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노동이야기] 노동 현장의 온도, 이제라도 관리 시작해야

노동자 건강 위협하는 ‘폭염’...각 일터에선 관리·대비책 마련되고 있을까

미국과 캐나다에서 지난 1주일 간 열돔(Heat Dome)현상으로 사망자가 700명을 넘는다는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졌다. 에어컨이 설치된 집이 거의 없을 정도로 연중 쾌적한 기후를 자랑하는 지역에 들이닥친 ‘기후 위기’의 습격에 사람들은 속수무책이었다.

만일 비슷한 상황이 한반도에서 벌어진다면 어떨까? 북미와 같은 대혼란까지는 아니더라도 주거환경이 열악한 저소득층과 폭염에도 일터로 내몰리는 노동자들에게 피해가 집중될 것이 분명하다. 이처럼 예측불가능한 기상 이변이 너무 극단적인 상황이라고 한다면, 충분히 예측가능하고 매년 되풀이되는 폭염에 대해 한국의 노동 현장은 얼마나 준비가 되어 있을까?

올해 여름은 이미 시작되었고 늦은 장마가 끝나면 본격적인 폭염기가 다가올 것이다. 흔히 폭염으로 인한 건강 위협을 열사병, 일사병 등의 온열 질환으로 한정하여 생각한다. 정부의 예방 수칙도 열사병의 기준으로 운영되고 있다. 하지만 여름철의 고온이 뇌졸중 등 뇌심혈관 질환의 발생 위험을 급격히 높일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폭염은 열사병 이상의 치명적인 위험을 동반하고 있는 것이다.

전국적으로 폭염경보가 발령된 2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민주노총 건설산업노조연맹 주최로 열린 '건설현장 폭염 실태 폭로 및 대책 촉구' 기자회견에서 한 취재진이 안전모와 긴팔 옷 등 보호장비를 갖춘 용접공의 체온을 측정하고 있다, 2020.08.20ⓒ김철수 기자

필자가 속한 충남노동건강인권센터에서는 2020년에 이어 올해에도 지역의 기관, 단체들과 함께 ‘폭염모니터링 사업’을 계획하고 있다. 지난해 모니터링을 통해 타오르는 용광로 옆에서 일하는 제철노동자, 불볕더위에 용접하는 건설노동자, 튀김과 찜을 하며 땀을 비 오듯 쏟아내는 학교급식노동자, 폭염 속에 온종일 밖에서 일하는 환경미화원과 수도검침원 등, 다양한 노동자들이 일하는 현장의 온습도를 측정했다.

모니터링에 참여한 노동자들은 바쁜 와중에도 꼼꼼히 수첩에 날씨와 상황을 기록해주었고, 단순 데이터를 넘어 그들 노동의 면면을 더 가까이 들여다볼 수 있게 도움을 주었다. 몇몇 측정기들은 데이터를 담아오는 대신, 녹아내리고 뒤틀린 채 돌아왔다. 온몸으로 현장의 온도를 증언하며 최후를 맞이한 것이다.

이렇게 수집한 자료의 분석 결과를 한마디로 정리하면, ‘우리는 현장을 하나도 모르고 있고, 아무런 준비도 되어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우선, 어떤 사업장도 현장의 온도나 습도를 작업 환경 측정 대상으로 정해 놓지 않았다. 아무도 현장의 온도를 ‘관리’의 대상으로 생각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더구나 야외에서 이동하며 일하는 노동자들의 작업 온도는 측정 기준조차 마련되어 있지 않다.

산업안전보건법은 사업주로 하여금 작업장의 온습도를 적절히 유지도록 명시하고 있지만 이에 대한 구체적인 기준과 조치, 강제력을 가진 조항들은 아직 미비한 수준이다. 그러다 보니 감독을 담당하는 고용노동부 역시 매우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그나마 정해져 있는 ‘고열작업환경 관리지침’의 적용 대상 역시 규칙에 적시된 12개 작업만 해당된다고 해석하는 관행이 자리 잡고 있다.

지침에 따르면 WBGT(‘습구흑구온도지수’, 열사병 등 온열질환 위험의 기준으로 널리 사용된다) 기준 25.9도부터는 단계 별로 휴식시간을 늘리는 등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 사실 규칙이 적시한 12개 작업 이외에도 이 정도 온도에 노출되는 작업은 수없이 많다. 그러나 사업주들은 이런 규정이 있다는 것을 알지도 못하고 알아도 강제력이 없기 때문에 지키려 하지 않는다. 감독 기관 역시 이를 감독의 대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전국교육공무직본부 학교 급식 노동자들이 3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뜨거운 열기에 소독작업까지하는 학교 조리사들을 위한 폭염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0.06.30ⓒ김철수 기자

물론 정부가 폭염기에 아예 손을 놓고 있는 것은 아니다. 매년 여름이면 ‘열사병 예방수칙’을 발표하고 건설 현장을 대상으로 ‘물, 그늘, 휴식’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휴식의 기준이 되는 온도는 언제나 논란이 되었다. 매년 기준이 바뀌기도 했거니와 강행 규정에 기초하지도 않고, 과학적인 타당성도 입증되지 않은 온도 기준이 적용되고 있기 때문이다다.

2020년의 경우 기상청이 발표하는 지역별 기온과 습도를 기준으로 체감온도를 계산하고 그에 따른 경보 단계를 설정한 예방수칙이 발표되었다. 하지만 모니터링 사업을 진행한 건설 현장에서 기상청 발표 기온은 기준으로서는 자격상실이었다. 실제 건설현장은 기상청 발표와는 무관하게 노동자들이 철근, 아스팔트, 또는 흙바닥에서 일하는지에 따라 상황이 달랐다. 또 용접을 하는지, 망치질을 하는지에 따라 천차만별의 온도차를 보여주었다. 이런 현실을 감안할 때 실효성 있는 방안은 각 현장에서 직접 온습도를 모니터링하고 단계별 예방수칙을 실행하도록 하는 것이다.

해결해야 할 문제는 측정과 수칙의 기준만이 아니다. 기준이 정립된다 하더라도 실제 현장에서 이것이 작동하려면 노동강도와 임금의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 환경미화노동자들이 폭염으로 2~3시간 작업을 중지했다고 가정하면, 업무 특성 상 그날 계획된 작업을 마무리하기 위해 더 힘들게 일해야 하거나 초과 근무를 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것이다. 건설 일용직노동자들도 마찬가지다. 늘어난 휴게시간에 대한 임금이 보장되지 않거나, 공사 기간을 맞추기 위해 나머지 시간에 더 힘들게 일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폭염 예방수칙을 ‘보호’로 받아들일 노동자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현장을 면밀히 들여다보는 모니터링 사업은 폭염에 대한 실효성 있는 기준을 만들고, 현실에서 기준이 작동하도록 하기 위한 시작이다. 그런 면에서 작년 모니터링 사업의 부족함에도 올해 비슷한 사업이 다양한 기관으로 확산되고 있는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그러나 사업이 확산되는 만큼 곳곳에서 주저함과 저항도 감지된다. ‘법이 정한 고열작업장도 아닌데 왜 측정하려 하느냐?’, ‘우리 사업장에서 온도 높게 나오면 문제 생기는 것 아니냐?’는 익숙한 반응들 말이다.

작년 모니터링 사업의 결과가 보여주듯, 우리의 부족함을 드러내는 것은 걱정스럽고 불편한 일이다. 하지만 우리가 마주한 위험을 생각하면 그 걱정과 불편은 사소한 문제에 불과하다. 지금부터라도 노동현장의 온도를 ‘관리되어야 할 작업환경’으로 인식하기 시작해야 한다. 나아가 다양한 조건과 환경의 현장에서 일상적으로 온도를 관리하고, 위험의 크기를 측정하여 작업중지의 기준을 설정하기 위한 사회적 논의도 발걸음을 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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