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침공의 전범 럼즈펠드 미 전 국방장관 사망

편집자주: 911 당시의 미국 국방장관으로서 이라크 침공을 주도했던 도널드 럼즈펠드가 지난 6월 29일 사망했다. 공화당이든 민주당이든 거의 모든 하원 및 상원의원들이 찬성하고, 미국 국민이 크게 지지했던 이라크 침공이었기 때문에 어느 한 사람에게 그 책임을 물을 수는 없겠으나, 굳이 그러겠다면 럼즈펠드에게 그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럼즈펠드가 이라크 침공에 어떤 역할을 했는지 보여주는 애틀란틱 기사를 소개한다.
원문: How Rumsfeld Deserves to Be Remembered

지난 6월 29일 사망한 도널드 럼즈펠드 미 전 국방장관.ⓒ사진=인터넷 캡쳐

2006년 뉴요커를 위해 이라크 다섯 번째 방문 후 돌아온 직후였다. 백악관 최고 참모 두 명이 나를 초대해 이라크 전쟁 얘기를 좀 하자고 했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조지 W. 부시 정권의 그 누구도 나와 접촉하지 않았다. 내 글을 읽어봤으면 내가 부시 정권에게 호의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았을 테고, 듣고 싶은 얘기는 나오지 않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을 게다. 하지만 2006년에는 부시 정권 조차 자기네가 이라크에게 ‘자유’를 가져다주기는커녕, 이라크가 전면적인 내전 상황에 가깝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한 것이다.

그 두 사람은 대체 뭐가 잘못됐는지를 알고 싶어 했다. 특히 도널드 럼즈펠드 당시 국방장관과 그 말도 안 되는 상황을 만드는데 있어 그가 한 역할에 대한 나의 평가를 궁금해 했다. 그들은 내 말에 얼마나 낙심했는지 얼굴이 마치 축 처지는 듯했다. 그리고 나는 부시 정권이 현실에서 너무 고립돼 이런 얘기를 직접 들은 적이 없었던 게 아닌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의 오찬은 그들이 나를 왜 불렀는지에 대한 설명 없이 그렇게 끝났다. 하지만 몇 달 후 럼즈펠드가 물러났고 그제야 깨달을 수 있었다. 그들은 럼즈펠드에 대한 비판 의견을 모으고 있었던 것이다. 너무 늦기 전에 그를 몰아내기 위해 말이다.

럼즈펠드는 미국 역사상 최악의 국방장관이었다. 그가 죽음으로 이 오명을 벗을 수는 없다. 그의 가장 큰 라이벌, 미국의 베트남 전쟁기를 대표하는 국방장관 로버트 맥나마라보다 럼즈펠드가 훨씬 나쁘다. 인도차이나 반도가 공산주의와의 최전선이라고 믿었던 맥나마라는 그 시대의 냉전 투사들 모두의 오류에 빠져 있었지만 그는 베트남전이 승리 불가능한 낭비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통찰력이 있었다. 물론 그 사실을 미국 국민으로부터 숨겼기 때문에 그는 용서할 수 없는 겁쟁이였다.

럼즈펠드의 잘못은 맥나마라와 비교할 수없이 크다. 911 테러 이후 이뤄졌던 미국의 모든 잘못된 결정 뒤에 럼즈펠드가 있었다. 부시 정권이 주요 결정을 내릴 때마다 럼즈펠드는 눈을 살짝 찡그린 특유의 웃음을 지으며 조심스러워하는 이들을 조롱하고 미국을 점점 수렁에 밀어 넣었다. 그의 형편없는 판단력만큼이나 절대적인 것은 그의 근거 없는 자신감이었다. 그는 자기 자신을 의심할 용기도, 자기 생각을 바꿀 지혜도 없었다.

2001년 9월 11일, 납치된 비행기 4대 중 1대가 미 국방부 본부 펜타곤에 날아들었을 때 럼즈펠드는 펜타곤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었다. 사건 직후에 그는 엄청난 용기와 리더십을 보여줬다. 하지만 몇 시간 지나지 않아, 그는 이미 파멸적인 생각들을 하기 시작했다. “UBL(오사마 빈 라덴)뿐만 아니라 SH(사담 후세인)을 칠 정도가 되는지 빨리 판단할 것”, “대대적인 반격. 관련 있든 없든 모두 쓸어버릴 것.” 럼즈펠드 보좌관의 수첩에 있었던 메모들이다.

이 짤막한 메모에 럼즈펠드의 실체 모두가 드러난다. 그의 결단력, 공격성, 무력에 대한 믿음, 절차를 무시하는 태도 등등 그 모두가 말이다. 정보기관들이 뭐라고 하는지는 중요치 않았다. 911은 미국의 의지를 시험하는 사건이자 미국의 의지를 세계에 보여줄 수 있는 기회였다.

럼즈펠드의 오판은 911 테러가 일어난 지 몇 시간이 지나지 않아 시작돼 끝없이 이어졌다. 그는 이번 공격이 그가 오랫동안 추진한 유도탄 방어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증거라고 주장했고, 아프가니스탄 침략이 탈레반의 종말을 의미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새로운 아프가니스탄 정부의 안보와 지원을 위해 미군의 지속적인 주둔이 필요하지 않다고, 또 미국이 유엔을 건너뛰고 동맹국의 지지 없이 독자적으로 움직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럼즈펠드는 알카에다가 사담 후세인과 같은 독재자 없이는 유지될 수 없다고 주장했고, 이라크가 대량살상무기가 없다는 정보당국의 보고는 모두 잘못됐다고 생각하고 자신이 작성을 지시한 보고서만 들이밀었다. 그는 고문을 통해 얻은 정보를 가장 믿었고, 이에 동조하지 않는 국무부와 CIA에 멍청하고 소심한 관료들만 있다고 생각했다. 럼즈펠드는 디지털 무기와 멋진 무력 과시로 미국이 어떤 전쟁이라도 이길 수 있다고 믿었다.

럼즈펠드는 정권 전복을 믿었지만 국가 건설을 믿지 않았고, 수만의 군대만으로 이라크에서 승리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는 후세인 정권만 재빨리 전복시키면 승리를 선언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바그다드에서 계속 이뤄진 약탈에 대해 “자유는 깔끔하게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라고 대답했고, 그 혼란이 이라크를 파멸로 몰아넣고 미국의 골칫덩이가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하고 그저 민주주의가 이식되고 있다는 증거라고 믿었다.

럼즈펠드는 미국 정부를 속여 온 경력이 있는 부패한 런던 은행가가 이라크의 수장이 되어도 된다고 믿었고, 점점 커지는 이라크의 반발이 ‘봉기’는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이라크 지역의 미 육군 장성에게 체 게바라의 자서전 일부를 팩스로 보내기도 했다. 그는 저항하는 이라크 세력을 ‘루저’라고 부르며 이에 반대하는 최고 장성들을 모욕했다. 그는 이라크에 주둔하는 미군의 수를 너무 적게 유지해서 이라크의 대부분을 곧 저항세력에게 빼앗겼다. 그러면서 줄곧 워싱턴에서 관료들과의 전쟁에서 승리하는 데에 온힘을 쏟았다.

럼즈펠드가 해고될 2006년 11월쯤에는 미국이 한 국가(이라크)에 평화를 정착시키기는커녕, 두 국가(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전쟁을 벌이고 있었다. 그리고 패배하고 있었다. 주로 럼즈펠드 자신이 내린 결정과 추진한 정책 때문이었다. 럼즈펠드가 쫓겨나자마자 미국은 30,000명의 미군을 더 투입해 이라크에서 잠시나마 전세를 역전시켰다. 하지만 때는 너무 늦었다. 어찌 보면 2001년 9월 11일 오후부터 이미 때가 너무 늦었다.

럼즈펠드는 똑똑하고 위트 있으며, 매력있고 자기 자신에 대한 끝없는 믿음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맥나마라와는 달리 단 한 번도 일말의 후회를 표현해 본 적이 없다. 그리고 분명히 자신이 늘 옳았다는 신념을 가지고 눈을 감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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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연 기자 응원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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