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가 시민이지, 노예입니까?” 학교부터 노동교육이 필요한 한국사회

송주명 한신대 교수(왼쪽부터), 윤미향 국회의원,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대 교수, 장윤호 이천제일고 교사, 이상현 특성화고권리연홥회 이사장이 28일 오전 서울 중구 민주노총 회의실에서 열린 ‘학교부터 노동교육 제도화를 위한 토론회’에 참석해 피켓을 들고 있다. 2021.7.28.ⓒ뉴스1

지난 2015년 '대학 가서 미팅할래? 공장 가서 미싱할래?'라는 한 디자인전문업체의 학용품 디자인 문구가 논란이 된 바 있다. 차별을 조장하고 노동을 비하하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사실 이 문구는 그보다 10년 전쯤 한 고등학교 교실에 내걸려 화제가 된 '급훈'이었다. 차별과 비하의 시초는 다름 아닌 학교였던 것이다.

한바탕 논란이 된 후엔 달라졌을까. 송주명 한신대 교수는 "아직 그게 살아있다"고 말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사회적 거리두기 시행으로 급증한 배달 노동자에 대해 누군가 "공부 못하니 할 줄 아는 게 배달원밖에 없다"는 막말을 했다는 사건은 올해 초에 발생했다. 최근에는 서울대 청소노동자가 과로와 '갑질'에 시달리다가 사망해 사회적으로 파장을 일으켰다.

송 교수는 일련의 사례를 두고 "한국사회의 민주주의 수준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꼬집었다.

이에 학교에서부터 노동교육이 체계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정치권 안팎에서 커지고 있다. 입법을 통한 제도화부터 내년에 개정될 국가교육과정에 이를 반영하자는 등의 대책이 제시되고 있다.

이를 위해 민주노총 등 168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학교부터 노동교육 운동본부'와 국회 교육위원장을 맡고 있는 더불어민주당 유기홍 의원실, 무소속 윤미향 의원실이 28일 서울 중구 민주노총 교육장에서 토론회를 공동주최해 전문가들과 머리를 맞댔다.

노동역사 배우는 외국과 크게 차이나는 한국의 교육 현실

현재 한국의 노동교육은 체계적으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경기도에서 노동교육 현황을 분석하고 연구한 바 있는 장윤호 이천제일고등학교 교사는 "진보교육감들이 들어서면서 노동인권교육 활성화를 위한 조례를 만들었다. 17개 시도교육청에서 4개 교육청은 아직 만들지 않았다"며 "조례가 있더라도 노동인권교육 대상이 제각각이고 (의무적으로) 얼마큼 하라고 규정한 것도 있고 아닌 것도 있다. 다르게 말하면 무한대로 할 수도 있고 아무것도 안 할 수도 있다는 건데 후자가 대부분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부 학교를 대상으로 시간이 규정되더라도 1년에 2시간 정도 배우는데 불과하다.

심지어 현행 교과서에는 반노동적인 내용까지 담겨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대 교수는 "일부 교과서에는 '고임금이 실업을 부른다'고 하거나 '최저임금 정책은 정부 실패의 사례'라고 한다"며 "(노동을) 배우지 않는 것도 문제지만 교과서 내용이 엉터리인 경우도 많다"고 꼬집었다.

또한 다른 나라의 학교 노동교육과 비교하면 턱없이 부족한 수준임이 드러난다.

박 교수는 "독일에서는 노동학이 별도로 있고, 노르웨이에서는 고교 교과서에서 노동투쟁사를 상세하게 다루고 있다"고 소개했다. 또 "프랑스 등에서는 초·중학교 때부터 시민교육과 역사교육 시간에 노동자 권리 쟁취를 배운다"며 "이는 학교 졸업 후 노동조합 가입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거나 노조에 가입하지 않더라도 마냥 부정적인 인식만 제고하지 않게 된다"고 평가했다.

나아가 박 교수는 "스웨덴에 노동박물관이 비교적 많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한국에는 쌀박물관도 있고 김치박물관도 있고 별의별 박물관이 다 있는데 노동박물관은 하나 없다"며 "대한민국이 부자 나라가 된 건 노동자 때문인데 노동박물관이 없다니 참으로 안타깝다"고 지적했다.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대 교수가 28일 토론회에서 해외 노동교육 사례와 한국에서 학교 안 노동교육의 필요성에 대해 발제했다.ⓒ유튜브 캡처

"시민과 노동자를 분리시키는 건 말이 안 된다"

전문가들은 민주시민교육과 노동인권교육이 연장선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박 교수는 "시민과 노동자를 분리시키는 건 말이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에서 '지하철 노동자 파업'을 두고 보수언론이 '시민들의 발목을 잡는다'는 제목으로 기사를 쏟아내는 것을 봤다면서 "노동자가 시민이 아니고 그럼 누구냐, 노예인가"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시민들 대부분이 노동자라는 걸 인식시킬 교육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송 교수는 "공정담론을 특징화해보면 시험을 굉장히 중요한 절대적 기준으로 만들어서 시험을 통과하면 대접을 할 수 있고 시험을 통과하지 않으면 대접해주지 말자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그런 맥락에서 중요한 건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는 일하는 사람이라는 정체성이 있고, 또 다른 나로 인정하고 연대 의식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며 "여기서 노동교육이 중요한 하나의 고리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송 교수는 "지금이 노동교육을 정착시키기에 호기"라며 "혁신학교에 이어 학교 민주주의, 민주시민교육 등의 발상과 인식이 전면화되고 있다. 민주시민교육과 노동인권교육이 함께 가야 한다"고 제언했다.

장윤호 교사는 국가교육과정 개정 방향으로 "인간존중과 노동존중 철학을 반영할 것"을 제안했다. 특히 "국가교육과정의 총론은 학교에서 헌법인 격"이라며 여기에 노동에 관한 내용이 반영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나아가 "근로기준법만 가르치는 교육을 넘어서야 한다"며 "노동을 통해서 세상을 이해하는 시각을 키워주는 것이 진정한 노동교육이다. 노동은 경제, 언론, 문화, 예술, 공정, 평등, 평화, 민주, 환경 등의 가치와도 맞닿아 있다"고 강조했다.

이상현 특성화고등학생권리연합회 이사장은 일하는 청소년과 청년이 요구하는 학교 노동교육을 소개했다. 특성화고등학생권리연합회가 지난해 직업계고등학교 3학년과 졸업생 71명을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한 결과, 응답자들은 현 노동교육의 문제점으로 '취업할 때 부당한 일이 생겨도 참으라 한다. 어차피 다녀야 하고 취업을 다시 못 시켜주니까', '형식적으로 영상만 틀어놓고 한다', '사회에 나와서도 도움이 되는 교육이 필요하다' 등의 의견을 내놨다.

이 이사장은 "꾸준하고 지속적인 노동교육, 생활과 문화에서 함께 익히는 권리의식, 사용자와 노동자 모두에게 필요한 교육, 학생들의 요구가 반영된 노동교육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윤미향 의원, 법안 발의 예고 "우리 사회의 인식 근본적으로 변화시켜야"

토론회를 주최한 윤미향 의원은 "저는 '학교부터 노동교육 운동본부'와 함께 노동인권교육 법제화를 준비하고 있다"며 "교실에서 또 다른 학업부담을 주자는 것이 아니라, 노동의 가치와 노동존중 사회에 대한 교육을 통해 노동인권의식을 가질 수 있도록, 나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노동인권도 존중하는 태도를 갖출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라고 법안 발의를 예고했다.

윤 의원은 "인권 사각지대에, 불안정한 노동에 시달리는 청소년들에 대한 사회적 책임이 요구되고 있다. 247만여 명의 청소년들은 예비노동자이자 이미 노동자"라며 "청소년들과 청년들이 최소한의 법적 권리도 모르는 상태에서, 알더라도 주장할 수 있는 훈련이 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호소했다. 이어 "노동이 존중받는 사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공부를 못 하니 저런 일을 한다'는 노동 비하 발언이 서슴없이 내뱉어지는 우리 사회의 인식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유기홍 의원도 "교육의 현장에서조차 노동의 가치가 제대로 존중되지 않고, 사회생활을 준비하는 학교에서 노동과 인권에 관한 진지한 교육이 이루어지지 않아 노동자가 자신의 권리를 충분히 보장받을 수 없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며 "노동의 가치가 귀하게 여겨지고, 노동자가 존중받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첫걸음은 학교에서의 노동교육"이라고 강조했다.

'학교부터 노동교육 운동본부' 상임공동대표인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은 "민주노총 위원장도 단체교섭이나 전략·전술을 배워본 적이 없다"며 "현장에서 노조 간부를 할 때 단체교섭을 경험한 분이 소개하는 정도가 그나마 제가 어떻게 하면 되는지 배울 수 있던 계기였다"고 소회를 밝혔다.

이어 "그나마 큰 공장에서 일해서 그럴 기회가 있었지, 최근 늘어나고 있는 비정규직 현장에선 도대체 어떻게 준비하고 대응할지에 대해 누구도 알려주지 않고 있는 사회에 살고 있다. 사용자들은 노동자들로부터 하나라도 더 빼앗기 위해서 골몰하고 연구하고 작전을 세우는데 우리가 당해낼 재간이 있나"라며 "학교에서부터 노동교육이 필요한 이유"라고 강조했다.

또한 그는 "학교에서 노동 교육이 제도화된다면 노동자가 차지하는 사회적 지위는 향상될 수 있다"며 "노동조합의 조직률은 노동자의 사회적 지위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다. 조직률 제고를 위해서도 노동 교육은 절실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초중등 교육에서부터 노동자와 노동조합에 대한 올바른 관점을 제대로 세워준다면, 노동조합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없어지면서 수많은 노동자가 노동조합에 가입하게 될 것"이라며 "이는 우리 사회의 분배 정의로 이어져 부정부패와 비리가 척결되는 사회로 발전하게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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