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팔트 위, 살이 타들어가는 느낌” 폭염에 내몰리는 배달노동자들

라이더유니온 증언대회 “배달플랫폼, ‘비밀 프로모션’으로 한낮 시간 노동 유도”

음식 배달 자료사진ⓒ뉴시스

"다른 배달노동자들이 더운 데도 긴 소매 옷을 입는 게 부상방지를 위해서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도로로 나가니까 경험하지 못했던 열기, 살이 타들어 가는 느낌을 느꼈어요."

배달라이더를 시작하고 처음으로 여름을 맞았다는 배 모 씨는 28일 진행된 '온라인 라이더 증언대회'에서 폭염 속 배달 경험을 이같이 말했다.

배달노동자 노동조합 라이더유니온은 이날 '폭염 속에서 일하는 노동자 증언대회'를 온라인을 통해 개최하고 폭염 속 노동으로 건강을 위협받는 배달노동자들의 실태를 전했다.

이번 증언대회에서는 서울지역에서 배달 일을 하는 라이더 5명과 지역에서 배달대행업무를 하는 한 명이 실제 배달노동을 하면서 온라인회의(ZOOM)을 통해 현장을 전했다. 이날도 최고기온 36도를 기록한 폭염의 날씨였다.

라이더유니온은 연일 계속되는 폭염에 배달콜을 받는 스마트폰조차 열이 올라 오작동하는 바람에 배달이 지연되거나, 더위에 체온이 40도 이상 고온으로 측정돼 건물 출입을 제한당하는 등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밝혔다.

폭염 속을 달려온 배달노동자를 고온으로 측정한 체온측정기ⓒ화면 캡쳐

특히 폭염 속에서 헬멧 등 보호장구를 착용하고 열기를 내뿜는 아스팔트 위에서 배달노동을 하면서 열사병 등 온열질환에 노출돼 있다.

배 씨는 "물도 잘 마시지 못하고 배달 2건을 하고 나니 머리가 어지럽고 온몸이 떨려서 카드 입력을 못 하겠더라"면서 "물을 급하게 사 마신 다음에 다시 배달하기도 했다"고 자신의 경험을 전했다.

이 모 씨도 "땀띠 때문에 가렵고 긁고 나면 따갑고 딱지가 생긴다. 연고를 발라도 새로운 부위에 땀띠가 생긴다"면서 "1~2시간 일하고 나서 샤워를 하고 다시 나오는 데도 10분 만에 다시 땀이 나고 소금이 하얗게 생긴다"고 말했다.

폭염에 배달노동자들이 헬멧 등 보호장구를 부실하게 착용하는 경우도 우려된다. 라이더유니온 위대한 쿠팡이츠협회장은 "라이더 중에 가끔 자전거 헬멧 등 가벼운 헬멧을 쓰는 게 보인다"면서 "사고가 날 경우 안면보호가 안 돼 위험하다. 꼭 인증을 받은 헬멧을 착용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배달음식이 나오길 기다리면서 발언한 또 다른 배달노동자는 "더운 날에도 식당에서는 밖에서 대기하라는 경우가 많다"면서 "배달 플랫폼을 이용하는 식당에서 생수를 라이더들에게 지급하는 등 시스템을 마련했으면 좋겠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폭염 속에서 배달 노동을 해야 하는 상황이지만 배달 플랫폼 등에서는 휴식 시간이나 휴식 공간에 대한 대책은 없었다.

배달대행업을 하고 있는 김 모 씨는 "(배달대행) 사무실이 있지만 관리자들이 있으니 눈치가 보이니까 각자 집이나 공원 그늘에서 음료수나 마시면서 쉬는 편이다. 이 부분은 생각해본 적도 없다"고 말했다.

김 씨는 "배달플랫폼들이 2~3시간 배달을 하고 나면 (배달노동자가) 배달콜을 잡고 싶어도 못하게 하고 쉴 수 있는 시간을 주는 시스템을 만들어서 안전하고 집중해서 일할 수 있게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전문가로 참석한 이진우 경기도의료원 파주병원 노동자건강증진센터장은 "정부에서도 건설현장의 경우 오후 2~5시 사이 35도 이상일 때 업무를 시키면 적발하겠다고 하는데 건설뿐만 아니라 야외에서 일하는 현장에 넓게 적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배달플랫폼에서 45분 동안 콜을 받았다고 하면 나머지 15분 정도는 쉬는 시간으로 정하고 해당 시간 만큼의 임금을 지급해야 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면서 "오후 2~5시 사이 업무를 아예 중단할 수 없으니 배달플랫폼이 노동자들의 휴식권을 보장하는 전향적인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배달플랫폼의 '비밀프로모션'ⓒ화면 캡쳐

'비밀 프로모션'으로 한낮 폭염으로 내모는 배달플랫폼들

배달플랫폼에서 폭염 대책은커녕 오히려 일부 배달노동자들에게 '비밀 프로모션'을 제안하면서 한낮 시간 노동을 유도하고 있다는 증언도 나왔다.

배달이 몰리는 피크시간대인 오전 11시~오후 12시 등에 통상 지급하는 배달비의 1.5배에서 최대 3배 수준을 지급하는 프로모션을 일부 노동자들에게 보내는 식이다.

박정훈 라이더유니온 위원장은 "배달 플랫폼은 실시간으로 배달료가 달라지는데 특정한 라이더에게 프로모션을 보내 배달료 차이를 둔다"며 "달성 조건을 보면 (더위로) 가장 위험한 시간대에 뿌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렇게 더우면 일을 안 하면 되는 게 아닌가'라고 할 수도 있는데 배달로 먹고살기 위해서 일을 하는 노동자들은 이때가 아니면 돈을 벌 수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하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배달플랫폼의 '비밀프로모션'ⓒ화면 캡쳐

김 씨도 "일반배달대행에서는 자율성이 조금 없다. 관리직이 강제적으로 배차를 넣거나 '왜 일을 안 하냐'고 강요할 때도 있어서 쉬고 싶을 때도 못 쉴 때가 많다"면서 "어제만 해도 식사시간 30분 빼고는 11시간 일했다"고 말했다.

이어 "배달콜이 몰리기 시작했을 땐 로그아웃하기 힘들다. 로그아웃했다가 다시 접속하면 또 배달콜이 잘 안 들어오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라이더유니온은 배달플랫폼들이 차별적이고 무리한 건수 이벤트 프로모션을 자제하고 기본료 인상과 장시간 일할 시 경고 문구를 보내는 등 안전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들은 이외에도 △편의점, 주유소 등을 활용한 소규모 쉼터 확충 △도심 내 소형 그늘막 설치 △일반대행 업체의 폭염 할증 마련 등 조치도 요구했다.

이진우 센터장은 "정부에서 필수 노동자에 대한 대책을 발표했는데 여기에 라이더도 속해 있다"면서 "코로나 시국과 별개로 폭염이라는 상황도 재난이다. 폭염시기 야외 노동자에게 정부와 지자체가 어떻게 지원할지 대책을 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위원장도 "특정 기업이 이런 대책을 모두 책임지라는 것이 아니고 모두가 고민해보자는 것"이라며 "정부와 기업에도 마찬가지로 대책 마련을 위한 대화를 요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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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백겸 기자 응원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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