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게 보여요.”
최근 녹색병원 직접고용 정규직으로 전환된 나효자(56)·김미정(56) 요양보호사의 말이다. 두 사람은 23일 인터뷰에서 “이제 정말 녹색병원 식구가 된 느낌”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비정규직이었다가 정규직으로 전환됐어도, 그들은 같은 옷을 입고, 이전과 같은 요양보호사 일을 하지만, 병원에 대한 애정과 각자가 수행하는 업무에 대한 자부심은 달라져 있었다. 누군가에게는 별것 아닌 것 같은 이 ‘식구 된 느낌’이, 이들에게는 작은 변화의 계기가 되고 있었다.
최근 정규직으로 전환된 요양보호사들에게 노조 가입서를 받은 정규직노조 대표 조윤찬 보건의료노조 서울지역본부 녹색병원지부 지부장은 “벅차다”라며,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을 두고 우려가 큰 이들에게 “괜찮다는 것을 행동으로 보여주고 싶다”라고 말했다.
앞서 녹색병원은 외부 파견업체를 통해 병원에서 일하던 요양보호사 15명을 지난 1일부로 정규직으로 전환하면서 ‘비정규직 제로화’를 선언했다. 지난 15일 민중의소리와의 인터뷰에서 임상혁 녹색병원 병원장은 “노동의 양극화, 차별 등이 너무 심하다. 이걸 어떻게든 해소해야 한다. 이는 결국 기업이 해야 할 일이다”라며 “해야 할 일을 했을 뿐, 진작 하지 못한 게 (노동자들에게) 미안하다”라고 말했다.
애정, 작은 변화
지난 15일 임상혁 병원장에 이어, 이날 나효자·김미정 요양보호사를 만나기 위해 녹색병원을 찾았다. 61병동 사무실에서 만난 두 요양보호사는 처음 하는 인터뷰로 긴장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인터뷰가 시작되자, 이내 병원에 대한 자랑과 이야기를 쏟아냈다.
당초 두 사람은 사회적협동조합 도우누리 소속으로 녹색병원에서 일해 온 비정규직 요양보호사다. 병원과 회사가 2년마다 계약하기 때문에, 2년마다 노동자들의 고용은 불안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탓에 평소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이라고 느낄만한 대우는 없었다”고는 하나, ‘나도 완전한 녹색병원 식구’라고 믿기에는 무리가 없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최근 두 사람을 비롯한 요양보호사들은 “정규직으로 전환됐다”는 말을 들었다.
“OT 때인가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한다는 얘길 하신 듯한데, 우리도 해당하는 말인지는 몰랐어요. 그런데 이번에 저희가 정규직으로 전환됐다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어요.”
정규직으로 전환된 이후, 두 사람은 “이전에도 녹색병원이 좋았지만, 더 애정이 생긴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애정이 생겼다고 해야 할까요. 이런 병뚜껑 떨어져 있는 것도, 바닥에 물기가 있는 것도, 혹시 환자가 밟아서 넘어질까 봐 그냥 지나칠 수 없게 됐어요. 그런 게 더 많이 보여요.”
“평소에도 차별은 느껴지지 않았다”
두 사람은 ‘문재인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정책’과 ‘최근 이를 두고 일부 공공기관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에서, 노동자와 회사 사이에서 잡음이 발생하고 있는 점’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다.
나 씨는 “우리는 그런 갈등이 없었다”라고 말했다.
김 씨는 “우리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의 차별 대우가 별로 없는 듯하다”라며 “그동안 그런 차별을 느껴본 적이 없다”라고 말했다.
이어 두 사람은 정규직으로 전환된 이후 느끼는 차이라고 하면 “식구가 된 느낌”, “고용안정”, “애정이 생긴 점” 등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김 씨는 일부 공공기관에서 정규직이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에 반대하는 상황에 대해 “이해는 간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래도, 같이 더불어 살려면 조금씩 양보해서 같이 정규직으로 갔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라고 했다.
나 씨도 “(공공기관 비정규직들이) 기존 정규직들과 똑같은 처우를 달라는 것도 아니지 않나, 이분들의 뜻은 계속 (고용불안 없이) 일을 하게 해 달라, 고용불안을 없애 달라는 것으로 안다”라며, 노·노 간 갈등으로 번지고 있는 일부 상황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했다.
“이런 병원 있다는 걸, 알리고 싶어”
“솔선수범하기에, 안 따를 수 없어”
평생 어린이집 보육교사였던 나 씨는 녹색병원에서 일을 시작한 지 이제 곧 1년이 된다. 10년 가까이 식당에서 일한 김 씨는 녹색병원에서 요양보호사 일을 시작한 지 이제 6개월을 채웠다.
두 사람이 병원에서 일을 시작한 지는 오래되진 않았지만, 병원과 병원 구성원들에 대한 두 사람의 자부심은 커 보였다.
“제가 직접 환자들 케어를 해보니까, 알겠더라고요. 다른 병원에 비해 길거리에서 쓰러지신 분들, 보호자가 없는 분들, 그런 분들이 많이 오시는 것 같아요. 정말 아무것도 없이 와요. 신발 하나만 달랑 오기도 하고요. 그럴 때는 (병원비 얘기 없이 일단) 그분들을 받는 듯해요. 그리고 회복할 때까지 지원하는 것 같아요. 말로만 듣던 그런 병원이에요. 널리 알리고 싶어요. 이런 병원이 있다는 것을.”
또 ‘병원이 지향하는 가치 때문에 일이 힘들지 않냐’는 질문에, 두 사람은 “전혀 그렇지 않다”라고 답했다.
그러면서 “간호사 선생님들께 많은 걸 배운다”라고 강조했다.
“간호사 선생님들이 먼저 솔선수범해요. 저희보다 더 열심히. 공부를 그렇게 많이 해서 간호사가 됐는데, (간호사 선생님들이 환자들 대하는 모습을 보면) 어떤 때는 저희가 부끄러울 때가 있어요.”, “맞아요.”, “환자들에 대한 애정이 느껴져요.”, “궂은일 다 하고, 안 따라 할 수가 없어요.”
이날 인터뷰는 업무 시간 중에 진행됐다. 기자가 두 사람에 대한 인터뷰를 요청하니, 업무 시간 중에 인터뷰를 잡아준 것이었다. 이 또한 일종의 배려였다. “일 끝나고 인터뷰하려고 했으면 힘들었을 텐데...”
정규직노조 대표 “민간병원도 가능하다”
두 사람과의 인터뷰가 끝나고 병원 지하 1층 노조 사무실에서 조윤찬 녹색병원지부장도 만났다.
요양보호사들 정규직 전환과 관련해 ‘정규직들 사이에서 우려는 없었냐’는 질문에, 그는 “요양보호사와 병원 직원들이 병동에서 찍은 사진을 봤는지 모르겠지만, 다들 좋아했다”라고 답했다. 이어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도 녹색병원 설립 취지에 따라 우리가 해야 할 과제이고, (조합원들과) 의견을 나눌 때도 큰 이견은 없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녹색병원에서도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이 큰 무리 없이 가능하다는 것을 직접 보여주고 싶다고 강조했다.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과정에서 오해가 있다면 반드시 대화로 풀어야겠죠. 우린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에 대해) 우려하는 분들에게 보여주고 싶어요. 이렇게 (민간병원에서도) 정규직 전환이 가능하고, 전환한다고 해서 문제 되는 건 없다, 이것을 말보단 행동으로 보여주고 싶어요.”
한편, 사가정역 주택단지 사이에 위치한 녹색병원은 1980~90년대 원진레이온 이황화탄소중독 환자들이 모은 돈으로 2003년 설립된 민간병원이다. 설립부터 특별하다 보니, 병원의 구조도 다른 병원과는 남다른 면이 있다. 보통 가장 전망 좋은 꼭대기 층에는 VIP룸이 있기 마련인데, 녹색병원 꼭대기 층에는 산업재해를 당하거나 뇌출혈 등으로 재활운동이 필요한 이들을 위한 재활치료센터가 있다. 반면, 원장실은 병원의 가장 낮은 지하2층에 있다.
녹색병원은 산업재해를 당한 노동자들을 위한 병원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의료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에게도 전문적인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또 지난 2017년 서울시 안전망병원으로 지정되어 산재보험 혜택이 없는 특수고용직 노동자, 플랫폼 노동자,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는 아르바이트 노동자, 비정규직, 외국인 노동자 등의 건강 문제에도 나서고 있다.
민중의소리를
응원해주세요
기사 잘 보셨나요? 독자님의 응원이 기자에게 큰 힘이 됩니다. 후원회원이 되어주세요. 독자님의 후원금은 모두 기자에게 전달됩니다. 정기후원은 모든 기자들에게 전달되고, 기자후원은 해당 기자에게 전달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