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애화 칼럼] 여성가족부 폐지론자들은 진정으로 무엇을 원하는가

5년 동안 변한 세상

야권 대선후보들이 여성가족부 폐지를 공약화했다. 여권 대선주자는 2022년 대선 쟁점을 젠더 갈등으로 만들겠다는 의지가 보인다. 이런 분위기를 받아서인지, 언론에서 젠더 차별이 아니라 젠더 갈등, 역차별이란 어휘 사용 빈도수가 늘어나고 있다. 19대 대선 후보들의 공약과 비교할 때 5년 동안 세상이 많이 변한 듯 하다. 19대 대선에서는 후보들 공약이 얼마큼 진정성이 있느냐, 실천을 담보하는가와는 별개로 대선후보들 모두 양성평등을 주장했었다. 여성단체연합이 주최한 성평등 토론회에 나와 모두 열변을 토했었다.

그러나 분위기가 바뀌었다. 며칠 전 MBC ‘100분 토론’이 ‘여성가족부 폐지 논란, 어떻게 봐야 하나’ 라는 주제로 열렸다. 여가부 폐지를 주장하는 토론자들은 여가부가 그 역할을 다했고, 젠더 갈등을 일으키는 부처일뿐이라고 주장했다. 하태경 의원은 “여가부는 출생부터 시한부 조직”이라며 20~30년 전에는 사회적으로 남녀차별 요소가 존재해 성평등 뿌리를 내리려는 목적으로 여가부를 신설했지만, 지금은 제도적으로 성평등이 형성됐기 때문에 더 이상 존속돼야 할 이유가 없다는 주장이었다.

정영애 여성가족부 장관이 6월 10일 충남 논산 국방대학교에서 민·관·군 고위정책관리자를 대상으로 한 성평등 정책 강의를 하고 있다.ⓒ뉴시스

그리고, 그는 여가부가 젠더 갈등의 부처가 되었다는 사례로 2019년 여가부가 만든 초중고 성평등 교수학습 지도자료를 지적했다. 이 지도자료 내용 중 일부를 -노벨과학상 수상자 599명 중 여성수상자가 18명인 이유는? 수상자를 결정하는 사람이 대부분 남성이기 때문에- 인용했다. 그런데 하 의원은 그 교육 안내서 다음 질문, -그러면 수상자를 결정하는 사람 대부분은 왜 남성일까요? 여성에게 사회적 참여 기회가 적었고, 사회적 활동이 적어서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높은 직에 남성이 대부분 차지했기 때문에- 남성이 대부분인 이유를 설명하는 부분을 빼고 인용했다. 그러면서 하 의원은 여가부가 “남성이 여성 혐오의 DNA를 가지고 있는 듯” 젠더 갈등을 조장한다고 말했다. 젠더 갈등이란 초점에 맞춘 의도적 편집이라 할 수 있다.

이 토론은 패널들이 현재 시점의 가부장제를 어떻게 감각하고 있는지 보여준다. 소설가 정용준은 김기창 소설집, ‘기후변화 시대의 사랑’의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머리로 이해하는 건 쉽다. 고개를 끄떡여 주는 것도 어렵지 않다. 하지만 움직여야 한다면, 참여해야 한다면, 그래서 바꾸거나 변화해야 한다면, 그것은 다른 문제가 된다.” “어떻게 하면 문제의식을 넘어 문제를 풀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문제를 풀어 보겠다는 마음을 갖게 되는 걸까? 배움이 필요하다. 앎이 필요하다. ··· 지식의 앎이 아니라 감각의 앎이 필요하다.” 이 글은 기후위기를 감각하는 것에 대한 중요성을 피력한 것이다.

그런데 감각의 앎이 현재 젠더 이슈에 대해서도 필요하다. 가부장제 문제에 모두 알지만, 가부장제가 현재적 삶으로 진행중이며, 그 삶의 구체성을 안다는 것은 다른 문제이다. 우리 삶의 진보 정도를 통계, 수치와 숫자로 비교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의미가 있는 제도는 가부장제라는 기초적 인식을 바탕으로 그 체제를 무력화하는 데 복무하기 위한 것이다. 제도는 몇 번의 시도나 상징으로서 토크니즘(tokenism)이 아니라, 이 사회의 삶의 양식이 되고 습관이 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하 의원이 말하는 각 기관의 성평등 제도는 아직은 토큰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 제도가 토큰이 아닌 삶의 양식이 되기 위한 과정은 더 오랜 기간의 교육, 감독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우리의 의식은 쉽사리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진정한 문제는 여가부의 존폐 여부가 아니라, 현재 사회의 작동원리, 깊숙한 문화에 대해서 어떻게 감각하고 느끼고 있는가라는 점이다.

대선 출마를 선언한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이 15일 오전 국회 소통관에서 1년 남녀공동복무제와 징모병 혼합제 도입을 골자로 하는 병역 공약을 발표하고 있다. 2021.07.15ⓒ정의철 기자/공동취재사진

토크니즘으로서 성평등

나는 여기서 성평등 의식과 관련하여 문학과 관련한 예를 들어보겠다. 예를 문학에서 찾는 것은 문학이 삶을 지식이 아니라 감각의 앎으로 인식하는 수단으로 유효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최근에 영국 언론, 가디언에 남성들이 여성 작가의 문학을 많이 읽지 않는다는 분석 기사가 실렸다.* 노벨문학상, 영국이 자랑하는 부커상 수상작품도 예외는 아니었다. 영국의 독서경향을 보면, 베스트셀러 10명 여성 작가들의(제인 오스틴, 마가레트 애트우드, 다니엘 스틸, 호조 모예스 등) 독자 중 단지 19%만이 남성이었다. 그러나 베스트셀러 10명의 남성 작가의(찰스 디킨스, 톨킨, 리 차이드, 스티븐 킹 등) 남성 독자는 55%이고, 여성 독자는 45%였다.

이유는 무엇일까. 남성작가들이 여성작가들보다 뛰어나서일까. 19세기에는 여성 작가들이 남자 이름으로 작품을 발표해야 했다. 조지 엘리엣(멜리 앤 에넌스), 브론트 자매 등이 그 대표적인 예다. 현재라고 다를까. 세계적 베스트셀러 작가인 JK 롤링은 자신의 이름, 조엔 롤링 대신 JK로 필명을 선택한 이유가 남자 아이들이 남자 작가일 때, 더 좋은 반응을 보인다는 출판사의 권유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남성이 여성의 작품을 즐기지 않는 것도 아니다. 그들이 일단 책을 읽으면 좋아한다. 남성 독자들이 여성 작품에 5점 만점에 3.9 평균 이상 점수를 주었다. 남성이 쓴 작품에 대해서는 3.8이었다. 이러한 현상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남성 독자들은 남성 작가들만큼 여성 작가들에 좋은 선입견이 없다는 점이다.

해리포터 시리즈를 집필한 영국의 세계적 베스트셀러 작가 조엔.K.롤링ⓒ뉴시스

한국 독자들은 어떨까.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전문가로서의 전문성은 남성 능력이 항상 기본값이며, 우리 삶과 가장 밀접히 연결되어 있는 문학은 보편성, 인간성이란 허구적 잣대로 여성의 삶과 경험을 특수화한다. 그런데 보수진영이 주장하는 성평등 사회의 지표인 제도가 충분하지도 않지만, 설사 여성이 남성과 동률로 전문적 집단에 속하면 문제는 해결된 것일까. 하태경 의원을 비롯한 많은 보수진영은 한국에서 대학입학률이 남성보다 여성이 더 높고, 대학 총학생회에서 스스로 투표로 여학생회를 없앴다며, 성평등이 이루어진 것처럼 주장한다. 마치 수의 크기 여부가 성평등의 전부처럼 말한다.

에이드리언 리치는 ‘우리 죽은 자들이 깨어날 때’에서 토크니즘(tokenism)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전문직 종사자의 50%를 여성이 차지하더라도” “남성 의식이 만들어낸 제도 안에서 어떤 여성도 진정한 내부자가 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진짜 내부자라고 믿어버릴 때, 우리는 그 남성의식이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고 규정했던 우리 자신의 부분들과 접촉을 잃고 맙니다.” 왜냐하면 “토크니즘의 일차적 모순은 토큰 여성 개인에게는 자신의 창조성을 깨닫고 일의 전개에 영향을 미치는 수단을 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특정 종류의 행동과 방식을 강요함으로써 권력과 통찰력의 진정한 원천이 될 수 있는 외부자의 시선을 차단하기도 합니다.” 즉 토크니즘은 사회적 소수 집단의 일부만을 대표로 뽑아 구색을 갖추는 정책적 조치 또는 관행을 뜻하는 말에서, 에이드리언 리치는 남성 중심 의식, 가부장제 의식에서 물들어 있는 것을 포함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와 같이 진정한 성평등은 가부장제 의식, 문화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며, 감각으로서 앎의 문제이다. 나는 에이드리언 리치의 토크니즘 정의가 양성 제도 완성을 성평등 완성으로 보는 보수진영에게 던지는 답이라고 생각한다.

페미니즘 vs 국가의 중립적 가치?

‘100분 토론’에서 폐지를 주장하는 또 다른 토론자는 이선옥 작가였다. “여가부의 행정이 헌법에 기반했다기보다는 페미니즘이라는 특정한 이념에 기반한 사업을 펼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페미니즘을 여러 이념의 한 가닥으로 보고 있는 듯하다. 여가부가 페미니즘이란 하나의 가치체계로 이루어졌다는 점이 중립의무 원칙에 반하는 위헌적이라는 주장이다. 또한 성평등 교육 이수 등, 특정한 이념을 교육하는 것이 국민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주장이다. 민주주의가 다양한 종류가 있듯이, 페미니즘은 그 안에 다양한 운동과 주장이 있으나, 기본은 현재 사회의 억압의 토대를 가부장제로 보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페미니즘의 부정은 현재는 가부장제 사회가 아니라는 주장과 같다. 따라서 현재가 가부장제 사회임을 부정하지 않는다면 여가부가 페미니즘에 기반하고 있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다. 또한 헌법의 정치적 중립이란 선거 등 정치적 활동에서의 중립이지, 기본적 가치를 부정하는 무가치가 아니지 않을까.

‘100분 토론’의 주제, 여가부 폐지 논란은 현재 혼란과 보수화한 의식을 반영한다. 폐지론자들은 젠더 차별을 차별이 아닌 능력주의로 포장하려 한다. 더 나아가 국민의 자유를 이야기한다. 이 둘은 하나에 기반한다. 작은 정부, 오래된 자유주의를 말하고 있다. 그들의 공정성과 자유가 모두에게 열려진 기회가 아니라는 점을 새삼 말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들은 경쟁과 자유주의란 말로 기울어진 운동장과 그 운동장을 지지하는 오래된 의식을 다시 잡으려 하고 있다.

코로나 사태로 인해 세계 곳곳에서 그동안 잠재되어 있던 문제들이 속출하고 있다. 팬데믹으로부터의 건강과 안전을 위한 정부의 통제를 반대하여 오래된 자유주의를 외치는 소리도 있었다. 그러나 한국의 보수가 선망하는 미국도 변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예전에 백안시했던 사회주의 지지 기반이 넓어지고 있다.** 이 속에는 젠더 차별을 젠더 갈등으로 바꿔치기 하지 않는다. 한국의 여가부 폐지론자들, 이들이 진정으로 두려워하는 것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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