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으로 세상읽기] 장마와 물난리

올해 장마는 특이한 것 같습니다. 6월 하순이면 시작되어야 하는데, 요란한 소나기만 몇 번 있고 아직입니다. 7월 초순에 시작한다는 예보와 함께, 몇십 년 만에 가장 늦게 시작되는 장마라는 소식에 가슴이 철렁합니다.

예전 같지 않은 기후가 꽤 많은 상처를 우리에게 주고 있기 때문이지요. 우리가 자초한 것이라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태풍이 더해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합니다. 장마와 태풍으로 겪는 물난리, 그림은 어떻게 담았을까요?

홍수 A Flood oil on canvas 139.7cm x 120.6cmⓒ개인소장

사다리를 밟고 지붕으로 올라갔지만, 순식간에 밀어닥친 물이 빠르게 차오르고 있습니다. 여인은 한 손으로는 아기를 안고 다른 손으로는 몸을 지탱하기 위해 굴뚝을 잡았습니다. 굴뚝을 잡은 손은 마치 남자의 손처럼 강해 보입니다. 온 힘을 다해 버티고 있는 것이지요.

엄마의 치마를 잡고 선 아이의 동작은 보는 우리들의 가슴을 조마조마하게 합니다. 여인의 시선은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 다가오는 배를 향하고 있지만, 여유 있는 상황은 아닙니다. 그런데 엄마 품에 안긴 아기의 표정은 아주 평온합니다. 아마 엄마가 아이가 놀라지 않게 잘 안고 있기 때문이겠지요. 어머니의 위대한 힘이 거친 물소리와 가쁜 숨소리가 함께 그림 속에 녹아 있습니다.

행복한 어린이의 모습을 묘사하는 데는 당대 최고라는 평가를 받은 영국화가 프레데릭 모건 (Frederick Morgan)의 이 극적이고 역동적인 작품은 1897년 로얄 아카데미에 출품되어 많은 갈채를 받았습니다. 그의 작품에 대해 ‘너무나 많은 기술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지만, 그런 것과 상관없이 사람의 감정에 직접 호소하는 효과적인 주제의 그림’이라는 평이 있습니다. 보는 사람의 마음을 당기는 작품이라면 기술적인 문제는 잠깐 넘어갈 수 있지 않을까요?

생명선 The Life Line 1884 oil on canvas 73cm x 113.4cmⓒ필라델피아 미술관

난파된 배와 육지를 연결한 선에 매달려 거친 바다를 건너는 두 사람. 이들을 향해 산 같은 파도가 밀려오고 있습니다. 구조되는 여인은 이미 기진맥진한 모습이고 바람에 날리는 구조대원의 붉은 스카프는 이 순간의 비장미를 더해주고 있습니다. 도르래에 걸려 있는 가는 줄 한 가닥이 두 사람의 몸무게를 지탱하고 있습니다. 사방에서 몰려드는 파도의 거친 울음소리는 죽음의 입구에서 들리는 소리와도 같겠지요. 여인을 안고 있는 구조대원의 팔에는 삶을 위한 필사의 힘이 들어가 있습니다.

이 순간 가장 필요한 것은 어떻게든 살아야겠다는 간절함이고 그것만이 이 상황을 벗어 날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싶습니다. 문득 우리는 지금 어떤 생명줄을 잡고 강을, 바다를 건너고 있는지 궁금해졌습니다. 지금 당신의 몸을 걸고 있는 줄은 튼튼한가요?

거의 독학으로 공부를 해 19세기 미국의 최고 화가 중 한 명이라는 평을 받았던 윈슬로 호머 (Winslow Homer)는 서른일곱 살이 되던 1873년부터 본격적으로 수채화를 그리기 시작합니다. 바닷가에 살면서 바다와 관련된 많은 작품을 그린 호머에게 붙은 별명은 ‘미술 섬에서 살고 있는 미국판 로빈슨 크루소’, 또는 ‘붓과 함께 사는 은둔자’였습니다.

안녕 Adieu! 1892 oil on canvas 170cm x 245cmⓒ캥페르 미술관

물속으로 가라앉는 아이를 어떻게든 잡기 위해 아이의 바지를 움켜쥔 남자의 손등에는 금방이라도 터질 것처럼 굵은 핏줄이 일어났습니다. 부서진 뱃조각에 몸을 기대고 있지만 버틸 수 있는 시간도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습니다. 하늘에 닿을 듯한 파도가 두 사람을 향해 고개를 들었기 때문입니다.

축 늘어진 아이의 몸에 마지막 숨을 불어 넣어 보지만 부질없는 짓이라는 것을 남자도 잘 알고 있겠지요. 그렇다면 숨을 불어 넣은 것은 마지막 인사일 수도 있습니다. 두 사람을 둘러싼 파도는 미쳐가는데 두 사람의 모습은 정지된 듯 합니다. 파도 소리도 남자의 작별 인사를 막지는 못할 것 같은데, 그래서 비극적이고 더 안타깝습니다.

프랑스 화가 알프레드 기유 (Alfred Guillou)는 항구도시 콩카르노에서 태어나 파리에서 미술공부를 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그 곳의 모습을 그림에 담았습니다. 훗날 콩카르노로 모여든 화가들과 함께 ‘콩카르노파’를 결성했습니다. 19세기 후반 유럽 곳곳엔 이런 화가들의 모임들이 많았습니다.

그림과 같은 일들이 이번 장마에는 없어야겠지요. 다만 갈수록 예측을 빗나가는 날씨 변화에 대한 준비는 철저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점점 인간의 노력을 하늘의 행동이 앞지르는 일이 많아지고 있어 정신을 바짝 차려야겠습니다. 이제 장마 시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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