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누족에게 박물관은 지어줘도 사과는 못하겠다는 일본

편집자주:홋카이도는 원래 일본 땅이 아니었다. 아이누족의 땅이었다. 그런데 일본이 1860년대부터 30년에 걸쳐 서서히, 그리고 계획적으로 정착민을 보내 홋카이도를 강제 점령했다. 말하자면 홋카이도는 독립하지 못한 식민지인 셈이다. 아이누족을 기리는 국립민족박물관의 개관을 계기로 이들이 어떤 처지에 있는지를 보여주는 이코노미스트의 기사를 소개한다.
원문: Japan’s Ainu people have a new museum. Many feel it omits a lot

1904년에 촬영된 일본 홋카이도의 원주민 아이누족의 모습.ⓒ사진=뉴시스/AP

저 멀리 보이는 국립아이누민족박물관, 콘크리트와 유리로 매끈하게 만들어진 박물관이 반짝반짝 빛난다. 2020년 개관으로 이 박물관은 홋카이도의 잊혀져가는 원주민들을 기리는 첫 국립 박물관이 됐다. 타무라 마사토 큐레이터는 “사람들이 아이누족에 대해 거의 아무것도 모르는 채 방문한다”고 했다.

‘민족 공생’을 내세운 이 박물관은 우포포이라는 아이누 단어에서 그 이름을 따 왔다. 우포포이는 ‘수많은 사람이 모여 함께 노래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많은 아이누족에게 우포포이는 일본이 자신을 다루는 접근방식의 문제점을 상징하는 곳이 됐다. 일본 정부는 아이누 문화를 보존하는 것에 대해서는 열심히 말하지만 애초에 아이누 문화가 왜 보존해야 할 지경에까지 오게 됐는지에 대해서는 함구한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게 있다. 일본이 과거 잘못에 대해 사과하기를 거부하는 것이다.

아이누는 오늘날의 일본 홋카이도와 러시아의 쿠릴 열도, 사할린 섬에 정착해 수백 년 동안 살던 선주민이다. 아이누는 19세기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이 홋카이도를 강제 편입하고, 미국이 개척자들에게 중부지방을 나눠줬듯 정착민들에게 토지를 공짜로 나눠주면서 일본의 지배를 받기 시작했다.

일본인은 질병을 퍼뜨리고 원주민들을 노예로 부렸으며, 아이누에게 일본식 이름과 일본어를 강요했다. 그리고 1899년 아이누에 관한 첫 법을 제정하여 동화정책을 공식화했다. 아이누의 인구가 급격히 줄고 문화는 시들어 현재 아이누 원어민이 5명도 안 남은 상태다.

홋카이도에 거주하는 아이누는 13,000명(2017)에 불과하다. 하지만 아이누 후손들은 그보다 훨씬 많을 것이다. 차별을 피하기 위해 자신이 아이누임을 숨기는데다 다른 지역으로 이사하거나 완전히 일본화된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아이누는 대학 진학률과 수입이 상대적으로 낮다. 아이누는 게으르고 머리가 나쁘다는 식민지 시대의 고정관념 때문에 취직도 어렵고, 하류 계층이라는 인식 때문에 연애나 결혼을 할 때도 상대 집안의 반대가 심하다.

국립아이누민족박물관, 우포포이(민족공생상징공간)이 2020년 문을 열었다.ⓒ사진=인터넷 캡쳐

일본인은 아이누에 관해 배우는 것이 거의 없다. 우포포이를 방문한 도쿄 거주자 고바야시 마키는 “역사시간에 아이누라는 단어는 들어본 적이 있다. 이름만 들어봤다”고 했다. 그것은 부분적으로 아이누가 일본이 자신에 대해 하는 이야기를 복잡하게 하기 때문이다. 일본 보수파는 일본이 단일민족이라는 것에 대한 긍지가 굉장히 크다. 그런데 소수민족이 있으면 되겠는가.

일본 보수파는 이웃 섬들과 여러 아시아 국가를 ‘통합’한 것을 확장과 근대화의 과정이라 보려 한다. 아이누에게 그것은 식민화 과정이었다. 키타하라 지로타 홋카이도 교수는 “사람들은 이것이 식민사의 일부라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 그들은 홋카이도가 항상 일본 홋카이도였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간 진전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가야노 시게루는 일본 국회에 처음으로 진출한 아이누로서 1994년 거의 1세기 된 동화정책을 폐기하는데 앞장섰다. 2007년 일본은 유엔의 원주민 권리 선언(UNDRIP)을 채택하고, 이듬해 처음으로 아이누를 소수민족으로 인정했다. 2014년부터 연재된 히트 만화 ‘골든 카무이’ 덕분에 아누이의 가시성이 높아졌고, 2019년에는 민족 차별을 금지하고 아이누 문화를 부흥하는 조치를 늘리는 법이 제정되기도 했다(그 대표적인 결과물이 우포포이다).

하지만 옛 동화정책이 폐기됐음에도 불구하고 2019년 법이 아이누의 집합적인 권리를 보장하는 건 아니다. 일본이 아직 UNDRIP를 법제화하지 않은 것이다. 게다가 활동가들은 2019년 법으로 차별 금지를 강제할 방법이 없고 일본의 지난 정책에 대한 사과가 없다는 점을 지적한다. 하지만 일본 정부가 사과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일본이 아이누에게 사과 하면 일본이 한국인을 어떻게 핍박했는지 등의 불편한 역사적 이슈들의 판도라 상자가 열리기 때문이다.

역사를 왜곡하는 일본

아이누 지도자들의 요구는 많지도, 어렵지도 않다. 지방 정부의 사전 허가를 받아 특별한 경우에만 할 수 있는 연어 강 낚시를 자유롭게 할 수 있게 해 달라거나 20세기 초 일본 연구자들이 무덤을 파서 각 대학으로 가져간 유해들을 반환해 달라는 등의 요구들이다(현재 몇몇 유해만 후손들에게 반환됐고, 나머지 약 1300명의 유해는 거의 다 우포포이으로 옮겨져 보관되고 있다).

박물관 방문자에게 공예품을 파는 등 새로운 기회들을 마련해 준 우포포이의 개관을 반기는 아이누도 있다. 하지만 우포포이에 들어간 1억 8천만 달러가 다르게 쓰였으면 아이누에게 더 큰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이 대다수다.

1992년 아이누족이 도쿄에 결집해 시위를 벌이고 있다.ⓒ사진=인터넷 캡쳐

우포포이가 2020년으로 예정됐던 도쿄 올림픽에 맞춰 개관한 것만 봐도 우포포이가 관광지로 계획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하여 상설 전시의 대부분은 사냥, 낚시, 농업, 수공예와 아이누어를 다루고 있고, 아이누의 역사는 후미진 곳에 간략하게 다뤄진다. 박물관 어디에도 아이누가 현재 겪고 있는 차별에 대한 얘기는 없다(큐레이터는 이것이 아이들이 나쁜 행동을 따라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라고 주장한다). 우포포이가 맥락이 빠진 전시로 사람들에게 문화적으로 흥미로운 구경꺼리만 제공하는 것이다.

게다가 상설 전시 어디에도 무덤을 훼손해 가며 일본이 가져갔던 아이누 유해에 관한 얘기도 없다. 우포포이로 옮겨진 유해는 본관에서 언덕을 넘어야 갈 수 있어 방문객이 잘 찾지 않는 소박한 보관소에 있다. 아이누 활동가인 기무라 푸미오는 아이누 유해를 한 장소로 모은 것이 ‘도둑놈들의 논리’라며 격분했다. 그의 말이 옳다. “뭔가를 빼앗아 갔으면 되돌려주고 사과해야 한다. 아주 간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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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연 기자 응원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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