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으로 세상읽기] 화가들의 뜻하지 않은 죽음

세상을 떠난 사람들의 소식을 듣으면 늘 가슴이 먹먹합니다. 언젠가는 이곳을 떠나야 하는 것이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알지만, 막상 접하고 보면 늘 안타깝습니다. 반 고흐처럼 극적인 삶의 이야기가 더해지면 세월이 흐르면서 죽음이 신화가 되기도 하지요. 그러나 뜻하지 않게 목숨을 잃은 화가들도 있습니다. 만약 그들이 천수를 누렸다면 어떤 작품들이 더해졌을까 하는 상상을 해봤습니다.

창가의 두 여인 Two Woman at a Window c.1670 oil on canvas 125.1cm x 104.5cmⓒ워싱턴국립미술관

창 밖에 무슨 일이 있는지 밖을 바라보며 턱을 괴고 있는 소녀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습니다. 그녀 뒤에 서 있는 여인도 입을 가렸지만, 눈이 웃고 있는 것을 보면 자주 있는 일은 아닌 모양입니다. 저도 밖의 풍경이 궁금합니다. 대각선으로 화면을 구분하고 위쪽을 검은색으로 처리해서 아래쪽 소녀의 얼굴이 더욱 환하게 보입니다.

모델이 누구였는지 확실하지 않지만, 당시 스페인에서는 이런 그림의 모델로 주로 고급 매춘부들을 썼다고 하니 그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겠지요. 모델의 직업의 무엇이었든 간에 햇빛 아래 소녀의 얼굴은 세상을 향해 열린 창으로 꿈을 보고 있는 듯 합니다.

스페인 세비야에서 태어난 바르톨로메 에스테반 무리요(Bartolomé Esteban Murillo)는 유럽 전역에서 명성을 얻은 첫 번째 스페인 화가였습니다. 특히 영국에서 그의 작품에 대한 인기는 대단했습니다. 성모 마리아를 자주 그려서 ‘성모 마리아의 화가’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습니다. 그의 작품 속 성모 마리아엔 엄숙함보다는 따뜻함이 먼저 다가오는 느낌이 있습니다.

무리요의 죽음은 좀 허망했습니다. 그는 카푸친 수녀원의 벽에 ‘성녀 캐더린의 혼례’를 그리다 비계 위에서 추락하고 말았습니다. 고향으로 옮겨졌지만 결국 후유증으로 몇 달 뒤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의 나의 64세였습니다.

존 브라운의 마지막 순간들 The Last Moments of John Brown c.1884ⓒ샌프란시스코 미술관

무장한 군인들이 경계를 서는 사이로 한 남자가 줄에 묶인 채로 계단을 내려오고 있습니다. 그를 보기 위해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여인은 아기가 남자를 안아 볼 수 있도록 아이를 높이 들었습니다. 백인인 그를 체포하기 위해 온 사람들은 백인들이고 그런 그를 보러 온 사람은 흑인 남녀들입니다. 비장함과 당당함이 남자의 표정과 몸에 스며 있습니다.

체포된 남자의 이름은 존 브라운, 노예제도 폐지론자였습니다. 그는 미국 남북전쟁 전에 이미 노예제도 폐지를 주장했고 급기야는 연방정부의 무기고를 습격하여 흑인 노예들의 반란을 꾀했다가 체포되어 목숨을 잃게 된 사람이죠. 역사라는 수레는 때로 이렇게 정열적인 사람들에 의해 그 바퀴가 굴러갑니다.

이 작품을 남긴 토마스 호벤든(Thomas Hovenden)은 아일랜드 감자 기근 때 부모를 잃었습니다. 그의 나이 여섯 살 때였지요. 조각과 금도금을 하는 사람의 견습생으로 일하던 그는 23세에 미국으로 이민가 화가로서 경력을 쌓습니다. 파리 유학을 거쳐 펜실베이니아 미술대학의 교수로도 활동합니다.

1895년 8월 어느 날, 호벤든은 집 인근의 철길 근처에 있다가 달려 오는 기차와 철길 옆에 있는 소녀를 동시에 보게 되었습니다. 그는 열 살 된 소녀를 구하고자 달려 오는 기차에 몸을 던집니다. 이 일로 그는 54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합니다. 검시관들은 단순 사고라고 했지만 지역 신문들은 그의 영웅적인 행동을 보도했습니다. 사고일 수도 있지만 어린 생명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걸었으니 화가이기 전에 그는 영웅이었습니다.

피아젠티나의 우유 배달부 The milkman in Piagentina 1864 oil on canvasⓒ나폴리 카포디몬테 국립미술관

피렌체 지역의 피아젠티나의 햇빛이 내리는 길 위, 노인이 우유를 실은 수레를 밀고 있습니다. 길에는 먼저 지나간 수레 자국이 선명합니다. 비가 오고 날씨가 갠 지 얼마 안 된 모양입니다. 하나 하나 살펴보면 부드럽고 고운 색들 입니다. 맑은 햇빛이 가득한데도 그림의 느낌은 적막하고 쓸쓸합니다. 묘한 울림이 있습니다. 우리 모두 그림 속 노인처럼 혼자 걷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삐걱거리는 수레바퀴 소리가 벽을 타고 마을 골목길로 사라지고 있습니다.

이탈리아 나폴리에서 태어난 주세페 아바티(Giuseppe Abbati)는 이탈리아 통일운동이 한창일 때 ‘붉은셔츠단’에 가입합니다. 1860년, 카푸아에서 벌어진 전투에 참전했다가 오른쪽 눈을 다쳐 시력을 잃고 맙니다. 화가로서는 치명적인 것일 수도 있었는데 열혈청년 아바티에게는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1860년 말, 피렌체로 돌아 온 아바티는 ‘미켈란젤로’라는 카페에서 자주 열린 모임에 참가합니다. 이는 기존의 화풍에 반기를 들고 의도적으로 명암의 규칙을 무시하거나 빛과 그림자의 대비와 자연스러운 색채의 어우러짐에 관심을 가지려한 젊은 화가들의 모임이었습니다. ‘마키아이올리’라고 불렸던 그들은 파리에서 인상파가 등장하기 전 이미 빛의 중요성을 알았던 화가들이었지요.

이후 아바티는 19세기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화가로 자리를 잡습니다. 그러다 1867년 12월, 자신이 기르던 ‘첸니노’라는 이름을 가진 개에게 물리고 맙니다. 그는 그 일로 광견병에 걸렸고 두 달 뒤 피렌체 병원에서 숨을 거둡니다. 그때 그의 나이는 겨우 서른두 살이었습니다. 32년은 세상에 왔다 가기에는 너무 짧은 시간이었습니다. 그래서 아쉬움이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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