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바로 진보] 도쿄올림픽 끝엔 평화가 있을까?

8월 한미연합군사훈련과 세계 일본군 ‘위안부’ 기림일

7월 23일, 도쿄올림픽 개막식이 열렸다. “천황의 통치시대는 천년만년 이어지리라. 모래가 큰 바위가 되고, 그 바위에 이끼가 낄 때까지” 평화를 말하는 도쿄올림픽은 기미가요를 불렀다. 수많은 사람들이 끌려가고 죽어가던 땅 위에 펄럭이던 욱일기는 2021년, 전 세계가 보는 올림픽 경기장에서도 펄럭일 것이다. 전쟁으로 권력을 얻었던 사람들이 여전히 전쟁으로 살아남아있음을, 제국주의는 2021년에도 살아있음을 증명했다. 2019년 아베의 경제보복 이후 한일 관계는 극으로 치달았다. 과거가 발목을 붙잡아선 안 된다 하던 삼일절 대통령의 연설 이후 일본군 상대 손해배상청구 소송이 각하와 승소가 반복되는 이유가 무엇인지, 일본의 오염수 방류에 대하여 누가 동의를 했는지, 바이든 정부가 왜 ‘2015 한일합의’를 긍정적으로 다루며 한일관계에 ‘부부 상담을 하듯’ 개입하는지에 대한 의문은 해소되지 않았다. 분명 도쿄올림픽에서의 한일정상회담은 해결되지 않은 과거사에 대해 의논할 수 있는 기회였다. 그러나 정부가 방일을 취소하기 전까지 일본 정부는 숙제를 검사하듯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강제징용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한국에 요구했다. 일본 정부의 입맛에 맞는 답안지를 가져오지 않으면 응시할 자격도 주지 않겠다는 듯 ‘15분의 대담만 있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결국 한국 정부는 대통령 방일 추진을 중단했다. 그러나 일본의 적반하장 요구에도 방일을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고민한 것으로 보인다. 무슨 이유로 한국은 식민 국가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는 것일까.

23일 저녁 열린 도쿄올림픽 개막식에서 욱일기 문양을 연상케 한다고 지적된 퍼포먼스ⓒ방송 캡처

1991년 8월 14일, 일본군 성노예제의 피해에 대한 고 김학순 여성인권운동가의 첫 증언이 세상 앞에 나섰다. 30년을 맞이하는 2021년은 여전히 증언에 응답하지 못하고 있다. 해방 전 전쟁은 일본군 ‘위안부’를 만들었고 해방 이후 전쟁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묻었다. 전 세계인들이 모여 스포츠를 즐기고 평화를 외치고 있지만 한반도는 전쟁을 연습한다. 곧 다가오는 8월엔 세계 일본군 ‘위안부’ 기림일이 있고 한국과 미국은 연합군사훈련을 계획하고 있다. 다시는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할머님의 말씀을 기리는 기림일과 북의 남침에 의한 한반도 전쟁이 일어날 것임을 전제하는 한미연합군사훈련이 같은 달에 있는 것이다. 한미군사훈련이 이루어지면 남북의 대화는 단절된다. 2013년 판문점 직통전화가 차단되었고 올해 3월엔 남북 대화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와 금강산국제관광국을 비롯한 관련 기구들을 없애버리는 사안들이 언급되고 있기 때문이다. 전쟁을 억제하기 위함이 아니라 전쟁이 일어날 때까지 전쟁연습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미 한국의 군사력은 강력하다. 2021년 한국의 국방비는 480억 달러로 치솟아 러시아보다 무려 60억 달러가 많아졌고 한국 재정의 10분의 1을 차지한다. 하지만 이 군사력은 한국의 군사력이라고 할 수는 없다. 전시작전권은 미국에 있고 미국은 ‘전략적 유연성’을 설명하며 주한미군이 언제든 미국의 판단에 따라 전쟁에 참여할 수 있음을 언급해왔다. 해가 갈수록 더 많은 무기를 수입하고 있다. 생계를 위협하는 미군 기지를 규탄하는 성주 소성리 주민들의 인권은 경찰에 의해 수차례 진압당하며 침해되지만 하지만 한국을 ‘방위’한다는 명목으로 받아가는 방위분담금은 늘어만 간다. 강력한 군사력으로 전쟁에서 이길 수는 있겠으나 전쟁을 막을 순 없다. 전쟁에서의 ‘승리’ 또한 국민의 죽음과 맞바꾼다는 점에서 승리로 볼 수도 없다. 전쟁을 막기 위해 전쟁을 연습한다는 것은 모순적이다.

1991년 8월 14일 처음으로 ‘위안부’ 피해를 세상에 증언한 고(故) 김학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정의기억재단

전쟁을 막는 방법은
전쟁이 일어날 수밖에는 적대적 관계를 깨고
평화적 관계를 형성하는 것

전쟁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전쟁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적대적 관계를 깨고 평화적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다. 8월의 한미군사훈련은 적대적 관계를 전제한 것이지만 적대적 관계가 전제일 필요는 없다. 한국은 아시아 평화의 새 구도를 짤 수 있는 나라이다. 역사와 현재를 보았을 때 변하지 않는 것은 한국은 ‘가운데 낀’ 나라였다는 것이다. 중국을 섬기며 왜에 맞서야했던 그 옛날부터 미국에게 전시작전권을 넘겨 명령을 받는 지금까지 한국은 가운데에 놓여있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한국이 자주적이지 않다는 말을 하기에 앞서 지정학적으로 누구에게나 필요한 국가라는 것이다. 즉, 한국은 아시아에 펼쳐진 대결구도를 깰 수 있는 국가이다. 역사는 해결되지 않았는데 여기저기서 전쟁을 준비한다. 우리는 전쟁을 멈출 수 있다. 해결되지 않은 역사를 방치하고 전쟁의 구도 속에서 인간의 안전을 위협하는 관점을 가진 상태에서는 평화를 말할 수가 없다. 일본군 ‘위안부’문제와 강제징용 문제 해결에 대한 잘못된 관점은 한일회담의 불발을 낳았고, 올림픽에서는 후쿠시마산 식품이 문제가 되었고 오염수 방류는 폐기되지 않은 채 태평양으로 흘러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다. 우리는 전쟁과 이 아니라 평화를 연습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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