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52시간제가 스타트업 발목 잡냐”는 윤석열…노동계·업계 “현실과 동떨어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8일 서울 역삼동 팁스타운에서 열린 ‘스타트업 현장 간담회’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2021.07.08ⓒ국회사진취재단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주 52시간제를 스타트업 육성 걸림돌로 치부하는 듯한 발언을 한 데 대해 ‘현실과 동떨어진 인식’이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노동계는 고강도 노동이 IT 업계 전반에 걸쳐 사회 문제로 대두되는 상황에서 스타트업에 대한 주 52시간제 예외는 부적절하다고 지적한다. 스타트업 업계는 일과 삶의 균형을 추구하는 사회 분위기에 따라 스타트업도 장시간 노동을 개선하고 있다고 전했다.

14일 정치권에 따르면, 윤 전 총장은 스타트업에 대한 주 52시간제 적용이 창업을 저해한다는 입장을 드러내고 있다.

그는 지난 8일 스타트업 업계를 만나 “주 52시간제나 해고의 엄격성, 최저임금 등이 스타트업 성장에 발목을 잡는 경우가 많은데, 어떤 불편함이 있는가”라고 물었다. 최성진 코리아스타트업포럼 대표는 “스타트업이 법을 어기면서 사업을 하지는 않는다”면서도 “주 52시간 등 노동 제도는 스타트업에 맞지 않는 옷”이라고 말했다.

이같은 대화는 주 52시간제가 지난 1일부로 기존 50∼299인 사업장에서 5∼49인 사업장으로 확대 시행되는 국면에서 이뤄졌다. 일부 보수 진영에서는 소규모 사업장의 주 52시간제 적용을 유예해야 한다는 등 장시간 노동의 폐해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을 거스르려는 주장이 제기된다.

윤 전 총장과 스타트업 업계 간담회 전날에는 한 경제지가 A급 개발자는 스타트업 성패를 좌우하기에 주 52시간제 적용이 부적절하다는 취지의 보도를 내기도 했다.

고용노동부는 설명자료를 내 “장시간 근로는 삶의 질을 떨어뜨리고 건강을 위협하며, 산업재해 원인이 되기도 한다”며 “주 52시간제는 장시간 근로 취약 분야에 더욱 필요하다”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혁신을 위한 개발을 이유로 밤샘 근무 등 장시간 노동을 방치해도 되는 건 아니다”라며 “IT・게임・스타트업 종사자도 일·생활 균형과 건강권이 보호돼야 하고 A급 개발자라고 달리 볼 이유가 없다”고 강조했다.

스타트업·IT 업계 만연한 고강도 노동…“주 52시간제 예외는 제도 취지에 대한 몰이해”

스타트업에는 이미 장시간 노동이 만연해 있다. 직장갑질 119가 지난 1~5월 접수한 스타트업 노동자 제보 1,014건 가운데 9% 이상인 94건이 노동 시간 관련 내용이었다.

스타트업에 다니다가 최근 해고당했다는 노동자는 직장갑질119를 통해 “아침 8시에 출근해 점심시간도 없이 밤늦게까지 일을 했고 휴일에도 출근했다”며 “대표는 스타트업이라서 근로기준법을 위반해도 된다는 식으로 얘기하고 다녔다”고 전했다.

스타트업에서 주를 이루는 IT 분야의 장시간 노동은 기업 규모를 가리지 않고 나타났다. 민주노총 화섬식품노조 IT위원회와 민주노총 미조직전략조직실은 지난해 10~11월 판교지역 IT·게임 노동자를 대상으로 노동 실태를 조사했다. 최근 6개월간 주 평균 52시간 초과 노동한 적이 있냐는 질문에 응답자 809명 중 259명(32%)이 ‘있다’고 답했다.

사업장 규모별로 보면, 5인 미만은 81.8%, 5인~100인 미만은 48.6%, 100인~300인 미만은 34.0%, 300인 이상은 22.4%가 52시간 초과 노동 경험이 있었다.

조사 시점에 50인 이상 사업장은 주 52시간제 적용 대상이었음에도 현장의 장시간 노동은 여전했다. 또한, 사업장 규모가 작을수록 노동자 보호 사각지대로 내몰리는 현상도 보였다.

윤 전 총장은 스타트업 업계 간담회 직후, 주 52시간제에 대한 입장을 묻는 질문에 “제도 자체를 얘기한 건 아니다”라면서도 “스타트업은 창의성이 중요하고 집중적으로 일을 해야 하니까, 기존의 규제 방식에 따른 어떤 애로사항이 있는지 물어본 것”이라고 말했다.

IT 업계 고강도 노동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된 상황에서 주 52시간제가 스타트업 발목을 잡는다는 인식은 현실과 동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 네이버에서는 내비게이션 사업을 담당하던 노동자가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다 극단적 선택을 했다. 네이버 노조 ‘공동성명’ 조사에 따르면, 밤 11시, 휴일, 주말을 가리지 않고 업무를 진행했다

카카오도 최근 고용노동부 근로감독에서 일부 노동자에게 주 52시간 이상 일을 시킨 사실이 드러났다. 노동 시간 법정 상한을 지킨 것처럼 꾸미기 위해 노동자가 인사시스템에 노동 시간을 기록하지 못하게 했다.

민주노총 화섬식품노조 IT위원회 서승욱 위원장은 “주 52시간은 삶의 적정성을 위해 건강을 해치지 않는 수준에서 최대 노동 시간을 규정한 것”이라며 “주 52시간은 과로사 원인으로 판단하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사업 성과를 내기 위한 경쟁은 대기업과 스타트업이 다르지 않다”며 “스타트업에 대한 노동 시간 상한선을 완화해야 한다는 주장은 제도 취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서 위원장은 주 52시간제 적용으로 스타트업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우려가 얼마나 타당한지도 따져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회사마다, 시기마다 필요로 하는 노동 시간이 다르다”며 “현황을 면밀히 파악한 후 상한선 내에서 업무를 조정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대부분의 스타트업은 업무시간조차 제대로 기록하지 않고 있다”며 “노동 시간 수요 파악도 없이 뭉뚱그려서 노동 시간이 제한된다고 하면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오세윤 네이버사원노조 ‘공동성명’ 지회장(왼쪽 네번째)이 7일 오전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네이버 그린팩토리 앞에서 열린 ‘동료의 안타까운 죽음에 대한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한 노동조합의 입장 발표’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1.06.07.ⓒ뉴시스

노동 환경 개선 흐름 발맞추는 스타트업 업계…주 52시간 유예와 방향 달라

스타트업 업계는 고강도 노동에 따른 부작용 해소를 위해 주 52시간제 시행에 맞춰 대응하고 있다. 주 52시간제를 회피하는 방식이 아니라 노동 시간 단축 등 사회적 흐름에 발맞추는 방식이다. “글로벌 경쟁을 위해 노동 규제를 자유롭게 하는 게 스타트업 운영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윤 전 총장 인식과는 방향이 다르다.

초기 스타트업을 발굴해 지원하는 시드 투자 기관 더인벤션랩의 김진영 대표는 “스타트업도 고용 관계가 있다면 근로기준법이 적용되는 만큼 최근 변화를 꾀하고 있다”고 운을 뗐다.

김 대표는 “스타트업 대부분이 초기에는 4~5명의 코파운더(설립자), 즉 주주로 구성된다”며 “매출이 쌓이고 외부에서 투자를 받으면서 직원을 채용한다”고 전했다.

이어 ”직원을 채용할 때 질서와 정책(Rule&Policy) 등 가이드라인을 정립하지 않은 경우 잡음이 발생한다“며 ”노동자가 회사를 나가서 제소하는 등 좌충우돌을 겪으면서 대표가 노동 조건에 대한 문제를 깨닫기도 한다“고 전했다.

그는 "설립자끼리만 있을 때는 열심히 달리다가, 시드 투자 이후 외부 인력 채용에 따라 불협화음이 발생하면서 개선하고자 노력들을 한다”며 “투자받는 기업은 노동 조건에 대해 신경을 안 쓸 수가 없다”고 설명했다.

또한 “노무법인 자문료도 크게 비싸지 않아 도움 받을 받고 표준계약서를 제공하는 경우가 많다”며 “더인벤션랩도 투자 대상 스타트업에 표준계약서를 전달해 작성을 권장한다”고 말했다.

더인벤션랩은 67개 이상 스타트업에 총 100억원 이상을 투자하고 있다. 투자 대상 기업에는 스타트업이 5인 이상 사업장 주 52시간제 적용 등 제도 변화에 안착할 수 있도록 인사관리 솔루션을 제공하는 스타트업도 있다.

윤 전 총장은 스타트업 인력 충원 문제에 대한 질문에 “스톡옵션 거래가 원활하게 중개되면 성과에 대한 충분한 보상이 이뤄져 고급 인력이 스타트업에 진출할 것”이라고 말했다.

스톡옵션은 노동자가 회사 주식을 일정한 가격으로 살 수 있는 권리다. 회사가 성장해 주식 가치가 올랐을 때 스톡옵션을 행사하면 낮은 가격으로 주식을 취득할 수 있다.

일각에서는 회사 가치가 올라가면 노동자가 지급받은 스톡옵션으로 실현할 수 있는 이익이 커져, 회사 성장을 위해 자발적으로 오래 일하고 싶어하는 노동자가 주 52시간제로 피해를 본다는 주장까지 나온다.

스톡옵션 거래 활성화에 앞서 노동 환경 개선이 전제돼야 스타트업에 인력 유입이 늘어날 것이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실제 IT 업계 노동자 대다수는 주52 시간제가 일할 권리 침해라는 주장에 공감하지 않았다. 민주노총의 판교지역 조사에서 ‘주 52시간보다 더 일할 수 있도록 하자’는 의견은 5.2%에 그쳤다. 가장 많은 의견은 ‘주 52시간 상한제가 안착되도록 노력해야 한다’(46.4%)였다. 이어 ‘주 4일제 도입’(38.4%), ‘기업 규모별 차등 적용’(10.0%) 순으로 나타났다.

김 대표는 “스타트업에서 주말에 일하러 나오는 사람은 대부분 설립자”라며 “일과 삶의 균형을 추구하는 경향이 강해지는 만큼 밀레니얼 세대는 장시간 노동을 꺼린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주 52시간제가 오래 일하고 싶어하는 직원의 노동 시간을 제한한다는 주장은 현실과 맞지 않다”고 했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8일 서울 역삼동 팁스타운에서 열린 ‘스타트업 현장 간담회’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2021.07.08ⓒ국회사진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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