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 없이 표류하는 ‘20배 빠른 5G’…기지국 4만 5천개 세운다던 약속은?

28GHz 5G 없이 메타버스·스마트공장 상용화…기지국 125개 그쳐, 주파수 할당 취소 가능성도

SK텔레콤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추진하는 28GHz 시범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지난 5일부터 11일까지 삼성동 코엑스 로비 이벤트홀에서 5G 28GHz 시범 서비스를 선보였다.ⓒ제공 : SK텔레콤

‘20배 빠른 고주파 5G’가 수요처 없이 표류하고 있다. 기지국을 촘촘하게 세워야 해 이동통신사의 망 구축 비용 부담이 클뿐더러, 메타버스와 스마트공장 등 대표 서비스도 LTE 또는 ‘4배 빠른 저주파 5G’ 기반으로 상용화되고 있다. 올해 고주파 5G 기지국을 총 4만 5천개 깔겠다던 SK텔레콤·KT·LG유플러스는 약 125개를 설치하는 데 그치고 있다.

16일 통신 업계에 따르면, 최근 이통 3사는 28GHz 대역 5G 시범 서비스를 내놓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이통 3사, 각종 연구기관이 참여하는 ‘28GHz 5G 이동통신 구축 활성화 전담반(TF)’은 지난 3월 발족 이후 28GHz 5G 활성화를 위한 시범 과제를 논의해왔다.

TF는 강남 코엑스, 수원 위즈파크, 부여 정림사지 등 전국 10개 장소에서 시범 서비스를 추진한다는 계획을 세워, 현재 진행 중이다.

SK텔레콤은 지난 5~11일, 코엑스에서 메타버스 기술을 활용한 가상 콘퍼런스와 실시간 고화질 생중계, 가상현실(VR) 게임을 선보였다. KT는 위즈파크에 실시간 홀로그램으로 선수단과 팬미팅을 하고, 선수 라커룸을 메타버스로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했다. LG유플러스도 충북 음성골프장에서 ‘스윙 밀착영상’ 기능을 내보였다. 선수 스윙 장면을 다각도에서 돌려보고, 화면을 최대 4배까지 확대할 수 있는 기능이다. 다음달에는 정림사지에 체험관을 꾸며, 증강현실(AR) 글래스로 실감형 콘텐츠도 공개할 예정이다.

이통사가 시범 차원에서 선보이는 서비스는 28GHz 5G 기술을 대표한다. 메타버스와 홀로그램, VR, AR 등은 서비스에 필요한 데이터 용량이 커, 3.5GHz 수준의 저주파 대역보다 고주파 대역에 적합하다고 평가돼왔다.

이통사가 5G 상용화 당시 ‘20배 빠르다’고 홍보한 통신망은 28GHz 대역이다. 3.5GHz 5G의 속도는 LTE 대비 4배 수준으로 평가된다.

28GHz 5G의 최대 약점은 짧은 도달거리와 낮은 회절률이다. 스마트폰 등 단말기와 기지국이 멀어지면 전파가 전달되지 않는다. 전파가 나아갈 때 장애물이 나타나면 돌아서 피해 가지 못하고 부딪혀 전파 세기가 약해진다.

28GHz 5G는 LTE와 3.5GHz 대역보다 기지국을 촘촘히 세워야 한다는 점에서 이통사의 망 구축 비용 부담이 크다. 이통사는 초고속·저지연을 앞세워 5G 가입자를 모집하면서도 이론상 최고 성능을 발휘하는 28GHz 5G망을 깔지 않고 있다. 28GHz 5G가 ‘시범’ 단계에 머무르는 배경이다.

KT는 수원 KT 위즈파크에서 28GHz 5G 실증 서비스를 선보인다고 지난 13일 밝혔다. 사진은 KT 관계자들이 수원 KT 위즈파크내 마련된 28GHz 5G체험관에서 kt wiz 김주일 응원단장과의 실시간 양방향 홀로그램 팬미팅 서비스를 소개하는 모습.ⓒ제공 : KT

28GHz 5G 없이 상용화 문 연 메타버스·스마트공장

통신 업계에서 메타버스는 5G 기술 상용화를 주도할 서비스로 꼽힌다. ‘아바타를 이용해 사회·경제·문화적 활동을 하는 가상 세계’로 설명되는 메타버스는 고차원 그래픽으로 구성되고 실시간 소통이 가능해야 해 대용량 데이터 사용이 수반된다. 코로나19로 비대면 추세가 확산하면서, 5G 기반의 소비자향(B2C) 서비스로 급부상했다. 국내외 유명 가수들이 메타버스에서 콘서트를 여는가 하면, 기업의 온라인 회의 공간으로도 활용된다.

28GHz 5G 없이도 메타버스는 상용화 단계에 이르렀다. 네이버 자회사인 네이버제트가 운영하는 ‘제페토’는 이용자가 2억명을 넘어섰다. 네이버는 제페토 안에 구현한 그린팩토리(네이버 사옥)에서 신입사원 연수를 진행하기도 했다. 신입사원은 자택에서 스마트폰으로 제페토에 접속했다.

네이버 관계자는 “제페토는 LTE 폰에서도 사용할 수 있다”며 “현 상황에서 메타버스와 5G 대역은 큰 관계가 없다”고 말했다.

SK텔레콤도 자체적으로 메타버스 플랫폼 ‘이프랜드’를 출시했다. 대형 콘퍼런스홀을 비롯해 야외무대와 모닥불 룸 등 다양한 가상공간을 마련했다. 회의·발표·미팅 등이 가능하도록 문서(PDF)와 영상(MP4)을 공유하는 소통 환경도 구축했다. 이프랜드도 LTE 망에서 접속이 가능하다.

이통사 관계자는 “28GHz 5G를 지원하는 스마트폰이 전무한 상황”이라며 “B2C 쪽으로는 돌파구를 찾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스마트공장도 3.5GHz 기반으로 진척되고 있다. KT가 지난해 출시한 ‘5G 스마트팩토리 머신비전’ 서비스는 공장에 설치된 카메라로 이미지를 수집하고 데이터를 분석해준다. 불량검사, 제품식별, 치수측정 등 기존에 사람이 육안으로 하던 작업을 인공지능이 대신한다. 분석한 정보를 바탕으로 기계를 멈추는 등 동작을 결정한다.

해당 서비스는 이미지와 데이터를 빠르게 분석해야 해 저지연성이 담보돼야 한다. 다만, 고객사 생산 현장 조건에 따라 28GHz뿐 아니라 3.5GHz 5G에서도 원활한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다는 게 KT 설명이다.

스마트항만도 3.5GHz 대역 기반으로 가시화하고 있다. LG유플러스는 부산항만공사와 함께 국내에서 처음으로 항만에 5G 통신망을 구축하고 있다. 5G 통신망은 ‘크레인 원격제어’ 서비스의 기반이 된다. 기존에는 조종사가 25m 상공에서 아래를 보며 컨테이너를 쌓아야 했으나, 원격제어를 적용하면 작업장에서 떨어진 사무실에서 조종사 1명이 3~4대의 크레인을 동시에 조종할 수 있다. 크레인에 장착된 8대의 카메라에서 촬영한 영상을 통해 컨테이너 위치를 확인한다.

크레인 원격제어는 영상 전송 속도가 관건이다. 5G망을 구축하면 LTE에 비해 영상전송 시간을 84%가량 단축할 수 있다고 LG유플러스는 설명한다.

부산항만에 설치한 5G 기지국은 전부 3.5GHz 대역이다. 28GHz 대역으로 5G망을 깔면 더 많은 영상을 전송해 동시에 조종할 수 있는 크레인 개수를 늘릴 수 있으나, 여수 광양항에 일부 28GHz 대역 기지국이 활용된 정도다.

LG유플러스는 부산항만공사(BPA)와 함께 스마트항만 구축을 위한 5G 네트워크를 도입해 하역장비와 물류창고 등 다양한 분야에 활용할 예정이라고 지난 5월 2일 밝혔다. 사진은 부산항 5G로 원격제어되는 컨테이너크레인과 관제실 모습.ⓒ제공 : LG유플러스

정부가 집중한다는 B2B도 수요 저조…28GHz 5G 기지국 125개에 그쳐

정부는 기업향(B2B) 서비스를 중심으로 28GHz 5G망을 확산한다는 방침이다. 앞서 최기영 전 과기부 장관은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정부는 28GHz 5G를 전 국민에게 서비스한다는 생각은 전혀 갖고 있지 않다”며 “B2B 분야나 핫스팟(데이터 사용 밀집 지역) 용도로 활용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5월 임혜숙 장관 취임 이후에도 동일한 입장이 유지되고 있다. 전국망이 받쳐줘야 소비자를 유치할 수 있는 B2C 서비스는 단기간에 유의미한 성과를 내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이다.

B2B 시장에서도 28GHz 5G망 수요는 크지 않다. KT 머신비전은 기술 개발 이후 고객사를 찾지 못하고 있다. 다른 이통사의 스마트공장 서비스도 상황이 비슷해 적용 사례가 많지 않다.

그나마 정부 기관을 대상으로 하는 B2G 계약이 소규모로 이뤄지고 있다. IT 분야 중소기업이 28GHz 5G망 기반의 제품과 서비스를 시험·검증할 수 있도록 기지국을 구축하는 방식이다. 과기부는 지자체 또는 연구기관과 함께 거점 지역을 중심으로 테스트베드를 확대하고 있다.

미흡한 28GHz 5G망 구축은 수치로 확연하게 드러난다. 과기부에 따르면, 지난 6월 기준 이통사가 세운 28GHz 5G 기지국은 약 125개다. 2018년 주파수 할당 당시 이통사에 부과된 기지국 의무 구축 규모는 회사별로 1만 5천개다. 구축 기한이 주파수 이용 기간인 5년이기는 하나, 달성 여부는 미지수다.

올해까지의 의무 구축 실적은 채우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이통사는 주파수 할당 3년 차에 의무 구축 수량의 10%(4,500개)를 채워야 한다. 주파수 할당 공고에 따르면, 의무 미이행 시 주파수 할당이 취소된다.

다만, 제재 전 이용자 보호 등을 이유로 정부가 필요하다고 판단하는 경우 1회에 한해 할당 취소 대신 시정명령을 내릴 수 있다.

과기부는 망 구축 의무 부과 취지에 대해 “서비스를 원활하게 제공하기 위한 최소한의 규모를 정한 것”며 “공공재인 주파수의 할당은 서비스를 전제한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망 구축 이행에 대한 과기부 점검은 오는 2022년 실시된다. 과기부는 원칙대로 점검·조치한다는 입장이다. 지난 5월에는 설명자료를 내고 ‘망 구축 의무를 완화한 바 없으며, 주파수 할당 당시 제시한 제재 기준에 따를 것’이라고 밝혔다. 이통사가 28GHz 5G망 구축에 난색을 보이는 상황에서 정부가 제재 없이 기지국 설치 의무를 완화해 주는 것 아니냐는 우려 제기되자 진화에 나선 것이다.

28GHz 대역 주파수를 활용해 수익을 내기 어렵다고 판단한 이통 3사는 지난해 4분기 공시보고서에서 28㎓ 대역 주파수 이용권을 회계상 손상 처리했다. 주파수를 이용해 수익 사업을 전개하려던 당초 계획이 틀어졌으니 손상 처리하는 게 적절하다는 회계법인 권고를 받아들였다.

이통사 관계자는 주파수 이용권 손상 처리에 대해 “주파수 할당 취소 가능성 고려했다는 건 과도한 해석”이라며 “주파수 이용권을 최대한 활용해 수요가 있는 곳에 서비스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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