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120시간’ 발언에, 혀 내두른 노동·법률 교수들 “그렇게 일하면 죽어요”

쏟아지는 한줄 논평 “조만간 관짝서 푹 쉴 각이네”, “대량 과로사 지평선 여는 제안”, “120시간 일하면 보수주의자도 죽어”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지난 8일 서울 역삼동 팁스타운에서 열린 ‘스타트업 현장 간담회’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2021.07.08ⓒ국회사진취재단

“일주일에 120시간 일하면, 조만간 관짝에서 푹 쉴 각이네”
“120시간 ÷ 5 (주 5일 근무제) = 하루 24시간 노동. 대량 과로사의 ‘지평선’을 여는 제안이다”
“52시간 비판도 아니고 120시간을 일하라니요. 120시간 일만 하면 보수주의자도 죽어요”
“52시간 반대하는 사람들도 120시간까지 바란 건 아니었을 텐데...”
...

20일 트위터 검색창에 ‘120시간’이라고 치면 쏟아지는 네티즌들의 한줄 비평이다.

이는 대선후보 1·2위를 달리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최근 매일경제와의 인터뷰에서 한 말에서 비롯됐다. 19일 자 매일경제 인터넷판 인터뷰 기사 ‘윤석열 “주 52시간 실패한 정책..기업 노사간 합의 맡겨야”’에서 윤 전 총장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현 정부는 주52시간제로 일자리가 생긴다고 주장했지만 일자리 증가율이 0.1%에 불과하다는 통계도 있다. 실패한 정책이다. 스타트업 청년들을 만났더니, 주52시간제도 시행에 예외조항을 둬서 근로자가 조건을 합의하거나 선택할 수 있게 해달라고 토로하더라. 한 주에 52시간이 아니라 일주일에 120시간이라도 바짝 일하고, 이후에 마음껏 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준비하고 한 인터뷰에서 자신 있게 한 발언이라 더 큰 논란이 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같이 화제가 되고 있는 이유는 윤 전 총장의 ‘주120시간 발언’이 비현실적인 면도 있지만, 사회적 합의로 이루어진 주52시간 제도의 취지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발언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주52시간제가 ‘일자리 창출’에 큰 효과를 보지 못했으니 실패한 정책이라고 말하고 있다는 점에서, 과로노동을 줄이자는 주52시간 제도의 진짜 취지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거나, 기업의 편의를 봐주기 위해 노동시간을 유연하게 사용할 수 있는 다양한 제도가 있다는 점조차 모르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그렇게 할 거면, 국가·헌법·노동법이 왜 필요?”
“구석기시대적...스타트업 기업도 상상 못 했을 듯”

성신여대에서 노동법 등을 가르치는 권오성 법학과 교수는 민중의소리와의 통화에서 “평소 윤 전 총장에 대한 연민이 있는 편이었는데, (이번 인터뷰를 보고) 완전히 철회하게 됐다”고 말했다.

권 교수는 “발상 자체가 넌센스라 딱히 할 말은 없지만”이라면서도 비판을 이어나갔다.

그는 “우리나라 근로기준법에도 재량근로제라든가 선택적근로제처럼 근로시간을 유연하게 운영할 수 있는 제도가 존재한다”라며 “그런 제도를 활용하는 게 우선이고, 그 범위를 넘는 노동에 대해 근로기준법으로 제한하는 것은 국가라는 정치공동체가 그 정도까지만 하라고 사회적 합의를 한 부분”이라고 짚었다.

이어 “실제로 주 120시간 일을 해 봤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건 일단 건강상 문제뿐만 아니라 개인의 삶 자체를 파괴하는 행위다. 그런 자기파괴 행위를 긍정하는 발언은 도저히 이해하기 어렵다”라며 “그렇게 일하면 죽는다”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근로시간은 그냥 노·사에 (맡겨두거나) 자발적 착취라고 내버려 둘 수 있는 부분이 아니라, 적정한 범위 내에서 국가가 통제해야 할 영역의 과제인 것”이라고 강조했다.

덧붙여, 그는 “국가는 ‘후견’과 ‘자율’이라는 두 가지 패러다임에서 적절한 균형점을 찾아야하는데, 근로시간이라는 것은 후견적인 개입이 필요한 영역”이라고 강조했다. 또 권 교수는 이날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국가의 후견이 필요한 영역에서 ‘멋대로 하라’고 내버려둘 거면 국가가, 헌법이, 노동법이 왜 필요한가?”라고 반문했다.

‘불안정 노동’에 관해 연구를 해온 이승윤 중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도 윤 전 총장의 ‘120시간 발언’에 대해, 매우 불편해하면서 “노동을 장시간하면 생산성도 좋아진다는 발상 자체가 구석기시대적”이라고 비판했다.

지난해(2020년) 10월 한 택배노동자의 죽음으로 반복되는 과로사 문제가 논란이 된 바 있다. 이는 과로사한 택배노동자가 숨지기 나흘 전 새벽 4시28분에 대리점 소장에게 보낸 메시지다.ⓒ전국택배연대노동조합 제공

이 교수는 “우리나라는 압축 성장을 하면서 ‘물건이 더 빨리 저렴하게 공급되는 게 좋은 거다’ 이런 담론이 노동권보다 더 빨리 확대된 경향이 있다. 이렇게 노동의 여건이 더디게 발전한 측면에서, 우리나라에서는 (노동권 관련해) 상당히 주요한 과제가 계속 남아있는 상황”이라며 “그 중 하나가 국제적 지표를 봤을 때도 노동시간이 매우 길다는 것”이라고 짚었다.

또 “(이 같은 과도한 장시간노동이 오히려) 생산성을 낮추는 데 기여하고 있다는 생산성 관련 논문도 나오고 있고, 장시간 일하는 게 노동자의 건강에 좋지 않다는 것이 보편적 인식수준으로 확대되고 있다”라며, “(그런데도) 대선주자가 ‘120시간도 필요하면 할 수 있다’는 취지로 말하는 건 노동권뿐만 아니라 기본적인 인권에 대한 인식 수준이 매우 낮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아마 스타트업 기업들도 120시간까지 말할 거라고 상상은 못 했을 것 같다”라고 말했다.

한편, 2019년 기준 우리나라 연간노동시간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1626시간)과 비교해 300시간 이상 긴 1957시간에 해당할 정도로 장시간노동 문제가 심각하다. 또 이러한 장시간노동은 삶의 질을 떨어뜨릴 뿐만 아니라, 노동자의 건강을 위협하며, 산업재해의 원인이 되고 있다.

우리나라가 산재사망률과 관련해 OECD 국가 중 압도적 1위를 차지하며 ‘산재공화국’으로 불려온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실제 2016년 뇌심혈관질환 산재사망자는 2016년 300명 → 2017년 354명 → 2018년 457명 → 2019년 503명 등으로 꾸준히 증가해 왔다. 특히, 윤 전 총장이 언급한 IT·게임 업계의 경우 장시간노동 문제가 심각한 탓에 자주 언론과 국회에서 거론되는 분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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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훈 기자 응원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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