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자라는 아빠] 일곱 살 생일을 맞은 아이에게 아빠가 쓴 편지

네가 모르는 사이에도 엄마 아빠는 너를 생각해

오늘은 너의 7살 생일이야. 아빠와 함께 고물을 주워다 장난감을 만들고, 엄마와 함께 올챙이를 잡아다 개구리로 키워 풀어주기를 반복하는 이 여름은 즐겁니? 매일 밤 아빠에게 마사지를 받고, 엄마가 지어내는 새로운 이야기를 끝없이 들을 수 있는 7살의 삶은 어떻니?

정수기에 입 대고 마셨다가 혼나고, 거품 샤워와 머리 감기를 혼자 해내고 칭찬을 듣는 건? 출근 전 아빠가 엄마에게 뽀뽀를 하면 "나는 왜 안 해줘?"라며 입술을 내미는 이 무렵이 너에겐 어떤 기억으로 남을까? "엄마는 백만 천만 점, 아빠는 빵점"이라고 놀리면서도 늘 아빠를 끌어안고 자는 개구쟁이를 아빠는 언제까지나 생생히 기억할 것 같은데.

그러고 보니 이제 6살보다 8살에 가까워졌네. 6살은 7살이 될 준비를 할 필요는 없지만, 7살엔 8살이 될 채비를 해야 할 것만 같네. 초등학교라는 더 넓은 세상으로 모험을 떠나게 되거든. 너는 이미 어느 정도 준비가 된 것만 같아. 특히 주저하지 않고 생각을 표현한다는 점에서. 그 뻔뻔한 자신감이 얼마나 매력적인지 몰라. 너 요즘 이랬어.

#상황 1
수현:저 형은 왜 자전거를 잘 못 타?
아빠:이번에 배우기 시작한 게 아닐까? 누구나 각자 서툰 점이 있는 거야. 너도 그렇지 않아?
수현:나는 못 하는 거 하나도 없는데?

#상황 2
엄마:나 오늘 노래할 일이 있었는데 마스크 쓰고 부르려니 힘들었어.
수현:그럴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내가 가르쳐줄까?
아빠:너 마스크 쓰고 노래해본 적 있어?
수현:없는데? (내가 하는 거) 잘 봐.

생일선물로 받은 자전거를 타고 새로 생긴 놀이터로 앞장선 아이ⓒ사진 = 오창열

아빠는 요즘 네 표현력이 자라는 걸 보는 게 즐거워. 앞으로 자라는 동안 이렇게 당당하게, 까불며 살았으면 좋겠다 싶어. 아빠는 까불어야 할 때 까불지 못하고, 자기 표현을 해야 할 때도 그렇게 하지 못했던 때가 많았거든.

요즘 네가 잠든 밤이면 아빠와 엄마는 살며시 침실을 빠져나와 의자에 풀썩 앉으며 "하아... 수현이 오늘도 실컷 귀여웠다.", "왜 이리 이쁘지?"라는 말을 시작으로, 너의 하루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 어떤 걸 하며 함께 즐거웠는지, 다른 아이들과 어떻게 놀았는지, 걱정스러운 점은 없는지, 내일 챙겨야 할 것은 없는 지에 대해 서로 '동기화'(?)를 해. 예를 들면 서로 이런 자잘한 대화 한 토막을 공유하는 거야.

#상황 3
수현:집에 왔으니까 이제 아이스크림을 줘.
아빠:알겠어. 이거 먹어도 저녁밥은 잘 먹을 거지?
수현:약속대로 아이스크림을 먹는 건데, 왜 지금 새로운 '조건'을 말하는 거야? (심기 불편)

#상황 4
수현:배불러. 밥 그만 먹을래.
아빠:아직 이만큼이나 남았잖아. 마저 먹어.
수현:어른들은 다 먹을 수 있겠지만, 배가 작은 '어린이 입장'에서는 다 못 먹거든?

#상황 5
아빠:수현아, 새로 생긴 놀이터에 가보니 어땠어? 아빠랑 같이 가볼까? 소개해 줄래?
수현:알겠어! 아빠. 거기 가면 매달려서 노는 게 있는데, 조심해야 해. '자칫'하면 다칠 수 있으니까.
아빠:자칫 안 할게.

아빠는 "조건, 입장, 자칫 같은 표현을 쓰는 게 너무 놀랍지 않아", "수현이, 어휘 천재 아니냐"라고 엄마한테 말을 하지. 그러면 엄마도 낮에 있었던 일화를 전해줘.

#상황 6
수현:엄마. 우리 반 김은서(가명) 있잖아. 자기 엄마 아빠가 나쁜 사람이라고 하더라? 계속 화를 낸다고.
엄마:엄마도 화를 내는데?
수현:엄마는 다르지. 엄마는 나를 사랑하잖아. 내가 잘되라고 가끔 그러는 거잖아. 내가 다 이해하지. 근데 이걸 모르는 아이도 있더라?

7살의 수현이의 화풍. “이건 나, 이건 엄마, 이건 아빠. 얼굴이 제일 크니까 바로 알겠지?”ⓒ사진 = 오창열

이런저런 너의 놀라운 어록을 주고받다가. 엄마에게 무척 인상적인 에피소드를 들었어. 바로 며칠 전 언어 치료사 선생님께서 엄마에게 해주신 이야기야.

언어 치료 수업은 40분짜리인데, 아무래도 아이들이 계속 집중하기엔 긴 시간이기 때문에 놀이를 중간중간 섞어서 진행하신데. 그런데 너는 놀이 시간 한 번 없이 수업에 집중을 했고, 그 덕에 진도가 빨라서 예정보다 일찍 발음 장애 치료를 마칠 것 같다고 하셨데.

선생님은 집중을 잘하는 네가 독특하다고 생각하셨나봐. 너한테 '수업이 재밌니?' 하고 물으셨다고 하더라. 그런데 네 대답을 듣고는 네가 무척 참을성 있는 아이라는 걸 아셨다고 해. 너 이렇게 대답했다며? "재미는 하나~도 없어요. 발음이 좋아지고 있으니까 꾹 참고 하는 거예요." 네가 네 몫의 어려움을 이겨내려는 모습에 엄마, 아빠 마음은 얼마나 벅찼는지 몰라.

불과 3개월 전만 해도 너는 '오수현', '일곱 살'이라는 이름과 나이를 사람들 앞에서 발음하지 않으려고 했어. 부정확한 'ㅅ' 발음 때문에 어떤 아이에게 놀림 받은 적이 있었기 때문이야. '일곱 살'이라고 답하는 대신에 손가락 7개를 펴 보이는 이유를 아빠가 뒤늦게 알았어.

너는 얼마 동안이나 혼자 속상했을까. 가장 일상적이고 네 정체성과 밀접한 두 단어 모두가 'ㅅ'을 품고 있었어. 하지만 이젠 이 고민도 끝이야. 너는 네 힘으로 해냈어. 그동안 아빠한테서 적립한 '인내의 별'도 도움이 되었을까?

다음 날 저녁 식탁에서 아빠는 너에게 물었어.

아빠:수현아, 발음이 좋아지고 있는 소감이 어때?
수현:가슴이... 뻥 뚫린 것 같아.
아빠:그게 어떤 거야? (부정적인 말일까 봐 신경 쓰임)
수현:가슴이 뻥 뚫려서 시원하다는 뜻이지!

이어서 너는 입속의 밥알이 튀어나오도록 입을 크게 벌리고 노라조의 노래 '사이다'를 불렀어. "오 오 오 사이다, 가슴이 뻥 뚫린다! 사이다! 사이다! 사이다~!" 큰 목소리로 'ㅅ'을 실컷 발음하는 네 모습이 마치 새장 밖을 나가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카나리아 같았어.

8살에 가까운 7살이란 스스로 원한다면 지루한 것도 감당할 줄 알게 되는 나이인가봐. 'ㅅ' 발음은 네가 끈기와 인내를 발휘한 끝에 얻어낸 '영광의 트로피'라는 사실을 엄마, 아빠는 잘 알고 있어. 네가 알지 못하는 수많은 시간에도 너는 엄마, 아빠의 사랑과 관심 속에 있단다. 그렇다는 걸 이 편지로 말해주고 싶었어.

엄마와 아빠는 너에게 보살핌 이상의 사랑을 줘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끼고 있어. 우리는 네가 만나는 '첫 번째 세상'이니까. 앞으로도 네가 삶의 여러 걸림돌을 뛰어넘을 수 있도록 계속 응원하고 지켜봐 줄게.

남은 7살 내내 실컷 말하고, 실컷 웃으렴. 수현아, 생일 축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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