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붕괴도, 택배과로사도 처벌 못 하는’ 정부 중대재해법 시행령 예고

중대시민재해 적용 시설 좁게 한정...심혈관계질병·직업성암 재해 대상 제외

장상윤 국무조정실 사회조정실장이 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제정안 입법예고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2021.07.09.ⓒ뉴시스

정부가 내년 1월 시행을 앞두고 있는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법)'의 적용 대상과 사업주 의무 등 구체적인 내용을 정한 시행령 제정안을 9일 발표했다.

그러나 중대시민재해의 적용 시설은 좁게 한정하고, 중대산업재해 대상 질병에서 심혈관질관, 직업성 암 등을 제외해 최근 발생한 '광주붕괴 참사'나 택배 노동자들의 과로사 등에 대해서는 중대재해법이 적용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장상윤 국무조정실 사회조정실장은 이날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에서 "다음 주 7월 12일부터 8월 23일까지 40일간 중대재해처벌 등에 관한 법률 시행령 제정안을 입법예고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정부가 발표한 시행령 제정안은 중대산업재해의 직업성 질병의 범위, 중대시민재해의 공중이용시설 범위, 안전보건 관리체계의 구축 및 이행에 관한 조치 등 중대재해법에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위임한 구체적인 사안을 담았다.

우선 중대시민재해의 공중이용시설 범위는 10년 이상 된 도로·철도, 10년 이상 된 철도·교량, 터널, 철도터널, 주유소, 종합유원시설로 한정했다. 오피스텔·주상복합 및 전통시장, 갑문·수문·통문·배수펌프장 등은 제외된다.

최근 광주에서 발생한 철거건물 붕괴사고의 경우에는 시행령에 정한 공중이용시설에 들어가지 않기 때문에 해당 법이 적용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중대재해법에서 공중교통수단을 적용대상에 넣어놓았지만 광주 사고의 경우 차량자체 결함 등이 사고의 원인이 아닌 데다, 시내버스도 공중교통수단에는 포함되지 않기 때문이다.

중대재해법에서는 대상이 되는 공중이용시설에 대해 '실내공기질 관리법', '다중이용업소의 안전관리에 관한 특별법' 등 다른 법률에서 정하는 시설 외에도 '재해 발생 시 생명·신체상의 피해가 발생할 우려가 높은 장소'를 정하도록 열어두었으나 정부가 시행령을 통해 한정한 것이다.

국토개발부 관계자는 브리핑에서 "광주붕괴 사고의 철거 공사 현장은 공중이용시설에 해당되지 않기 때문에 법률상으로 중대재해법 적용이 어려울 것으로 판단한다"면서 "관련된 건축물 관리법이나 불법 하도급 관련된 규정을 철저히 적용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공중이용시설 범위가 협소하다'는 취재진의 지적에 대해서는 "논의하는 과정에서 주유소나 가스충전소, 종합유원시설 등을 포함시켰다"고 말했다.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이 14일 경기도 평택시 안중백병원 장례식장 앞에서 열린 평택항에서 일하다 산재사고로 숨진 청년 노동자 고(故) 이선호 씨 산재사망 책임자 처벌, 재발방지, 기업살인 막아내는 제대로 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시행령 제정 촉구 기자회견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2021.05.14ⓒ김철수 기자

적용 범위는 좁게, 사업주 의무는 애매
택배과로사는 물론 김용균·이선호 등 산재도 막을 수 없어

시행령은 중대산업재해의 대상이 되는 직업성 질병도 급성중독을 포함한 24개 질병으로 한정했다. 납 또는 그 화합물 중독으로 인한 질병, 산소결핍증, 열사병 등이다.

당초 노동계에서 요구한 뇌심혈관계질환과 근골격계 질환, 직업성 암 등은 포함되지 않았다. 과로사로 이어지는 뇌심혈관계질환이 제외됨에 따라 지속적으로 문제 제기되고 있는 택배 노동자 과로사 등은 중대재해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 또 학교급식실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자주 발생하는 폐암 등도 적용 대상이 아니다.

이를 두고 노동계는 "장시간 노동으로 인한 과로로 쓰러지더라도 죽어야 중대산업재해가 되고, 식물인간이 되면 대상이 아닌 거냐"라고 비판하고 있다.

이번 시행령에서 포함되지 않은 질병을 얻을 경우, 사망하거나 6개월 내에 같은 원인으로 인한 부상자가 나오지 않는다면 해당 법의 적용을 받을 수 없다. 중대재해법은 ▲사망자가 1명 이상 발생 ▲동일한 사고로 6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부상자가 2명 이상 발생 ▲급성중독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직업성 질병자가 1년 이내에 3명 이상 발생 등의 경우를 중대산업재해로 본다.

이처럼 중대재해법의 대상은 좁게 한정됐지만 사업주에게 부과되는 의무는 명확하지 않다.

중대재해법은 노동자와 시민의 안전·보건상 위험 방지를 위해 '안전보건관리체계의 구축 및 관리'를 사업주의 의무로 부여했다. 그러나 시행령에서는 이 같은 사업주의 의무에 대한 구체적인 기준을 '적정' 수준으로 두루뭉술하게 규정했다.

시행령을 보면 안전·보건관리자의 '적정' 인력 배치는 '산업안전보건법'의 기준에 따라 300인 이상 사업장이 전담인력을 배치하는 경우로 한정된다. 안전보건 예산도 규모별 기준을 정하지 않고 '적정 예산 편성' 의무로 규정했다.

당초 노동계는 위험 작업 시 2인 1조 원칙 및 신호수 배치 등 구체적으로 안전 관련 조치가 시행령에 포함돼야 한다고 요구했지만, 포함되지 않았다. 이로 인해 고 김용균 씨나 고 이선호 씨 등 홀로 작업하다 숨진 사례도 중대재해법의 적용을 받기 힘들다.

이에 대해 정부 관계자는 브리핑에서 "2인 1조 원칙 등에 대해 바로 포함된다라고 이야기하기는 어려운 것 같다"면서 "다만 안전관리보건체계를 구축한다는 의미가 적정한 재예방 목표와 그것을 달성하기 위한 필요한 조치를 하는 일련의 과정이기 때문에 그 과정 속에서 이런 내용들이 필요하다면 조치를 해야 되는 것으로 해석이 가능할 것 같다"고 말했다.

노동계에서는 이번 시행령을 두고 "경영책임자에게 면죄부를 주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한상진 민주노총 대변인은 이날 "시행령에는 경영책임자 의무에 재해예방을 위한 2인1조, 과로사 방지를 위한 적정인력과 예산 보장이 명시되어 있지 않다"면서 "사업장의 안전관리 인력만 늘리는 것으로만 한정하여 근본적이고 핵심적인 대책은 제외됐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오히려 경영계의 의견을 수용해서 법령에서 위임하지도 않은 적용대상 화학물질의 범위를 극단적으로 좁혀놨다"면서 "반쪽짜리 법안을 시행령을 통해 아예 경영책임자의 면죄부로 만들었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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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백겸 기자 응원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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