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귀천의 일과 법] CJ대한통운과 퀴 보노(Cui bono)

교섭의무에 관한 중노위 판정의 의미

로마의 유명한 법관 카시우스는 항상 “퀴 보노(Cui bono)”라고 물었다고 한다. 이는 “누구에게 이익이 돌아가는가?”라는 뜻으로, 책임이 있는 사람이 반드시 처음에 나타나지는 않는다는 의미로 쓰이는 라틴어 격언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간접고용과 관련해서도 누구에게 이익이 돌아가는가라고 묻고 싶은 경우가 많다.

단체교섭과 관련된 사항에 대해 규정하고 있는 현행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이하 ‘노조법’이라 함)은 본래 헌법 제33조가 규정하고 있는 노동3권 즉,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을 둘러싼 법적 쟁점에 대해 보다 구체적으로 규율하는 법이다. 그리고 노동3권은 자본주의 경제사회에서 노동력이라는 특수한 상품의 소유자인 임금노동자가 거래 상대방과의 대등성을 확보하여 근대 시민법의 기본원칙인 계약의 자유를 실질적으로 향유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필연적 요구로서 시작된 근로자의 단결이 사후적으로 국가에 의해 승인된 인권이다.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은 각각 중요한 의미를 갖지만 노조는 단체교섭을 통해 근로조건과 노동자의 사회적‧경제적 지위향상을 도모하고, 주로 단체교섭을 통한 요구를 관철하기 위해 단체행동을 하게 된다는 점을 고려할 때, 단체교섭권은 노조에게 각별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런데 간접고용 관계에서 하청 노동자들의 단체교섭권은 힘없는 하청과 외면하는 원청에 의해 무력화되기 일쑤이다.

대법원 조형물 '정의의 여신상'ⓒ뉴시스

대법원은 현대중공업 사건(대법원 2010. 3. 25. 선고 2007두8881 판결)과 88관광개발주식회사 사건(대법원 2014. 2. 13. 선고 2011다78804 판결)을 통해 근로자와 근로계약을 직접 체결하고 있는 사용자가 아니라 하더라도 당해 근로자의 기본적인 노동조건을 실질적‧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는 부당노동행위 구제명령의 대상인 사용자가 된다고 판시한바 있다. 현대중공업 사건은 하청노조에 대한 원청의 부당노동행위가, 88관광개발주식회사 사건은 특고노동자에 대한 사업주의 부당노동행위가 문제된 사안이지만 두 판결 모두 실질적으로 책임을 부담해야 할 주체를 찾아내어 법적 책임을 묻는 것이 지극히 타당하다는 상식에 기초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현대중공업, 88관광개발 사건에서 원청의 ‘책임’ 인정한 대법원
CJ대한통운 택배기사 노조의 교섭요구에 응해야 한다고 판단한 중앙노동위
간접고용이 ‘누구에게 이익이 돌아가는가’ 물어야 할 때

그럼에도 원청기업이 하청 소속 노동자들의 노조에 대해 단체교섭의무를 부담하는가에 관해서는 그간 많은 논란이 있었다. 이와 관련하여 최근 CJ대한통운이 대리점 소속 택배기사 노조의 교섭요구에 단독 또는 대리점주와 공동으로 단체교섭에 임해야 한다고 판단한 중앙노동위원회의 판정(2021. 6. 2. 중앙2021부노14)은 매우 유의미하다. 중앙노동위원회는 132쪽에 달하는 판정문에서 택배기사들의 노동조건, 근무환경, 노동방식 등을 생생한 현장사진들과 함께 상세하게 설명한 후 판단근거를 밝히고 있다. 탁상공론이 아닌 현장실태에 기반하여 판정을 내리기 위해 다각도로 노력한 점이 눈에 띈다.

이 사건 택배기사들은 전국의 택배와 관련된 모든 노동자를 대상으로 조직된 전국단위 산업 별 노조인 전국택배노동조합 소속이고, CJ대한통운은 택배 대리점주와 택배화물 운송에 관한 위수탁계약을 체결했으며, 대리점주는 택배기사와 택배화물 운송에 관하여 재위탁하는 계약을 체결했는데, CJ대한통운은 비록 택배기사들과 직접적인 계약관계는 없지만 택배기사들이 소속된 노조와 단체교섭을 해야 할 법적 의무가 있다고 인정된 것이다.

그 이유에 대해 중앙노동위원회는 판정문에서 “근로자와 사용종속적 노무제공계약을 직접 체결한 원사업주뿐만 아니라, 원사업주가 아닌 사업주라 할지라도 원사업주 소속 근로자의 기본적인 노동조건 등에 관하여 일정 부분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는 노동조합법상 단체교섭 의무를 부담하는 사용자로 인정된다. 이 사건 사용자(=CJ대한통운)는 비록 이 사건 대리점 택배기사의 원사업주는 아니지만, 이 사건 노조가 요구한 교섭 의제에 대해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지배·결정권을 가지고 있다고 판단되므로, 이 사건 사용자는 노조법상 단체교섭 의무를 부담하는 사용자에 해당한다.”고 밝히고 있다.

이 판정은 노동법적 관점에서 볼 때, 무엇보다도 원청에 해당되는 택배기업 CJ대한통운이 하청에 해당되는 대리점 소속 택배기사들에 대해 단체교섭의무가 있다고 판단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 간접고용관계에서의 원청의 교섭의무를 인정하는 법리를 제시한 것이다.

다음으로 이 판정은 하나의 노동자에 대해 둘 이상의 사용자가 존재 가능함을 확인했다는 의미가 있다. 즉, CJ대한통운과 대리점주가 모두 택배노동자에 대해 노조법상 단체교섭의무가 있는 사용자로 인정됨을 밝히고 있다. 이는 대법원이 현대중공업 사건 판결에서 지배‧개입의 부당노동행위와 관련해서 인정되었던 바를 단체교섭과 관련해서도 확인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또 다른 측면에서는 초기업교섭이 본래 노조 조합원들과 사용자측 교섭주체간의 직접적인 근로계약관계를 전제로 하지 않는다는 점과 관련하여서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사건에서 산별노조인 전국택배노조는 여러 대리점과 계약을 체결한 택배노조 조합원들을 위해 이들에게 공통적으로 문제되는 노동조건 개선을 위해 이를 실질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CJ대한통운을 상대로 교섭을 요구한 것이다. 그간 우리나라는 기업별노조와 기업별교섭이 주를 이루다보니 조합원과 사용자측 교섭주체간의 근로계약관계가 있는 것을 당연한 전제로 생각했고, 더 나아가 당연히 근로계약관계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요구했다. 그렇지만 초기업교섭의 경우 조합원과 사용자측 교섭주체(예를 들어 사용자단체) 간에는 근로계약관계가 없는 것이 당연하다. 즉, 조합원과 사용자간의 근로계약관계를 요구하는 것은 기업별교섭에서나 필요한 전제라고 할 것이다.

오늘날 하청, 재하청 등 노동의 다단계구조 하에서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비정규직노동자, 비전형적 고용형태의 노동자들이 개별적으로 사용자와 대등한 지위에서 근로조건을 확보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고, 결국 노동자가 소속된 사업장이나 기업단위를 넘어서는 단결을 통해 심각한 힘의 열위를 극복해갈 수밖에 없다. 바로 이 지점에서 지금 특별히 노조, 특히 초기업노조의 존재의의가 여전히 살아 있고, 법은 이들의 교섭을 촉진하도록, 혹은 적어도 방해는 하지 않도록 그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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