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민갑의 수요뮤직] 민상용·이태훈·이희문이 마찰로 빚어낸 국악-록 혼합 즉흥음악

새로운 장르를 만들어 분류해야 할 음반 [마찰시험]

다시 한국 전통음악을 결합한 음반이 나왔다. 기타리스트 이태훈과 드러머 민상용이 결성한 듀오 마찰에 소리꾼 이희문이 참여한 음반 [마찰시험]이다. 왜 한국 전통음악을 결합한 음악들이 끊이지 않는 것일까. 요즘 이렇게 만든 음반들이 계속 이어지는 이유는 뭘까.

조심스럽게 몇 가지 추론을 던져본다. 우선 한국 전통음악의 자산이 무궁무진하기 때문이지 않을까. 정악이든 민속악이든 전통음악은 많은데, 여전히 원형 그대로 남아있는 게 대부분이다. 아직 그 원형에 대중음악의 장르와 방법론을 결합시키지 않았으니 무주공산(無主空山)처럼 얼마든지 가져다 쓸 수 있는 게 아닐까. 실험하고 도전해볼 수 있는 재료가 많다는 사실이 음악인들의 호기심을 자극한 게 아닐지.

그리고 이제는 전통음악을 하는 이들도 전통을 지키기만 해서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대중음악이든 아니든 현재의 감각과 어법을 더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한 결과랄까.

또 하나 전통음악과 전통음악 밖 음악을 결합시킨 작업들이 다양하고 흥미로운 결과물을 내놓고, 화제를 불러일으키는데 성공한 점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이날치만이 아니다. 고래야, 노선택과 소울소스, 두번째달, 블랙스트링, 신노이, 씽씽, 악단광칠, 잠비나이를 비롯해 사례가 적지 않다. 귀가 있으니 듣고 눈이 있으니 볼 것이다. 이렇게도 할 수 있고, 이렇게 해도 호평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게다가 한국 무대와 관객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나라 밖으로도 나갈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하면서 더 많은 가능성이 손짓한다. 물론 지금은 코로나19 팬데믹 때문에 쉽지 않은 상황이다. 하지만 팬데믹도 언젠가는 끝날 것이다. 공연에 목말랐던 이들이 다시 판을 만들어 예전에 들어보지 못했던 음악들을 초대할 것이다. 새로운 음악의 수요는 다시 이어질 수 있다.

그런데 이렇게 한국 전통음악을 결합한 음악을 뭐라고 부르면 좋을까. 예전에는 이런 음악을 크로스오버, 퓨전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이러한 시도가 계속되면서 크로스오버나 퓨전이라는 단어가 특정한 경향을 지칭하는 한정된 이미지로 굳어지다 보니 크로스오버나 퓨전이라는 단어를 거부하는 이들이 늘어가는 추세다. 자신들의 음악은 기존의 크로스오버나 퓨전과는 다르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은 것이다. 또한 국악기를 연주하거나 한국 전통음악을 활용하지만 한국 전통음악의 어법과는 거리가 먼 장르 음악을 할 경우에는 크로스오버라고 지칭하기보다는 다른 장르의 영역으로 묶는 편이 나을 수 있다.

듀오 마찰과 이희문이 함께 한 앨범 '마찰시험' 커버이미지ⓒ사진 = studioLOG

하지만 마찰의 음악은 한국 전통음악의 흔적을 찾기 어려운 음악이 아니다. 이희문은 ‘양류가’, ‘이별가’, ‘사발가’, ‘창부 타령’, ‘느리게 타령’같은 민요들을 원형 그대로 부른다. 그런데 마찰이 이희문의 노래를 수용하는 방식이 다르다. 이 음반은 소리꾼이 참여하는 기존의 크로스오버 음반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노래가 이어지고, 연주자들이 자신들의 지향대로 리메이크 하는 방식을 취하지 않는다. 음반의 수록곡마다 이희문의 노래가 등장할 때보다 등장하지 않는 시간이 더 길다. 게다가 이희문의 노래는 예고 없이 불쑥불쑥 등장했다 사라진다. 노래의 제목에서도 민요의 제목을 그대로 사용한 곡은 ‘이별가’ 하나 뿐이다.

마찰 역시 기존의 크로스오버나 퓨전과는 다른 길을 가고 싶은 것일까. 그 지향과 의지를 부각시키고 싶은 것일까. 그렇다면 이들의 음악을 어떻게 지칭해야 할까. 대중음악평론가 김학선이 쓴 라이너노트처럼 얼터너티브 메탈이라고 불러주는 게 맞을까.

실제로 [마찰시험] 음반은 음반의 제목처럼 한국 전통음악 가운데 민요와 록, 그중에서도 얼터너티브와 헤비메탈을 마찰시킨 음반이다. 이태훈의 일렉트릭 기타와 민상용의 드럼은 이희문이 부르는 노래의 멜로디와 장단을 자신들의 악기로 재현하지만, 이들은 민요를 두 악기로 수용하고 연주하는데서 그치지 않는다.

그동안 세컨 세션(Second Session)과 테호(TEHO)를 비롯한 팀 활동과 합주를 통해 많은 연주를 함께 한 두 뮤지션은 민요에 담긴 멜로디와 장단, 정서에서 출발해 소리를 마찰시키며 계획하지 않은 소리의 세계로 점프한다. 이 과정을 재즈적이라 해도 좋고, 록의 잼(jam, 즉흥 연주)과 닮았다 해도 좋을 것이다. 아니면 한국 전통음악의 시나위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해도 무방할 것 같다.

두 연주자와 한 명의 소리꾼은 매번 연습하지 않고 계획하지 않은 즉흥연주를 펼치듯 어울려 논다. 이 자유로운 어울림은 이들의 음악이 출발하거나 영향을 받은 몇 개의 장르만큼 이들의 음악을 규정한다. 그러니 이들의 음악을 국악/록 혼합 즉흥음악이라고 불러도 되지 않을까. 물론 또 다른 이름을 붙여야 할 수도 있다. 이들의 음악은 이렇게 새로운 이름을 요청하는 방식으로 한국 대중음악의 현주소를 증언한다.

창작자의 내면을 드러내는 음악은 아니다. 창작자의 세계관이나 가상의 세계관을 보여주는 음악도 아니다. 대신 소리의 크기와 질감, 주법과 흐름으로 말하는 음악이다. 베테랑 연주자와 빼어난 소리꾼이 함께 한 음반답게 이들은 자신들이 선택한 소리의 파노라마를 자유분방하게 밀고 나간다. 이태훈의 기타가 거칠고 질박하게 울려 퍼지고, 민상용의 드럼이 자유롭게 활개칠 때, 예상할 수 없는 전진과 정지가 마찰의 지향을 드러낼 때, 한국 대중음악의 품과 깊이는 가늠하기 어렵다.

맹렬하고 사이키델릭한 연주 한 켠에서 들리는 ‘양류가’는 아득하고, 육중한 기타 연주와 웅혼한 드러밍 사이에서 퍼지는 ‘이별가’는 정한만 남겨두고 사라지지만 강렬하다. ‘사발가’의 울분은 꿈틀대는 드러밍과 징징 우는 일렉트릭 기타로 옮겨져 ‘시간보다 빠른 노래’가 된다. ‘창부 타령’이 이렇게 전투적인 노래 ‘야간행진’이 될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타이틀곡으로 손색이 없는 곡은 유독 압도적이다. ‘넘어온 기억’에서도 기타와 드럼은 거침없이 출렁출렁 흥겹다. 이 즐거움은 올림픽을 보는 재미와도 바꾸지 못할 것이다.

민중의소리를
응원해주세요

기사 잘 보셨나요? 독자님의 응원이 기자에게 큰 힘이 됩니다. 후원회원이 되어주세요. 독자님의 후원금은 모두 기자에게 전달됩니다. 정기후원은 모든 기자들에게 전달되고, 기자후원은 해당 기자에게 전달됩니다.

서정민갑 대중음악의견가 응원하기

많이 읽은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