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환욱의 뚝딱뚝딱 학교] 아이는 왜 지킬앤하이드가 되었을까

산책할 때는 선생님의 손을 꼭 잡고 걷는 아이. 화가 나면 책상을 엎어버리는 아이. 각종 스마트폰의 스펙을 줄줄 외우는 아이. “선생님 짱. 사랑해요.”라며 애정 표현을 잘하는 아이. ‘죽여버릴 거에요’라는 말을 서슴지 않게 하는 아이.

안타깝지만 한 아이에게서 나타나는 특성이었습니다.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분노조절장애를 겪고 있는 아이였는데, 보통의 사람이라면 이성의 울타리 안에서 적절히 통제되는 것들이 이 아이에게는 예외였습니다. 다른 의미로 만들어진 지킬 앤 하이드였죠.

이 아이의 기저 욕구는 ‘사랑, 관심, 인정’에 대한 갈증이었습니다. 그러나 현실에서 자신이 하는 행동은 이를 얻을 수 없는 행위들이었죠. 수업 중에 갑자기 방방장을 타고 싶다고 합니다. “좀 기다렸다가 타야지.” “방방장 다 찢어버릴 거야.” 이렇게 순식간에 다른 인격으로 돌변하는 일이 수시로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미움과 타박을 주로 받아왔고 그로 인한 좌절은 오랜 기간에 비례하여 깊은 분노로 쌓여있는 듯했습니다. 학교폭력이나 교권침해의 사례는 거의 매주 발생했고, ‘사랑, 관심, 인정’과 멀어지는 악순환은 그의 일상이었습니다. 억압의 방식은 이미 눌려있는 용수철을 더 누르는 위험한 접근법이었습니다. 어릴 때는 이 아이가 올라탄 분노의 시소보다 더 자극적인 호통으로 누르면 소위 ‘잡을 수 있다’고 착각을 해 온 것 같았습니다. 어른들의 무지함은 그런 식으로 화약을 계속 늘렸고, 이에 대한 책임은 뒷사람에게 넘기고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치유적인 효과가 그 안에는 없었죠. 사람을 가리는 부작용만이 남을 뿐이었습니다. 이 아이를 5학년 교실에서 만났을 때는 이미 폭발의 뇌관이 수없이 많이 드러나 있었고, 하이드로 변한 눈빛 속에는 ‘당신도 똑같은 사람이네.’라는 좌절과 냉소가 담긴 원망이 있었습니다.

분노ⓒpixabay

다른 접근이 필요했고 ‘지지와 몰두’는 이 아이와의 생활을 유지할 수 있었던 키워드였습니다. 기 싸움 대신 이해와 지지의 시선을 보내는 것이 훨씬 나았고, 어린아이가 무언가 뚝딱거리기를 좋아하듯 목공을 아주 즐거워했습니다.

“선생님, 00이가 사라졌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하면 “그런 말을 하면 되겠어?”가 아니라 “그래? 무슨 일인데?”로 시작하는 것이 나았습니다. 자기가 잘못한 모든 일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병리적 측면이 아주 강하기에 ‘너라면 그럴 수 있겠다.’라는, 우선은 무조건적으로 들어주는 사람이 필요한 것이라고 하더군요. 그만큼 자신의 분노를 바라봐 달라는 것이지 실행할 마음이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드러내지 않고 은밀하게 감추며 행동하는 아이들보다는 더 나은 사례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 아이의 병리적 현상을 악화시킨 최대의 주범은 스마트폰이었습니다. 누구도 자신을 인정해주지 않을 때 스마트폰은 자신의 기분을 달래준 유일한 수단으로 인식되었던 것 같았습니다. 집착은 날이 갈수록 심해졌고 자극적인 유튜브에 오랜 기간 노출되어 그 안에서 본 반사회적인 언행이 온몸에 흡수되어 있었습니다. 사람의 머리가 뚝배기로 보이는 것이죠.

중학생 이전의 어린 시기에 스마트폰을 갖게 되어 좋아진 아이를 본 적도 들은 적도 없습니다. 아이들의 귀하고 귀한 동심을 파괴하는 가장 큰 세 축은 어른들의 폭력적인 간섭과 대학입시 그리고 스마트폰 같습니다. 실은 최근 여기저기서 논하는 학력 저하의 가장 큰 원인도 여기에 있다고 봅니다. 코로나 시대에 스마트폰 중독은 더 심해졌으니까요. 어린아이에게는 스마트폰의 기능이 없는 휴대폰을 주어야 합니다. 그것이면 충분합니다. 화려함과 기업의 상술, 자기변명에서 벗어나면 좋겠습니다.

최근에는 잘 쓰이지 않던 작은 교실을 공동체 휴게실로 바꾸었습니다. 아이들은 교실보다 좋다며 반가워했고 누울 수도 있는 공간을 새로워 했습니다. 관심이 많으니 “시계가 필요해요.” “쓰레기통 놓아주세요.” “음악 들어도 돼요?” “간식 먹어도 돼요?”등의 여러 의견들이 나왔습니다. 한 2학년 아이는 이런 질문을 합니다. “여기서 게임해도 돼요?” 얼핏 보면 귀여운 캐릭터가 서로를 아무렇지 않게 죽이는 게임이 아이들에게 남기는 것은 파괴와 상실, 그리고 지배입니다. 이 어린아이의 질문이 이 아이만의 질문이 아니라는 사실이 무척 안타깝습니다.

공동체실에서 쉬는 아이들ⓒ필자 제공

분노 조절에 힘들어했던 아이는 다행히도 자신의 내면을 바라봐 줄 수 있는 중학교를 다니고 있습니다. 실은 모든 아이에게 자신을 진심으로 지지해줄 누군가가 지속적으로 필요합니다. 그리고 어른들은 항상 신중해야 합니다. 지금 아이에게 이로운 것을 주고 있는지, 그 반대의 것을 주고 있는지 말이죠.

요즘의 아이들에게는 학습보다 치유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자연주의가 아니라 방치에 가까운 아이들, 너무 일찍 지워진 지식의 짐에 힘겨워하는 아이들, 학력 프레임에 끌려다니는 어른들로 인해 고통을 받는 아이들, 납득이 되지 않는 학력 경쟁 세상으로 떠밀려 괴물이 되는 아이들, 아이들이기에 마땅히 누려야 할 여러 욕구가 충족되지 않아 결핍을 호소하는 아이들, 결국 그 분노가 밖을 향하는 아이들.

다음의 것들이 사라지거나 줄어들면 어떨까요? 대학입시, 잔소리, 복종을 요구하는 낡은 권위들, 중독, 공정을 가장한 야만적 경쟁. 대신 그 자리를 다음의 것들로 채우면 어떨까요? 놀이와 자유, 신뢰와 기다림, 존중, 어른과 아이 사이의 평등 같은 것들로요. 독일은 대학입시가 없음에도 최고의 기술력을 자랑하는 나라인 것을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습니다. 이제는 알고만 있던 시기를 뒤로 해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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