라는 회의감이 들 때쯤, 다문화 이주여성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사회적 기업인 ‘오요리아시아’를 만나게 됐다.

“합정에 살 때 좋아하는 음식점이었는데, 알고보니 사회적 기업이었던 거예요. 마침 이 기업에서 기획팀을 모집하고 있었고 합류하게 됐죠. 그 때 대표님이 여성 이슈를 공부해보길 권하셨고, 이게 저에게 새싹이 됐어요. 공부를 하던 중 남편과 마트에 갔는데 남편이 ‘생리대 가격이 너무 비싼 거 아냐?’라고 묻더라고요. 바로 이 질문에 제 생각이 바뀌었다는 걸 느꼈어요. 그래, 맞아, 매달 쓰는 생리대가 이렇게 비싸서야 되겠어? 그 때부터 시장조사를 시작했죠.”

안지혜 이지앤모어 대표가 4일 서울 동작구 대방동에 있는 ‘월경상점’ 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에 앞서 월경 상품들을 보여주고 있다. 2021.06.04ⓒ김철수 기자

생리대가 비싸서 구매하지 못하는 청소년, 노숙자, 한부모 가정 여성이 많다는 사실도 이 때 알게 됐다. 1년 만에 직장을 박차고 나와 이지앤모어를 설립하고, 큐레이팅된 월경 용품을 구매하면 저소득층 청소년에게 생리대 기부가 되는 구조의 크라우드 펀딩을 기획했다. 당시 언론사에 보도자료를 배포했지만 실어주는 곳은 단 한 곳도 없었다. 그러나 펀딩이 끝나고 5일 뒤, ‘깔창 생리대’ 보도가 나오고 그 보도에 이지앤모어가 간략하게 소개되며 본격적으로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이슈가 크게 되니 정부와 지자체도 6개월 뒤에 생리대 지원 사업을 시작했어요. 저희는 또 다른 지속가능한 기부 모델을 찾아야 했고요. 현재 생리대 지원 사업은 저소득층 청소년 여성에게 한정되어 있어요. 그러나 저소득층에 포함되지 못하는 사각지대 여성들도 있거든요. 어떻게 접근할 수 있을까 하다가 월경 문제 자체에 눈을 돌렸어요. 우리나라에도 다양한 월경 용품을 쓸 수 있는 구조를 만들고, 그 다양한 용품을 우리에게서 산다면 지속가능한 기부가 실현되지 않을까 해서 탐폰, 월경컵 등을 찾기 시작했어요.”

4일 서울 동작구 대방동에 있는 ‘월경상점’ 에서 월경 상품들이 진열되어 있다. 2021.06.04ⓒ김철수 기자

안 대표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월경 용품에 대한 ‘선택권’이다. 이지앤모어 홈페이지에 있는 ‘초이스샵’에서는 저소득층 청소년이 자신에게 맞는 월경 용품을 직접 고를 수 있다. 일반 여성에겐 더 안전한 제품, 본인에게 맞는 제품을 선택하라고 권유하면서, 지원받는 청소년에겐 일괄적으로 제공하는 것은 취지에 맞지 않다고 생각한 안 대표의 결정이다. 이밖에도 그가 선택권을 중요시 여기는 이유는, 일회용 생리대가 독과점하고 있는 현재의 월경 용품 시장을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2017년 생리대 유해성 문제가 불거지고, 깔창 생리대 문제 등이 드러났지만 사실 이런 문제는 10년, 15년 전에도 있었어요. 10년이 지났는데도 이런 문제가 또 발생한다는 건 일회용 생리대가 시장을 독과점하고 있다는 뜻이거든요. 논란이 일어 불안하지만 어쩔 수 없이 또 다시 구매할 수 밖에 없는 구조죠. 이 구조를 흔들려면 다양한 용품이 들어와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월경컵을 수입했어요.”

국내 최초 ‘페미사이클’ 월경컵 정식 수입
“프리미엄 생리대 시장은 불안함의 반증”

월경컵은 주로 의료용 실리콘으로 만들어진 종 모양의 작은 컵으로, 질 내에 삽입하여 생리혈을 받아내는 방식의 월경용품이다. ‘월경상점’에는 2016년부터 그가 해외에서 사모은 월경컵 40여 개가 전시되어 있다.

안지혜 이지앤모어 대표가 4일 서울 동작구 대방동에 있는 ‘월경상점’ 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에 앞서 월경 상품들을 보여주고 있다. 2021.06.04ⓒ김철수 기자

당시 안 대표는 자신보다 훨씬 전부터 월경컵을 ‘직구’해서 쓰고 있는 여성들을 많이 만나볼 수 있었다. 이미 많은 여성 단체와 개인 등이 국민 신문고에 월경컵 정식 수입과 관련한 민원을 제기하는 등 여론도 좋은 방향으로 흐르고 있었지만, 결코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고 안 대표는 웃었다.

“월경컵 자체가 식약청에 허가받은 사례가 없었어요. 어떻게 검사해야 안전한 지 허가낼 수 있는 기준이 없었던거죠. 사실 이 허가는 한 기업이 먼저 최초로 받으면 다른 기업은 할 필요가 없거든요. 총대를 멘 거죠. 페미사이클이 허가받을 수 있었던 이유도, 유일하게 인체에 무해하다는 걸 입증하는 임상실험 학술자료가 있었기 때문이었어요. 저희가 직접 하려면 2~3억의 비용이 필요했거든요. 이게 없었다면 아직까지 국내에서 허가받은 월경컵은 없었을 수도 있어요. 어느 누가 나만 하면 되는 실험을 2~3억 들여서 하겠어요?”

기준이 없다는 문제는 국내 고가 생리대 시장을 형성한 주요 원인이기도 하다. 어떤 성분이 유해한지에 대해 충분하고 명확한 정보가 제공되지 않는 생리대 시장에서 결국 소비자가 기댈 수 있는 명분은 ‘유기농’, ‘프리미엄’ 딱지가 붙은 고가 라인이다.

“생리대 유해성 논란이 크게 일고 난 2019년 10월부터 식약청이 생리대의 전 성분을 공개하도록 했어요. 그런데 문제는 이 성분이 인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자료가 없다는 거예요. 화장품 성분 앱 ‘화해’를 보면 성분 별로 빨간색, 노란색, 초록색 이렇게 등급도 나뉘어져 있잖아요? 생리대의 성분은 그런 기준을 세울만한 정보가 전혀 없어요. 결국 소비자는 더더욱 ‘비싼 유기농 제품을 쓰면 안전하지 않느냐’라는 가설을 갖고 움직일 수밖에 없죠. 정부 차원에서도 충분한 연구가 필요한 지점이에요.”

4일 서울 동작구 대방동에 있는 ‘월경상점’ 에서 월경 상품들이 진열되어 있다. 2021.06.04ⓒ김철수 기자

“월경은 일시적 현상이 아닌 일상입니다”
월경박람회, 월경상점 등 월경 인식 변화 유도

현재까지 안 대표는 월경컵을 필두로 다양한 월경 용품을 소개하고, 월경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는 ‘월경 박람회’, ‘월경컵 수다회’, ‘월경 클래스’ 등을 개최하고 있다. 특히 ‘월경 클래스’에서는 월경의 인식을 전환하고자 했다. 불쾌한 느낌이 강했던 월경을 ‘건강의 지표’로 활용하고자 한 것이다.

“월경도 일상이에요. 우리가 한 달 동안 어떻게 식습관이나 생활습관을 가졌느냐에 따라 월경은 바뀌어요. 월경을 ‘건강의 지표’로 생각하는 거죠. 그래서 이와 관련한 지식을 안내해드리고 있어요. 요컨대 카페인은 통증을 느끼는 호르몬을 배출해 더 아프게 하고, 온팩은 자궁으로 통하는 혈류를 원활하게 해서 통증을 완화시킨다 등의 정보를 제공하는거죠. 이런 걸 정확하게 알려주는 곳이 없어요. 그냥 친구들끼리 카페인은 원래 안 좋아, 이러고 말죠. 직접 클래스에 참여하신 분들이 ‘정말 일주일 동안 커피를 끊었더니 약을 먹지 않을 정도로 개선됐어요’라고 말하며 주변 친구들에게 알리고, 그렇게 퍼지면서 더 많은 여성이 건강해지는거죠.”

세계 월경의 날인 5월 28일을 전후해 열리는 ‘월경박람회’는 생리대 광고의 변화, 월경에 대한 정보, 월경 용품 브랜드 전시관, 월경 용품을 직접 찢어보고 만져보는 체험관 등 월경과 관련한 다양한 전시를 선보인다. 2018년도와 2019년에는 500평 규모의 전시관에서 오프라인으로 개최해 각각 약 3,000명의 관객을 모았다. 유료 박람회라는 것을 감안하면 많은 인원이다. 올해는 코로나19 여파로 라이브 판매 방송, 릴레이 비대면 마라톤 등으로 대체했다.

4일 서울 동작구 대방동에 있는 ‘월경상점’ 에서 월경 상품들이 진열되어 있다. 2021.06.04ⓒ김철수 기자

박람회 개최가 어려워지자 상설 매장을 열어야겠다는 생각은 더욱 확고해졌다. 몸 안에 삽입되는 제품인만큼 직접 만져보고 구매할 수 있는 장소가 필요했던 것이다. 실제로 상점에는 여느 가게와는 다르게 ‘DO TOUCH’(만져보세요)라는 안내가 붙어있다. 상점의 모든 제품은 이지앤모어 7명의 직원이 최소 3개월 가량 직접 사용한 뒤 판매를 결정한다.

“상점을 처음 열었을 때 연인 분들이 같이 오시면 남자 분들이 안 들어오고 밖에 서 있거나 입구 쪽에 멀뚱멀뚱 서 있거나 했거든요. 그런데 지난 3월에 ‘스브스 뉴스’에서 방송이 나가면서 남성 분들이 먼저 알아보기도 해요. 남성 분들이 여자친구를 위해 직접 용품을 알아보고 오는 경우도 있고, 신기하죠. 확실히 제가 2017년 처음 월경컵을 연구할 때와는 많이 달라졌다고 느껴요.”

화장품처럼 월경 용품 이야기 할 수 있었으면
“중요한 건 다음 세대를 위한 노력이죠”

“상점을 지키다보면 초경을 시작했거나, 초경을 앞둔 자녀를 위해 어머니가 딸과 함께 와서 월경 용품을 함께 보고 가는 경우가 있거든요. 저는 이런 분들이 더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도 딸이 있는데요, 이 아이가 월경을 시작했을 때 어떻게 하면 몸의 변화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에 대해 늘 고민하고 있어요.”

안 대표는 기성 세대 여성들이 공유했던 월경 문화가 자녀 세대에게 내려가선 안된다고 강조한다. 그가 이지앤모어를 운영하며 마음에 깊이 새겨놓은 순간도, 어린 자녀를 둔 엄마들이 ‘월경 박람회’나 ‘월경 상점’을 교육 현장으로 활용하는 장면이었다.

“2019년도 박람회 때 방문한 모녀가 인상깊어요. 초경을 앞둔 어린 딸을 데리고 온 어머니였는데, 아이가 월경 용품을 만지며 신기해하니까 ‘앞으로 네가 써야 할 용품인데, 맘에 드는 거 하나 사줄테니 골라봐’라고 쿨하게 말씀하시더라고요. 우리 엄마는 ‘탐폰 쓰면 절대 안돼’ 이렇게 얘기했는데… 하하. 적어도 이 아이는 자라면서 선택권을 가지게 된거잖아요. 이렇게 교육받는 아이라면 좀 달라질 수 있겠구나, 되게 뿌듯해서 무전기로 팀원에게 보고하고 함께 좋아했어요.”

안지혜 이지앤모어 대표가 4일 서울 동작구 대방동에 있는 ‘월경상점’ 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에 앞서 월경 상품들을 보여주고 있다. 2021.06.04ⓒ김철수 기자

그가 궁극적으로 그리는 미래는 친구들끼리도 허심탄회하게 월경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날이다. 다행이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다며 안 대표는 낙관한다. 대기업의 생리대 광고는 더이상 세척액처럼 파란 물로 광고를 하지 않는다. 생리 대신 ‘월경’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는 월경이 일시적으로 불쾌한 현상으로 남는 게 아닌, 일상으로 편입돼 건강의 지표로서 활용되길 바란다고 거듭 강조했다.

“우리는 친한 친구와도 월경 이야기를 잘 하지 않아요. 화장품이 새로 나오면 부담없이 써보고 친구에게 추천하는 것처럼, 월경 용품도 그렇게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는 날이 왔으면 좋겠어요. 월경도 패션이나 뷰티처럼 일상 생활이니까요. 우리 세대에선 힘들더라도 자녀 세대는 그럴 수 있도록 올바른 성교육이 필요하겠죠. 다행이 요새는 정말 많이 변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10년 전에는 ‘그러려니’ 했던 생리대 유해성 논란이 큰 사회적 목소리로 이어지니까요. 기업도 이에 맞춰 변화하고 있어요. 여성들이 좀 더 불편함을 이야기하고, 필요한 것을 이야기하며 그동안 터부시됐던 월경을 입밖으로 열심히 꺼내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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