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말로 소통한다. 하지만 말이 표현의 전부는 아니다. 표정도 언어이고, 태도도 언어이다. 그래서 이 모두를 말이라고 불러야 한다. 말은 톤과 어감 뿐 아니라 발화하는 상황에 따라서도 그 의미가 얼마든지 달라진다. 그러니 말의 의미를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해서는 말이 될 수 있는 모든 표현을 다 감안해야 한다.
관계는 말을 어디까지 꺼내고, 어디까지 이해할 수 있는지에 따라 갈라진다. 친밀하거나 소원한 관계, 깊거나 얕은 관계의 차이는 말할 수 있는 이야기의 범주와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의 차이와 직결된다.
싱어송라이터 은도희의 정규 음반 [Unforeseen]에는 이 같은 말과 관계에 대한 고백이 대부분이다. 앞부분의 다섯 곡은 의도적으로 영어로 노래하고, 뒷부분의 세 곡은 한국어로 노래한 음반에서 은도희는 무엇을 예측하지 못해 제목을 이렇게 정했을까.
첫 번째 곡 ‘Uncertainty’부터 노랫말은 복합적이다. 그리웠고, 정착할 것 같았지만, 우리를 다시 갈라지게 만들었고, 네가 어디에 있든 상관없다는 진술은 짧아도 복잡하다. 오늘 계획을 실현할 수 없는데, 밤새 수다를 떨자고 하면서 지치지 않았다는 ‘Time’의 노랫말 역시 마찬가지이다.
주장하는 것을 잃어도 상관없지만 외롭게 노래하는 새가 되고 싶지 않다고, 자신이 옳다고 강변하는 ‘Songbird’에서조차 은도희는 한 입으로 여러 말을 하는 중이다. 거짓말은 아닐 것이다. 자신 안에 한 사람만 사는 사람은 없다. 사람들은 상황과 필요에 따라 수많은 자신을 골라 쓴다. 간절한 마음을 주저앉히고 감추는 일도 허다하다. 얼마나 많은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지에 따라 권력이 드러나기도 한다.
죄책감을 노래한 ‘Les Augen I’에 이어지는 ‘Les Augen Ii’에서는 네 나라 말로 말 걸지 말고, 자신이 말하기 전에 자신의 귀를 막으라며 말로 인한 두려움을 털어놓는다. 한국어 가사로 쓴 노래 두 곡은 아예 말과 혀를 제목으로 삼았다. 이 노래들에서도 말은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우리가 뱉었던 말들 중/어느 하나 거짓된 것은 없는데”라고 노래하는 ‘오래된 말’, “떠도는 잔상에 묻힌/말들은 잊혀지고”라며 시작하는 ‘혀’까지 말은 대체로 무력하다.
음반에 담은 노래들 대부분이 짧고 흐릿하며 미니멀한 연주로 채워진 것은 마음이 명쾌하지 않거나 낙관적인 상황이 아니기 때문일까. 일렉트로닉 사운드를 주축으로 펼쳐지는 노래들에서 은도희의 보컬은 연주와 마찬가지로 불투명하다. 음악의 미학을 명료한 사운드의 미학과 모호한 사운드의 미학으로 나눌 때 은도희의 음악은 후자다. 하지만 투명하지 않은 소리는 투명하지 않은 이유가 있고, 투명하지 않은 세계에도 아름다움은 스며든다. 음반의 사운드는 불투명하게 퍼지면서 노랫말 속 주체의 심리 상태를 표출한다.
반면 곡마다 간명한 리듬과 멜로디는 불투명한 사운드의 질감을 뚫고 빠르게 침투한다. 어려운 음악이 아니다. 완전히 남다른 음악도 아니다. 포크 사운드를 기반으로 했다고 해도 어색하지 않을 노래들은 곡마다 좋은 멜로디로 잠입한다. 손쉽게 파악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금세 공감하고 매료당할 수 있도록 연결한 리듬과 멜로디들은 어떤 곡에서도 거부감을 주지 않는다. 수록곡 가운데 어떤 노래의 멜로디가 더 순도 높거나 강렬한지 비교할 필요가 없을 정도다.
전통적인 노래 방식을 유지하면서 앰비언트(ambient)에 가까운 사운드를 둘러 포장한 은도희의 곡들은 친숙함을 유지한 채 안개처럼 밀려온다. 상반된 노랫말은 상반된 소리의 조합을 통해 실현된다. 덕분에 마음이 부산한 사람들, 자신의 마음을 자신도 다 모르는 사람들, 말의 무력함 때문에 멈칫거려본 사람들에게 은도희의 노래는 순식간에 흡수될 것이다. 노랫말 속의 복잡함과 무력한 세계에 비하면 은도희의 노래는 의외로 쉽게 들린다. 이것이 은도희가 자신의 노래를 만들고 전파시키는 방식이다.
하지만 노래 속 소리의 풍경은 좀처럼 밝아지지 않는다. 더듬거리며 걸음을 옮겨야 하고, 이따금 현재 위치를 확인하지 못해 주저앉아야 할 수도 있다. ‘Les Augen I’와 ‘Les Augen Ii’, ‘오래된 말’ 같은 곡에서 계속 부유하는 사운드로부터 헤어 나오지 못할 때, 노래를 듣는 사람들은 이것이 은도희 노래의 풍경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릴 것이다. 내 안에 똑같은 경험과 세계가 있고,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음악은 자화상이자, 수많은 자화상의 연대기이다. 그 가운데 얼마쯤을 실은 노래를 마주할 때, 비로소 자각과 질문이 시작된다. 내 안에는 얼마나 많은 내가 있을까. 그 많은 나를 다 만나고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우리는 어떻게 통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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