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산업재해로 훼손된 노동자의 몸을 되살려, 그 목소리를 듣는다면? 연극 ‘괴물 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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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괴물 B’ⓒ극단 코끼리만보

오늘도 연아는 아주 오래전 문을 닫은 폐공장에 들어와 쉬고 있다. 배달 일을 하는 연아는 일이 없을 때면 이곳에서 밥을 먹기도 하고 쪽잠을 자기도 한다. 연아는 자신의 아지트에서 낯선 누군가를 만나게 된다. 그는 지팡이에 의지한 채 불편해 보이는 몸을 끌고 폐공장에 나타났다. 연아는 자신의 공간에 들어온 ‘B’에게 강한 반감을 보이고, ‘B’는 연아가 사용하는 시간을 피해 폐공장을 공유하자고 제안한다.

흥미로운 이 연극의 시작은 ‘B’란 존재에 대한 궁금증으로 이어진다. ‘B’는 사람으로 보이지 않는다. ‘B’는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자신의 눈에만 보이는 존재들에 둘러싸여 고통스러워한다. ‘B’는 기계에 끼여 잘려 나간 사람의 팔과 다리, 공장에서 발생한 화재로 타버린 사람의 젖가슴, 유해 물질에 오랜 시간 노출되어 암덩어리가 되어 버린 사람의 폐와 간 등 노동으로 고통받는 몸의 조각들이 결합되어 탄생한 하나의 종(種)이었다.

‘B’의 존재가 주는 의미

지구상에 이런 ‘B’의 수가 얼마인지 알 수는 없다. 산업혁명 이후 산업재해로 신체 일부가 절단되거나 죽은 이의 수를 생각해 본다면 ‘B’의 존재는 엄청날 것이다. 어쨌거나 ‘B’의 몸 모든 부분은 ‘B’에게 각각의 사고 순간을 상기시키며 그날의 고통을 쉼없이 반복시키고 있었다. ‘B’는 살아도 산 것이 아니지만 그렇다고 맘대로 죽을 수도 없다.

연극 ‘괴물 B’ 연습장면ⓒ극단 코끼리만보

이제 연아의 존재를 확인해볼 차례다. 연아는 성이 김씨, 김연아다. 우리가 아는 그 연아가 아니지만 그 연아 만큼 꽃다운 청춘이다. 연아는 배달 일을 하며 손바닥만한 원룸에서 산다. 엄마는 이삿집 센터 용역으로 오랜 시간 일을 하고 있다.

연아는 아빠가 없다. 연아의 아빠는 공장 노동자들이 파업을 하자 회사에서 공장에 투입할 대체인력으로 뽑혀 집을 나선 후 연기처럼 사라져 버렸다. 어느 날, ‘B’는 연아에게 수고비를 건네며 사람을 찾아달라고 부탁한다. 이유는 ‘죽고 싶어서’이다. 연아는 ‘B’의 소원을 이뤄줄 수 있을까? ‘B’는 소원대로 죽을 수 있을까?

산업재해를 먹고 성장하는 사회

37도를 찍었다는 중복 날씨에 도망치듯 들어선 공연장은 엄청난 힘으로 돌아가는 에어컨 바람에도 식혀지지 않는 더위로 가득했다. 마스크에 갇혀버린 숨을 몰아쉬며 마주한 무대는 무시무시한 더위를 날려버릴 만큼 오싹한 공포를 주었다. 폐공장에는 쓸모가 없어진 폐기물만 있는 게 아니었다. 성장을 위해 폐기 처분된 노동자들의 몸이 또 다른 폐기물이 되어 폐공장을 떠돌고 있었다. 현실은 연극보다 더 연극 같고 연극은 현실보다 더 현실 같다.

2016년 지하철 스크린도어를 정비하던 스무 살 김 군의 죽음 이후에도 수많은 김 군이 스크린도어를 정비했을 것이고 우리는 여전히 그 현장을 무심하게 지나치며 살고 있다. 2018년 태안화력발전소에서 또 다른 20대 김 군이 컨베이어 벨트에 끼여 사망했지만 그 화력발전소가 문제를 해결했는지, 또 다른 김 군이 다시 그 컨베이어 벨트 앞에 서 있지는 않은지 우리는 알지 못한 채 살아간다.

연극은 산업재해로 죽거나 살아서 고통받는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무대 위로 불러내어 관객에게 들려준다. 제대로 귀 기울여 듣지 못했던 노동자들의 이야기가 ‘B’가 느꼈을 고통을 상상하게 한다. 연극 <괴물B>는 관객에게 불편한 진실과 마주하게 함으로써 ‘B’가 괴물이 아님을 일깨운다. 진짜 괴물을 찾아내는 것은 관객의 몫이다.

연극 ‘괴물 B’

공연장소:알과핵 소극장
공연날짜:2021년 7월 23일 ~ 2021년 8월 1일
공연시간:월 - 금 19시 30분/토, 일 15시
러닝타임:100분
작:한현주
연출:손원정
제작진:무대 손호성/조명 김형연/음악 김태결/의상 이명아/분장 장경숙 외
출연진:이영주, 오대석, 정선철, 이은정, 문성복, 하치성, 김은정, 조성현, 최지혜
예매:인터파크 티켓, 플레이티켓, 대학로티켓닷컴
문의:02-742-75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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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숙정 객원기자 응원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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