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문학] ‘나는 한국인이다’

송경동 시인의 시집 ‘나는 한국인이 아니다’

송경동 시인 시집 '나는 한국인이 아니다'ⓒ창비/민중의소리

폭염과 열대야로 잠을 설쳤을지도 모르지만 아침이 되면 사람들은 일터로 나간다. 밤늦게까지 아이들과 노래를 부르며 놀던 앞집 베트남 이주노동자 부부도, 새벽배송을 해준 어느 택배 노동자도, 지금은 몸이 아파서 요양원에 계시지만, 눈 뜨면 그곳을 오랫동안 청소일을 하던 건물이라고 생각하는 어머니의 마음도, 지금쯤이면 일터에 있을 것이다. 눈 뜨면 가는 곳. 깨어있는 시간의 절반 이상을 머무는 곳. 자본주의 시대에 자신과 가족의 존엄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하고도 절대적인 곳. 그래서 우리는 혹한에도 폭우에도 폭염에도 일터로 간다.

나도 오늘의 일을 하기 위해 일터인 집에 있지만, 혼자 일하는 일터에서 에어컨을 켜기가 민망해 얼음주머니를 안고 있다. 에어컨을 켤지 얼음주머니를 껴안을지 선택할 수 있는 일터라니! 식사시간이 되면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밥을 먹을 수 있는 일터이고, 몸 상태에 따라 화장실에 갈 수도 있고 잠시 휴식을 할 수도 있는 일터라니, 마음이 뭉클하다. 그런 게 사람의 삶이니까. 그래야 일할 수 있으니까. 만일 누군가 그것을 하지 못하게 한다면 학대이자 고문이고, 만일 그런 걸 하지 못하는 일터가 있다면 그곳은 한국이 아니다. 한국은 민주주의 헌법을 가진 자본주의 국가니까.

어쨌든 나도 ‘일’을 하기 위해 얼음주머니를 끼고 책장에서 시집 한 권을 꺼낸다. 2016년에 발간된 시집인데, 언제 산 것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왜 샀는지는 기억하고 있다. 좀 많이 팔렸으면. 그래서 이 시인이 그가 한 ‘일’로 다른 일을 하는 것이 너무 힘들지 않았으면. 그런 마음이었을 것이다. 그는 자신의 일터보다 일터를 빼앗긴 사람들 속에 더 오래 머무는 것 같았고, ‘시인’의 영광보다는 ‘죄수’의 자리를 더 떳떳해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천상병시문학상을 받는 날/오전엔 또 벌 받을 일 있어/서울중앙법원 재판정에 서 있었다/(중략)/신동엽문학상 받게 됐다는/소식을 들은 날 오후엔/드디어 체포영장이 발부됐다는/벅찬 소식을 전해 들었다/(중략)/어떤 위대한 시보다/더 넓고 큰 죄 짓기를 마다하지 않기를’
- 송경동, ‘시인과 죄수’ 중

세계 이주노동자의 날을 하루 앞둔2017년 12월 17일 오후 서울 중구 파이낸스빌딩 앞 계단에서 열린 세계이주노동자의 날 기념 이주노동자 결의대회에서 참가자가 고용허가제폐지, 사업장 이동자유 보장 손피켓을 들고 있다.ⓒ민중의소리

요양원에 계신 어머니는 매일 저녁 아들과 전화 통화를 하며 “청소반장이 자꾸만 자르려고 한다.”고 불안한 고자질을 한다. 처음 본 30여 년 전에도 어머니는 청소일을 했고, 더는 혼자 힘으로 걸을 수 없을 때까지 그 일을 했다. 절뚝거리는 것을 반장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온 힘을 다해 병든 몸을 곧추세우며 버텼다는 것인데, 그런 어머니에게 혹한의 새벽 출근길과 폭염 속 창고에서의 식사쯤은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았다. 잘리지만 않는다면. 마지막으로 일터에서 돌아온 날, “인생이 끝난 것 같다.”고 했던 여든 살의 아픈 어머니는 어느 곳도 아닌 그 '일터'로 돌아갔지만, 여전히 그 무엇도 아닌 '잘리는 공포' 속에 있다.

‘‘어디선가 빌려와/언젠간 돌려보내줘야 할/딴 나라 사람 같던/어머니’
- ‘어머니의 나라말’ 중

그러나, 그렇다고, 어머니의 일터가 정말 견딜만 했던 것일까. 어머니는 평생 ‘어디선가 빌려와’ 쓰다 어디로도 돌려보내주지 못한, 한국이 아닌 ‘딴나라’ 사람으로 살았던 걸까.

‘모든 게 경영상의 위기로 인한 정당한 정리해고이며 비정규직화라고/나아가 이젠 미래에 올 경영상의 위기로도 해고가 가능해야 한다고/오늘도 열심히 방망이를 두드리는 법 앞에서/속수무책 망연자실하는/나는 도대체 누구일까’
- ‘나는 한국인이 아니다’ 중, 송경동

송경동의 시 ‘나는 한국인이 아니다’에서는 캄보디아 내 한국 기업 ‘인터내셔널 패션로얄’ 노동자 ‘피룬’이 파업 중 오른쪽 다리에 총알을 맞고, 방글라데시 해외 공장 ‘영원무역’의 갓 스무 살 노동자 ‘파르빈 악타르’가 시위 중 경찰 발포로 죽는다.

‘방글라데시에선 2013년 4월/닭장 같은 한 봉제공장 건물이 붕괴해/노동자 1,235명이 압사당하기도 했다’
- ‘나는 한국인이 아니다’

그러나 여기 이곳은 방글라데시도 캄보디아도 아니다. 나는 피룬도 아니고 파르빈 악타르도 아니다. 나는 한국인이다. 피룬도 없고 악타르도 없는.

송경동

2001년 ‘실천문학’을 통해 작품 활동. 시집 ‘꿀잠’, ‘사소한 물음들에 답함’, ‘나는 한국인이 아니다’ 등이 있고, 천상병 시문학상, 신동엽 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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