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비정규직 제로’ 선언한 녹색병원 원장에게 ‘공정’이란

녹색병원, 요양보호사 15명 정규직 전환...임상혁 “같이 사는 게 공정이지”

2021년 7월 15일 녹색병원에서 만난 임상혁 병원장.ⓒ민중의소리

“별일 아닌데, 그냥 요양보호사들 정규직화 한 건데, 여러 명에게서 전화 받았어요. 심지어 정부 기관 사람한테도 연락이 왔어요. 반대가 심하지 않았냐, 갈등은 없냐 등등.”

녹색병원은 이달 1일 그동안 파견 형태로 고용하고 있던 요양보호사 15명을 전부 직고용 정규직으로 전환했다. 그랬더니 병원장에게 전화가 쇄도했다. 모두 병원 내 갈등을 우려하는 전화였다고 임 병원장은 말했다.

15일 녹색병원에서 그를 만났다. 임 병원장은 “그냥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인데, 곳곳에서 우려하는 전화가 와서 놀랐다고 말했다.

가장 낮은 곳에 위치한 병원장실

폭염으로 푹푹 찌는 이날 서울 중랑구 면목동에 위치한 녹색병원을 찾았다. 임상혁 병원장을 만나기 위해서다.

사가정역 오래된 주택단지 사이에 위치한 녹색병원은 조금 특별한 민간병원이다.

사회적으로 직업병 문제가 대두되던 80년대 후반, 노동계와 학생들이 나서서 ‘원진레이온 공장에서 일하던 수많은 노동자가 이황화탄소 중독으로 서서히 죽어가는 사실’을 세상에 알렸다. 이 운동 덕분에 원진레이온 노동자들은 회사로부터 보상을 받게 되는데, 이 보상금으로 세워진 병원이 이곳 녹색병원이다. 태생부터 남달랐던 녹색병원은 직업병에 시달리거나 산업재해를 당한 노동자 치료에 헌신적이고 전문적인 병원으로 잘 알려져 있다. 노동운동가들이 목숨을 건 단식농성 후에 찾는 병원이 녹색병원인 이유다.

병원 구조를 봐도 이런 가치를 느낄 수 있다.

병원은 지하 2층부터 7층까지 있는데, 지하 2층의 가장 낮은 곳에는 병원 원장실이 있고, 가장 전망 좋은 7층에는 재활치료가 필요한 이들을 위한 120여 평 규모의 재활치료센터가 있다. 보통 가장 꼭대기 층에 VIP를 위한 공간 또는 병원 원장실을 놓는 다른 병원과 다른 지점이다.

원장실이 지하에 있게 된 연유를 묻자, 그 취지에 대해 답해주진 않고, 농담조로 “초대 원장님이 하필 지하에 원장실을 마련하는 바람에…”라며 한숨을 푹 쉬는 그였지만, 인터뷰 내내 임 병원장에게서는 녹색병원과 직원들에 대한 자부심이 느껴졌다.

2021년 7월 15일 녹색병원 전경.ⓒ민중의소리
지하 2층에 위치한 녹색병원 원장실ⓒ민중의소리

해야 할 일을 했을 뿐

이날 그를 찾아간 이유는 최근 ‘비정규직 제로’를 선언한 취지를 듣기 위해서다.

앞서 녹색병원은 이달 1일 61병동에서 일하는 요양보호사 15명을 직고용 정규직으로 전환했다. 또 앞으로도 외주 비정규직인 환경미화 노동자와 식당 노동자들을 전부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는 항상 적자 늪에 빠져 있던 녹색병원이 최근 흑자로 전환되고, 경영사정이 조금 좋아졌다고는 하나, 병원장의 결단이 필요한 일이었다. 보건의료노조는 “이번 전환은 정규직 전환 계획을 가지고 있던 병원장의 의지와 의료기관 내 정규직화를 지속해서 요구해온 보건의료노조의 정책이 맞닿아 성사됐다”고 밝혔다.

2017년 문재인 대통령의 비정규직 제로 선언 이후, 공공병원도 아니 민간병원에서의 ‘비정규직 제로’ 선언은 처음 있는 일이다. 공공병원에서도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과정에서 재정 부담을 느낀 경영진과 기존 정규직의 반대로 상당한 갈등이 발생한 바 있고, 이런 갈등이 극에 달한 이른바 ‘인국공(인천국제공항) 사태’로 공공기관장들조차 ‘직고용 정규직 전환’을 회피하는 상황에서, 녹색병원의 선언은 남다른 의미가 있다. 사회가 지향해 온 방향과 원칙을 다시금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거창한 설명 대신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고 답했다.

“재정? 아무래도 (정규직으로 전환되면 재정 부담이) 좀 더 올라가고, 매년 인상될 테니 부담이 없진 않죠. 근데, 그거 때문에 안 하면 안 되죠. 그거 부담된다고. (녹색병원 경영 사정이 어려웠던) 옛날에는 그런 생각을 하지도 못했을 거예요. 다만, 재정이 좀 안정되면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겁니다. … 노동의 양극화, 차별 너무 심하잖아요. 그걸 어떻게든 해소해야 해요. 그건 결국 기업이 해야 하는 일이고. 그게 사회에 대한 공헌입니다. 우리가 진작 그걸 못한 게 미안했죠.”

귀천(貴賤)은 없다

그는 병원 노동자 각자의 업무에 귀하고 천함이 없다고 강조했다.

‘요양보호사들의 업무를 다른 병원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에 정규직으로 전환한 것 아니냐’는 질문에, 그는 “어떤 일은 중요하고, 어떤 일은 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각각의 역할이 나누어져 있을 뿐”이라며 “각자의 전문적인 역할이 유기적으로 잘 결합할 수 있도록 돕는 게 병원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요양보호사는 요양보호사의 역할이 있는 거고, 의사는 의사의 역할이, 간호사는 간호사의 역할이 있을 뿐입니다.”

2021년 7월 15일 녹색병원 7층 재활센터 모습.ⓒ민중의소리

“같이 사는 것”

요양보호사를 정규직으로 전환하는데, 녹색병원이라고 직원들의 우려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임 병원장은 “우려와 걱정이 없진 않았다”라며, 그동안 외주 업체가 알아서 해주던 일을 간호부장과 수간호사가 떠맡아야 하기 때문에 업무부담 증가는 불가피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요양보호사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면 기존 정규직의 파이가 줄어드니 안 된다’는 식의 반대는 없었다고, 그는 강조했다.

그동안 정부 정책에 따른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이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이 같은 오해에서 비롯된 반대가 노노갈등으로 이어졌다. 비정규직이 정규직으로 전환되더라도 처우개선에는 위탁업체에 돌아가는 순이익 등이 사용되기 때문에, 기존 정규직의 임금이나 자리를 뺏는 게 아니다. 그런데도 비정규직들이 대거 정규직이 되면, 파이를 빼앗길 수 있다는 우려가 퍼졌다. 또 비정규직이 직고용으로 전환되더라도 일반정규직과는 직렬 자체가 다른 중규직·무기계약직으로 관리되기 때문에, 어렵게 공사·공단에 입사한 20·30대의 노력을 훼손시키지 않는데도, 공정성을 헤친다는 주장이 횡행했다.

그는 “병원이 지향하는 기본적인 가치를 직원들이 알고 있다”며, 녹색병원에서는 왜곡된 논리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반대하는 경우는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정규직의 고용불안을 해소하고 처우개선 기회를 보장하기 위한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을 반대하기 위해 일각에서 제시하는 ‘공정성 논란’에 대해, 다음과 같이 한마디 했다. “같이 사는 게 공정하게 사는 거죠.”

끝으로 그는 “더 나은 세상을 위해서는 연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지금 노동자들이 연대하지 않으면, 좀 더 나은 세상 만들어지지 않아요. 노동자들이 손을 내밀고 서로 보듬지 않으면, 답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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